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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30대 후반 남성과 중반 여성입니다. 아이는 지금 '미운 네 살'입니다. 아빠는 어릴 때 학대와 폭력으로 물든 어두운 분위기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래도 성인이 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밝은 성격을 가진 여성(지금의 아내)을 만나 성격도 바뀌었습니다. 남들처럼 서른 초반이 되어 결혼을 했고, 바라던 대로 이듬해 임신을 하게 되었고 원만하게 출산을 했습니다. 태어난 아기는 까다로운 기질을 가져서 부부 모두 힘들었지만, 키우는 재미도 컸습니다.

그러다가 네 살이 되면서 상황이 좀 달라졌습니다. 아이의 까다로운 기질이 더 거슬렸고, 하라는 대로는 안 하고, 하지 말라는 것만 골라서 하는 것이 너무 미웠습니다. 마트나 공공장소에 가면 예외 없이 떼를 썼습니다. 참다못해 어느 날 손바닥으로 아이의 등을 내리쳤습니다. 깜짝 놀란 아이는 떼쓰기를 멈췄습니다.

'아차! 이러면 안 되는데... 절대로 아이를 때리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내 아버지처럼 자녀를 대하지 않기로 했는데...' 후회가 몰려오고 죄책감과 자괴감, 무력감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아이의 위축된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픕니다. 아내에게도 사과를 했습니다. 그런데 사흘 뒤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떼를 쓰고 고집을 부립니다. 어르고 달래고 위협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각종 육아서와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 언젠가 본 지침들, 오은영 박사의 프로그램들에서 들은 풍월들을 적용해 보았지만, 안 먹힙니다. 결국 매를 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강도와 빈도가 거세져 갔습니다.

그리고 그날,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30분쯤 뒤에 아파트 초인종이 울렸습니다. 112 아동학대 신고 전화를 받고 출동한 지구대 경찰들이었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보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30분쯤 뒤에 다른 경찰이 왔고, 잠시 뒤에는 아동보호... 뭐라는 공무원이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아이의 상태를 보고 자초지종을 듣고서는 아이를 데려가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를 다른 곳에서 보호하면서 치료하고, 부모를 더 조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연이 길어졌습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입장에서 아동학대 신고 이후의 대처방법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위 사연을 읽으면서 여러분에게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습니까? 머나먼 곳에서 일어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로 들렸습니까, 아니면 뜨끔하셨습니까? 그것도 아니면 가해자의 마음에 공감하셨습니까?

국가통계포털에 의하면, 2020년 아동학대 신고건수 중 학대의심사례는 3만8000명이었습니다. 대체로 아동학대가 10세 미만에 집중되어 있으며, 동일 신고 사례의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 10년간 심각한 수준의 학대를 당한 아동은 40만 명 이상일 것입니다. 18세 미만 아동 인구가 800만 명이 채 안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5% 정도의 아동은 심각한 수준의 학대를 경험했을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신체학대는 줄어드는 반면 정서학대나 방임이 상대적으로 증가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그 비율은 더 높을 것입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한 교실에 20명의 아이가 있을 때, 그 중에 최소 한 명은 심각한 신체학대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가벼운' 일상적 체벌과 자녀에게 던지는 가혹한 말, 무시, 내버려 둠 등의 행위를 포함하면, 아마도 학대에서 자유로운 부모를 찾는 편이 빠를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이 자녀나 돌봐야 할 아동에게 이와 유사한 행위를 하고 있다면, 여러분도 언제든 아동학대 가해자로 신고 될 수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물론 위 사례의 초기 단계, 즉 '체벌' 행위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으며, 아이의 몸과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면, 경찰의 경고 메시지를 듣는 수준에서 그치고, 이후 경찰관이 3개월 정도 전화하고 방문하는 수준에서 상황이 끝날 수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한 가지 전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 그리고 이어서 만나게 될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사례관리자(사회복지사),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아동보호서비스의 담당자들은 '아동의 이익에 최선이 될 거라고 생각되는 대안을 마련하되, 가급적 아동을 가정에서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따라서 당장은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하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아동을 치유하고, 부모가 건강한 양육자가 될 수 있도록 준비시켜서 가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들은 여러분을 '도우려고 온'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올해 민법에서 부모의 '징계권'이 삭제되었습니다. 이 규정은 부모의 훈육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되어 왔는데, 이 규정이 사라짐으로써 부모의 체벌도 처벌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부모에게는 자녀를 징계할 권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따라서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 출동했을 때 '내 아이인데 내 마음대로 못하냐? 아이가 나쁜 행동을 해서 가르치려고 체벌했다' 등의 진술은 학대 행위를 확인시켜 줄 뿐이고, 오히려 개선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좋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동학대 가해자로 지목되었다면, 그리고 자녀가 분리되어 다른 곳에서 보호를 받게 되고, 학대전담경찰관(APO)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자의 개입을 받게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이 질문은 여러분이 지난 수년 간 발생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의 가해자들과 같은 '악당'이 아니라는 점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즉 아동학대 사례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랬던 것은 아니고, 하다 보니까 어느새 그렇게 된, 안 그러려고 했지만 방법을 찾지 못했고,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는(실제로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선택해야 하는 최선의 대안은 '뉘우치고 돌아섬'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회개'라고 부릅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바로 그 지침이죠. 단순히 학대 행위를 반성하는 것으로는 안 되며, 그동안의 잘못된 양육행동을 돌아보고, 바람직한 양육행동을 다시 익혀서 자녀가 가정으로 돌아왔을 때 제대로 양육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부모의 대부분은 이 상황을 억울하게 여길 것입니다. 아이를 잘 키우려고 하다 보니 그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직장이나 가정의 상황 때문에 불가피했을 수도 있으며, 나 자신을 돌보기도 힘들어서 자녀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동학대 신고 사례의 현장에서 대부분의 부모가 이런 생각과 태도를 보이며, 그렇게 항변합니다. 그러니까 자신은 억울하게 느끼겠지만, 경찰과 공무원은 자신이 받은 교육과 경험에 기반하여 그들의 행위를 학대로 판단한 것이고, 따라서 당연히 이후의 조치를 절차대로 밟아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는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되며, 건강한 가정환경에서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무엇보다도 부모에게는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학대가해자인 부모가 이런 태도를 가지고, 사회복지사인 사례관리자의 안내를 따라 교육과 훈련을 받고 가정환경을 건강하게 조성하고, 자녀를 다시 따뜻하게 받아들여 양육할 준비가 되면, 분리 기간은 상당히 짧아질 수 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3개월 이내가 원칙이고, 길어지면 6개월까지 연장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 내에도 준비되지 않고, 변화될 가능성이 없다면, 자녀는 아동양육시설이나 공동생활가정, 위탁가정에 보내질 것입니다. 아이의 조부모나 친인척 중에서 양육할만한 가정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가해자가 그 가정을 찾아가서 아동을 다시 해칠 가능성이 없다고 확신할 수 있을 때 말이죠.

