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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베이 타호 호수에서 깊숙이 들어간 절벽 아래의 에메랄드 베이는 비취색 물빛만이 아니라 타호의 다운타운이라 할 수 있는 헤븐리에서 20분 거리라는 용이성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장소이다 ⓒ CHUNG JONGIN
 
미국 캘리포니아주에는 동쪽의 네바다주를 살짝 걸치면서 남북으로 길게 뻗어있는 장엄한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있는데, 네바다주와 경계를 이루는 지점에 한라산 높이의 대전광역시만 한 호수가 위용을 뽐내고 있다. 레이크 타호(Lake Tahoe)다. 침엽수로 둘러싸인 호수는 푸르고 청명하게 보일 뿐 아니라 수질 자체도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여 식수로 손색이 없다. 깊이는 엠파이어 빌딩이 잠길 정도로 깊다.

겨울철에는 호수 주변에 3층 건물 높이의 눈이 쌓인다. 따사한 햇볕을 받으며 푸른 호수를 향해 푹신한 눈을 가르고 내려오는 스키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이 아니겠나 싶다. 그래서인지 레이크 타호 남쪽의 스키 리조트 이름은 헤븐리(Heavenly)다. 여름철에는 호수 주변 40여 곳의 해변을 중심으로 각종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으니 레이크 타호는 여름철과 겨울철 최고의 휴양지인 셈이다.

그리고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활동이 있으니 바로 하이킹이다. 옥빛 물결을 마주하며 깊은 침엽수림 사이를 걷다 보면 해발 2,000m가 넘는 고도에 자리 잡은 하늘과 물빛을 구별할 수 없는 거울같이 맑고 아름다운 호수를 만날 수 있다. 타호에는 이 같은 길고 짧은 멋들어진 100여 개의 트레일이 있다.

8월 중순, 필자가 레이크 타호를 찾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오고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 온전히 사흘 동안의 하이킹 여정을 펼쳐보려 한다.

[첫째날] 에메랄드 베이의 비경
 
에메랄드 베이의 일출 갇혀 있는 호수에서의 해돋이는 소박하면서도 청량하다 ⓒ CHUNG JONGIN
 
해돋이를 보기 위해 새벽부터 서둘러 에메랄드 베이로 향했다. 갇혀 있는 호수에서의 해돋이는 소박하면서도 청량했다. 해가 위로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이글 레이크(Eagle Lake) 트레일을 걷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이라 조그만 주차장은 넉넉했고 산 너머 이틀 밤을 지내기 위해 집채만 한 배낭을 짊어지고 떠나는 산악인만이 보였다.

트레일은 처음부터 만만하지 않았다. 폭포라고 하기에는 좀 빈약한 이글 폭포를 지나 헐떡이며 3km를 올라가니 산과 하늘이 눈 아래에서도 보였다. 물이 너무 맑아 호수의 경계를 중심으로 완전 데칼코마니다. 이른 아침, 사람 소리는 물론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이글 레이크는 오싹한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이글 레이크 눈 아래서 보이는 산과 하늘에 놀라 정신을 차려보니 호수 물이 너무 맑아 호수의 경계를 중심으로 완전 데칼코마니다 ⓒ CHUNG JONGIN
 
정적을 깨는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레이크를 떠나 에메랄드 베이(Emerald Bay)로 가라는 알람 소리로 들렸다. 에메랄드 베이는 이글 레이크 건너편에 있다. 사실은 5km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나 두 곳의 주차장이 거의 맞보고 있으니 차량 이동이 필요 없다.

타호 호수에서 깊숙이 들어간 절벽 아래의 에메랄드 베이는 비취색 물빛만이 아니라 타호의 다운타운이라 할 수 있는 헤븐리에서 20분 거리라는 용이성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장소이다. 그곳에는 1920년대에 지어진 바이킹스홈(Vikingsholm)이라는 스칸디나비아식 여름 별장과 타호 유일의 섬인 파네트(Fannette) 섬이 있다.

해안을 따라 설치된 피크닉 테이블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점심을 먹을 수 있고 여유가 있다면 카약을 빌려 섬까지 가 섬 정상에서 절경을 즐길 수도 있다.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인 필자는 그곳에서 준비해 온 점심을 먹었는데, 호수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는 사이 다람쥐가 테이블 위로 올라와 점심을 같이 먹고 있었다.

허기를 채운 후 에메랄드 베이 루비콘 트레일(Emerald Bay Rubicon Trail)을 찾았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트레일은 대체로 평탄했고 그림 같은 호수의 전경을 만끽할 수 있다. D.L. Bliss 주립공원에서 끝나는 트레일의 총길이는 6.4 km이나  왕복을 해야 하기에 에메랄드 베이를 거쳐 산 위에서 타호 전체를 볼 수 있는 트레일이 꺾이는 지점인, 5.8km까지만 걸었다. 
 
에메랄드 베이 루비콘 트레일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트레일은 대체로 평탄했고 그림 같은 호수의 전경을 만끽할 수 있다 ⓒ CHUNG JONGIN
 
트레일의 시작점인 바이킹스홈으로 돌아오니 이미 5시가 지나고 있었다. 거의 12시간을 걸은 셈이다. 하지만 트레일은 끝나지 않았다. 차가 있는 주차장까지 1.6 km를, 그것도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했다.

[둘째날] 목표의 75%만 이룬 호수의 북서쪽 탐험
 
파이브 레이크 트레일에서 만나는 호수 해발 2,320m에 정착한 5개의 호수가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 CHUNG JONGIN
 
유명한 PCT의 그레니트 치프 윌더니스(Granite Chief Wilderness) 구간이 지나가는 레이크 타호 북쪽 기슭에는 5개의 호수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고요한 휴식처가 있다. 이곳으로 가는 왕복 8km의 파이브 레이크 트레일(Five Lakes Trail)은 트레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숨이 차오른다.

