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8 14:07최종 업데이트 22.08.08 14:07
  • 본문듣기

3일 군인권센터에서 김숙경 군성폭력상담소장이 '공군15비 여군 하사 성폭력 사건 반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군인권센터 부설 군성폭력상담소는 2일 이 부대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다. 군성폭력상담소는 공군의 해명이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반박 기자회견을 했다.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공군15비)은 고(故) 이예람 중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부대다. ⓒ 연합뉴스

 
지난 2일, 공군에서 또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됐다. 사건 발생 부대가 지난해 성추행 및 2차 피해를 겪고 사망한 고 이예람 중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공군 제15특수임무비행단(이하 '15비')이란 점은 여론의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중사는 성추행을 겪은 뒤 15비로 근무지를 옮겼으나 이미 피해자라는 사실이 부대에 소문나있어 2차 피해로 고통 받은 바 있다.

고 이예람 중사 사건과 데칼코마니

이번에 공론화 된 사건은 이 중사가 유명을 달리한 뒤 발생했다. 가해자는 같은 반 남군 반장이었고, 피해자는 여군 하사였다. 자신을 사랑해달라며 성희롱을 일삼던 반장은 거의 매일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다. 장기 복무 선발을 빌미로 가스라이팅을 하며 말을 잘 들을 것을 강요하던 가해자는 피해자가 추행을 거부할 때면 업무에서 배제하는 등의 불이익을 가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다른 상급자가 피해자가 성추행 피해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그는 이를 신고하기는커녕 가해자에게 쫓아가 귀띔해줬다고 한다. 소식을 들은 가해자는 사과를 한답시고 계속 문자메시지를 보내며 피해자를 괴롭혔다. 성추행, 성희롱, 2차 피해, 가해자 편들기...... 불과 1년 전, 같은 부대에서 벌어진 이 중사 사망 사건과 데칼코마니 같은 사건이었다. 결국 피해자의 신고로 가해자는 구속된 상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고 전 가해자는 코로나19에 걸리면 근무를 빼줄 수 있다며 한사코 거절하는 피해자를 확진자가 격리 중인 숙소로 데려가는 어이없는 일을 벌였다. 확진자는 같은 반에 근무하는 피해자의 후임 하사였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확진자와 뽀뽀를 하라는 둥, 입에 손가락을 넣어 침을 받아다 먹으라는 둥 엽기적인 지시를 했다. 피해자가 거부하자 확진자가 먹던 음료를 먹을 것을 강제했다. 명백한 성희롱, 갑질이자 직장 내 괴롭힘이다.

그런데 성추행 사건을 수사하던 군사경찰은 참고인 조사 중 이러한 사정을 확인하고는 확진자 하사에게 고소장을 받아다 피해자를 주거침입, 근무기피목적상해죄 피의자로 입건시켰고 기소 취지로 군 검찰로 송치까지 했다. 피해자도, 확진자도 모두 상관인 가해자로부터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부하들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책임은 가해자의 몫이 되어야 하는데, 군은 엉뚱하게도 피해자를 가해 공범으로 만든 셈이다. 졸지에 피의자 신분으로 신문을 받고 나온 피해자는 핸드폰 메모장에 "내가 똑같은 입장이 되니... 결국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군이 죽으라고 등을 떠민다"는 절규를 남겼다.

사건 공론화 당일, 공군은 언론사에 총 세 차례의 해명 메시지를 보냈다.

세 번이나... 공군의 황당 해명 메시지

첫 번째 메시지에는 사실관계와 국민에 대한 사과가 담겼다.
 
8.2.(화) 군인권센터 기자회견 관련 공군에서 알려드립니다. 공군은 이번 성추행 사건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데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립니다.

공군은 본 사건을 법과 규정에 따라서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며, 수사과정에서 억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민간 자문위원으로 구성된 수사인권위원회에도 자문을 구할 예정입니다. 해당 부대는 지난 4월 A하사의 성폭력 사건 신고 직후 가해자를 구속하여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며, 매뉴얼에 따라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는 등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본 사건과 별개로, 군인권센터 발표내용에 언급된 격리 중이던 남군 하사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성폭력 및 주거침입 혐의로 신고했으며, 군 수사기관에서 수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후 다수의 기자들이 공군 측에 피-가해자 분리 과정 등 피해자 보호가 잘 이루어진 것이 맞는지 문의했다. 군인권센터는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가 4월 14일에 신고했고, 4월 15일에 가해자가 입건되었으나 이후 즉시 피해자 보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정황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공군은 두 번째 메시지를 발송했다.
 
 **금일 군인권센터 기자회견 관련 공군 측 추가 입장입니다.
 =문의가 많아 알려드립니다. 피해자는 4월 15일에 해당 부대 양성평등센터에 신고를 했으며 해당 부대에서는 신고 즉시 가해자에게 2차 피해에 대한 고지를 했습니다. 이후 4월 16~17일에는 피해자가 휴가를 나갔고 4월 18일 월요일에는 해당 가해자를 다른 부대로 파견 조치를 해 피·가해자가 분리됐습니다. 다만 26일 가해자 구속 전 가해자가 피해자가 있던 부대에 방문했는지 등의 동선은 향후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 메시지는 얼핏 보면 해명 같지만 사실상 공군 스스로 피해자 보호 과정에 문제가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단 피해자가 신고한 날부터 잘못되었다. 피해자는 4월 14일에 신고했고, 수사기관이 이를 인지하여 입건한 것이 15일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공군은 15일 가해자 입건 이후 피해자가 휴가를 나갔고 16~17일은 주말이니 18일에 가해자를 타 부대로 파견한 것으로 피-가해자 분리는 잘 된 것이라 설명하며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간 분리가 피-가해자 분리의 전부가 아니라는 점은 이미 숱한 군 내 성폭력 사건에서 지적된 유의점 중 하나다. 당사자 및 주변인의 진술에 상당부분을 의존하는 성폭력 사건의 특성과 계급 질서에 따라 발생하는 피-가해자와 주변인의 권력관계를 고려할 때 가해자가 사전에 주변인 진술을 오염시킬 가능성을 선제적으로 차단하고, 피해자에 대한 불필요한 소문이 퍼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점은 이미 귀에 딱지가 앉도록 수많은 전문가들이 조언한 바 있다. 그러나 14일에 신고를 받고 18일에 이르도록 나흘 간 무슨 조치가 있었는지 설명해달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공군은 면피용 변명만을 늘어놨을 뿐이다.
  

