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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옥이네> 입사 후 충북 옥천 생활을 시작한 김성민 기자가 지난 100일 간의 정착기를 정리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또한 정착민이라면 누구나 겪고 보고 느끼게 되는 일상의 한 자락입니다. 아무쪼록 이 글이 낯선 공간으로 삶터를 옮긴 이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의 시작이 되길 바랍니다.[기자말]
사진은 2021년 가을 충북 옥천군 이원면 원동2리 풍경.
 사진은 2021년 가을 충북 옥천군 이원면 원동2리 풍경.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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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갈망한 지역잡지 기자, 뒤늦게 따라 걷기 시작한 꿈 때문에 나는 옥천 정착을 서둘렀다. 허겁지겁 방을 구했고, 임대차 계약을 끝내자마자 전입했다. 먼저 소속되고 쭉 살며 스며들겠다는 생각이었다. 삶터를 바꾸는 긴장감이 무색하게 '서류 정착'은 20분 만에 끝났다. 옥천읍 행정복지센터로 가 전입 신고서를 제출하니 바로 군민이 됐다.

기자가 되자마자 명함 지갑에는 새로 만난 사람의 명함이 수북이 꽂혔다. 하지만 퇴근 후 숨어드는 20㎡ 남짓한 좁은 방 안에서 나는 다시 고향으로, 전북 '전주시민'으로 회귀했다. 연락처를 뒤져봐도 '같이 밥 먹을래?' 하고 물을 마땅한 이웃이 없었다.

급히 친목을 시도하려 들었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같다. 급하면 관계가 망가진다. 섣불리 친근을 들이밀자 사람들은 경계했다. "자주 연락드리겠다"고 선언하자 "왜요?"라 되물은 뒤에 이런 답을 이었다. "더 취재할 게 남았나요?" 필요할 때만 찾아와 기사만 뽑아가고 바로 남 된다며, 친한 척하지 말라는 주민도 있었다.

옥천에 얼마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공감을 이야기하자 비웃음도 당했다. 여전히 전주인 양 행동하고, 모르는 이에게 동향·동창의 공감대를 기대하는 나를 오롯이 마주한 것이다.

근래엔 조금 잠잠해졌지만 '~살이'가 한동안 유행이었다. 짧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1년까지 다른 지역에 가 삶의 결을 달리 해보는 거다. 하지만 정착은 살이와는 다르다. 살이는 오래 묵는 객이지만, 정착은 주민이 돼야 하는 일이다. '살이'의 마음가짐으로 정착을 시도하면 필패다. 마음이 급했던 건 옥천을 계속 '살이'의 공간으로 인식해서가 아니었을까.

옥천 정착 100일, 모든 게 놀라웠다

먼저 통장 명세, 휴대전화 사진첩, 통화 기록, 내비게이션 목적지 목록 같은 내 생활 반응을 추적해 100일의 감상을 역산했다. 정착 직후부터 긍정적으로건 부정적으로건 '문화 충격'을 받은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옥천에 올 때 군 단위 농촌 지역 생활 방식은 다 비슷하리라 예단했다. 대학·직장 생활하며 전북 완주군에서 몇 년 거주해봤기에 더 그랬다. 하지만 같은 농촌이어도 생활 양식은 꽤 달랐다. 지역 정책, 주민 정서, 하다못해 도로 설계 사상과 음식물쓰레기 분리·배출 방법까지 판이했다.

첫 번째 충격은 공영주차장 무료였다. 코로나19 범유행 피해 복구를 위해 방문객 편의를 제공한다는 멋들어진 이유였다. 나는 도시 생활에서 얻은 주차 피로감을 한 방에 녹였다.

그런데 도로에도 자유롭게 주차하는 이가 많았다. '불법주정차 단속 중' 팻말이 떡 붙어있고 카메라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장박(장기 무단 주차)'을 당연시하는 화물차와 인적 드문 지방도에 세워진 농기계들은 도로를 차고지처럼 썼다.

옥천읍 시가지와 가화·양수리 지역을 잇는 '가화지하차도'는 더 놀라웠다. 금거북이길에서 양수리를 가려면 지하차도 옆길을 따라가다 180도 유턴해 지하차도로 들어가야 하는데. 유턴 표지판도, 유턴 차선도 없다. 색칠된 유도로도 직진만 가리킨다. '교통지옥'이라 별명 붙은 복잡한 부산 도로에서도, 서울에서도 접한 적 없는 희귀한 도로 설계였다.
     
'물가 환율'도 나를 아리송하게 했다. 전주, 완주도 곡창지대니 옥천도 비슷하리라 예상한 농산물값은 훨씬 쌌다. 솔직히 옥천로컬푸드 직매장 상품가는 '전주푸드 직매장' 시세에 비하면 '염가' 수준이다. 비쌀 거라 예측한 공산품 가격은 대동소이했다. 그런데 또 미용실 등 서비스 비용은 고환율이었다. 모든 게 예상 밖이었다.

