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농협이 제 역할만 해도 농업 문제의 절반은 해결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선진국에서는 농협이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농업과 농민에게도 농협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농협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제구실을 하지 못하여, 늘 농민 조합원 원성의 대상이 되어 왔다. 가장 많이 듣는 불만은 "농협이 돈 장사에만 급급해 농산물 판매 등 경제사업은 등한시 한다", "농협은 농민 조합원이 아니라 임직원을 위한 조직이다" 등이다.

농협이 제 역할을 못하고 농민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농협이 그런 것은 아니다. 농민조합원을 위해 애쓰는 농협도 적지 않다. 농민의 협동조합이란 농협 이름값을 제대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2014년 3월 29명의 농협조합장이 참여하여 논어의 "必也正名乎(필야정명호)"에서 본떠 농협조합장 모임 '정명회'를 결성했다.

정명회는 창립 이래 여러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꾸준히 성장하여 2020년 7월 현재 46개의 지역조합이 참여하고 있다. 정명회의 총무를 역임하고 현재는 부회장을 맡은 경상북도 청송군 현서농협의 김해환 조합장을 인터뷰하여, 지역농협이 지역농업과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알아보았다.
 
인터뷰 중인 현서농업협동조합 김해환 조합장
 인터뷰 중인 현서농업협동조합 김해환 조합장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도시생활 접고 꿈꾸던 농촌으로

김해환은 1965년 12월 경북 청송군 현서면 구산리에서 3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현서면 소재지의 화목초등학교와 현서중학교를 졸업하고 안동의 영문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구 염색공단에 취업했으나 평생 힘든 일을 하는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회의를 느꼈다. 6개월 재수 후 1985년에 대구대학교 축산학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부모님은 양계업을 하고 있었으나 운영이 어려워 문을 닫았다. 마침 전두환 정권은 복합영농을 외치며 소 사육 장려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 사업에 동조하여 아버지가 축산업을 시작하였다. 아버지의 대를 잇고자 축산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러나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당시 새마을운동협회 중앙본부 사무총장, 그 후 회장)이 돈벌이를 위해 송아지를 대량으로 수입해 소 사육이 급증하면서 1984년 소 값이 하락하기 시작해 1986년까지 폭락했다. 이로 인해 많은 농가들이 파산했다. 농민들은 1985년 7~8월에 '소몰이 투쟁'을 전개했다. 이때 아버지는 축산을 포기하고 사과 농사로 전환했다.
 
현서농협 하나로마트
 현서농협 하나로마트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대학 입학 후 선배의 권유로 농촌 동아리 '농촌연구회'에 가입해 사회 문제에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 부모의 가난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고, 대학 2학년을 마치고 싫다고 도망쳐 온 노동자의 삶을 다시 살기로 결의하고, 위장취업을 해 2년 동안 공장을 다니며 노동조합 건설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군 징집 영장이 발부되었으나 거부해 주민등록이 말소되는 상황까지 갔으나 애태우는 부모님의 권유로 25살에 입대했다. 군 생활은 706 특공대를 만기 제대했다.

91년에 제대 후 복학해 93년 총학생회 부회장을 맡았고, 학원 민주화와 총장 직선제 투쟁에 앞장섰다. 졸업 후 대구대학교 교직원으로 2년간 근무한 뒤 그만두고 대구에서 리서치 사무실을 열었으나 문을 닫고 귀농하게 되었다. 대구에서는 시민운동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젊은 청년들 모임을 주도하며 대구 참여연대를 만들어 활동했다. 1998년 찾아온 IMF 외환위기로 먹고사는 것이 막막해서 귀농했다.

농민들과 함께 미래를 설계하다

1997년 1월 대구대학교 후배인 곽이화와 결혼했다. 곽이화는 결혼하기 전 결손 가정 아이들 공동체를 꿈꾸며 부산 아미동에서 공동체를 시작했다. 결손 가정 아이들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공동체를 받아들이겠으니 결혼하자고 했다. 당시 부산에서 함께 살던 2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결혼했다. 신혼 초 아이들을 많이 키우고 싶어 하는 아내의 뜻에 따라 대구 봉덕동에 한옥을 얻어 생활했다. 결혼 후에도 몇 명의 아이들이 들어오고 나가고 했다.