충남 계룡대 정문 모습. 2021.6.4 ⓒ 연합뉴스

 
그 뿐 아니다. 2차 메시지에는 해당 부대에서 신고 즉시 가해자에게 2차 피해에 대한 고지를 했다며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한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이 부분도 석연치 않다. 바꿔 말하면 신고와 동시에 가해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줬다는 얘기인데, 대체 무엇을, 어떻게 알려주며 2차 피해에 대해 고지했다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잘못한 부분은 잘못했다고 시인하고, 비판 받고, 상황을 바로잡으면 될 일인데 그럴듯한 변명으로 상황을 모면해보려다 스텝이 꼬여버린 것이다.

그런데 공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오후 5시가 넘어 기자들에게 또 하나의 메시지를 보낸다.
 
8.2.(화) 군인권센터 기자회견 관련 공군에서 알려드립니다.
언론 보도 이후, 군인권센터 보도자료에 언급된 남군 하사가 극도의 불안감과 2차 피해를 호소하며 본인의 피해내용이 보도되지 않기를 강력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남군 하사는 이 시간 이후 본인 피해내용에 대한 보도가 있을 경우, 언론사를 대상으로 법적 조치를 취할 의사가 있음을 알려왔습니다.
 
군의 불순한 의도

불순한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메시지였다. 상관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두 피해자를 피-가해자 관계로 몰아 싸움 붙여놓은 것도 모자라, 사건이 일파만파 퍼져나가자 그 중 한 사람을 방패삼아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당시 언론 기사에는 확진자였던 남군 하사가 누구인지 특정할 만한 정보가 하나도 보도되지 않았다. 또한 보도 논조 역시 확진자 하사를 비난하는 내용이 아니고 군이 무리하게 피해자를 피의자로 만들어 사건의 본질을 가리고 있다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사건 처리를 엉망으로 해 공론화가 된 마당에 필요에 따라 교묘하게 피해자 보호의 개념을 끌어다 쓴 것이다.
   

「국방홍보훈령」 '뉴미디어 모니터링 및 대응 절차' 「국방홍보훈령」제21조 제3항에 따른 군의 미디어 대응 지침인 '뉴미디어 모니터링 및 대응 절차' ⓒ 국방부

 
국방부 훈령인 '국방홍보훈령'에는 군이 언론 등을 대응할 때 따라야 할 행동 요령이 체계적으로 담겨있다. '뉴미디어 모니터링 및 대응 절차'에 따르면 국방부는 실시간으로 온라인 검색을 통해 군 관련 뉴스나 정보를 파악하다 이슈가 감지되면 담당부서에 전파하고 필요시에는 장·차관에게 보고하게 한다. 그러면 담당부서에서는 이슈를 분석해 사실 관계, 대응책, 파급력, 2차 이슈 파생 가능성을 따져본다. 이를 종합해 이슈에 대한 대응 필요성을 평가하고, 파급력이 큰 사건은 즉시 대변인실에서 대응전략을 수립하고 담당부서에서는 참고자료를 작성한다.

이후 대변인실은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를 내거나, SNS 등에 공식 입장을 게시한다. 여기에는 공식 입장을 발표한 뒤 군이 보기에 오류로 여겨지는 부분은 삭제, 수정 요청을 할 수 있으며 필요시 법적조치까지 취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대응이 끝난 뒤엔 진행 경과를 평가하고, 대응 방향을 재검토한다. '위기 지속' 시에는 계속 상황을 평가해 반복적 대응해야 한다고도 한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위기'가 수습되면 상부에 정보보고를 하고 사건을 종결한다.

면면이 마치 군사작전을 방불케 하는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응방향이다. 분명한 것은 군은 군과 관련한 이슈가 공론화되면 이를 '위기 상황'이라 여긴다는 점이다. (실제 훈령 상 절차에 '위기'라고 써놨다) 전반적으로 유관부서와 공보라인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궁극적 목적은 '욕 안 먹기'이고, 외부의 문제 지적은 '위기'이자 '공격'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매 사건마다 군 공보라인이 필요 이상으로 민간과 기자의 문제 제기와 질문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까닭이 이 절차 도식 하나로 간결하게 설명된다. 문제를 지적하면 그걸 해결할 생각보단 '위기' 운운하며 상황을 모면할 생각부터 하니 이슈 대응 절차의 마지막이 이슈의 본질에 닿질 않고 '위기 수습'이나 '정보보고 및 종결'이 되는 것이다.

반성이 아닌 변명으로 일관하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는 일로 만든 경험이 한두 번도 아니면서 매 번 왜 이러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 세상에 군이 밉고 사라지길 바라며 욕하는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국민의 따끔한 질책에 반성과 개선 방향을 고민하기보단 변명거리부터 떠올리는 태도로는 절대 조직이 바뀌지 않는다. 신뢰 받는 군대는 '욕 안 먹는 군대'가 아니라 '달게 욕먹고 쇄신하는 군대'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