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8.03 05:10최종 업데이트 22.08.0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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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논. 무더위 속에서도 벼들이 잘 자라고 있다. ⓒ 하승수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친 후 집을 나섰다. 귀촌해서 텃밭 농사를 짓는 수준이지만, 농촌에 살다보니 집 주변에 논들이 많다.

친환경 농사를 짓는 논들은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우렁이를 넣어 왔는데, 올해는 우렁이를 넣었다가 다시 빼냈다고 한다. 기후가 변하면서, 우렁이가 겨울에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다음 해 어린 모를 갉아먹을 우려가 생겼기 때문이란다.


논을 보니 무더위 속에서도 벼들이 잘 자라고 있다. 아직까지는 태풍이나 병충해 피해도 별로 없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올해도 풍년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기사도 나온다.

21.37%나 하락... 위험한 대한민국 마지막 기반

그러나 농민들 입장에서는 풍년이라는 것도 반갑지 않다.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쌀값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고물가가 이슈이지만, 농촌에서는 고물가와 함께 낮은 쌀값까지 이슈가 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25일 기준 20kg(정곡) 산지 쌀값은 4만3918원까지 떨어졌다. 지난해 같은 시기에는 5만5856원이었으니 무려 21.37%나 하락한 것이다. 이 정도면 폭락이라고 할 만하다.

게다가 농업용 면세유 가격은 지난해보다 2배 올랐고, 농자재와 비료값도 상승했다. 생산비는 대폭 올랐는데, 쌀값은 폭락했으니 걱정이 클 수밖에 없다. 곧 조생종 벼 수확이 시작되면서 햅쌀이 나오게 되는데, 그러면 쌀값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요즘 농촌 지역에서는 지방의회까지 나서 쌀값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쌀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으로 밀 가격이 상승하는데도 밀자급률이 0.8%에 불과한 대한민국이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사는 것은 주곡인 쌀의 자급률이 90% 이상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쌀값이 폭락하면, 농민 입장에서는 벼농사를 지어도 손에 쥐는 것이 없게 된다. 그 절망이 농사를 포기하는 쪽으로 흘러간다면, 곡물자급률이 20% 수준에 불과한 대한민국은 마지막 기반인 쌀자급조차 무너지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정책을 보면, 이런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찾아보기 어렵다.

2019년까지는 쌀값이 하락할 경우 '변동직불금'을 지불해 왔다. 정책적으로 쌀값의 목표가격을 정해 놓고, 목표가격에 쌀값이 못 미치는 경우 그 차액의 85%를 변동직불금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2020년 1월 국회는 변동직불금을 폐지하고 양곡관리법을 개정해 '자동 시장격리제'라는 것을 도입했다. '시장격리'는 쌀생산량이 수요량을 초과하는 경우 초과생산된 쌀을 정부가 매입하는 정책을 말한다. 말 그대로 초과생산된 쌀을 시장에서 격리함으로써 쌀값을 안정시키겠다는 취지의 정책으로 이전부터 해 왔다. 변동직불금 폐지로 앞으로는 일정한 요건이 되면 '자동으로' 시장격리를 하겠다는 의미에서 '자동 시장격리제'라고 불렸다.

농민이 먹고살아야 모두가 산다
 

18일 경북 포항시 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신포항농협 저장고에 쌀값 폭락으로 판매되지 못한 무게 1t짜리 건조 벼 포대들이 가득 차 있다. 신포항농협 관계자는 "지난해 수매한 건조 벼 5천300t이 쌀값 폭락으로 판매되지 못하고 쌓여 있다"며 "다음 달 시작하는 올해 햅쌀 수매는 못 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 연합뉴스

 
문제는 2021년도에 쌀생산량이 수요량을 초과할 것으로 예상됐는데도 '자동 시장격리'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본래는 2021년 10월 15일까지 시장격리 등의 대책을 발표해야 했다. 이미 통계청의 쌀 생산량 예측조사에서 초과생산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관료들은 2022년 1월이 돼서야 시장격리 세부계획을 발표했고, 2월이 돼서야 매입했다. 그것도 초과생산량 27만 톤 중 일부만 사들였다. 쌀값이 떨어지기를 기다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저가입찰제' 방식으로 매입을 하는 바람에 쌀값 하락을 오히려 부추겼다는 비판까지 나왔다.

결국 정부의 잘못된 정책으로 쌀값은 하락을 거듭했다. 이후 2차, 3차 시장격리를 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친 개입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쌀값 폭락 사태는 정부 관료들의 고의적인 태업이 낳은 '인재(人災)'다.

다른 물가는 못 잡으면서 농산물 가격만 낮추려는 것이 정부 관료들의 생각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인간은 먹지 않고서는 살지 못하는 존재'고 '농민들이 농사짓지 않으면 국민들의 먹거리는 보장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치는 모르는 것 같다.

이런 관료들에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맡길 수 있을까? 더구나 기후위기와 전쟁으로 인해 국제적인 곡물수급은 앞으로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지금 농민들은 절박한 심정으로 쌀값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이런 농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 이 문제야말로 '먹고사는' 문제다. 농민이 적정한 소득 보장으로 먹고살 수 있어야,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안정적인 먹거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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