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 JTBC

 
아동 납치-유괴사건의 '골든타임(사건 발생 후 문제를 해결하거나, 피해자의 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은 놀랍게도 짧으면 3시간에서 길어야 하루에 불과하다. 미 연방수사국 FBI가 동일 유형의 범죄들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납치된 아동-청소년 피해자들의 대부분이 납치된지 24시간 이내에 살해당한 것으로 집계됐다.

1997년 대만에서 벌어진 '바이샤오옌(백효연) 사건'은 대만 역사상 최악의 아동 유괴-살해범죄로 회자되며 큰 충격을 남겼다. 이 사건은 아동범죄의 골든타임, 반인륜적인 잔혹범죄에 대한 사회적 대처, 유명인의 사생활 보호와 언론의 진정한 역할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봐도 남일 같지않은 교훈과 숙제를 남겼다.

4일 방송된 JTBC <세계다크투어>에서는 바이샤오옌 사건과 아동범죄의 잔혹성을 주제로, 표창원 범죄심리전문가가 강연자인 다크가이드로 나섰다. 1997년 4월 14일, 대만의 여성 국민 MC이자 배우, 가수 등 만능 엔터테이너로 활약중이던 바이빙빙(백빙빙)의 딸 바이샤오옌이 등굣길에 괴한들에게 납치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한다.

바이빙빙은 일본의 유명 만화작가와 결혼하여 바이샤오옌을 낳았다. 하지만 남편의 가정폭력과 불륜으로 이혼한 바이빙빙은 혼자 바이샤오옌을 길렀다. 모녀는 함께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여 국민적 사랑을 받으며 유명세를 누렸다.

당시 16세의 바이샤오옌은 유명 연예인의 딸이었음에도 항상 평범하게 혼자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놀랍게도 납치장소는 바이샤오옌의 집에서 불과 100미터 거리였다. 납치 당일날, 바이샤오옌은 하필 평소보다 지각을 한 탓에 등굣길이 한산했고, 꾸준히 그녀를 주시해왔던 납치범 일당은 기회를 노리다가 대낮에 도심에서 사람을 차량에 강제로 태워 납치하는 대담한 범행을 벌인다.

표창원은 "납치나 유괴사건은 특별한 상황이나 낯선 장소가 아닌,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주 발생한다. 범죄자들이 납치대상을 노리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 피해자가 같은 시간에 가는 곳이나 자주 드나드는 곳을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납치범은 바이샤오옌을 납치한 후, 극악무도하게도 그녀의 잘린 새끼손가락과 폭행한 사진을 상자에 담아 바이빙빙에게 보내며 돈을 요구한다. 그안에는 바이샤오옌이 납치범들의 강요로 작성한 편지도 있었는데 "엄마, 저 납치됐어요. 지금 많이 아파요. 제발 저를 구해주세요. 오래된 지폐로 500만 달러가 필요해. 경찰에 신고하면 제 목숨이 끊어질 거에요"라고 적혀있었다.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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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표창원은 국내에서 있었던 두 건의 비슷한 납치사건을 언급했다. 2003년 6월 강남 압구정동 여대생 납치사건과, 2009년 전남 광양 사건에서 벌어진 어린이 유괴 사건이었다. 두 사건의 차이는, 전자의 경우 가족들이 납치범들의 요구에 그대로 응했고, 후자는 경찰에 바로 신고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돈을 지불하고도 돌아오지 못한 여대생은 얼마뒤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고, 반면 빠르게 신고된 광양사건은 사건발생 3시간만에 납치범이 검거되며 아이도 구출했다.

표창원은 "'경찰에 신고하면 아이가 죽을수 있다'는 협박은 납치범의 논리다. 납치범에게 유리한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불안한 심리로 이성과 판단력이 흐려지는 피해 가족은 납치범의 계략에 넘어가기 쉽다. 해결을 위해서는 침착한 대응과 빠른 신고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바이빙빙도 유괴범의 첫 연락을 받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당연히 경찰은 바이샤오옌의 안전을 고려하여 비공개 극비수사를 진행했다. 여기까지는 좋았지만, 문제는 그 뒤 대만 경찰과 언론의 대응이었다.

납치범은 바이빙빙에게 전화를 걸어 딸의 목숨을 살리고 싶으면 500만 달러(당시 약 60억)를 준비하라며 협박했다. 어렵게 돈을 마련한 바이빙빙은 경찰이 위장한 택시를 타고 납치범이 지시한 약속장소와 시간에 맞춰 접선을 시도했다. 하지만 납치범은 며칠에 걸쳐 무려 15번이나 약속장소를 번번이 바꾸면서도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그렇게 피말리는 시간만 속수무책으로 흘러갔다.

