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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공동언론 발표를 통해 김진표 국회의장과의 회담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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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이 지난 1일부터 시작된 동아시아 순방 일정을 마치고 미국에 도착했다. 싱가포르를 시작으로 말레이시아, 중화민국, 한국, 일본까지 미국의 핵심 우방국을 모두 방문했다. 전화회담을 포함해 모든 국가에서 정상과 회담했다.

특히 이번 동아시아 순방의 핵심은 펠로시 의장의 중화민국(대만) 방문 여부였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 전부터 인민해방군은 타이완 섬 인근에서 무력시위성 훈련을 벌였다.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측 언론에서는 격추니, 전쟁 불사니 하는 과격한 이야기도 등장했다. 시진핑 주석도 바이든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불장난을 하면 불에 타 죽는다"며 양안관계에 간섭하지 말 것을 강한 어조로 주문했다.

펠로시 의장이나 중화민국 정부나 이번 방문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지 않으며 일정을 쉬쉬해 왔지만, 펠로시 의장이 중화민국을 방문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중간선거가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이번에 방문하지 않으면 하원의장으로서의 중화민국 방문이 또 언제 성사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측의 강력한 대응은, 오히려 일정을 취소하거나 미루기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펠로시 의장의 중화민국 방문이 실현되자 중화인민공화국은 강력한 반응을 쏟아냈다. 타이완 섬 인근 해역에 11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이 가운데 4발은 타이완 섬을 가로질러 일본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낙탄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위협으로 대만행 항공기 운행도 잠시 중단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년 9개월만에 중일 양자간 이루어지는 외교장관 회담을 전격 취소하기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반응은 분명 민감했다. 미국의 고위급 인사가 중화민국에 방문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1997년 이미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이 중화민국에 방문해 리덩후이 당시 총통과 회담한 바 있다. 하원의장 방문은 25년 전이지만, 다른 고위급 인사들은 자주 중화민국을 오갔다. 2020년 보건복지부 장관 알렉스 아자르가 중화민국을 방문했다. 2021년에는 미국 연방상원의원단이 중화민국을 방문했다.

전략적 모호성
 
지난 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동이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지난 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과 차이잉원 대만 총동이 대만 타이베이 총통부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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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번 방문에 특별히 민감한 이유는 있다. 이것이 단순한 방문을 넘어, 양안관계에 대한 미국의 정책 방향성 전체를 가로지르는 분수령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다. 지난해 현직 국무장관인 앤터니 블링컨은 영 김 공화당 하원의원의 대정부질의에 답변하면서 중화민국을 "자국민을 넘어 세계에 기여할 수 있는 국가"라고 칭했다. '국가'라는 표현이 논란이 됐지만, 반 년 뒤 대정부질의에서도 블링컨 장관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바이든 정부에서 지난해 연말 화상으로 개최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도 중화민국이 초청되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2020년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에 축전을 보내기도 했다. 중화민국에 무기 수출을 허가하고, 중화민국과 수교하는 국가들을 지원하는 '대만동맹보호법'과 '대만보장법'이 통과된 것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었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문제도 아니다. 분명 무언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미국이 양안관계에 대해 취해왔던 입장은 "전략적 모호함"이었다.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이 전략이었다. 긴장의 고조와 위기를 최대한 억제하며 한 시대를 넘는 것이 미국의 전략이었다.

사실 정확히는 미국만의 전략도 아니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까지 3자가 겉으로는 다른 목표를 말하고 있었지만, "현 상태의 유지"라는 명제에는 모두가 은밀하게 찬동하고 있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미국과 전면전이 벌어졌을 때의 대가를 감당할 수 없었고, 미국은 국제사회의 질서를 굳이 해치고 싶지 않았으며, 중화민국은 어떻게든 국가체제가 존속되는 상황을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변화하는 정세

하지만 시진핑 주석의 3선을 앞두고 있는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은 "중화민족의 부흥"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의 '중화민족'이 단순히 현재의 중화인민공화국만을 의미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은 더이상 팽창의 욕구를 숨기지 않고 있다. 이것은 3자 모두의 은밀한 동의로 이루어졌던 양안관계의 "현 상태"가 파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펠로시 의장이 타이완 섬에 착륙한 것은, 단순한 의미일 수 없다. 이제 미국은 분명히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양안의 "현 상태"를 어떻게든 뒤집겠다면, 미국은 분명히 민주국가의 편에 서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제 동아시아의 안보국면은 과거처럼 모호함이 전략인 시대가 아니다. 중화인민공화국도 미국도, 또 중화민국도 이제는 더 이상 모호한 "현 상태"에 만족할 수 없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은 그런 상태에서, 미국의 분명한 입장이 무엇인지를 확인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이번 방문에 민감해 한 것은 그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고위급 인사의 방문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측이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가한 수없는 압박을 뚫고 타이완 섬에 착륙한 펠로시 의장은 그런 의미를 안고 차이잉원 총통과 만난 것이다.

미래의 동아시아
 
미국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3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 대사,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미국 권력서열 3위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3일 오후 경기 오산 미 공군기지에 도착해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 대사, 폴 라카메라 주한미군사령관의 영접을 받고 있다.
ⓒ 주한미국대사관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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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 의장의 방문이 큰 영향을 남긴 만큼, 이제 미국 안에서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을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대중국정책에 대한 치밀한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당장 현재 미국 상원에서는 상원 외교위원장인 민주당 밥 메넨데즈 의원과 공화당 중진 린지 그레이엄 의원이 공동 발의한 "대만정책법"이 논의 중에 있다. 중화민국의 군사력 강화와 국제기구 영향력 확대를 지원하는 법안이다.

당장 하나의 중화인민공화국 원칙을 폐기한다거나, 중화인민공화국과 단교하고 중화민국과 수교하는 극단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양안문제의 민주적 해결을 지지하는 것이 미국의 분명한 입장이라는, 정책적 여론이 충분히 만들어질 것이다. 3자의 은밀한 찬동으로 만들어진 "전략적 모호함"은 이제 없다.

그리고 이것은 꼭 중화민국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족의 대부흥을 꿈꾸고, 중화 패권의 시대를 말하는 한 세계의 모든 국가가 다르지 않다. 강대강 패권 경쟁의 시대, 이제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가 양 진영의 말이 되어 동아시아라는 장기판 위에서 충돌할 것이다. 양안관계는 이 경쟁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위치에 있었을 뿐이다. 이것은 꼭 군사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펠로시 의장의 방문, 아니 그 이전의 꾸준한 움직임부터 미국은 분명히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 경쟁에서 미국은 민주진영의 편에 설 것이다. 양강이 입장을 분명히 한 이상, 이제 한동안 동아시아 국가들은 그 사이 어디에서 입장을 정하고 자리잡아야 할지를 고민할 것이다.

하지만 고민에 오랜 시간을 끌 수는 없다. 고민의 과정도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핵심은 누가 어느 진영에 자리를 잡았는지, 그리고 그 진영에서 얼마나 중요한 목에 자리를 잡았는지 하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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