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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선택과목인 고전 읽기 과목은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가 없다는 것은 '국가'가 지정한 교육과정을 반드시 지키지 않아도 되고 교사의 역량에 따라 자의적이고 창의적으로 교육활동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만큼 부담도 따른다. 2학기에도 평가계획을 세우며 수행평가를 진행할 제재의 선택과 지필평가를 실시할 문학 작품의 선택, 그리고 한 학기 지속적으로 학생들이 읽을 고전을 선정을 위한 작업을 나름 꼼꼼하게 준비했다.

그중 한 가지의 수행평가를 진행할 제재로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흥미를 느끼게 할 수 있도록 선택한 것이 영화 <아이 로봇>과 서유미 작가의 <저건 사람도 아니다>였다. 둘 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의 세계를 다룬 작품이었다.

생활에 밀착된 소설들

<아이 로봇>은 내가 처음 접했던 2004년만 해도 무척 신선한 소재였다. 재미있게 봤지만, 2004년의 이야기가 2022년의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다가갈지는 궁금하면서도 걱정이 따랐다.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로봇 시장에 대한 아이들의 시각을 따라가지 못해 식상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지. 미리 본 친구가 많지는 않을지, 요즘의 인공지능 로봇의 이야기보다 영화적 기법이나 이야기의 진행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아닐지 신경 쓰였다.

함께 선택한 단편소설은 짧지만 영화와 함께 수행평가를 진행하기에는 분량도 적절했고 생각할 거리도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읽기 쉬웠다. 생활과 밀착된 내용이면서도 언어적 표현이나 구성도 재미있게 받아들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첨단 인공지능 로봇의 발전과정은 물론이고, 그 과정에서 꼭 지켜야 할 인간의 자질이나 강점을 앞서 본 영화와 연관 지어 고민해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제재의 선정은 성공적이었다. 한 학급에 영화를 미리 본 학생은 한 명 정도였고 소설의 내용은 재미있어 했다. 논술형 평가에서 주제에 따라 머리를 쥐어짜서 쓰는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나오는 생각들을 비교적 거침없이 정리하는 모습이 보였고 쓴 내용도 다양했다. 결과가 좋으니 준비 과정에서의 고민이 보람으로 다가왔다.
 
책 <땀 흘리는 소설>
 책 <땀 흘리는 소설>
ⓒ 창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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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건 사람도 아니다'가 실린 <땀 흘리는 소설>에는 8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문학을 통해 노동을, 삶의 본질을, 개인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고민하게 하고 싶었다는 현직 교사들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소설집이다. 문학의 내밀한 속살을 보여주고 진정한 수업을 하고 싶었다는 고민은 선정된 소설을 통해서 고스란히 드러나는 듯했다.

첫 번째 작풍은 일다운 일을 찾아 헤매는 어비와 나의 이야기다(김혜진, <어비>). 물류창고를 전전하다 콘텐츠 창작자로 싸구려 중국 음식을 늘어놓고 타이머를 띄우고 먹으며 별풍선을 구걸하는 어비처럼. 나 역시 일 같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도 어비의 방송을 들여다보며 이렇다 할 일이 없는 작은 사무실로 출근하며 상사의 온갖 허드렛일을 할 뿐이다.

포털에 가상의 인물을 창조하고 블로그를 관리하며 홍보 대행에 뼈를 갈아 넣는 경진도 있다(김세희, '가만한 나날'). 생산적인 일이며 적성에도 맞는다고 느낄 즈음, 포털 감시팀의 시야에 걸려 블로그가 '저품질'을 받게 된다. 이후 자신이 만든 채털리 부인의 계정을 폐쇄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한 인물을 죽이기는 망설여진다.

다른 가상 인물의 계정을 만들고 관리하던 중, 추억을 되돌리기 위해 들여다본 채털리 부인 계정에 도착한 쪽지, 자신이 정성껏 포장해서 포스팅한 '뽀송이'를 보고 구매해서 쓰다 그 안에 포함된 독성 물질 때문에 아이의 폐가 손상돼 평생 호스를 끼고 살아야 하는 진단을 받은 이웃의 안부 쪽지다. 경진은 경제 원리는 깨달았지만 노동의 사회적 책임은 생각하지 못했던 자신의 행위를 끔찍한 기억으로 묻어 둔다.
 
-특히 아기 있는 집이라면 무조건 추천이에요~~^^
심장이 세게 뛰고 있었다. B 기업 살균제에 대해서는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뉴스에서 봤고,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사용 후기를 올린 적이 있다고는 생각지 못했다.(김세희, '가만한 나날' p.59) 

공무원을 꿈꾸며 신림동의 고시 인구 2만 중에 하나가 된 언니. 합격할 때까지 숨죽이며 고시원의 인조 잔디와 플라스틱 제비꽃이 어우러진 작은 정원에 위로를 받으며 동생이 찔러 준 5만 원에 면구스러운 감사를 하고 사는 청춘이다. 번역 아르바이트, 커피숍 서빙, 화장품 회사 홍보직, 잡지 교열, 논술 첨삭, 영어 과외 등 N 잡을 두루 거친 동생도 다르지 않다. 이들의 취업은, 추락한 자존감의 회복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김애란, '기도')

책에는 감정노동자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얼마 전 홈쇼핑 고객센터의 직원과 통화한 적이 있었다. 배송 관련해서 길게 얘기하는 동안 고객센터의 직원은 나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최대한 조심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과한 존칭, 무조건적이고 즉각적인 호응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노동의 가치는 어떻게 책정되어야 맞는 것일까? 코딱지만 한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귀퉁이에 뭔가를 꽂을 틈도 없이 사는 사람들. 한 번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늘 차악을 선택해야 하며 파이 밖으로 밀려나는 사람들. 무수히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 세상에 '을'로 내던져진 청춘들'(독자 후기)의 이야기가 잠시 마음을 답답하게 했다. 

정말 중요한 가치

수행평가로 진행한 소설 '저건 사람도 아니다'를 읽고 한 학생은 이렇게 썼다. 주인공이 계속 징징거리는 짜증 나는 소설이었다고. 징징거림과 구질구질한 사연을 빼면 조금 더 좋았을 것 같다고. 주인공의 그런 모습 때문에 현실적이어서 공감이 되고 좋았다고 하는 다수의 의견과는 상반된 의견이었지만, 죽음, 꿈을 절망하고 애도할 수조차 없는 그런 현실을 그리는 내용이 싫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책을 통해 학생들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비관적인 상황에서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간적인 삶의 모습이라는 것을. 소박하고 다정한 가족의 연대와 끈기 있는 생존력에 대한 찬사를 얘기할 수도 있다.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종류의 악 속에서도 끝내 선함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도.

그러나 정말 중요한 가치는 인간의 속살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도 누구도 드러내기를 꺼리는 내밀한 인간의 속살, 진심들. 지성과 반지성의 교차, 존엄과 비굴의 경계, 참담함과 고귀함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포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었다. 그런 인간의 얘기를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더불어 노동 현장에서 피와 땀을 흘리는 이야기를 통해 '먹고살아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노동의 가치와 삶의 방향성을 바로 잡고 사회를 향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땀 흘리는 소설 -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당신이 꼭 읽었으면 하는 소설

김혜진, 김세희, 김애란, 서유미, 구병모, 김재영, 윤고은, 장강명 (지은이), 김동현, 김선산, 김형태, 이혜연 (엮은이), 창비교육(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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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화, 사람 사는 이야기를 씁니다. 50대 후반, 남은 시간을 고민하며 가치 있는 삶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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