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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이 몽골서쪽 끝 바얀울기로 가던 중 도로변을 달리던 러시아인을 만났다.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달리는 '평화달리기(Peace Run)회원이다.
 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이 몽골서쪽 끝 바얀울기로 가던 중 도로변을 달리던 러시아인을 만났다. 세계평화를 염원하며 달리는 "평화달리기(Peace Run)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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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유적답사단 일행이 20일 동안의 몽골여행 중 가장 힘든 고비인 고비사막을 드디어 벗어나 몽골 서쪽으로 들어서면서 만난 첫 번째 도시는 홉드다. 제법 도시다운 맛을 풍기는 홉드는 청나라 때 만주인들이 군사기지를 세운 이후 몽골 서부 지역의 무역, 상업, 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차에 기름을 보충하고 식자재와 물을 사러 마트에 갔더니 대한민국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어 한국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내 중심가에는 몽골인들이 즐겨 신는 신발인 '고탈'이 동상처럼 세워져 이방인의 눈길을 끈다. 몽골인들은 장화를 '고탈'이라고 하는데 여름용은 가죽과 천을 재료로 하고 겨울용은 가죽과 펠트를 사용한다. 겨울에는 고탈 안에 털실로 짠 양말을 신고 혹한을 이겨낸다.
  
홉드 시가지에 세워진 몽골인들의 가죽신 '고탈' 모습. 승마하기에 편리하다고 한다
 홉드 시가지에 세워진 몽골인들의 가죽신 "고탈" 모습. 승마하기에 편리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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홉드 마을 담장에 그려진 벽화모습
 홉드 마을 담장에 그려진 벽화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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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가죽으로 만드는 고탈은 좌우에 여러 가지 장식을 하는데 장수를 상징하는 무늬를 넣는다. 예를 들어 남자의 경우 8, 12, 14, 15 또는 33개의 장식 패턴이 있다. 신발의 코 부분이 하늘로 솟아있어 승마할 때 편리하며 밑바닥은 평평하다.

모래나 자갈로 이뤄진 울퉁불퉁한 고비사막을 벗어나 서쪽끝 도시 바양울기까지는 포장도로라 빨리 달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애물이 없어 도로변 경치를 구경하며 졸고 있는데 앞서가던 차가 길옆으로 비켜선다. "또 고장났나?" 하며 차를 세워 도로변에 내리니 성화봉을 든 서양인이 도로변을 달리다 우리를 보고 웃는다.

세계 평화를 희망하며 달리는 러시안 마라토너

멀리 보이는 4천미터급 산정상에 눈이 쌓여있고 강한 바람 때문에 일행은 점퍼까지 입었는데 반바지만 입고 도로변을 달리는 사람의 사연이 궁금해 영어로 물으니 "러시아인으로 세계 평화를 꿈꾸며 달리고 있다"고 한다. 티셔츠에는 '평화달리기(Peace Run)'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인자한 웃음을 지어보내는 러시아인에게 "우크라이나과의 전쟁을 반대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서로가 갈 길이 바빠 물어보지 못했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를 경유해 여기까지 달려왔다"고 해서 깜짝 놀라 "혼자서 여기까지 달려왔느냐?" 물었다. 그는 웃으며 "캡틴과 일행이 승용차를 타고 뒤따라오며 예정된 순서에 따라 성화 주자가 바뀌어 달린다"라고 대답하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영어로 된 명함을 준다.

명함에 적힌 '평화달리기'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이들 단체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와있었다. 한국도 방문했었던 '세계 평화 달리기'는 국제적인 행사로서 참가자들은 올림픽 성화와 같은 성화봉을 가지고 릴레이 형식으로 지구 방방곡곡을 방문한다. 이 행사는 나이, 성별, 직업, 국적, 종교 같은 벽을 뛰어넘어 공존하는 따뜻한 마음들을 나누고 상호간에 마음을 열어 국제적인 우애로 연결하고자 하는 행사이다.
  
