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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을지 국무회의를 첫 주재하며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을지 국무회의를 첫 주재하며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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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써야 하나. 취임 100일 만에 이처럼 많은 지지율 여론조사가 쏟아진 게 윤 대통령이 처음이지만, 이토록 많은 대통령 비판 칼럼이 나온 것도 내 기억엔 처음이다." - 22일자 <동아일보> '[박제균 칼럼]대통령 권력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또 대통령 비판을 해야 하나'라는 보수신문 논설주간의 한탄이 이채롭다. 취임 100일 이전 지지율이 20%대로 폭락하면서 소위 보수언론들도 이러한 비판 대열에 동참한 바 있다.

<동아일보> 박제균 논설주간은 이를 두고 "과거에는 있었던 '허니문' 기간이 사라진 것, 문재인 정권 이후 어느 때보다 진영으로 갈라진 언론 풍토가 큰 이유일 것"이라며 "여기에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필자들도 비판 글을 양산(量産)한 게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고 풀이했다.

이어 박 주간은 "무엇보다 윤 대통령은 권력의 속성, 최고 권력자의 처신에 대한 숙고의 시간이 부족해 보인다"며 "100일간 '대통령 신고식'을 호되게 치른 윤석열은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을 깊이 고민했으면 한다. 대통령 권력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며 글을 맺었다. 해당 칼럼의 비판 수위는 보수언론을 대표하는 논설주간의 칼럼 치고는 무척이나 셌다.

지난 한 주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에 이어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 발언을 통해 나름의 국정 철학과 향후 과제 등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을 향한 '담대한 제안'에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어리석음의 극치"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고 격하게 응수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 모두 발언은 자화자찬이란 평가가 우세했다.

<동아일보>가 "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써야 하나"라고 한탄한 날, <조선일보> 역시 사설과 외부 칼럼으로 대통령 비판에 가세했다. '대통령실 개편, 대통령 주변 관리 대책도 시급하다'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대통령 배우자와 친인척, 측근 감시 기능이 완전히 공백 상태"라고 꼬집은 뒤 "참모 조직과 면면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통령 주변이 국민 앞에 한 점 의혹 없이 당당하도록 관리하는 체제를 갖추는 것도 시급한 과제"라고 주문했다.

외부 칼럼은 수위가 더 셌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대통령 취임 100일 회견에 빠진 것들'이라는 칼럼을 통해 "회견을 지켜본 뒤 대통령이 지지율 하락의 근본 원인을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그 무엇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려는 윤 대통령의 겸허한 태도가 우선 중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동아> <조선>과 다른 <중앙>의 '윤비어천가'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호우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호우 피해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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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중앙일보에 실린 이하경 칼럼 '어둠 속 반지하 계단에서 미끄러진 대통령'.
 지난 22일 중앙일보에 실린 이하경 칼럼 "어둠 속 반지하 계단에서 미끄러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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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 당선 직후과 취임 초기, 종편을 중심으로 쏟아졌던 이른바 '윤비어천가'가 취임 100일 만의 역대급 지지율 폭락으로 자취를 감춘 것이 사실이다. 마침 <조선>과 <동아>가 일제히 비판 대열에 동참한 날, 나홀로 '윤비어천가'를 부르 짖으며 눈길을 끈 보수 언론이 있었다. <중앙일보>였다.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부사장은 22일자 '어둠 속 반지하 계단에서 미끄러진 대통령'이란 기명 칼럼에서 지난 9일 윤 대통령이 수해로 인해 일가족 3명이 사망한 신림동 주택을 찾았던 장면을 환기시키고 "하지만 비극의 실체를 온몸으로 끌어안는 전면적 공감의 태도는 아니었다"고 전제한 뒤 반전과 같은 다음 문장들을 쏟아냈다.
 
현장에 동행했던 인사에게 "대통령은 왜 안에 들어가지 않았는가"라고 물어봤다.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대통령이 만류를 뿌리치고 출입금지선인 폴리스 라인을 넘어 어둠 속 계단을 걸어 내려가 경호원들이 당황했다는 것이다. 도중에 미끄러져서 넘어질 뻔했고, 구두와 바지를 흙탕물에 적신 것도 알게 됐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는 빈자(貧者)의 천국이었고, 지옥이었다. 대통령이 저 먹먹한 슬픔의 공간으로 몸을 밀어넣은 것은 국민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라는 무한책임과 연대의 증거다. 스스로 대통령다움을 입증한 것이다. 이로써 가진 자의 편에 선 오만한 선민(選民)이라는 부당한 편견에서 벗어났다.