트레일은 화강암 절벽 아래 침엽수 사이를 지나간다. 그러나 3km에 달하는 300m 높이를 힘겹게 올라가면 갑자기 고요한 초원이 펼쳐진다. 해발 2,320m에 정착한 5개의 호수가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한다.
 
파이브 레이크 트레일 트레일은 화강암 절벽 아래 침엽수 사이를 지나간다 ⓒ CHUNG JONGIN
  
해발 2,320m에 자리 잡은 고요한 초원 3km에 달하는 300m 높이를 힘겹게 올라가면 갑자기 고요한 초원이 펼쳐진다 ⓒ CHUNG JONGIN
 
트레일은 호수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져 있었으나 뚜렷한 표식이 없던 탓에 비경에 눈이 휘둥그레진 필자는 원래의 계획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다섯을 세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는지 호수들을 돌다 보니 5개 호수 중 4개만을 본 것이다.

도너 패스(Donner Pass)로 가는 오후의 일정을 위해 아쉬움을 뒤로 하며 하산했다. 레이크 타호의 북쪽 마을인 타호 시티(Tahoe City)에서 북서쪽으로 24km를 가면 타호 면적의 6% 정도 되는 청명한 호수가 있는데, 호수의 이름은 1846년 눈 속에 갇혀 식인까지 해야 했던(그런데도 절반만 생존했다고 함) 도너 일행(Donner Party)의 이름을 딴 도너 레이크(Donner Lake)이다. 그리고 도너 레이크를 조망할 수 있는 해발 2,150m의 정상부가 도너 패스이다.

호수를 옆에 끼고 길을 올라가는데, 갑자기 길이 끊어졌다. 공사로 출입이 막힌 것이다. 아쉬워 두 발로나마 올라가려 할 참에 "그만두거라."라고 충고하는 듯 하늘에서 비가 후드득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두 번째 날의 일정은 도너 레이크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셋째날] 아래부터 위까지 레이크 타호의 동쪽을 훑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레이크 타호 곤돌라를 타고 해발 2,773m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리면 레이크 타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 CHUNG JONGIN
 
타호에서의 마지막 날은 네바다 지역의 타호 탐험이다. 하루에 동쪽 지역을 샅샅이 볼 수는 없겠지만 차로 이동하면서 숨겨진 보물을 찾기로 했다. 그러나 동쪽으로 가기 전, 레이크 타호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곤돌라를 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묶었던 헤븐리 마을은 레이크 타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키 리조트로 여름에는 곤돌라로 관광객들을 해발 2,773m 꼭대기로 실어 나른다. 첫 번째 기착지인 전망대에서 앞을 바라보면 레이크 타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곤돌라는 조금 더 올라가는데, 일단 내리고 나면 실망이다.

호수가 보이는 대신 넓은 어드벤쳐 파크가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있다면 하이킹을 하며 호수를 다시 한번 내려다볼 수 있다. 필자는 4.2km 길이의 타마락 트레일(Tamarack Trail) 숲길을 걸으며 간간이 호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었다.

타호의 동쪽 해안선에는 작은 만과 해변이 곳곳에 숨어 있다. 첫 번째로 찾은 곳은 시크릿 코브(Secret Cove)와 침리 비치(Chimney Beach)였다. 이 두 곳은 4km의 트레일로 연결되어 있어 한 번 주차로 두 곳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시크릿 코브 옥빛 물에 박혀있는 하얀 색 화강암이 마치 보석 같다. 입구에 쓰여 있는 “clothing optional”이란 팻말이 의미하듯 누드 비치이다. ⓒ CHUNG JONGIN
   
침리 비치 자그만 모래사장까지 갖춘 완벽한 해변인데, 이곳에서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물놀이를 마친 사람들은 땀으로 다시 흠뻑 젖는다 ⓒ CHUNG JONGIN
 
시크릿 코브는 일단 물빛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옥빛 물에 박혀있는 하얀색 화강암이 마치 보석 같았다. 또한, 입구에 쓰여 있는 "clothing optional(옷을 안 입어도 되는)"이란 팻말이 의미하듯 희한한 추억을 남기는 곳이기도 했다. 침리 비치는 자그만 모래사장까지 갖춘 완벽한 해변인데, 이곳에서 주차장까지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물놀이를 마친 사람들은 땀으로 다시 흠뻑 젖어야 했다.
 
이스트 쇼어 트레일에서 바라본 호수 이스트 쇼어 트레일은 아름다운 호수의 풍광을 감상하며 남녀노소 모두 쉽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길로 샌드 하버 비치까지 연결되어 있다 ⓒ CHUNG JONGIN
 
타호 동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은 샌드 하버 비치(Sand Harbor Beach)다. 인기가 있기에 그만큼 주차는 힘들어 필자는 해변에서의 놀이 대신 북쪽 마을에 있는 터널 크릭 카페(Tunnel Creek Cafe)에서 시작하는 이스트 쇼어 트레일(East Shore Trail)을 걷기로 했다.

이스트 쇼어 트레일은 아름다운 호수의 풍광을 감상하며 남녀노소 모두 쉽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길로 샌드 하버 비치까지 연결되어 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것이 삼 일간 레이크 타호의 탐험을 마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태그:#레이크 타호, #에메랄드 베이, #레이크 이글, #파이브 레이크 트레일, #시크릿 코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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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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