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회 EBS 국제다큐영화제가 8월 22일부터 28일까지 열립니다. '다큐의 푸른 꿈을 찾아서'라는 슬로건으로 찾아온 이번 영화제에서는 총 24개국 63개의 작품이 소개됩니다. [편집자말]
*주의! 이 글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장의사>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의사>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1.

지난 35년간 아일랜드 코노트 지방의 메이요와 슬라이고를 오가며 많은 이들의 장례를 주관한 데이비드 맥고완씨. 그의 직업은 장의사다. 사람이 죽은 뒤에 사후 처리에 속하는 여러 업무를 한다. 이들은 유족이 짊어진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 유족이 비통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죽음은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지만 매달, 매년 반복해서 경험하는 일은 아니다. 평균적으로 11년에 한 번씩,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동안에 경험하는 이 비극 앞에서 사람들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한다. 그는 그래서 장의사라는 직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질리언 마시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장의사>는 아일랜드에서 오랫동안 장의사 겸 시신 방부 처리사로 직업을 이어온 데이비드 맥고완의 삶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한 인간이 지고 나아가야 할 삶의 여러 단계 가운데 가장 애통하다고 할 수 있는 순간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한 사람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그저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삶과 죽음, 장례 과정과 그 방법에 대해 조금 더 깊이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작품의 배경이 되는 영국과 미국, 아일랜드의 문화와 풍습에 기대어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어 현재 우리나라의 모습과 조금 다른 부분도 있다. 하지만 장례 방식과 같은 공통적인 내용에서 이해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고, 고인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와 같은 부분에서는 깊이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맞은 사람들을 도우며 만족감을 느껴요."

02.
망자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장의사가 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다. 어떤 방식으로 장례를 치를 것인가를 논의하는 것부터 묘터를 고르는 일, 장례식 예산을 짜는 일까지도 모두 그들의 업무다. 그중에서도 특히 예산을 짜는 일은 중요하다. 고인을 모실 관, 장례식장이나 영구차 등의 서비스 비용, 각종 인력에 지불해야 하는 비용 및 꽃이나 헌금과 같은 각종 경비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예산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한 사람을 떠나보내는데 드는 비용은 5500~6500 파운드(약 1000만 원 선) 정도라고 한다.

이 많은 과정에 개입해 유족의 어려움을 돕고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족들은 너무 바쁘다. 추도사도 준비해야 하고 음악도 준비해야 하고 주변에 고인의 소식을 전하기도 해야 한다. 그중에는 애도의 시간 속에서 눈물이 나지 않는다며 자신이 정상인지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앉아서 슬퍼할 시간조차 없다.

하지만 슬픔은 결국 느끼게 된다. 언제 뒤늦게 숨어있던 비통함이 찾아올지 모른다. 문제는 그때 찾아오는 슬픔은 제 때 울 수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깊은 슬픔이 되곤 한다는 사실이다. 고인과 유족들을 매 순간 진심으로 대하는 맥고완씨지만 각자의 슬픔을 해체하는 일까지는 도와줄 수가 없어 마음이 아프다.
 
 다큐멘터리 <장의사>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의사>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3.
작품에 따르면, 맥고완씨가 처음 장의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지역의 한 술집을 인수한 뒤에 그 술집이 장의사 업무도 함께 관장하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장례식장이 따로 운영되지 않는 시기였다고. 장례식 치르는 법 같은 건 모른다고 항변을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아들인 맥고완씨가 관을 준비하고 이것저것 일을 도우면서 이 사업에 뛰어들게 되지만 고인에 진심을 다하고자 하는 마음에 미국 시카고로 건너가 장례사 전문 교육과 시신 방부 처리 방법을 배우게 된다.

미국의 아일랜드 커뮤니티에서 그의 이름이 조금씩 평판을 얻고 유명해지며 큰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오게 된다. 미국 내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살인 및 마약 사건과 그로 인해 넘쳐나는 시신들. 심지어는 아무도 데려가지 않으려는 무연고자 시신을 접하고는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례와 고인을 기리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일랜드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고향의 풍습 안에서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이 일에 종사하고 싶었다.

그가 특히 더 죽음을 추모하는 일과 방식에 매달리는 이유는 아일랜드인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방식에 있다. 경야(經夜)다. 죽은 사람을 떠나보내기 전에 곁에서 함께 밤새도록 시간을 보내는 일. 그들은 경야라고 부르는 이 행위를 통해 망자와 마지막 시간을 보낸다. 다시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기에 이렇게 함께 보내는 일이 그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제 두 번 다시 입맞춤도, 포옹도, 말다툼도 하지 못하지만 망자 곁에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얻는 거다. 그러면서 울기도 한다. 슬픔은 비통함을 이겨내는 방어기제이기에 이런 시간을 통해 쏟아내는 일은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망자가 눈앞에 그대로 보이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아직도 그들의 영혼이 가까이 머문다고 믿는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렇게 할 기회는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다.

04.
데이비드 맥고완씨는 30년이 넘게 이 직업에 종사하면서 크게 느끼게 된 점이 두 가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죽어서 묻힐 땐 부귀영화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과, 또 하나는 영적 세계는 이승보다 훨씬 광대하다는 것이다. 그는 실제로 이 일을 하는 동안 여러 영적인 경험들을 했다. 고인을 안치한 채로 장지로 향하던 자동차가 생전 그가 좋아하던 장소 앞에서 갑자기 멈춰 선다거나, 평생을 화장하는 법이 없이 살아온 사람의 피부에 화장품이 제대로 먹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그는 우리가 죽음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주변과 함께 나눠야 한다고 말한다. 죽음과 관련한 이야기는 재수가 없다며 금기시되지만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입 밖에 내지 않게 된 주제는 두려워질 수밖에 없고, 생전에 이야기 나누지 못한 죽음은 제대로 배웅할 수 없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맥고완씨와 깊은 인연을 이어온 친구 더그 홉킨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가까운 친구이자 전직 조종사였던 그가 말기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장례를 의뢰해왔다. 가까운 사람의 장례를 직접 준비하는 일은 어떤 마음일까?

그는 자신의 친구가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독려하면서 그의 장례를 준비한다(실제로 더그씨는 촬영 과정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맥고완씨가 그의 시신을 수습하는 장면이 화면 속에 담긴다). 러닝 타임 전체를 통해 그가 설명해왔던 장례를 대하는 모습과 마음이 하나의 장면 속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다큐멘터리 <장의사> 스틸컷

다큐멘터리 <장의사> 스틸컷 ⓒ EBS국제다큐영화제


05.
뉴저지에서의 한 강연 중에 청중 가운데 한 명이 질문을 던져왔다. 맥고완씨가 교회로 향하는 영구차 사진을 하나 보여줬는데 그 차를 300명이 에워싸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 질문자와 미국인 청중은 왜 사람들이 차를 에워쌌는지 궁금해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고인이 자기 힘으로 혼자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대답이야말로 그가 고인을 대하며 평생을 지켜온 마음과도 같다.
마지막까지 함께, 곁에서 걸음을 옮기는 사람. 그가 생각하는 장의사의 모습이다.
EIDF 다큐멘터리 장의사 EBS국제다큐영화제 넘버링무비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