"만류를 뿌리치고", "먹먹한 슬픔의 공간", "무한책임과 연대의 증거", "대통령다움을 입증"과 같은 문장이 꽤나 낯뜨겁다. 상상과 애정이 버무려진 이런 찬양조와 달리 이하경 부사장은 신림동 주택의 열악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고는 "지옥"이라 명명해 버렸다. 그럴 이유가 있었다.

이 부사장은 이어 톨스토이의 소설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를 소개했다. 주인공인 구두수선공 마르틴의 반지하방이 "신(神)을 만난 기적의 성소(聖所)"라는 것이다. 소설 속 장면을 설명한 이 부사장은 "신은 어느 시대에나 가장 약하고 슬픈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며 아래와 같이 언급한다. 
 
"윤 대통령은 한겨울에 어머니가 사준 외투를 입고 나선 첫날 노점상에게 벗어준 대학생이었다. 그는 지금도 연민의 눈물이 어리지 않은 눈으로는 천국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외롭고 상처받은 지상의 신(神)을 만나 서로를 구원할 수 있을 것이다."

실로 기괴한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 대한 평가도 남달랐다. 이 부사장은 "국민의 숨소리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표현을 "제1 공복(公僕)의 겸손한 언어"로 추켜올렸다.

이어 이 부사장은 "인사 실패와 국정 혼선에 대한 반성", "사전 각본이 없이 12개의 질문에 즉답", "투박한 소신과 철학이 확인"이라고 상찬한 뒤, "대통령의 일정에 밝은 관계자"라는 모호한 익명 관계자를 내세워 "늦은 저녁시간까지 보고를 받고 치열하게 토론한다"며 "장관 한 사람이 매주 한두 번씩 대통령과 독대하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대통령의 동정을 전하기도 했다. 뒤이은 평가도 <동아>나 <조선>의 논조와는 확연히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청와대 홀로 독주하던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시절과는 딴판으로 내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통령의 정책 이해도 빠른 속도로 깊어지고 있다. 여의도 정치에 어두운 대통령은 오직 일로만 승부하려는 담백한 심정이다. 지금은 비록 도를 넘는 공격을 받아 악마화돼 있지만 그가 사익(私益)을 멀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대통령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김대기 비서실장의 불편한 직언도 주저없이 수용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파업사태의 경찰 투입 없는 해결, 김건희 여사의 절제 있는 행보는 그 결과였다."

취임 100일 이후 변화된 기조

취임 100일 기자회견 직후, 적지 않은 언론들이 "분골쇄신 하겠다"는 윤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쓰며 '쇄신론'에 무게를 실었다. <중앙일보>도 그중 한 곳이었다. 지지율 폭락과 함께 대통령 비판을 주저하지 않던 보수 경제지들은 재해 및 취임 100일 기점으로 각기 톤 조절에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이와 관련, 미디어비평가이자 언론학자인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이런 분석을 내놨다.
 
"언론의 기조 변화는 수해가 기점이었다. 큰일 난 거다. 인사문제는 바꾸면 된다. 언론은 인사 문제를 제일 문제 삼는다. 자꾸 자리가 비어야 자기도 갈 자리가 생긴다(...). 수해 문제는 다르다. 집권 초기에 너무 큰 심각한 문제에 빠지는 거다.

수해 책임론까지 나온다? 대통령 무능론, 7시간 동안 뭐했나, 이것 까지 가면 안 되는 거다. 언론이 원하는 건 보수적인 관점에서 (대통령이) 버티고, 내 말을 들어야 하는데 수해 책임론으로 흔들리면 큰일 나는 거다. 적당한 선에서 위기 관리를 하고 싶은 거다." - 19일 tbs <정준희의 해시태그> 중에서

그 와중에 나온 이 부사장의 칼럼은 눈길을 잡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윤비어천가' 칼럼은 앞서 소개한 여타 보수언론과 비교해도 꽤나 돌출된다.  

태그:#윤석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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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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