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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동구 중앙동은 이름 그대로 도시의 중심부다. 경부고속철도 대전역 앞에 자리했다. 1998년 과소동 통폐합에 따라 원동, 정동, 중동, 신안동, 소제동이 통합돼 지금의 중앙동이 됐다.

대부분 구도심처럼 중앙동도 쇠락의 그늘에 덮여있다. 거주 인구 실태가 이를 보여준다. 가구 수는 7월 현재 3014가구지만 인구는 4336명에 불과하다. 3만~5만 명이 되는 거대동의 1/10분의 정도다.

교통의 중심지다 보니 오고 가는 사람이 많다. 당연히 이들이 머무는 숙박업소가 많다. 대전광역시 동구청에 따르면 관내 숙박업소는 호텔 2개, 여관 113곳, 여인숙 53곳 등 총 168개다.

포털의 지도 검색해보면 중앙동에서만 54개의 숙박업소가 있다. 동구청 관내 숙박업소의 1/3에 해당한다. 검색에 표시되지 않지만 실제로 운영되고 있는 숙박업소의 수는 더 많다. 취재진이 동구 역전1길 200미터 구간에서만 추가로 확인한 숙박업소가 7곳이나 됐다. 이들 숙박업소 대부분은 오래되고 낡아 숙박업소라 표현하기 민망한 정도였다.

약 500여명이 숙박업소 거주... 수급자는 4.3% 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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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업소가 많다 보니 이곳에 사는 사람도 많다. 대전광역시 중앙동 행정복지센터에 따르면 기초생활급여 수급자 중 190명이 여인숙이나 여관 등 숙박업소에 거주한다.

중앙동 행정복지센터 관계자는 "숙박업소에 거주하는 전체 주민 통계는 따로 집계하지 않아 전체 규모는 모른다"라며 "주소지를 검색해 확인한 결과 기초생활급여 수급자 중 190명이 숙박업소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190명은 중앙동 거주인구의 4.3%에 해당한다. 숙박업소에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만 거주하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3년째 여인숙에 거주하며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이강산(다큐멘터리 사진작가)씨는 대략 500여명의 주민이 숙박업소 일대에 산다고 밝혔다.

이 작가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는 일부에 불과하다. 바로 옆에 있는 숙박업소만 해도 건설현장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는 40대 주민 두 명이 살고 있다"며 "수급 대상자보다도 비수급 대상자가 더 많이 있을 것이다. 500여 명이 이곳을 터전 삼아 산다"고 말했다.

재개발에 멈춰진 시간, 열악한 주거환경

한 평도 안 돼 보이는 공간, 월세는 15만 원. 대전역을 나와 골목으로 향하면 쇠락한 구도심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때는 꽤 북적거렸을 포장마차는 여전히 길게 늘어서 있지만 문을 연 곳은 한두 곳에 불과하다.

골목길에는 재개발 시행사인 LH주택공사를 향한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한눈에 재개발 지역이란 곳을 알 수 있다. 현재 이곳은 재개발 보상 문제로 건축주와 LH간 협상이 한발도 못 나간 상태다.

이곳에 있는 건물 중 창문이 깨지거나 사람이 살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건물이 상당했다. 여인숙과 같은 숙박업소는 아예 1970년대에 시간이 멎은 듯 보였다. 간판마저 노쇠해 듬성듬성 벌레가 파먹은 듯했다. 건물은 지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곳이 많다. 일부 여인숙은 난방 자체가 안되는 곳도 많다. 방은 한 평에서 두 평 내외다.

여관 혹은 모텔이라 이름 붙인 곳은 세평 가까이 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여인숙이 더 많다. 대부분 방은 2층에 자리한다. 올라가는 계단은 좁고 매우 가팔랐다. 벽에 손을 대지 않으면 오르고 내리기조차 버겁다.

월세는 저렴한 편이다. 난방이 안 되면서 한 평 안팎의 방은 월세 15만 원 내외다. 상태가 양호하고 방이 넓으면 18만 원에서 25만 원까지 간다. 일부 모텔이나 여관을 제외한 여인숙의 경우 개별화장실이나 세면 시설은 없다. 모두가 공용이다.

누가 살까
 
여인숙의 객실은 대부분 2층에 있다. 계단이 매우 가파르다.
 여인숙의 객실은 대부분 2층에 있다. 계단이 매우 가파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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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자(71.가명)씨가 머물고 있는 여인숙 객실
 박정자(71.가명)씨가 머물고 있는 여인숙 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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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엔 누가 살까. 취재진이 만난 거주민의 공통점은 아프다는 것과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또 이만큼의 복지를 주는 사회에 대해서 고마움을 표했다.

박정자(가명·여·71)씨는 이곳에서 거주한 지 4년이 됐다고 했다. 제일 먼저 박씨는 "내가 암 환자라서 (얼마나 더 살지 모르겠지만) 죽기 전에 넓은 데 살다가 죽으면 원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넓은 곳은 이곳의 세 배. 면적으로 치면 9.9m(3평) 정도다.  

박씨는 젊어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편과 이혼했다고 했다. 현재 건강이 매우 안 좋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에는 자궁암에 걸렸다. 수술을 통해 다 들어냈다. 그게 나니 담낭암과 갑상선암이 왔다. 지금 치료받는 중이다"고 말했다.

