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미디어에서 임신은 대체로 결혼이나 사랑의 결실, 행복한 가정의 구성요건으로 다뤄진다. 시작과 끝만 있을 뿐 임신 과정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 임신으로 인한 신체·정신적 변화, 아파도 먹어서는 안 되는 약들, 임신중독 등과 같은 질병들, 직업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관계의 변화 등, 임신은 한 여성의 삶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그 변화 속 여성은 어머니라는 단일한 호명 속에서 모든 것들을 감내하거나 포기해야 한다.

영화 <십개월의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임신한 주인공 미래의 십 개월을 다룬다. 십 개월 동안 미래는 임신을 통해 그동안 인식하지 못 했던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억압을 경험하게 된다. 영화는 임신이라는 여성만의 경험을 둘러싼 사회적 환상과 그러한 환상을 통해 지탱되는 사회를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답을 모르겠으면 문제를 없애

동료들과 창업해 프로그램 개발에 매진하던 미래는 어느 날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산부인과에 찾아간 미래는 임신 중지를 요구하지만, 불법이라며 거절당한다. 다른 병원에서도 상담 받지만 정작 미래는 임신 중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나온다. 고민하는 미래에게 친구는 답을 모르겠으면 문제를 없애는 게 낫다고 임신 중지를 권유하지만, 미래는 명분이 없다고 답한다.

미래는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고, 불안정한 직업의 남자친구 윤호를 생각한다면 지금 상황에서 내릴 수 있는 답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미래는 임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임신 중지가 아닌 준법적인 삶을 살고 싶기도 하다고 말한다. 이 혼란의 의미는 미래가 이미 잘 정돈된 사회적 명분들에 기대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원치 않는 결혼 전 임신에 대해 조건반사적으로 표상되는 결혼이나 사랑, 행복, 모성애라는 틀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불분명함 속에서 미래가 명분을 찾기 위해 던지는 질문은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임신을 자발적으로 원하는가?'이다. 산부인과 의사도, 우연히 산부인과에서 만난 선배도, 영화에 등장하는 누구도 이 물음에 답하지 못한다. 그렇게 미래의 질문은 임신과 관련해 사랑과 행복 혹은 모성이라는 오랫동안 세공되어 온 답변을 무화시킨다.
  
 임신 사실을 확인한 미래

임신 사실을 확인한 미래 ⓒ 영화 <십개월의 미래>(2021)

 
나를 왜 나쁜 놈 만들어?

임신 중지를 결정하지 못하는 사이 중국 자본의 투자로 회사가 상하이로 이전해 모두 함께 가야 하는 변화가 생겼다. 윤호에게 상하이에 함께 가자고 하지만 윤호는 반대한다. "넌 엄마잖아"라고 응수하는 윤호.

미래는 무조건 가야 한다는 사장의 말에 뒤늦게 임신 사실을 알린다. "1년간 쉬어야 하는 거 아니야. 정식 채용하자마자 출산휴가 쓰는 거네" 하며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하는 사장. 난감해하며 웃으며 이야기하는 미래에게 사장은 대뜸 "근데 넌 어떻게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말을 하냐…. 배신감이 든다. 나를 왜 나쁜 놈 만들어? 정식 채용은 없던 일로 하고 계약기간까지만 일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서로 안 불편하고 맞을 것 같아"라고 말한다.

임신 여성에 대한 일상화된 차별은 제도 안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좋은 제도가 있다고 해도 양심이나 죄책감 등 윤리적 수준이 동시에 작동하고 이를 대체하기도 한다. 임신한 여성은 자본의 효율성을 잠식하는 존재이자 타자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불편한 존재, 배신자로 낙인찍히며, 해고는 정당화된다. 회사를 박차고 나와 새로 면접을 보러 간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이력은 훌륭하지만, 임신과 출산의 이유로 채용을 꺼린다. 불편함을 무마하기 위한 어색한 웃음들은 '안 불편하고 맞는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일깨운다.

다른 회사의 취직도 요원해지자 미래는 잠시 중단되었던 결혼을 생각하게 된다. "내가 잘못했어. 결단 내리고 지웠어야 해. 그럼 우리 이렇게까지 안 왔을 거야"라는 미래에게 윤호는 "넌 그런 말을 왜 이렇게 쉽게 하냐?"라고 쏘아붙인다. 미래는 말한다. "쉽게 하는 말 아니야. 난 한 번도 쉽게 말한 적이 없는데 왜 아무도 그 무게를 몰라. 사람을 지우지 않기 위해 여기까지 왔더니 너랑 내가 지워지고 있다고." 둘의 대화는 결혼이 임신과 출산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때릴 듯 달려드는 윤호를 피해 도망쳐 차를 몰고 가던 미래는 배 속 아이에게 "우리가 이 꼴이어서 미안해"라고 말하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깨어난 미래는 결혼을 포기한다. 깨어나 아이의 생사를 묻는 미래에게 의사는 두 손으로 아이를 잘 감싸 무사하다고 말해준다. 안도하는 미래. 그런데 이런 사고 상황에서 팔이 부러지는 것을 감수하면서 아이를 보호하고자 한 것은 모성애가 아닌가?

이 영화는 모성을 여성에게 고유한 어떤 것으로 그려내지 않는다. 사랑이 실천된 장소가 단지 어머니라는 것일 뿐 본성은 아니라는 것이다. 임신 24주가 지난 시점부터 미래는 아이 카오스와 대화를 한다. 새로운 회사의 면접 결과가 좋지 않자 무심코 내뱉은 욕에, 진짜 나쁜 뜻으로 쓰는 것은 아니고 일종의 표현방식이라고 말하면서부터다. 대화는 배 속의 아이가 존재로서 인정되고 소통으로 이어져 사랑을 쌓아가는 토대가 된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고를 내는 와중에 아이를 보호한 사랑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지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이제 시작해보자

영화는 미래가 아이를 출산하며 끝을 맺는다. 미래와 아이의 앞날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 산부인과에서 우연히 만난 선배가 육아에 지칠 대로 지쳐 통곡하는 장면은 미래의 모습일 수 있다. 미래의 10개월, 미래는 하던 일을 그만두어야 했고, 사랑한 사람과 이별하고 결혼도 포기했고, 임신과 출산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맞닥뜨렸다.

이 영화의 불온함은 일반적으로 미디어 텍스트 재현이 의존하고 있는 잘 정돈된 세계의 질서를 비껴가고 있다는 데 있다. 자본이 규정하는 비효율의 존재라는 기존의 비판을 답습하면서도, 미래의 최종적인 선택이 형성된 모성애라는 점이 그러하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만들어진 사랑이고 모성이기에 주인공 미래와 아이의 미래를 조금은 낙관해도 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윤상호 님은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8월호에도 실립니다.
여성_노동자 임신_중지 재생산권 모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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