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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임시 국무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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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전·현직 재벌총수들이 이번 광복절을 맞아 특별사면의 '혜택'을 받았다. 사면 이전에 그들은 뇌물·횡령 등 자본주의 질서를 교란시킨 범죄자였다. 그들의 죄가 정말 사면받을 정도였다면, 무죄로 인정될 만큼의 핵심 물증이 새로 나왔어야 한다고 보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신에 그들은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경제를 살릴 적임자로 부각됐다(관련 기사: 야당, 윤 대통령 첫 특별사면 혹평 "재벌 민원 해결사냐").

무죄로 증명될 증거는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경제'라는 명분만이 그들의 사면 및 복권 이유로 주되게 참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간 경험칙의 또 다른 사례가 갱신됐다고 여겨질 만큼의 사면이지만, 이런 방식의 특별사면은 윤석열 정부만의 예외적인 결정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번 사면이 유독 비판받는 건, 그간 '법과 원칙'을 수차례 강조했던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정체성 때문일 것이다.

51일간 '자신의 일터(건조 중이던 선박)'에서 파업을 벌였던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에게 보인 윤석열 정부의 '법과 원칙'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 건 그래서다. 법무부장관을 필두로 행정안전부와 고용노동부장관은 그들의 파업이 끝나자마자 정부의 입장을 이렇게 못박았다. "불법점거과정에서 발생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말이다. 실행으로 옮기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 "불법점거과정"을 끝내기 위해 행정안전부장관은 공권력까지 투입하려 했다.

노조 파업에 '공권력 투입' 시사하던 윤 대통령... '법과 원칙'의 자의적 잣대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던 모습.
 6월 24일,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유최안 부지회장이 가로·세로· 높이 1m의 철 구조물을 안에서 용접해 스스로 가둔채 농성을 이어가던 모습.
ⓒ 금속노조 선전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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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특별사면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측은 이 상반된 결정을 그의 '법과 원칙'이 재벌총수와 노동자 사이에서 일관되지 않게 적용됐다는 증거로 활용하며, 비판의 대상으로 삼았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법과 원칙'이 우리가 쉽게 떠올려 왔던 헌법상 법 앞의 평등이 아니라 다른 기준을 따른 것이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약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자본주의 질서를 형해화한 이들이 다시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비롯됐을까?

그 기준은 '대체가능성의 여부'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사면 대상자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재벌 3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재벌 2세다.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은 재벌 3세다.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해당 기업에서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이란 점이다.

불행히도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이'재용 없는 삼성, '정'의선 없는 현대자동차, '최'태원 없는 에스케이(SK), '구'광모 없는 엘지(LG), '신'동빈 없는 롯데를 상상할 수 없어 보인다. 다른 재벌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이는 재벌대기업 자체가 한 가족의 사유재산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사유재산의 세습이 가능한 건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선대의 사유재산을 세습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재벌대기업이란 사유재산을 대물림받는 일은 희소하다. 재벌대기업이 오롯이 창업주 집안의 사유재산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과 별개로, 그 희소성이 반세기 넘게 지속되다 보니 한국 사회도 그러한 세습과정이 당연하다는 듯한 인식이 경험칙처럼 대물림됐다. 족벌경영, 재벌대기업은 창업주의 자손들 것이 맞다는, 그게 보편타당하다는 인식 말이다.

재벌총수의 자리는 꼭 창업주의 핏줄만 앉을 수 있다는 것이 사유재산을 유독 중시하는 한국 자본주의의 주요한 법칙으로 자리한 지 오래다. 재벌대기업 중에 자신의 핏줄이 아닌 이에게 경영권을 맡기는 사례가 나타난다면 꽤나 신선한 충격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경제단체들 사이에서 '재벌총수 구속법'이라 불리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은, 한편으로 창업주의 핏줄이 아닌 다른 이의 손으로 재벌대기업을 경영하는 것이 실은 불가능하다는 걸 사실상 은유한다.

재벌총수들이 아무리 자본주의 질서를 유린했어도, 그들이 없으면 한국의 자본주의 자체가 무너진다는 그 우려가 그들의 사면과 복권에 정당성을 부여해준다. 분명한 건 이 과정이 대중의 입장에서는 '부당한 혜택'처럼 보이지만, 재벌총수나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측에서는 '당연한 귀결'로 여긴다는 점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때마다 불거지는 원정도박 논란 등, 재벌총수들이 기업경영을 넘어 개인 사생활의 영역에서까지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체 가능한가 불가능한가... 윤 정부가 노동자를 바라보는 시선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전STX그룹 회장 등이 포함된 8.15특별사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12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강덕수 전STX그룹 회장 등이 포함된 8.15특별사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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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각에서는, 재벌가 총수들에 비하면 노동자는 핏줄에 연연하지 않아도 될 만큼 어디서든 쉽게 대체될 수 있는 존재라고 볼 수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활동인구(취업자+실업자)는 2931만여 명(2022년 7월 기준)이라고 한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에게 일터가 맘에 들지 않으면 그냥 떠나라는 말은 아마도 이런 대체가능성에서 비롯됐을 터다.

