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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6월 (부산)강서노인종합복지관에서 펴낸 강서그림책 '예쁜 할매할배 이야기'에 실린 총 네 편의 이야기 중 첫 번째 이야기입니다. 출판 등록 되지 않은 비매품으로 소량 발간된 책자입니다. 저는 사회복지 분야에서 20년 넘게 일하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치매에 들더라도 사회에서 격리되지 않고 다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기자말]
치매에 걸려도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지 않고 살던 우리 동네에서 살 수 있을까요? 누구나 바라지만 바람과는 달리 대안 찾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아래의 그림 이야기는 누구나 한번은 품어봤을 이 의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네 분 노인의 희로애락을 담은 이야기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봤으면 합니다. 꾸며낸 이야기지만 실제 사례가 바탕이 되었습니다. 네 분 노인의 이야기 끝에는 각각 내용을 보다 풍성하게 해줄 추가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네 가지 그림 이야기의 맨 바탕에는 두 가지 진실이 흐릅니다. 사람은 무지개처럼 모두가 다르다는 것, 치매노인도 그렇다는 것. 하지만 무지개를 합하면 단 하나의 빛이듯 사람으로 존중받고 싶은 강렬한 욕망은 모두가 똑같고, 치매노인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치매에 들든 그렇지 않든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정다운 이웃들과 함께 끝까지 살아가는 꿈을 꾸는 게 대단한 사치는 아니겠지요? 이런 고백이 당연한 사회를 꿈꿉니다.
 
"아, 치매가 있어도 우리 동네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어."

치매여도 괜찮아
  
그림1
 그림1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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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길(가명)씨는 언제부터 창으로 비치는 햇살이 참 좋아졌습니다. 아침마다 무수한 작은 천사들이 금빛 자태를 뽐내며 문안하고 싶어 바글바글 몰려드는 것 같습니다.

얼굴과 손을 살포시 덮어 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알알이 금빛 미소의 천사들과 눈맞춤을 하면 봉길씨 얼굴에도 덩달아 환한 미소가 피어납니다.
 
그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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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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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은 가족의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따스함이 기분을 좋게 만들었고 좀 더 따듯해도 좋으련만 하고 생각합니다. 날이 쌀쌀한 이맘때는 따뜻함이 더 그립습니다.
 
그림3
 그림3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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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봉길씨는 빛을 즐기느라 주로 창가에서 지냅니다. 햇살을 반사하며 시시때때 변하는 경치 구경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봉길씨가 사는 곳은 요양원입니다. 정확히는 치매전문요양원입니다.
 
그림4
 그림4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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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봉길씨는 요양원을 집 삼아 산 지 1년이 되도록 현실이 아닌 듯, 낯선 느낌이 마음 구석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요양원이라는 공간과 사람들도 낯설지만 종일 침상에 머물며 때마다 나오는 밥과 약을 받아먹고 기저귀를 내어주는 자신이 가장 낯설었습니다. 봉길씨의 인생계획에는 전혀 없던 장면이었거든요.
 
그림5
 그림5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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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도 왕년에는 어엿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제법 큰 철강회사에 다니며 20년을 하루 같이 정신없이 살았었지요.
 
그림6
 그림6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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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평생을 보낼 것만 같았었는데... 4남매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보내고 나니 얼떨결에 정년을 맞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출퇴근 길에서도 벗어났습니다.
 
그림7
 그림7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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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다람쥐 쳇바퀴 같은 월급쟁이 인생이라고 투덜대지만, 봉길씨는 그리 싫은 건 아니었습니다. 눈 뜨면 가야할 곳, 아니 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나쁘지 않았거든요. 그렇게 무한궤도처럼 돌던 몸의 습관열차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 순간에 멈추어 버리자 오히려 당황스러움마저 들었습니다.
 
그림8
 그림8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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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에서 반사적으로 움직였던 손기술 외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 이제 알아서 24시간을 보내야 한다니 말입니다.
 
처음엔 그간 밀렸던 여행이나 다녀볼까 하면서 아내와 여기저기를 좀 다닌 것 같습니다. 그치만 딱히 와 닿지는 않아 은퇴 후 몇 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림9
 그림9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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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순간 봉길씨 인생항로가 엉뚱한 방향으로 꺾이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난생 처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겁니다.
 
그림10
 그림10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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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새벽 이슬을 맞고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근처 파출소 불빛이 눈에 들어왔고 경찰의 도움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봉길씨의 충격은 컸습니다.
 
그림11
 그림11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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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보는 가족들의 눈망울이 아직 잊히지가 않습니다. 물기가 촉촉이 맺힌 채 파르르 떨리고 있었거든요.
 
그림12
 그림12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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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내가 말로만 듣던 치매에 걸린 건가? 하고 덜컥 내려앉던 심장이 명치 끝을 치던 느낌도 생생해요.
 
치매에 들면 바보가 된다던데. 가족들에게 행패를 부리고 심지어 벽에 똥칠을 한다던데. 내가 왜? 평생 가족 건사하고 성실하게 일한 죄 밖에 없는데 나에게 왜 이런 몹쓸 것이 씌었단 말인가? 내 인생은 이대로 끝인가?
 