박씨는 자신의 몸무게가 32㎏이라고 했다. 걷기조차 힘들어 보일 정도로 너무 말랐다. 그는 "병원을 오가야 하는데 버스를 타면 너무 힘들다. 택시를 타야 하는데 경제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여인숙 계단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보였다. 그는 얼마 전 계단에서 넘어졌다. 박씨는 "낮엔 괜찮은데 밤에는 내려가기가 우리 같은 사람에겐 너무 힘들다"면서 "넘어져서 여기 뒤가 말도 못하게 새카매졌다. 아는 언니가 병원에 (신고해) 저녁에 실려 갔는데 다행히 뼈는 괜찮고 타박상이 나왔다"고 말했다.

그의 방은 난방이 되지 않는다. 박씨는 "요 깔고 전기장판 깔고 그렇게 자면 괜찮다"'라며 "내가 죽기 전에 좀 돼서 넓은 집에 살다가 죽으면 원이 없겠다"고 했다. 그의 방은 취재진이 양팔을 벌렸을 때 맞닿았다.

"여름 3개월만 지나면, 그래도 겨울은 살만해."

김병호(가명·남·67)씨는 이곳 여인숙에서만 지낸 기간이 무려 7년이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질환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태어날 때부터 머리뼈에 구멍이 나서 물이 나왔다. 머리가 어지럽고 쑤시기도 했다. 이것 때문에 귀에 이명이 왔다. 나이가 드니 심장이 안 좋아서 약을 먹고 당뇨 걸리고 고지혈증까지 왔다"고 밝혔다. 약을 먹다 보니 속이 안 좋아서 위장약도 먹게 된다며 약봉지를 꺼내 보여줬다.
 
김병호(67.가명)씨의 방. 그의 방은 유난히 잘 정리돼 있다.
 김병호(67.가명)씨의 방. 그의 방은 유난히 잘 정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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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수입은 생계급여와 주택급여다. 주택급여 15만 원에 생활급여 56만 원이 전부다. 밥은 아침 김밥 한 줄과 바깥에 가서 사먹는 찌개 등 하루 두 끼뿐이다. 6000원 하던 찌개값이 7000원으로 올라 고민이라고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반찬을 주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나누어서 먹는다고 밝혔다.

여름에는 더워 열기 때문에 집에서 밥을 할 수가 없다. 김씨는 "그럭저럭 한 달 계획을 세우면 먹고 싶은 것 참으면서 살아갈 수 있다. 옛날에는 나라에서 주는 것 없어 가지고 아파도 그냥 죽으면 그만 아니었나"라면서 "지금은 월 70만 원 정도 약도 그냥 탈 수 있다.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름이 제일 고달프다고 말했다. 그는 "여름엔 더워야지 자기 입맛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라며 "겨울이 되면 전기장판 켜면 따뜻하다"라고 했다.

참고로 월세 15만 원인 그의 방은 난방이 되지 않는다. 일을 못 하는 이유를 두고 김씨는 "건강 상태가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못 된다. 제주도에서 25년간 세탁소 다림질 일을 했는데 어느 순간 그것조차 힘들게 됐다"고 말했다.

"급식소, 두 시간 이상 줄을 서야 되는데... 저는 쓰러집니다"

일반 주택 월세로 살다가 여인숙에 온 지 3년 됐다는 육근열(가명·남·62)씨. 그는 "과거에 배운 것이 없어서 힘든 막노동 하면서 혹사를 많이 당했다"면서 "나이가 아직 많지 않지만 어려서 고생을 해서 몸이 많이 망가졌다"고 밝혔다.

육씨도 마찬가지로 기초생활수습비와 주거급여가 수입의 전부다. 그의 방도 역시 난방이 되지 않는다. 방에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라면 등 일회용 식품과 약봉지가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다.
 
육근열(62, 가명)씨는 하루에 잘 먹으면 두끼 식사를 한다고 밝혔다.
 육근열(62, 가명)씨는 하루에 잘 먹으면 두끼 식사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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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근열씨 등 입주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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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하루에 잘 먹으면 두 끼 먹는다고 했다. 육씨는 "식사는 겨울에 해 먹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더워서 라면 하나 못 끓여 먹는다"라며 "방법이 없다. (더워서) 문을 열면 모기가 들어오고 그래서 죽밥이나 사 먹고 그런다"고 말했다.

이어 "무료 급식소는 2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데 저혈당 쇼크가 와서 쓰러진다. 자주 이용 못한다"고 덧붙였다.

육씨도 역시 겨울보다 여름이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겨울 난방은 견딜 만하다. 추우면 옷 껴입고 다 꺼내서 입고. 더위가 제일 힘들다"면서 "여름에는 대전역 대합실 가서 에어컨 바람을 쐰다"고 설명했다.

가정집에서 이곳 여인숙으로 온 이유를 두고 그는 "이전 집 화장실은 재래식이었다. 냄새가 많이 났다. 여기는 그래도 수세식이어서 냄새가 덜 난다"고 털어놨다. 이어 "현재 생활이 불만족이라고 하면 한이 없잖아요. 만족하다고 할 수도 없고 아니라고도 할 수 없고. 그냥 (과거에 살았던) 거기보다 나은 곳을 왔다"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숙박업소에 사는 사람들, #주거 빈곤, #여인숙 쪽방촌, #주거사다리, #대전시 중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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