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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편집자말]
금요일 퇴근 시간. 직장인이 되고 나서 매주 가장 손꼽아 기다리는 때이다.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피로는 녹아내리고 스트레스도 잠시 잊힌다. 지하철역까지 걸어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볍고 마음도 들뜬다. 매일 해도 별 수 없는 고민조차 이 순간만큼은 즐겁다. '오늘 저녁에는 뭐 먹지?'

금요일이니까 가족과 의논해 아이가 원하는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결정한다. 시원한 생맥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 외식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도사리는 어떤 죄책감도 이날만큼은 면죄부를 얻는다. 시원한 생맥주를 꿀꺽이며 한 주의 고단함과 답답함을 삼켜버리고 금요일 저녁의 해방감을 만끽한다.

'불금'의 해방감은 토요일 아침이 밝아오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평일에는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던 점심 식사까지 포함해서 토, 일 이틀간 총 여섯 끼. 한두끼야 사 먹더라도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주부의 임무는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쉼이 없다. 각자 밖에서 해결했던 끼니까지 더해진 주말의 밥 걱정이 비로소 시작되는 순간이다.

불금 이후 찾아오는 주말 끼니 걱정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주부의 임무는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쉼이 없다.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주부의 임무는 출근하지 않는 주말에도 쉼이 없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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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정도는 남편이 냉장고를 뒤져 한 그릇 음식을 만들어 차려낸다. 나보다 더 맛깔스럽게 요리를 만들고 뒷정리도 곧잘 하지만 끼니의 총체적인 책임은 주부인 내게 있다.

식자재의 준비나 관리, 다음 끼니에 대한 고민은 전적으로 내 몫이다. 퇴근이 늦은 나를 대신해 저녁을 차리는 일이 잦은 남편이지만 그의 도움은 한 끼니 정도에 머문다.

나 역시 결혼 전에는 냉장고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관심 없었다. 지금은 아침밥을 위해 쌀을 씻어 불려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도 취사 버튼을 누르러 주방을 오간다. 쌀, 달걀, 우유나 과일 같은 것들이 떨어지지 않게 살피고 목록을 짜 장을 보고, 퇴근길 집 앞 반찬가게에 들르는 일을 자연스레 하고 산다.

예전에는 오로지 나 하나만 신경 쓰면 됐다. 배가 고프면 먹고 아니면 한 끼는 대충 건너뛰었다. 하고 싶은 일은 그때그때 바로 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지금, 원하는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긴커녕 원하는 바와 무관하게 해야 하는 일은 계속 밀려든다. 끼니 고민도 마찬가지다. 내가 먹고 싶든 아니든 밥은 가족을 위해 챙겨야 하는 일이 되었다.

각종 생필품의 마련, 아이 학교 준비물과 학습과 관련된 결정 사항, 개학이나 방과 후 수업에 따라 바뀌는 학원과의 일정 조율, 양가 대소사 관련 등 사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생기는 일들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결정과 해결을 기다리는 일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다 보면 정작 나를 위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방송채널에서 육아와 가사에 지친 방송인들이 자신을 위한 해방의 시간을 보내는 관찰 예능 프로그램을 방영해서 주변의 워킹맘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내게도 그런 시공간이 절실하다. 짬짬이 나를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지만 잠시 자유를 얻었다고 기뻐할 틈도 없이 나를 필요로 하는 일들은 계속 생겨난다. 그중에 제일 고민인 밥 때도 어김없이 돌아온다.

워킹맘인 내가 나로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때인 새벽, 온라인으로 글벗들과 만나 글을 쓸 때도 밥은 나를 구속한다. 글을 쓰다가 불려둔 쌀을 밥솥에 안치고 취사 버튼을 누르러 다녀온다. 약한 불 위에 멸치육수를 올려두기도 한다. 그렇게 밥 생각을 하며 주방을 오가다 보면 내가 쓰고자 했던 문장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뭐든 좋으니 주는 대로 먹고, 하루라도 좋으니 자유롭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말의 마지막 끼니인 일요일의 저녁상을 치우고 나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온다. 비록 월요일이 닥쳐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순간만은 편안하다. 그렇게 월요일 아침이 되면 출근의 부담감과 더불어 어떤 면에서는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고민 없이 먹을 수 있다는 행복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마주하면 살짝 뭉클해진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마주하면 살짝 뭉클해진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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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내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순식간에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동료들과 수다를 나누며 구내식당에 당도한다. 이미 식사 중인 사람들이 내는 식기와 수저가 부딪히는 소리, 웅성거리는 소음이 들려온다. 직원 인증을 하고 줄을 서서 수저와 식판을 들고 먹을 수 있는 양만큼 음식을 식판에 옮겨 담는다.

투명 아크릴판으로 칸막이가 되어 있는 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밥과 국, 그리고 반찬을 마주하면 살짝 뭉클해진다. 종종 국이 싱겁거나 그 반대로 반찬이 살짝 짤 때도 있지만, 건강하고 정갈한 집 밥 같은 맛이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뭘 먹을지 고민 없이 주어지는 밥, 짧은 자유를 선물하는 시간에 진심으로 감사함이 솟구친다.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음식을 입으로 가져가고 천천히 씹는다. 간절히 원했던 여유 한 스푼이라는 특별한 양념이 들어가 있는 월요일의 점심이다. 월요일은 식당에 가야 한 주의 식사메뉴를 확인할 수 있어서 기대감을 안고 왔는데, 반찬으로 나온 간장과 고추냉이를 섞어 만든 소스를 뿌린 부추 삼겹살 샐러드가 꽤 괜찮다.

순간 습관적으로 '저녁은 또 뭘 먹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고민을 넣어둔다. 이 순간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여유를 즐겨본다. 남이 만들어 준 세상 제일 맛난 밥맛을 온전히 즐기며 아침에 쓰려다 만 문장을 다시 떠올려 본다. 생각날 듯 말 듯하지만 어쩐지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떠오를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일! 시민기자들이 '점심시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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