그런 점에서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일터를 점거하며 파업하는 노동자들'은 얼른 치워버려야 하는 제거대상일 수밖에 없다. 일터가 멈추면 곧 이윤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적 사고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위기다. 경제단체가 파업시 대체근로 금지조항을 폐지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이런 배경 탓이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 상황에서 정부가 보인 모습은 이 연장선상에 있다. 어떻게든 파업만 멈추면 열악한 환경에서도 일할 사람들은 주위에 널려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만약 파업하는 노동자를 대체할 사람이 없었다면, 정부가 이렇게까지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설사 그들이 법을 어겼다고 해도 눈감아 주고 원하는 요구까지 다 들어주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요즘은 자국민조차 저임금·고위험 업종으로 정평이 난 조선업을 기피하는 추세에 있다. 그 점 때문에 조선업 노동자들이 대체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건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들의 파업이 끝나자마자, 최저임금으로 구인공고를 내는 협력사(하청업체)들의 믿을 구석은 바로 외국인 노동자다. 조선업계가 인력을 구하기 힘들다고 하자, 정부는 곧바로 외국인 노동자 인력쿼터를 확대하겠다고 화답했다. 자국에 일할 사람이 없다면 외국에서라도 데려와 대체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엿보인다. 일터의 빈자리는 그렇게 또 다른 국적, 또는 인종 등으로 대체된다. 누가 만들든 최저 또는 그 이하의 임금으로 배만 완성시키면 끝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3D 업종 대부분이 이렇다.

노동법 이전 시대 귀환 시도

이 문제를 막아주는 것이 뭘까. 최소한에 불과하지만, 바로 노동법이다. 앞서 '중대재해처벌법'은 핏줄이 아니면 어느 누구로도 대체될 수 없는 재벌총수를 구속시키려는 법으로 불린다고 했지만, 실은 그 총수가 구속되지 않으려면 노동자가 일하다 죽지 않는 일터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도에서 제정됐다.

위험천만한 일터에서 노동자가 죽어 나가도, 그 환경을 바꾸려는 대신에 또 다른 대체품 찾듯 노동자만 새롭게 투입하려는 부류들 탓에 매년 800여 명 산재사망자를 낳는 현실이 생겨난 것이다. 그럼에도 그 부류들은 '중대재해처벌법' 같은 노동법을 무력화하기 위해 정부에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한다. 정부 역시 이 민원을 받아들일 채비를 하고 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국무조정실이 '고용·노동 분야 덩어리과제(규제)' 목록을 작성했다고 한다. 그 목록에는 해고사유 확대, 노조의 사업장 점거 전면금지 신설,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등이 덩어리 규제 사안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하는데, 이는 노동법을 '시민법화'하기 위한 전조 같다.

"근대 초기에 시민계급의 주도로 성립된 자본주의 사회는 그 시대적 요청에 걸맞은 시민법을 확립했다. 시민법은 사법, 공법, 형사법 등 모든 영역에서 소유권의 보장, 계약의 자유 및 과실책임주의를 그 기본원리로 추구했"다(책 <노동법>, 임종률,
박영사 출판).

즉 사용자가 산재발생의 배경을 이야기할 때 그토록 노동자에게 책임이 있다며 과실을 지적하고, 노동자의 파업에 대해 사유재산을 무단으로 침입한 것이라 규정하며, 나아가 해고사유가 극도로 제한돼 있다며 이를 자유로운 계약의 침해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로지 '시민법'에 기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부가 그 덩어리들을 제거해야 할 규제로 정말 판단하고 있다면, 그 시민법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법 이전의 시대로 귀환하려는 시도나 다름없다. 예를 들자면, 서구의 산업혁명 초기나 1953년 이전의 우리나라로 되돌아가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노동법이 제정된 1953년 이전까지는 '형법'으로 사용자와 노동자의 관계를 규정지어 왔다. 법무부장관이 대우조선해양 파업노동자들에게 민·형사상 책임을 물겠다고 엄포한 그대로 말이다. 이는 노동자를 영원히 대체 가능한 존재로 생각한다는 방증이 아닐까?

경제논리상 대체 가능한지의 여부에 따라 사람을 달리 대한다는 원칙이 윤 대통령 본인의 철학이라면, 그의 '법과 원칙'은 충분히 일관적인 행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재벌총수는 '사면법'을 통해, 하청노동자는 '형법'을 통해 자신의 '원칙'을 관철시킨 셈이니 말이다.

만약 재벌총수도 또 다른 누군가로 대체 가능했다면 이번과 같은 사면 및 복권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다. 그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 경제의 근간'이 재벌대기업 중심이라는 사실, 그 사실이 맞는건지 다시 한 번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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