'세계 평화달리기' 회원인 러시아인이 "이 성화봉을 잡으면 평화가 옵니다"라는 말을 하자 회원들이 성화봉을 잡았다.
 "세계 평화달리기" 회원인 러시아인이 "이 성화봉을 잡으면 평화가 옵니다"라는 말을 하자 회원들이 성화봉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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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세계 평화 달리기 행사의 창립자는 '스리 친모이(Sri Chinmoy)'로 "스포츠가 지구의 평화를 앞당기는데 하나의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분이다.

1987년에 시작된 세계 평화 달리기의 본부는 뉴욕에 있으며 북아메리카 평화달리기, 유럽 평화달리기, 아시아 태평양 평화달리기, 아프리카 평화달리기 등으로 나뉘어져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29년 동안 지구를 16바퀴 돌 수 있는 거리를 평화를 위해 달리면서 세계 150개 국을 방문했다. 오늘 만난 러시아인의 몽골 평화달리기는 54일 동안 7300km를 달린다.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동물도 인간이지만

몽골의 아름다움과 매력에 흠뻑 빠진 필자가 읽은 몽골 관련 서적은 20권도 넘는다. 몽골국립박물관에서 발행한 영문 서적 5권도 읽었다. 몽골을 4번 여행한 거리를 합하면 3만여km에 달한다. 여행할 때마다 몽골 곳곳에 숨어있는 우리의 풍습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6천만 마리의 가축들이 평화롭게 풀뜯는 몽골역사 뒤안으로는 수많은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와 몽골에 얽힌 아픈 역사도 있다.

요즈음 TV를 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가 종종 보도된다. 며칠 전 러시아 군인이 우크라이나 포로의 신체 일부를 자르고 결국에는 총살했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검찰총장실은 "전쟁 포로에 대한 부당한 대우, 고문, 특히 신체적 훼손은 1949년 전쟁 포로 처리에 관한 제네바 협약 제13조를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전쟁 중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약이 지켜지는 경우가 있는가?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은 누구일까? 사자? 호랑이? 늑대? 이들 동물은 먹고 살기 위해서만 동물을 죽인다. 하지만 인간은 수백만명을 집단학살하기도 한다. 결과는 어떨까? 놀랄 것도 없다. 2014년 국제보건기구와 게이츠재단, 타임에서 밝힌 가장 잔인한 동물 1위에 랭크된 동물은 모기이고 2위가 인간이다.

3년전 35일간의 남미여행을 함께하며 각별한 사이가 된 김진태씨가 몽골과 한국과의 악연에 대해 물어 그동안 공부했던 자료를 설명해줬다. 원나라에 지배당했던 80년간 원나라에 끌려갔던 고려인의 숫자는 공주, 시녀, 노비, 상인들을 비롯해 약 20만 명이었다.

충렬왕부터 공민왕에 이르는 7대 왕조에 걸쳐 해마다 16~18세 소녀 400~500명을 원나라에 공녀로 보내졌다. 고려말 유학자 '이곡'이 쓴 <공녀반대 상소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공녀로 선발되면 혹은 우물에 빠져 죽거나 목매 죽고 피눈물을 흘려 실명하는 자도 많았다."
 
"전쟁이 나면 남자는 싸우다 죽어버리면 그만이지만 살아남은 여자는 더 비참해진다"고 하자 김진태씨가 자신의 경험담을 얘기해줬다. 김씨의 고향은 포천이다. 김씨의 고향은 6.25 전쟁이 끝날 때까지 매일 같이 전투가 계속되는 최전방이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고 한다.
 
강풍이 불거나 비가오는 궂은 날씨에는 이동하지 못하고 텐트 속에서 몽골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필자의 몽골강의를 듣는 고조선유적답사단원들 모습
 강풍이 불거나 비가오는 궂은 날씨에는 이동하지 못하고 텐트 속에서 몽골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날씨가 좋아지기를 기다렸다. 필자의 몽골강의를 듣는 고조선유적답사단원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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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유적답사단에 동행한 김진태씨가 헤르멘차브에서 기념촬영했다
 고조선유적답사단에 동행한 김진태씨가 헤르멘차브에서 기념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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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구들이 모이면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이야기가 있어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당시 아버지는 미군과 국군에게 포탄을 날라주는 노무대(지게부대)로 징발되어 먹고 살길이 없는 데 누나가 태어나자 입 하나라도 줄이자는 생각에 갓 태어난 누나 배 위에다 맷돌을 올렸대요.