이렇게 학대가해자인 부모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동안 아이는 은밀한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보호공간은 물리적인 측면에서는 일반 가정보다 나을 수가 없습니다. 대부분 집단보호를 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 일상생활의 제약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여러분을 돕고 있는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이나 아동보호전담요원, 아동보호전문기관 사례관리자들도 가능한 한 이 보호기간을 단축하고 가정으로 복귀시키기를 원합니다. 결국 관건은 학대가해자의 태도입니다.

억울함을 넘어서, 공권력에 의해 자녀와 분리된 경험은 가해자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서비스제공자들도 그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동에게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선택을 하는 것이며, 원가정이 빨리 더 나은 대안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리가 학대가해자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다시는 학대행위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는 우리 국가와 사회가 '아동학대처벌법'과 '아동복지법'을 통해 합의하여 그들에게 위임한 것입니다.

자녀가 분리된 이후 학대가해자가 시군구청의 아동보호팀에 항의전화를 하거나 민원을 넣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차마 경찰에게는 전화를 하지 못하고, 공무원에게 항의를 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분리기간을 더 연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경찰과 아동학대전담공무원의 조사와 사례관리자의 지원에 협력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심각한 수준의 학대 가해자들 중에는 알코올중독이나 정신건강 이슈를 갖고 있는 부모도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좋은 부모인데, 술만 마시면 악당이 되고, 약물관리를 잘 못해서 정신장애 증상이 나타날 때 학대나 방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일부는 일상생활을 관리하지 못해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날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합니다. 만약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면, 스스로 아동과 떨어져 지낼 결심을 하고,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빨리 치료를 받고 건강한 상태로 돌아와 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아빠와 엄마 중 학대가해자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전체 아동학대 의심사례를 보면, 아빠의 비율이 엄마보다 높지만 그 차이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모 어느 쪽이든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아동학대 '사망사례'에 한정하면 엄마의 비율이 더 높았습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는 엄마들이 학대를 하는 비율은 더 낮지만, 심각한 수준의 학대를 하는 비율은 더 높다는 것입니다. 양천입양아동 학대사망사건도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경우입니다. 선행연구들에 의하면, 학대는 대물림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학대하는 비율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진실로 믿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어도 자녀를 건강하게 양육하는 수많은 부모가 있으며, 학대를 경험하지 않았어도 자녀를 학대하는 많은 부모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 속에 각인된 과거의 상처와 헤어질 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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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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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한국의 가족사를 돌이켜 볼 때, 지금 어린 자녀들을 양육하는 30대부터 50대 초반까지 청장년 세대는 대체로 좋은 양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엄하거나 과묵하고 늘 일에 바빠 얼굴을 보기 어려웠으며, 어머니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사와 양육, 일-가정 양립을 시도하셨으나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부모가 어떤 부모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오은영 교수를 필두로 한 자녀양육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상황을 대변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다행입니다. 이제서야 우리 사회는 부모 모두 시간 여유를 갖고 자녀와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며, 친근하고 자유로운 양육을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안쓰러운 기억과 헤어지고, 이제 좋은 부모가 되고 건강한 양육을 하겠다고 결심할 때를 맞았습니다.

태그:#은밀한 맥락을 찾아서, #아동학대, #아동학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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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현상의 은밀한 맥락과 패턴을 탐구하는 질적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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