바이샤오옌이 납치된지 12일째가 된 4월 25일, 다시 납치범이 알려준 약속장소에서 기다리고 있던 바이빙빙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바로 범인을 체포했다는 경찰의 연락이었다. 바이빙빙은 드디어 딸을 찾았다는 안도감에 황급히 집으로 돌아갔지만 바이샤오옌은 돌아오지 않았다.

알고보니 경찰이 체포한 것은 납치범 일당중 주범이 아닌 공범 2명이었고, 심지어 바이샤오옌의 소재가 어디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정작 경찰이 주범으로 파악한 세 명은 추격전 끝에 놓쳐버렸다. 검거작전의 성패도 결론나기 전에 경찰의 성급한 대처로 오히려 수사 사실만 노출됐고, 딸도 찾지못한 바이빙빙은 억장이 무너지는 심경이었을 것이다.

바이빙빙은 결국 이튿날 생중계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딸의 납치사실을 전국민에게 공개하며 "제발 딸을 찾아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톱스타의 딸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이 모든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며 대만 국민들과 충격과 슬픔에 빠졌다.

바이샤오옌 납치에 참여한 일당은 총 15명, 이중 가오톈밍, 린춘셩, 첸진싱 3인이 주범으로 꼽혔다. 두목인 첸진싱은 폭력과 강도를 일삼던 전과자였고 출소 이후 돈이 궁해지자 교도소에서 만난 린춘셩과 가오텐밍을 끌어들여 범죄를 기획한 것. 

사실 이들은 훨씬 일찍 잡힐 수도 있었다. 바이빙빙과 첫 접선을 시도했던 4월 17일, 숨어서 바이빙빙을 지켜보고 있던 일당은 그녀의 주변에서 수상한 사람들의 기색을 눈치채고 현장을 떠나버린다. 그들의 정체는 바로 유명 연예인인 바이빙빙을 몰래 취재하려던 대만의 신문사-방송사 기자들이었다.

기자들은 오직 특종을 위하여 수사 중인 경찰을 미행하는가하면, 범인과 접선하기로 한 장소에 무단을 잠입하기도 했다. 심지어 이들은 바이빙빙의 기자회견으로 딸의 납치 소식이 공식화된 이후에는 직후, 아예 대놓고 바이빙빙을 따라붙으며 수시로 전화를 걸거나 집앞에 취재진이 몰려서 사진을 찍어대는 등 몰상식한 행태를 벌였다.

극비수사를 진행하던 경찰 측에게서 기자들에게 정보를 누설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출처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사전에 내용을 눈치챈 언론들에게 미리 내용은 보도를 하지 않는다는 엠바고가 형식적으로 걸려있기는 했지만, 말 그대로 공식 보도만 하지 않았을 뿐 모든 현장을 따라다니며 벌였던 노골적인 취재경쟁으로 이미 내용이 사실상 다 공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바이빙빙의 기자회견도 사실은 납치범이 아니라 무자비한 기자들에게 협조를 구하는 호소였다.

당시 분노한 한 경찰은 "바이샤오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당신들 모두 살인자"라고 일침을 놓았으나, 돌아온 것은 "다른 기자들도 모두 철수하지 않으면 우리도 철수할 수 없다"는 뻔뻔한 대답이었다.

기자로서 최소한의 직업윤리마저 저버린 '기레기'들의 막장 행태에 패널들도 분노와 탄식을 금하지 못했다. 만일 첫 번째 작전이 성공했다면 주범들도 검거하고 어쩌면 바이샤오옌도 구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은 그렇게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JTBC <세계다크투어>의 한 장면 ⓒ JTBC

 
사건발생 14일째인 4월 28일, 안타깝게도 납치되었던 바이샤오옌은 차디찬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시내 배수로에서 발견된 그녀의 시신은 충격적이었다. 옷이 벗겨지고 손과 발이 결박된 상태였으며 전신에 심각한 폭행으로 장기가 파열되었고, 신체 곳곳이 훼손되었으며 성폭행의 흔적까지 발견됐다. 오죽하면 시신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조차 이렇게 끔찍한 시신은 본일이 없다며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고.

경찰은 시신의 상태를 분석하여 사망일이 4월 18일에서 21일 사이로 추정했다. 납치범이 마지막으로 연락해온 것은 25일이었다. 납치범들은 바이샤오옌을 이미 살해하고도 계속해서 돈을 요구해왔던 것.