그림13
 그림13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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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진단을 받았던 그날, 봉길씨는 이야기 합니다.

"저도 너무 불안하고 당황스러웠지만 소리 죽여 흐느끼던 아내, 고개를 떨구어 울음을 참던 아들과 딸들... 가족에게 크나큰 죄인이 된 것 같은 그때 기분은 아무리 치매가 깊어져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림14
 그림14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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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을 새 집 삼아 보낸 지 3년이 돼 가네요. 봄마다 자신을 찾아 와준 환한 빛천사들의 포옹과 세월이 치료약이 되었을까요? 봉길씨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내 인생은 끝인가,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고마운 세월이 씻어주었나 봅니다. 외출을 자주 못한다는 것 외엔 그리 나쁘진 않다는 봉길씨. 치매 환자로 사는 것에 대해 누가 묻는다면 이런 말을 하지 않을까 스스로 떠올려 봅니다.
 
그림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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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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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리면 나 김봉길이란 사람은 완전히 사라지고 요상한 바보 늙은이만 남는 줄 알았지. 근데 그게 아냐. 조금 불편하긴 해. 잘 잊어먹고, 헤매고 하니 말이야. 근데 좀 좋은 점도 있어. 옛날처럼 더러운 꼴 못 보고 못 듣고 기억에 남질 않으니 사는 게 편해졌어.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그땐 당장 죽을 것 같아도. 시간 지나면 좋고 편한 걸 찾아 가거든. 치매도 그래. 특별한 거 없어. 그냥 무덤까지 안고 가는 오랜 병 같은 거지."
 
그림16
 그림16
ⓒ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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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봉길씨는 쏟아지는 햇살에 몸을 맡기니 눈이 절로 감깁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에 평안해집니다.

"기분 좋다. 이래 살아도 괜찮다."

우리는 치매사회를 준비하고 있는가?
 
건강했던 사람에게 중풍이나 교통사고로 수족을 영원히 못쓰게 되면 어떨까요? 이렇게 질문을 하면 '못 걷게 되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라는 답을 종종 쉽게 듣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을 내뱉은 사람 중에 '차라리 죽고 말지'를 실천에 옮긴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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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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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있어도 살아보니 비슷한 희로애락을 누리며 살아지더라는 거죠. 오히려 장애를 얻은 후 불타는 욕망이 잦아들면서 내면은 더 고요하고 평화로운 행복이 자리 잡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매에 걸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어떤가요? 나에게 장애가 왔다고 상상했을 때보다 더 격하게 공감되는 말인가요? 치매를 왜 무서워할까요? 장애는 그나마 자기 정체성 보존에는 어려움이 없지만 치매는 걸리면 바보가 된다, 자기라는 정체성이나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상실하는 병이라고 단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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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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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로 산다는 것. 내가 그 길을 걸어보지 않으면 그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장애가 그랬듯 치매 역시 우리가 상상했던 것과는 정말 다른 세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치매에 대한 편견이 너무 심합니다. 편견을 고쳐야 한다는 데 동의를 하면서도 무엇이 편견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답을 못합니다. 그건 치매에 대한 편견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을 못해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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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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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치매 노인상은 보통 이렇게 형성됩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비극적인 치매 노인의 모습 그리고 뉴스에 보도되는 치매 노인을 간병하다 동반 자살한 소식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극적요소를 위해 그런 치매 노인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고, 뉴스는 시청률을 위해 불안을 자극하는 선정적인 내용으로 편성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거의 간과하지요.
 
정말 치매에 들면 천지분간도 못하는 바보가 될까요? 정말 치매에 들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통째로 사라질까요? 아무 이유도 없이 뛰쳐나가 여기 저기 배회나 일삼을까요? 본능만 살아남아 욕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걸까요? 치매 노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되는 걸까요?
 
여기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을 표한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는 그리 밝지 못합니다. 65세 이상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인데, 이 비율이 30년 후면 거의 5명 중 1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봅니다.
 
80세 이상의 노인으로 하면 3명 중 1명으로 치솟습니다. 두 집 걸러 한집 노인이 치매라는 말이고 나는 소중하니까 나만 예외가 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치매가 보편화된 치매 사회에서 현재 같은 치매에 대한 공감과 인식이 상식으로 떠돈다면 정말 온 국민은 불행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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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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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사람도 100명이 모이면 100가지 자기 색깔이 있고 천차만별이듯 치매 역시 100명이 있으면 주증상만 유사할 뿐 주변 증상은 100가지 색깔을 띠고 다 천차만별입니다.
 
치매가 이렇다 저렇다 단정 짓는 것은 모두 편견이라고 해도 무방합니다. 치매는 주증상과 주변 증상을 구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를 하는데요. 치매의 주증상과 주변 증상에 대한 오해에서 빚어지는 편견의 이야기. 이어지는 다음 이야기에서 상세히 나누겠습니다. 귀 기울여 주세요. 

태그:#예쁜치매, #휴머니튜드, #커뮤니티 케어, #치매 주증상, #치매 행동심리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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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동물, 식물 모두의 하나의 건강을 구합니다. 글과 그림으로 미력 이나마 지구에 세 들어 사는 모든 식구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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