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교직원 연수 때 그(왼쪽)와 필자(1986년 여름 지리산에서).
 교직원 연수 때 그(왼쪽)와 필자(1986년 여름 지리산에서).
ⓒ 박도

관련사진보기

 
그는 나의 대학 2년 후배다. 같은 국문과요, ROTC(학군단)조차도 2기 후배다. 나는 보병인데 그는 해병대를 지원한 해병대 장교로 '진짜 사나이'다. 나는 실력도 주변머리도 없어 대학 재학 시절 별로 두각을 내지 못했다. 그런 탓으로 대학 재학 시절에는 그에게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1976년 이대부속중학교로 부임했을 때 같은 국어과 교사로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다가 그제야 인연을 알게 됐다.

그런 탓인지 우리는 죽이 잘 맞아 자주 어울렸다. 그러다가 해가 바뀐 뒤 나는 고등학교로 옮기게 됐다. 같은 교무실을 쓰지 않게 됐지만 한 이화대학 울타리에서 지낸 탓으로 자주 만났다. 그러면서 이따금 만나 고스톱도, 포커 게임도 즐겼다.

그에게서 나도 용기를 얻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중에 그가 낸 장편 소설 <시인과 원시인>을 읽고 깜짝 놀랐다. 그의 문장력과 작품성에 무척 자극을 받아 나도 용기를 내 다시 붓을 들었다. 그래서 발표한 나의 데뷔작이 <사람은 누군가를 그리며 산다>라는 장편소설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 같이 이런저런 작품 얘기와 세상사 그리고 학교 안팎의 세상사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밤을 지새우면서 구담(口談)뿐 아니라, 수담(手談)도 나눴다. 그가 교단생활 20년을 채울 무렵 그의 장편소설 <미셸을 기다리며>라는 작품이 출판되었고 곧 교보문고 소설 부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런 선풍에 어느 영화감독이 학교로 찾아와 영화화하겠다고 그에게 바람을 넣었다. 감독이 다녀간 뒤 그는 나에게 교단을 떠나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좀 더 시간을 보내면서 영화가 뜬 뒤 그만두기를 권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풍선처럼 부풀어 있었다. 그는 미련 없이 교단을 떠났다.
 
그의 마지막 작품 표지
 그의 마지막 작품 표지
ⓒ 창해출판사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그의 작품은 영화화되지 않았다. 그는 학교를 떠난 뒤 다른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세파에 몹시 시달렸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문학작품 대신 학습 관련 책을 펴냈다. <논설 8.15>, <초공부법>, <공부를 해야 하는 30가지 이유> 등의 책을 펴냈다. 꽤 인세 수입을 올렸으나 사람 좋고, 놀기 좋아하는 자유인인 그는 돈을 모으지는 못하고 오히려 내리막길만 걷고 있었다.

내가 교직을 떠난 뒤 강원도로 내려오자 우리는 자주 만나지 못하고 서로 전화로 안부를 묻고 지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그가 소설 한 편을 썼다고 나에게 출판사 소개를 부탁하기에 그 청을 들어주었다. 뜻밖에도 그 출판사와 단박에 계약이 성사됐다고 해서 나도 기뻤다. 그는 그 무렵 대히트작인 <오징어게임> 아류의 소설로 영화화를 목표로 쓴 바, 출판사 측에서도 그걸 염두에 두고 출판을 서둘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이 소설을 찾지 않는 세태를 읽지 못했다. 그가 처음 소설을 낼 때만 해도 웬만하면 초판 2, 3천 부에 선인세까지 챙겼지만 이즈음은 초판 5백 부에 인세는커녕 작가가 제작비까지 부담해야 하는 세태로 변하고 있다. 게다가 영화도 코로나 후유증 등으로 흥행하기가 로또 이상 어려웠다. 

요즘 어딜 가나 책 읽는 사람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기 힘들다. 내가 일본 여행 중 살펴봤지만 독서 일등국조차도 대합실이나 열차 내에서 책 읽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요즘 대부분 사람이 SNS를, 그것도 길을 걸으면서 쳐다본다. 이러한 현상은 코로나19보다 더 심각하게 번져 있다. 인문이 죽어버린, 그리하여 학벌조차 조작하거나 뻥튀기를 하고, 논문도 표절을 일삼는, 도무지 도덕성과 정의감이 상실된 세상으로 변모한 느낌이다. 그런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고관이 되거나 무슨 무슨 '여사'로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다.

"잠수 중"이라던 메시지가 마지막이 됐다
  
그(왼쪽)와 마지막 만남(2017. 2.).
 그(왼쪽)와 마지막 만남(2017. 2.).
ⓒ 박도

관련사진보기


그가 보내준 신간 <종이 울리면 자리에 앉는다>를 읽은 뒤 보답으로 식사라도 한 끼 나누고자 문자를 보냈다.

"이 선생! 보고 싶어."
"선배님, 저 요즘 우울증 증세로 약을 먹고 있어요. 나아지면 전화 드리지요."
 

출판사 대표를 통해 그의 근황을 전해 듣자 책 판매도 매우 부진하고 영화화도 진척이 없다고 했다. 그 며칠 뒤 마침 서울 갈 일이 있어 그에게 전화를 했다.

"나, 내일 서울 가는데 같이 점심 나눌까?"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 요즘 잠수 중입니다."

그 한마디만 한 뒤 평소와 달리 후딱 전화를 끊었다. 그날 이후 한 달 만에 그의 아들로부터 운명 소식을 들었다. 이제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석 달이 지났다. 이즈음 문득 그가 생각이 나서 그의 마지막 작품집을 꺼내 '책머리에'를 다시 읽었다.
 
"니체처럼 살다가 장자처럼 죽음을 맞는 한 사나이의 이야기... 이 소설을 쓰면서 작가는 인간에게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더라도 꿈을 꾸는 능력이 남아있는 한 인생은 한번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이 글 속에서 그의 죽음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그 후배의 이름은 '이동재'이다.

태그:#이동재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