옥천 최고의 '와일드카드' 칭찬은 꼭 해야겠다. '향수OK카드' 말이다. 상시 10%인 '인센티브' 혜택도 우수하지만, 프랜차이즈건 뭐건 사업장이 옥천이면 사용 가능하다는 점이 최고다(다른 지역화폐는 지역 상권 보호를 이유로 업장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다). 또 옆 동네 대전을 비롯해 지역화폐 예산을 마구 삭감 중인 타지와 달리 꿋꿋하게 10% 비율을 고수하고 있어 감격스럽다.

음식물쓰레기와 재활용품 분리·배출 기준은 도저히 옹호할 수 없다. 이사 첫날, 음식물쓰레기통을 찾다 들은 이야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옥천에서는 일반쓰레기예요." 양을 줄이려고 물기를 꼭꼭 쥐어짜 담은 음식물쓰레기 봉투를 들고 황망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쓰레기 집하장에는 재활용 쓰레기들이 커다란 비닐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어 버려져 있었다. 빈 페트병 포장을 뜯고, 뚜껑까지 따로 구분해 분리수거 한 노력이 상장 폐지된 장외 증권 마냥 액면가 높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고액 노력'을 포기하지 않고 산다.
 
180도 턴이 필요한 '가화지하차도'
 180도 턴이 필요한 "가화지하차도"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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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없이 따뜻한 마음...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문화 충격 다음엔 인정사정없이 들이미는 인정에 놀랐다. 한 지역의 인심을 파악하고 싶으면 동물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된다는 말이 있다. 옥천은 생명 존중에 진심인 동네다.

특히 금거북이길에 출몰하는 '길냥이' 두 마리를 보살피는 모습을 보고 감탄했다. 한쪽 앞다리가 없어도 동네 대장냥이 행세를 하는 '빵떡이'와 처음 본 사람에게도 애교를 과시하는 '꿀빵이', 이 두 길고양이는 금거북이길에 자리잡은 여러 미디어 회사 사람들이 함께 보호하고 먹인다. '옥이네 밥상' 테라스에 거처까지 마련해줬고, 꿀빵이는 '여론조사'를 거친 후 투표로 이름을 정했다. 보통 정성이 아니란 뜻이다.

동물권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 주도한 이런 사례로 옥천 전체를 일반화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본 옥천은 동네마다 길고양이를 돌보는 가게가 넘쳐나고, 주민들은 고양이가 가게 안으로 쳐들어와도 분노하며 마구 내쫓는 일이 드문 곳이다. 어르고 달래서, 그래도 안 통하면 조용히 들어서 내보낸다. 마구잡이로 실내 출입을 허용하라는 게 아니다. 그저 불필요한 폭력과 물리력 동원을 동물에게 남용하길 거부하는 거다.
     
사람을 아끼는 마음은 더 깊었다. 당장 전입 신고할 때부터 그랬다. 행정복지센터 직원들은 의례적인 친절을 넘어 우러난 반가움을 표현했다. 인구 5만 선마저 깨진 옥천에 청년이 이주한다는 게 기쁠 터였다. '청년 월세 지원 사업' 등 전입자가 받을 수 있는 지원 정책을 먼저 묻지 않아도 친절히 설명해주곤 '길도 모르는 새내기'에게 상세히 신고 방법과 담당 부서까지 안내해줬다. 혹여 내가 군민이 아니라 '미아'가 될까 싶어 신경 써준 마음씨가 달큼했다.

어떤 날엔 불쑥 '소매넣기'를 당한 적도 있다. 좁은 공간에 낑낑대며 주차하고 있는데, 생전 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오라이'를 해줬다. "어, 잘 들어가고 있어~ 더 돌려~그만~" 급히 창문을 열고 감사 인사를 건네려는데, 그 어르신은 바로 뒤돌아 갈 길 갔다. 몸에 밴 선의였다.

장날에 마주친 할머니 한 분은 "어르신 차 뺄 테니 옆으로 비켜주세요"라고 딱딱한 말을 건네는 내게 뜬금없이 "총각도 옥수수 하나 잡술겨?" 하고 알이 큰 옥수수는 물론 '센베' 과자까지 건네줬다. 길에서 만난 옥천 사람들은 더없이 뭉클했다.

요즘은 아침마다 꼭 편의점에 들른다. 내가 '정착자'임을 한눈에 알아본 사장님과 안면이 터서다. 어디 사는지, 적응은 잘했는지, 왜 저녁마다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지 안부를 묻고 걱정을 보태는 사장님과 정들 수밖에 없었다. 집밥 그리워하는 내게 총각김치도 선뜻 '소매넣기' 해준다. 처음에 이런 관심을 단골 만드는 비결로 오해했던 내 의뭉스러움 때문에 얼굴 뵐 때마다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빵떡(왼쪽)과 꿀빵(오른쪽)은 금거북이길 마스코트다.
 빵떡(왼쪽)과 꿀빵(오른쪽)은 금거북이길 마스코트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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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풍흉마저 달관한 농민의 마음

농촌 특유의 공동체 정신, 그리고 땅 냄새 오래 맡은 농민만이 드러내는 허심탄회한 정서도 나를 옥천에 붙든 힘이다.

