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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라고 보는 책' 일곱 번째는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입니다. 이미 읽으신 분들은 알겠지만 이 책은 박완서의 글쓰기에 대한 내용은 아니었어요. 작가를 덕질하는 것을 넘어 박완서의 연구자가 된 저자 양혜원의 에세이입니다. 그가 읽은 박완서 정도랄까요. 그래서 '고통에서 삶의 치유로'라는 책의 한 줄 설명이 저는 여러 이야기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박완서 작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저자 양혜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며 또 독자들이 써 나갈 자신의 이야기로요.

박완서를 추앙한 저자 양혜원
 
양혜원 에세이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
 양혜원 에세이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
ⓒ 책읽는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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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저에게 묻더군요. 글쓰기의 롤모델이 누구냐고요. 글쎄요... 딱히 떠오르는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었을까? 궁금한 작가들은 많았지만, 어떻게 이런 삶을 살았는지 그런 삶이 나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은 누굴까 생각하면... 아, 서운할 뻔한 사람이 한 명 있긴 하네요. 바로 무라카미 하루키입니다. 그런데 하루키를 좋아하는 저의 덕질이라고 해 봐야 그저 그의 책을 구입해서 읽는 정도일 뿐입니다. 대체 한 작가를 추앙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면 그의 삶을 연구까지 하게 되는 것일까요.

저자 양혜원은 박사 논문으로 쓰던 글의 방향을 틀어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글을 고쳐 썼다고 합니다. 학술서보다 일반 독자들이 박완서를 잘 이해할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었다면서요. "박완서가 문학사의 한 페이지로 박제화 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 사이에서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해서였다"고요. 참 대단한 애정입니다. 이런 추앙을 받는 작가 입장에서는 대단한 영광이겠고요. 

저자는 자신의 삶에서 박완서는 소설이 아니라 '박완서라는 작가의 존재가 등대 같았다'라고 썼어요. '적어도 이게 끝은 아닐 거'라는 희망을 박완서 작가의 삶에서 보았다고 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박완서는 나이 40에 등단을 해서 성공한 작가입니다. 그래서 늦게 글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에게 롤모델이 되곤 하죠. 저자뿐만 아니라 실제 그에게 영향을 받은 작가들도 많습니다.

저자는 '박완서의 마흔, 평등 그리고 연애, 섹스와 임신, 트라우마, 고통, 독립'이라는 테마를 통해 박완서의 글이 지금도 여전히 독자들을 위로하고 있음을, 그리고 자신이 그 당사자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저는 저자가 쓴 글을 읽으면서 제가 글로 만난 40,50대 여성들이 떠올랐어요. 그들과 박완서의 차이가 뭘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또 하나의 박완서들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오늘날의 '박완서들'

소설 <서 있는 여자>(1985)를 언급하며 저자는 '아내의 일'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남편에 대해 쓴 작가를 이야기합니다. 저는 그 대목을 읽으면서 '아내를 질투하는 남편, 이유가 정말 충격이네요(http://omn.kr/1yqiy)'라는 글을 쓴 이지애님이 생각났어요.

무엇을 위해서가 아닌 그저 좋아서 하는 글쓰기에 대해 남편은 인정과 공감의 말보다 비아냥거리기 일쑤입니다. 그런 남편을 보며 이지애님은 의문을 품습니다. '사회적 지위나 수입도 훨씬 많이 누리는 사람이, 뭐가 아쉬워 아내의 작은 진전과 소소한 수입을 시샘하는 건지 나는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라고요. 1985년 소설에서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소설 속에서 다뤄진 일이 아직도 현실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게 놀라웠어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박완서 작가는 등단 전 전형적인 중년의 징후를 겪었다고 해요. "내 인생 이렇게 평생 남편과 애들 뒤치다꺼리를 하다가 끝나는 걸까"라고요. 작가가 느낀 헛헛함이 왠지 낯설지가 않습니다. 저 역시 그런 감정의 소용돌이 끝에 찾은 것이 글쓰기였고, 이정희님도 그런 경우였으니까요.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은 가정, 이제 좀 끝났나 싶을 때 다시 시작된 빚잔치. 이정희님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글로 본 그의 삶은, 그가 글에서 쓴 대로 '팔자 타령을 하며 우울의 늪으로 빠져들어 갔을' 법 합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로 하죠. 지금부터라도 다르게 살고자 한 이정희님은 자신을 셀프 격려하며 진흙 같은 삶 속에서 한 발 한 발 힘겹지만 기꺼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쓰는 글이 바로 '낼모레 육십, 독립선언서'에요(관련 기사 : 빚 잔치 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혼자 살아보려고요 http://omn.kr/1yce8).

저자는 나이 마흔, 그러니까 생애 전환기에 한 번쯤,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게 무엇인가, 하고 생각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해요. 그게 무엇인가에 대해 다양한 선택지가 있겠지만 그 고민의 결과로 글을 쓰게 되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제가 매일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죠. 

저자는 '마흔 줄에 인생 이력을 바꾼 박완서의 이야기는 계속 회자되고 있다'라고 했지만, 저는 박완서와 상관없이(있을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인생 이력을 바꾸는 여성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봐요. 당시에는 박완서 작가가 선구적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와 같거나 더 선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실천하며 사는 여성들이 늘고 있으니까요. 오해 없길요. 박완서 작가의 성취를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더 발전적으로 계승되어 왔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더 많은 '박완서들'을 만났으면

그런데도 정작 글 쓰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쓰는 글이 얼마나 선구자적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자기 검열에 스스로 갇히는 여성들도 많지요. '내가 이런 글을 써도 될까, 이런 의견을 세상 밖으로 내비쳐도 될까, 내가 뭐라고...' 그런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옮겨 보겠습니다.  
 
"박완서는 자신의 경험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면 글쓰기 힘들다고 했는데, 나도 마찬가지이다. 반드시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내 감각의 범위 안에 들어와야 비로소 글이 된다."

사실 저도 요즘 이런 고민을 했어요. 난 왜 경험한 것 밖에 쓰질 못할까. 그런데 대작가 박완서도 그랬다는 사실에 조금 안도감이 들었어요. 경험한 것을 잘 정리하는 것도 좋은 글쓰기구나, 싶었습니다. 중요한 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인가라는 깨달음도 얻었지요. 저자가 책으로도 썼듯 박완서의 작품이 그 증거예요.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각할 지점을 던져주니까요. 저도 제 경험에서 나온 글이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누군가 읽더라도 촌스럽지 않은, 글 쓰는 데 자극이 되고 동기가 되는 그런 글이 쓰고 싶어 졌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제가 매일 글로 만나는 사람들을 다시 보게 됩니다. '죽을 때까지 배우고자 한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60대 정경아님도(관련 기사 : 55년생 양띠 할머니들이 이러고 놉니다 http://omn.kr/1y6gx), '가장 늦게 만난 친구가 글쓰기'라는 70대 이숙자님도(관련 기사 : 78세에 책을 내고 강의까지...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옵니다 http://omn.kr/1v4qm) 생각해보면 지금이 쓰는 사람으로서 전성기가 아닌가 싶어요. 어느 때보다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요. 인생 이력을 바꾸는 게 나이 마흔에만 가능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분들이죠.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세대의 여성들의 글을 보면서 더 나은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게 되길 바라요. 물론 읽는 것보다 직접 써보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제가 그 글의 첫 번째 독자가 될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베이비뉴스에도 실렸습니다.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 - 고통에서 삶의 치유로

양혜원 (지은이), 책읽는고양이(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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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2021년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2017년 그림책 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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