규민은 해은을 '선택'했다. <환승연애2>의 시청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르겠다. 규민이 데이트 파트너로 지목한 상대는 나연이었다. 해은에게는 문자조차 보내지 않았다. 몰래 캐리어를 들어주긴 했지만, 늘 냉랭했다. 여기에서 '선택'은 <환승연애2> 출연에 대한 것이다. <환승연애2>에 출연하기 위해, 규민은 상대방으로 해은을 선택했다. 규민은 어떤 생각으로 해은을 선택한 걸까. 

연애 리얼리티의 생명은 단연코 '진정성'이다. 진정성이라는 말이 지니고 있는 개념의 흐릿함 때문에 애매하게 들릴 수 있는데,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출연 의사', '출연 목적', '출연 태도' 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풀어서 얘기하면 '(연애 리얼리티에) 출연을 자발적으로 결정했는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가' 정도 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등 떠밀리려 방송 출연을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므로 자발성, 그러니까 '출연 의사'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어 보인다. 또, '출연 태도'는 출연 이후의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사후적인 부분이라 개별적 분석의 영역이 아니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없다거나 그밖의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입장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출연 목적'은 생각해 볼 여지가 많고 복잡하다. 

연애 리얼리티의 출연 목적은 연애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연애 리얼리티는 그리 순수하지 않았다. 채널A <하트시그널> 등 방송 출연을 홍보나 유명세, 연예인 데뷔의 등용문으로 활용한 사례가 많았다. 시청자들은 출연자들이 진짜 사랑에 빠지기를 원한다. 그들의 감정에 과몰입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런데 출연자가 진정성을 보이지 않는다면? 비로소 의심이 시작된다. 

ENA PLAY <나는 솔로>는 초창기에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출연자들이 지나치게 평범했기 때문이다. 다른 연애 리얼리티들이 소위 연예인급 외모와 어마어마한 스펙을 갖춘 출연자들을 섭외하는 데 혈안이 됐을 때, <나는 솔로>는 오로지 진정성만을 봤다. 정말 연애(와 결혼)에 의지를 갖고 있는가! 제작진의 노림수는 성공했다. 출연자들은 진짜 사랑에 빠졌고, 시청자들은 의심 없이 몰입했다. 

'X의 존재'가 출연 자격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2> 한 장면.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2> 한 장면. ⓒ 티빙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는 다른 연애 리얼리티와 구별된다. 우선, 출연 결정을 혼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른 연애 리얼리티의 경우 출연자가 미혼이든 돌싱이든 간에 '솔로' 상태에서 출연을 하게 되지만, <환승연애>는 'X의 존재'가 출연 자격이 된다. 제안자가 있고 수락자가 있기에 상대방의 동의가 필수이다. 그것도 X(헤어진 연인)의 동의 말이다.

kakaoTv <체인지데이즈>도 '연인의 존재'가 출연 자격이고 상대방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관계의 연속성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환승연애>와는 다르다. 생각해보자. <환승연애>에 출연할 의사가 있다면 먼저 자신의 X(가 여럿이라면 그 중 한 명)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평소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제안은 자연스럽지 않다. 

X를 설득하는 과정, 출연 결정 과정은 방송에서 대체로 생략되어 있는데, 둘 사이에 어떤 '딜'이 있었을지 상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운 접근이다. 반대로 연락을 받은 X의 입장은 어떨까. 방송 출연은 그 자체로 부담스러운 일인데다 제안자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내게 미련이 남은 걸까', '나와 다시 만날 생각이 있는 걸까', '나를 이용해 방송에 출연하려는 건 아닐까?'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2> 한 장면.

티빙 오리지널 <환승연애2> 한 장면. ⓒ 티빙

 
규민은 해은을 선택했다. 자신에게 미련이 남은 해은이라면 출연에 동의할 거라 여겼으리라. 6년 4개월 동안 연애했던 규민과의 연결고리가 절실한 해은에게 <환승연애2>는 동아줄이었다. 해은은 끊임없이 규민에게 마음을 전하지만 닿지 않자 절망한다. 해은의 눈물은, <환승연애1>의 호민의 눈물과 마찬가지로 <환승연애2>의 과몰입을 이끌어내는 요인이었다. 

규민의 출연 목적은 오로지 새로운 만남을 찾는 것이었을까. 그 때문에 해은의 존재가 필요했던 것일까. 규민은 해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눈앞에도 눈물을 흘려도 외면한다. 자신에게 미련이 남은 해은을 질색팔색하는 듯하다. "나만 좋아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환상이 깨졌"다며 이별의 이유를 고지하고, 울면서 잡는 해은을 싸늘하고 불편한 눈으로 바라본다. 

다른 출연자들은 어떨까. 태이와 지연은 서로에 대해 인간적 애정을 품고 있다. 원빈과 지수는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희두와 나연은 좀 애매한데, 헤어짐과 재결합을 반복했던 그들은 여전히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른 출연자들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보인다. 하지만 규민은 예외다. 존중이 없다. 이해하기 힘든 지점은 (해은이 아니라) 규민이 출연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규민에게 어떤 진정성이 있을까. 단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면 굳이 <환승연애2>가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연애 리얼리티도 많으니까. 해은을 희망고문할 이유가 있었을까. 나름의 복수일까. 아니면 방송의 힘을 빌려 해은을 단념시키고 싶었을까. 이별 후 두 사람이 별다른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다는 점에서 후자의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연애 리얼리티의 출연자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목적이 있다. 출연료, 사업 홍보, 유튜브 채널 홍보, 유명세, 방송 데뷔 등 다양하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이 '연애'이길 바란다. 불순물처럼 다른 목적이 섞이지 않길 바란다. 그리하여 연애 리얼리티는 출연자의 목적을 숨긴다. 발각되는 순간 연애 리얼리티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도 급격히 식게 될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환승연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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