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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라고는 없는 철면피... 대단히 죄질이 나쁜 아이... 16살 밖에 안 된 학생의 영혼이 그렇게 타락할 수 있는지."

"(김OO 교사는) 매우 사악한 학생들의 허위진술로 인해 매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시고 계십니다. 그 중심에 아버님의 딸 A가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편지 내용 중)


2019년 11월, A씨 아버지는 딸에 대한 음해와 비방이 가득한 편지 두 통을 받았다. 자신을 '충북여중 김OO 교사 제자들'이라고 밝힌 편지였다. A씨는 2018년 충북을 떠들썩하게 했던 '충북여중 스쿨미투'의 공익신고자이자 이 학교 학생이었고 김OO은 가해 교사였다.

이즈음 또 다른 공익신고자 B학생의 어머니도 편지를 받았다. 편지엔 "A씨가 정상이 아니"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스쿨미투) 기획·연출·선동의 총책임자로 남성 혐오주의자, 골수 페미니스트, 퀴어축제 참가자"라거나, "정신과 약을 복용하지 않으면 정상생활이 힘들다"는 비방이 가득했다.

A·B씨는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때부터 가명을 썼다. 수사 단계부터 재판까지 성폭력 피해자는 가명을 쓰며 신원을 보호받을 수 있다. 수사기관이 아니고서야 실명이 파악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런데 '제자들'은 누가 피해자인지를 파악해 이들 소셜미디어를 뒤진 후 주소까지 알아내 편지를 보낸 것이다.
 
'피해자 보호' 안일했던 검사·판사
 
 
2019년 11월 A씨 아버지 앞으로 온 익명의 편지. 두 통의 편지엔 A씨 음해와 비방으로 가득한 A4 용지 18장이 들어있었다.
 2019년 11월 A씨 아버지 앞으로 온 익명의 편지. 두 통의 편지엔 A씨 음해와 비방으로 가득한 A4 용지 18장이 들어있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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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름을 알았을까? 이를 조사했던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는 2019년 9~10월 이들의 성(姓)이 공개된 재판이 원인이라고 지난해 12월 밝혔다. 당시 재판을 담당한 탁아무개 검사가 A·B씨를 증인으로 신청하며 이들 성씨를 법정에서 공개했다. 피고인이 볼 수 있는 증인신청서에도 성을 적어 냈다. A씨 성은 같은 성을 가진 동급생이 3명에 불과할 정도로 흔치 않았다.

곧 이어 법정에서도 사건이 터졌다. 권익위 조사와 A씨에 따르면 1심 진행이 한창이던 2020년 1월,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보던 A씨를 청주지법 1심 재판장 나아무개 판사가 지목하며 '증인신문 관련해 착오가 있었느냐'라고 물었다. A씨는 당황한 채로 고개를 가로 저었다고 한다. 재판이 비공개로 전환되면서 법정 밖으로 퇴정하던 A씨를 가해 교사 배우자가 붙들고 "피해자예요?" "이 일로 가정이 파탄나기 직전" "너무 힘듭니다" 등의 말을 했다고 한다. 

법원 홈페이지의 사건 기록에도 A씨 성이 계속 공개됐다. 재판기록을 열람·복사하면 담당 공무원은 '이 신청인이 열람해갔다'는 기록을 남기는데, 2020년 동안 A씨 성이 다섯 차례나 사건 기록으로 공개됐다. 청주지법 담당 공무원의 실수였다.

A씨는 재판에서 성이 노출된 직후부터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음해와 비방, 조롱에 시달려왔다. 자신을 충북여중 선배라고 밝힌 이가 갑자기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법정에 증인으로 나갈 거냐'고 캐묻기도 했다. A씨가 피해자란 사실도 충북여중, 옆 학교, 옆 아파트 등 청주 지역사회로 알음알음 퍼졌다. 무분별한 비방에 친구에 대한 공포심마저 생겼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기도 했다.

담당 검사와 1심 재판장, 법원 공무원 등의 과실로 성폭력 피해자 신상이 여러 번 노출됐다. 그 이후 1년 넘게 피해자에게 2차 가해가 집중됐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A씨가 지난해 6월, 이 사건을 권익위와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로 가져 간 까닭이다.

2차 피해 발생... 검찰·법원 선제적 조사 없어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징계를 받은 공무원은 한 명도 없다.

A씨는 공수처에 고발장을 제출했으나, 공수처는 사건을 6개월 넘게 갖고 있다가 지난 1월 검찰에 넘겼다. "일부 혐의가 공수처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이첩했다"는 이유였다.

이에 서울중앙지검 측은 지난 7월 14일 이 사건 탁아무개 검사, 나아무개 판사('청주 스쿨미투' 1심 재판장), 지아무개 판사(2심 재판장) 등이 고발된 사건을 '각하'했다. 각하는 명백히 혐의가 없다고 판단돼 수사를 더 할 필요가 없다는 불기소 처분이다.

A씨는 크게 3개 법조항 위반을 주장했다. ▲공익신고자임을 알면서 그의 인적사항을 타인에게 공개해선 안 된다는 공익신고자보호법 12조 ▲아동·청소년대상 성범죄 수사·재판에 관여하는 공무원은 피해자 인적사항을 공개·누설해선 안 된다는 청소년성보호법 31조 ▲검사·경찰관으로 하여금 신고자 신원 정보를 조서에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성폭력처벌법 23조 등이다.

