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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하이트진로 본사 옥상 광고탑에서 손해배상 소송·업무방해 가처분신청 철회, 해고 조합원 복직, 운송료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3일째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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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술자리에 참석하게 되면 가장 먼저 신경쓰는 건 하이트진로 제품 불매운동이다. 자리에 앉아 음식 메뉴를 고르고 나면 주류는 하이트진로가 아닌 다른 제품을 고르며 일행들에게 하이트진로 제품을 불매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즐겨 찾던 제품을 불매해야 한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다들 불매운동에는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술자리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때는 실수로 익숙해진 하이트진로 제품을 주문하는 경우도 있어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하이트진로 제품 불매운동을 진행하는 이유는 하이트진로 제품을 운반하는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하기 위해서다. 15년 동안 저임금을 강요당해온 화물노동자들이 운송료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지만 사측에게 돌아온 건 해고와 손해배상 소송이었다. 결국 화물노동자들은 최근 서울 하이트진로 본사 건물 옥상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하이트진로는 계약 당사자인 하청업체의 일이라며 교섭에 나서지 않고 있고, 화물노동자들의 투쟁은 100일을 넘어서며 장기화하고 있다. 교섭에 나서지 않는 하이트진로는 고용책임은 하청업체에 떠넘기면서 손해배상 소송은 하청업체가 아닌 화물노동자에게 청구하기도 했다.

화물노동자와 계약을 맺은 하청업체인 수양물류는 하이트진로가 지분 100%를 가졌고, 수양물류 임원 4명 중 3명은 하이트진로 본사 임원을 겸하고 있다. 누가 봐도 원청인 하이트진로가 수양물류의 실소유주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구조이지만 원청은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 실소유주가 나서지 않으니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사태가 악화되며 소비자까지 불편을 겪고 있다.

하이트진로-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던 모습.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던 모습.
ⓒ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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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은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과도 비슷하다. 노동자들을 고용한 하청업체들은 임금 인상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고, 권한을 쥔 원청은 책임 당사자가 아니라며 대화를 거부하면서 농성투쟁이 시작됐다. 51일간 파업 끝에 노사는 합의에 이르고 농성을 종료했지만, 한 달도 채 안된 지난 18일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은 국회 앞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폐업한 업체의 조합원 고용승계를 약속한 바 있지만 지켜지지 않아서다. 현장에선 재취업을 하려면 노조를 탈퇴하라는 요구도 나왔다며, 위장폐업 논란도 일고 있다.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 7월 20일 노동법률가단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해양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대한 실질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근거로 원청이 교섭에 응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도 필요하다며, 단체교섭 요구를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제대로 응하지 않으면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CJ대한통운과 현대제철 원청에 대해 하청노동자의 교섭권을 인정한 판례 등 최근 판례들을 보면 원청의 지배감독 여부에 따라 하청노동자와 원청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하는 시각은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에서는 "종사자"에 대하여 "도급, 용역, 위탁 등 계약의 형식에 관계없이 그 사업의 수행을 위하여 대가를 목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한 최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시행된 휴게시설 설치의무에 대하여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가이드에서도 "도급계약에 따른 휴게시설 설치의무는 도급인과 수급인 모두에게 있다"며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을 찾아 헤매는 상황이다. 얼마 전 진행된 민주노총 콜센터 사업장 수련회에서도 참가자들은 비슷한 고충을 토로했다. 대부분 사업장의 고객상담 업무가 외부업체 위탁방식으로 운영되다보니 어렵게 노조가 만들어지더라도 원청은 뒤로 빠진 채 책임을 외면하고 있기에 교섭에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오세윤 네이버노조 지회장
 오세윤 네이버노조 지회장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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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6일에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네이버지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하청노동자들이 쟁의행위에 들어간다는 것을 밝혔다. 지회에 따르면 계열사들은 사실상 네이버 내의 부서나 마찬가지인 업무를 하고 있지만 하청업체라는 이유로 원청사 노동자의 절반수준 임금을 지급하고 있으며, 교섭에 있어서도 원하청이 책임을 미루고만 있다고 한다.

우리가 <엄마 찾아 삼만리>로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이탈리아 아동 문학 단편 <아펜니노 산맥에서 안데스 산맥까지>라고 한다. 이탈리아 제노바에 사는 열세 살 소년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사도우미 일을 하기 위해 떠난 엄마와 연락이 닿지 않자 엄마를 찾아 떠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3만리 라는 거리를 환산하면 약 1만1780km 라는 어마어마하게 먼 여정이다. 하지만 결국 주인공 소년은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어머니를 만나며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이천과 청주에서 홍천을 거쳐 서울 청담동까지 올라온 화물노동자들이 있다. 거제에서 여의도로 올라온 조선소노동자들도 있다. 전국 각지에서 진짜 사장을 찾아 떠나온 노동자들의 여정이 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찾아간다면 진짜 사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계약당사자가 진짜 사장인지, 지배구조의 어디쯤이 진짜 사장인지 헷갈린다면 노동예술단 선언의 <진짜 사장이 나와라> 노래 가사를 되새겨 보자.

"우리의 노동으로 배불린 놈이 누구야? 진짜 사장이 나와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영애씨는 김용균재단 이사이자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입니다.


태그:#김용균재단, #하이트진로 불매, #진짜 사장, #김영애, #화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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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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