귀농하면서 아이 한 명은 서울 '은총의 집'으로 보내고 처음 만났던 이다소나는 데리고 귀농했다. 다소나는 대구대학교 재활심리학과 졸업 후 심리 치료사로 근무했고 올해 3월 19일 대구 예수성심시녀회에 입회해 수녀가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참고로 곽이화는 현재 청송 군립 농촌보육정보센터를 14년째(2009년부터) 위탁운영하고 있다.

1998년 겨울 귀농했다. 아내도 과수원에 가면 즐겁고 자기 자리에 있는 것처럼 좋다며 시골에 가서 농사짓고 살자고 했다. 그래서 큰 어려움 없이 귀농했다. 부모님과 사과 농사(자경 3000평, 임대 2000평)를 함께했으나 수입이 적어 겨울에는 사과 공판장에서 일했다. 겨울 사과 공판장에서 번 500만 원으로 1년 생활을 했다. 적은 돈이었지만 아이도 어리고 부모님 집에 얹혀 살아 생활이 가능했다.

농사를 지으면서 현서면 출신의 이오덕 선생을 기리는 작은 도서관 설립을 주도해 도서관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초등학교 운영위원장과 중고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아 지역 거점학교 육성을 위해 노력했다.
 
현서농협 하나로마트 (주변 지역농협 쌀 판매)
 현서농협 하나로마트 (주변 지역농협 쌀 판매)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현서농민회에 가입해 농민운동도 했다. 당시 농민회는 주로 권익투쟁 중심의 운동을 하고 있었다. 현서농민회 총무와 회장을 거치면서 '한국녹색회 추방', '성덕댐 건설 반대' 등 지역 활동을 했다. 당시 현서 농민들은 김영삼 정부 시절 빌린 대출의 원리금 상환이 도래해 농가 부채 탕감을 요구할 뿐, 빚에 눌려 의욕을 상실하고 있었다. 권익 투쟁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과거 농법에서 벗어나 사과 재배 방법을 혁신하는 게 필요했다. 귀농 후 사과 농사를 배우기 위해 전국에서 사과를 잘 짓는다는 데는 안 가본 데가 없고 유명한 선도 농가를 수시로 방문해 사과 재배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사과시험장, 경북대 등 관련 연구기관을 방문해 전문적으로 재배 기술을 배워 나갔다. 나중에는 국내에서 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해 일본, 이탈리아 등지를 다니면서 사과 재배 기술을 배웠다. 그 당시 우리나라의 주요 재배 기술은 일본에서 들어오는 것이 많았다. 수차례 일본을 방문해 세계적인 사과 재배 기술 추세를 배웠다. 이렇게 습득한 지식을 사과 농가들에 전파했다.

'사과 농사 잘 짓는 사람'에서 농협 조합장으로

차츰 지역 주민에게 김해환 하면 '사과 농사 잘 짓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 지역의 사과 재배 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했다. 청송사과협회 기획교육분과위원장(2009~2015년)을 맡아 사과 홍보 및 판매, 농약 및 농자재 가격 인하를 위해 노력했다. 연수를 간 유럽에서 농약과 병해충 관리는 전문가가, 생산된 농산물은 농협의 APC(농산물산지유통센터)가 판매하는 것을 보았고, 일본에서는 협동조합이 생산, 판매, 가공, 유통 시스템을 체계화한 것을 보았다. 해외 연수는 농협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현서농협 APC 사과 선별 공간
 현서농협 APC 사과 선별 공간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과 농자재를 공동 구매하고, 작목반을 구성해 생산물을 공동판매하고, 귀농인 사과공부방을 운영하는 등 농민을 위한 활동을 많이 했으나 한계가 있었다. 농촌 현실이 나아지기 위해서는 농협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농협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조합장에 출마하게 되었다. 생산에서 유통까지 책임지는 농협을 만들고 싶었다.

마침 50~60대 초반의 젊은 농부들과 귀농인들이 '농민을 위한 진정성 있는 사과 전문가'라는 이유로 출마를 권했다. 2015년 3월 조합장에 출마해 14표 차이로 간신히 당선했다. 그러나 2019년에는 조합원 65%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신용사업 중심 농협을 판매사업 중심 농협으로