누나가 죽지 않고 눈만 말똥말똥 뜨고 있는 모습을 본 어머니가 열살 여덟살 된 두 딸들에게 '맷돌 하나를 더 올려라'고 하자 딸들이 어머니 치마를 부여잡고 울며 '우리 같이 살자'고 해서 살려줬는데 부모님 돌아가실 때까지 최고의 효녀였다고 그래요."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에 태어난 나에게는 슬프고도 충격적인 얘기였다. 전쟁의 화두는 72년 전 여수 남면 안도리 이야포에서 발생한 미군 폭격기 사건으로 오버랩되었다. 1950년 8월 3일 안도 이야포에는 350명의 민간인들이 탄 피난선이 정박해 있었다.

이 때 인민군을 찾던 미군기가 피난선에 기총소사를 해 1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었다. 2006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 회원들과 함께 이야포일대를 돌아보던 필자는 미군기에 의한 민간인폭격사건에 대해 <오마이뉴스>에 썼고 영어로 번역해 구글에 올렸다. 사건이 뉴스에 보도되자 여러 언론사에서 연속보도가 이뤄지기 시작했었다.

이야포에서는 매년 8월 3일이 되면 '민간인 희생자 추모제'가 열린다. 작년까지는 여수넷통뉴스와 박성미 의원을 주축으로 한 소수가 주도했지만 올 8월 3일에는 여수시가 주관하는 기념식으로 확장됐고 필자도 초청받았다. 기념식이 열리기 전 이야포 앞바다 해안가에서는 이야포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춘혁(88) 어르신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1950년 8월 3일 여수 남면 안도리 이야포해변에서 일어났던 미군기의 민간인 폭격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춘혁(88세. 우측)씨가 당시 사건을  연필로 그려 비석속 그림이 된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이자 화가인 박금만 화백과 비석 앞에 함께 섰다.
 1950년 8월 3일 여수 남면 안도리 이야포해변에서 일어났던 미군기의 민간인 폭격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 이춘혁(88세. 우측)씨가 당시 사건을 연필로 그려 비석속 그림이 된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이자 화가인 박금만 화백과 비석 앞에 함께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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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8월 3일 350여명의 민간인 피난선을 미군기가 폭격할 당시 피난선에 탔던 유일한 생존자 이춘혁씨가  비극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폭격 당시 150여명이 희생됐고 당시 16살이던 이춘혁씨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일곱가족 중 부모님을 비롯한 4명이 희생되어 힘들게 살았다.
 1950년 8월 3일 350여명의 민간인 피난선을 미군기가 폭격할 당시 피난선에 탔던 유일한 생존자 이춘혁씨가 비극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폭격 당시 150여명이 희생됐고 당시 16살이던 이춘혁씨는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어 구사일생으로 살았지만 일곱가족 중 부모님을 비롯한 4명이 희생되어 힘들게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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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가 끝나고 안도를 떠나 여수로 돌아오던 중 전쟁의 광기에 휘말린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제보를 들었다. 장지마을은 금오도 끝자락마을로 수년전까지는 배로 건녀야했지만 지금은 안도대교가 놓여 연결되어 있다.

배를 타고 여수로 돌아오던 중 몽골에서 만난 러시아 마라토너가 생각났다. 과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전쟁을 끝내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인가? 전쟁의 광기에서 벗어나 평화로운 세상으로 갈 수 있을 것인가? 하루빨리 전쟁을 끝내고 평화롭게 살기를 빌었다.
      
금오도 끝자락 마을 장지와 안도는 현재 안도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이야포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장지에는 인민군 1개 분대가 주둔해있었고 마을 뒤 망산에 경찰병력인 영암부대가 있었다.  다리건너 보이는 섬이 이야포 사건이 일어났던 안도이다.
 금오도 끝자락 마을 장지와 안도는 현재 안도대교로 연결되어 있다. 이야포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 장지에는 인민군 1개 분대가 주둔해있었고 마을 뒤 망산에 경찰병력인 영암부대가 있었다. 다리건너 보이는 섬이 이야포 사건이 일어났던 안도이다.
ⓒ 박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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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뉴스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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