한편으로 바이샤오옌의 사망 추정 시점이 바이빙빙과 첫 접선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17일 전후였고 끔찍했던 그녀의 시신을 고려할 때, 결국 목표했던 돈을 받지못한 화풀이로 그녀에게 잔혹하게 보복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 정황이 드러난다. 결국 무능한 경찰과 무책임한 언론이 날려버린 골든타임의 대가가, 바이샤오옌의 생명을 빼앗는 나비효과로 돌아온 셈이다.

표창원은 "유괴-납치사건에서 가족들은 '범인들이 돈을 원하면 아이는 살려두겠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돈과 상관없이 아이를 먼저 살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현실을 설명했다. 표창원은 아동 납치 범죄에서 골든타임이 불과 3시간, 12세 이상 청소년은 24시간 이내라고 설명했다. 나이가 어릴수록 골든타임이 짧아지는 이유로는 ,성인에 비하여 아동 인질들의 정서적 안정이 어렵다는 것을 꼽았다. 16세였던 바이샤오시엔은 골든타임(24시간)을 놓치고 결국 납치 3~4일 만에 살해되어 시신은 2주 만에 발견됐다.

1980~1990년대는 한국에서도 아동 유괴 사건이 유독 자주 일어났던 시기다. 당시는 사회적 빈부격차가 심화되며 물질만능주의-한탕주의가 만연하던 시대였다. 일부 빗나간 욕망에 빠진 이들은 급기야 범죄를 통하여 일확천금을 꿈꿨고, 아동납치와 유괴를 선택한 것은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1년 이형호군 유괴 사건은 당대의 가장 유명한 아동범죄사건으로 범인들의 수법이나 행적, 아이를 끝내 구하지 못했다는 점 등에서 바이샤오엔 사건과 흡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만 가장 가슴아픈 차이는 범인도 끝내 잡지 못한 채 영구미제사건으로 남았다는 것.

바이샤오옌 사건의 범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처참하게 유린된 시신으로 돌아온 바이샤오옌의 죽음에 대만 국민들은 분노했고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리덩후이 당시 대만 총통이 직접 나서서 범인들을 반드시 체포할 것을 지시하며 저항하면 사살하라는 명령까지 내릴 정도였다.

범인들은 도주 행각을 벌이면서도 살인-강도-강간 등 또다른 범죄를 잇달아 저질렀다. 사건 발생 4개월이 지나고 목격자의 신고로 시장이 있는 시내 주택가에서 3인방의 행적을 마침내 파악한 경찰들은 무려 800여 명의 인력을 투입하여 건물을 포위하고 체포작전을 펼쳤다. 바이샤오옌의 사망 이후에도 여전히 바뀌지않은 대만 언론들은 현장에 난입하여 체포 과정을 생중계하는 추태를 벌였다.

대만 역사상 전대미문의 총격전이 벌어지며 린춘셩은 무려 6발의 총탄을 맞으며 저항하다가 끝내 자살했고 경찰도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하지만 첸진싱과 가오텐밍은 도주했다.

남은 두 범인은 도주중 한 성형외과병원에서 의사 부부와 간호사를 살해했다. 신분을 감추기 위하여 의사 부부를 협박하여 강제로 성형수술을 시키고 증거를 없애려고 목격자들을 제거한 것. 경찰은 현상수배 사상 최초로 두 범인의 각각 성형 전과 후의 얼굴을 동시에 올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계속된 추격 끝에 가오텐밍은 경찰과 대치 중 자살했다. 궁지에 몰린 첸진싱은 남아공의 외교관 관저에 침입하여 가족들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였다. 24시간에 걸친 대치 끝에 첸진싱은 결국 투항했고 주범 중 유일하게 살아서 체포된 범인이 됐다.
 
첸진싱에 의하여 그간 납치범 일당들이 벌인 악행들이 낱낱이 드러났고, 첸진싱은 결국 사형이 선고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공범들도 대부분 검거되어 한 명을 빼고는 11명이 유죄를 선고받았다.

한편으로 바이샤오옌 사건은 단지 유명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과도한 관심에 노출된 연예인과 그 가족의 인권 유린에 대한 현실을 일깨웠다. 선정적인 언론의 행태로 초기 수사에 실패한 것이 더 큰 비극으로 이어지면서 과연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적정선은 어디까지인지, 언론의 취재 윤리는 무엇인지도 대해서도 큰 고민을 남겼다. 오늘날 21세기 우리의 언론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질문이 아닐까.
바이샤오옌사건 아동범죄 골든타임 세계다크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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