검찰은 고의가 없다며 각하했다. 검찰은 이 사건 불기소이유서에서 "성범죄특례법위반죄, 공익신고자보호법위반죄 모두 고의로 인적사항을 누설한 행위를 처벌한다"며 "검사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 혐의 없음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방청석의 A씨에게 말을 건 나 판사 혐의엔 "단순히 이 질문만으로 A가 피해자임을 알 수 없다"며 "공익신고자 인적사항을 타인에게 알려준 걸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주임검사는 고발장과 서류 증거만 봐도 수사를 진행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 고발인 조사도 진행하지 않았다.

권익위 "고의 없어도 법 위반 맞아, 징계 필요" 
 
지난해 12월 이 사안을 조사해 검사에 대한 징계를 권고한 국민권익위원회 결정문 중. 해당 검사가 자신의 실수로 피해자 A B씨의 실명을 노출해 가해자 측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됐다고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가 증거로 나와 있다.
 지난해 12월 이 사안을 조사해 검사에 대한 징계를 권고한 국민권익위원회 결정문 중. 해당 검사가 자신의 실수로 피해자 A B씨의 실명을 노출해 가해자 측이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게 됐다고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가 증거로 나와 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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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난해 12월, A씨 진정을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검사에 한해선 공익신고자보호법 12조를 위반했다며 검찰총장에 징계를 권고했다. 고의는 확인되지 않아 고발은 하지 않지만, 공익신고자 비밀 보장 의무를 위반한 행위는 맞다며 징계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판사의 의무 위반은 판단하지 않았다. 나 판사는 권익위에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A씨는 그날 판사 말을 기억했고, 법정 밖에서 자신을 알아 챈 가해자 배우자에게 붙들렸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양 측 진술이 엇갈리고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정황이 없다"며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A씨 성을 사건 기록에 적은 공무원도 징계 권고에서 제외됐다. 권익위는 "A씨가 공익신고자이거나 수사·재판에서 진술한 피해자임을 알 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만 재판기록 표지에 '피해자 인적사항 누설금지'가 적힌 걸로 볼 때 청소년보호법 31조와 관련한 내규나 지침 위반 여부는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법원에 밝혔다.

대검찰청과 대법원의 자정 노력은 현재까지 찾아 볼 수 없다. 내부 직원의 잘못으로 피해자 신상이 특정돼 광범위한 2차 피해를 낳았고 고발이 접수돼 사안이 공론화 됐음에도, 선제적인 조사로 문제를 파악한 기관은 없었다.

대검찰청 대변인은 권익위 징계 권고에 대한 입장과 징계 논의 상황을 묻는 말에 8일 "대내외적 비공개로 진행되는 감찰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답변이 어렵다"고만 밝혔다.

대법원 공보관도 지난 5일 "법관 징계에 대해선, 추후 관보에 (징계 결과가) 게재되는 것 외에는 확인해 줄 수 없다는 게 대법원 원칙"이라며 "법관이 아닌 공무원의 징계와 관련해선 해당 지방법원 관할"이라고 답했다.

피해자는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2021년 2월 17일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이 스쿨미투 발생 및 처리 현황을 발표하면서 면담 요구에 불응한 김병우 충청북도교육감을 규탄했다.
 2021년 2월 17일 충북스쿨미투지지모임이 스쿨미투 발생 및 처리 현황을 발표하면서 면담 요구에 불응한 김병우 충청북도교육감을 규탄했다.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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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을 처음 노출한) 검사가 정말 너무너무 밉고 싫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욕은 다 먹어 봤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까지 악의적인 소문을 만들고, 듣고, 퍼트리고 다니는 걸 견뎠습니다. 저는 혼자가 아니라 지지모임 등으로부터 사건 지원을 받아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었는데, 지원받은 사건마저 이리 끝난다면 대체 앞으로 누가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요? 누가 검찰과 법원을 믿을 수 있을까요?" (A씨)

이달 검찰의 고발 각하 처분을 들은 A씨는 지난 7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피해는 벌어졌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너무 허무하고 허탈한 결과"라며 "검찰·법원을 견제하는 장치가 없어도 너무 없다"고 말했다.

신원이 노출된 지 6개월 후 경위를 알게됐던 A씨는 "잘못을 한 당사자가 '일이 이렇게 벌어졌고 미안하다'고 제때 알려주고 사과를 했다면 이리 감정이 격해지지 않았을 텐데, 기본부터 지키지 않았다"며 "(판·검사가) '업무에 최선을 다했다'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책임지지 않는데, 누군가 책임지지 않고 해프닝으로 끝나면 앞으로 어떤 변화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를 대리한 조영신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도 "검찰이 피해자, 피의자에 대한 한 번의 조사도 없이 사건을 각하했다"며 "가해자가 검사·판사이고, 큰 문제를 일으켰음에도 고의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각하한 건 부당하다"고도 주장했다.

조 변호사는 "모든 범죄엔 고의가 구성요건으로 전제되나, 이 사건은 법률을 당연히 잘 알고 있어야 할 검사와 판사가 법을 위반한 과실로 '고의에 가까운 중과실' 혹은 미필적 고의가 될 수 있다고 봤기에 고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검찰이 권익위에 '수사 결과를 보고 징계 처분을 정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안다. 즉 징계를 안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사건에서조차 사후 조치도 제대로 취하지 않을 거라면, 피해자 보호에 대한 각종 법률적 장치들이 왜 있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A씨는 이번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A씨는 "재판 과정이 이렇게 힘든 일인 줄 알았다면, 감당할 몫이 이렇게 클 줄 미리 알았다면 재판에 (증인 등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사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앞으로 어떻게 문제제기를 하고 어딜 찾아가야 하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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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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