학창 시절 방학마다 외가가 있는 농촌에서 일손을 보탠 나는 시골을 '사회과 부도'로만 보고 자란 '도시 촌놈'이 아니라고 자부했는데, 오만이었다. 옥천에서 겪은 두 계절이 그저 모판좀 들어 봤다고, 나락 베는 데 '다리 심줄' 세워봤다고 농본 운운하던 나를 염치없게 만들었다.

한번은 궁촌재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에서 쟁기를 묶어 끌고 가는 백발 어르신을 보고 차로 태워 드리려 했었다. "어르신 어디까지 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하지만 그 할아버지는 "차로는 못 가는 길"이라며 한사코 거절했다. 산비탈 밭까지 가 땅 갈아야 한다는 그분께 내 도움 같은 '편안함'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저 평생 디딘 대로, 땅에 억세게 꽂히는 쟁기 쇳덩이 무게만큼 삶을 저벅저벅 길에 박고는 훌훌 걷는 뒷모습이었다.

사진 촬영을 위해 동이면과 안남면 일대의 '복사꽃 흐드러진' 풍경을 찾을 때 마주친 농민들도 초연했다. 말은 꿀벌이 줄어 심란하다면서도 걱정 한 톨 안 섞인 표정으로 "농번기가 왜 농번기인지 알어? 농민이 번뇌하는 기간이라 농번기인겨"라 자조하는 해학에 반하지 않고 배기랴.

아직 미혼이라는 말에 새참으로 가져온 총각김치 먹어야 구색이 맞다며 입에 넣어주고, '기 센 암탉'이 낳은 유정란 세 알을 부득불 손에 쥐어주는 허심 속 달관을 감히 어찌 다 헤아릴까.

경로당 취재 날엔 나도 모르는 혈연을 만나기도 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후 오랜만에 모인 '할매'들은 나를 순식간에 피 안 섞인 손주로 만들었다. 전주에서 왔다는 나에게 "우리 손주가 전주 살어" 한 마디를 발단으로 "그럼 같이 손주 혀"로 순식간에 가족관계증명서가 발급되더니 "기자 총각도 좋지?"라며 족보 공증까지 끝나버렸다. 전 과정이 신속 정확해 단 10초가 걸렸을 뿐이다.

그런데 그냥 농이 아니라 진짜 손주 챙기듯 '튀밥'을 주섬주섬 싸주고, 오며 가며 안 들르면 불효자라고 선언하는 속마음까지 환한 애정이었다.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명치까지 확 번져 가슴이 아렸다.

수몰마을 주민들을 구술채록할 때 들은 한 많은 사연들도 나를 울컥하게 했다. "지금 볍씨가 아무리 실해도 물 잠기기 전 내 논에서 나온 쌀만큼 기름진 건 못 봤다"는 자부심 넘치는 회상, "대청호는 마을을 수몰한 게 아니라 농민을 수몰한 거"라는 원망 섞인 탄식, "벼는 가물어도 죽고 잠겨도 죽는다"며 대청호의 존재 가치와 수몰민의 희생을 고차원적으로 비평하는 예리함까지...

어설픈 농군 흉내와 겉보기 지식으로 가늠할 수 없는 농민의 수심 앞에 자연히 겸허해지고 만 것이다. 인간의 삶을 여러해살이 식물로 은유한다면, 해마다 겪었을 희로애락의 풍흉은 이 농민들의 마음에 격차 큰 나이테를 새겼을 것이다. 나는 그저 그 둘레를 어림짐작해보는 게 다였다.

후숙해야 맛있는 과일도 있다, 삶도 그렇다
 
농촌 특유의 공동체 정신, 그리고 땅 냄새 오래 맡은 농민만이 드러내는 허심탄회한 정서도 나를 옥천에 붙든 힘이다.
 농촌 특유의 공동체 정신, 그리고 땅 냄새 오래 맡은 농민만이 드러내는 허심탄회한 정서도 나를 옥천에 붙든 힘이다.
ⓒ 월간 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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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복숭아 축제를 앞두고 옥천 과수농가마다 과실이 주렁주렁 달렸다. 태풍 하나도 직격당하지 않고, 유난히 가물었던 날씨로 햇빛 왕창 받아먹은 올해 복숭아들은 유달리 달 것이라고 들었다.

세상 과일 중에는 '따고 익혀야' 맛난 것도 제법 있다. 보통 후숙이라고 부르는 이 과정을 거치면 떫음도 감칠맛으로 변모한다.

감히 옥천을 100일짜리 눈대중으로 평가하는 무례함을 저지르는 나지만, 삶은 후숙으로 이어지는 장기 보관 종자라 믿는다. 미숙함이 완숙함으로, 낯섦이 설렘으로, 무례함이 친근함으로 다 익도록 내 정착은 생장할 것이다. 비로소 더 이상 옥천의 '타자'가 아니게 될 때까지는.
 
월간옥이네 통권 62호(2022년 8월호)
글‧사진 김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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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귀촌, #옥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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