기존의 현서농협은 신용사업과 구매사업이 중심이었다. 사과 재배 기술의 수준을 높여 품질과 생산성을 향상해 판매사업 중심의 농협으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생산 측면에서는 재배 시스템의 변화와 시장에 맞는 새로운 품종을 발굴해 노동력과 생산비를 줄이고 농가 소득을 증대하고자 노력했다. 이를 바탕으로 품질의 균일성을 높이고 농가를 조직해 판매 사업과 연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현서농협 고밀식 재배 현장 (조합원 밭)
 현서농협 고밀식 재배 현장 (조합원 밭)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우선 사과생산 시스템과 품종 혁신이 시급한 과제였다. 사과생산 시스템 혁신을 위해서 노동력 절감에 적합한 고밀식 재배를 장려했다. 고밀식 재배는 광환경이 개선되어 사과 품질을 높일 수 있고 퇴비와 화학비료를 줄여 친환경적인 사과 재배가 가능하다. 또 사과를 심어서 2년차부터 수확을 할 수 있으므로 투자 자본 회수가 빨라 농가 경영에 도움이 된다. 문제가 되는 묘목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농협에서 묘목을 직접 생산하려고 시험생산하고 있다.

사과 농사의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품종 혁신이 필요하다. 현재 조합 전체로 보면 사과 품종이 후지가 7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홍로가 15%, 시나노 골드· 감홍· 아오리·아리수 등이 15%다. 농협에서는 노동력과 생산비가 줄어들고 판매가격도 비싼 시나노 골드와 감홍의 생산 비중을 늘리려고 노력하고 있다. 감홍은 부사보다 2~3배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재배상의 어려움, 묘목 공급 부족, 농가의 불안 심리 등으로 생각만큼 잘 보급되고 있지는 않다.

유통 혁신을 위해 무엇보다 공선출하가 중요하다. 공선출하란 조합원이 개별적으로 생산해 선별해서 가락시장이나 산지 유통인에게 팔던 농산물(사과)을 농협(공선출하회)이 맡아서 공동으로 선별하고 공동으로 출하하고 공동으로 정산하는 것이다. 공선출하를 위해서는 조합원과 농협의 상호 신뢰가 바탕이 돼야 한다. 품종별로 공선출하회를 조직하여 운영하고 있다. 후지 공선출하회는 조합장 취임 당시 회원이 9명이었으나 지금은 100명으로 확대되었다. 황금사과(시나노 골드) 공동 출하회에는 168농가가 참여하고 있다.

공선출하회를 통해 질소 비료의 시비를 줄이고, 색택과 당도를 높여, 사과의 품질을 높이고, 사과 수매 단가를 매년 높여 농가소득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지금 공선회는 서로 가입하려고 경쟁할 정도로 인기가 좋은데, 조합의 수매 능력 한계로 가입 희망자를 다 받아주지 못하고 있다.
 
고밀식 재배 대목(하단)과 품종 묘목(상단)의 접목
 고밀식 재배 대목(하단)과 품종 묘목(상단)의 접목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사과 판매 사업이 크게 성장하면서 현서농협은 신용사업 중심 농협에서 농산물 판매 등 경제사업 중심으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현서 농협은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비율이 7대 3 정도였으나, 지금은 4대 6으로 중심이 경제사업으로 옮겨왔다. 농협의 판매계 직원이 한 명이었던 것이 6명으로 늘어났다.

임원으로 전무 이외에 상무가 2인 있는데, 한 명은 경제사업장이고 다른 한 명은 농산물유통센터(APC)장이다. 신용사업 직원의 최고 직급은 과장이다. 현서농협의 사과 판매액은 2017년 73억 원, 2019년 102억 원. 2020년 120억 원, 2021년 15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취임 이후 농산물 판매액을 비롯해 하나로 마트와 농협주유소 등 모든 경제사업 분야가 두 배 증가했는데, 비료 판매액과 보험판매액만 반으로 줄었다. 비료는 사용을 줄였고, 보험은 판매를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은 안정되어 합병권고 조합을 벗어났다.

심각한 조합원 고령화... 주 4일 노동으로

현서농협의 조합원은 남녀 1200명(남 706명, 여 494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 조합원이 63%로 고령화가 심각하다. 특히 40세 미만 조합원은 10명에 지나지 않고, 40~50대 조합원도 234명으로 20%가 채 되지 않는다. 노동력 부족이 심각하다.

조합에서는 2020년부터 농기계 영농 대행 사업을 하고 있다. 대행사업단은 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험성이 높은 고가의 농기계(방제기, 승용예초기, 미니굴착기, 트랙터, 채소이식기, 채소방제기 등)는 절반 가격에 대행 사업단이 대행을 하고 있다. 영농사업단은 현재 3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2인은 귀농인이고 1인은 청년창업농이다.

영농 대행 사업은 고령농, 신규 귀농, 소규모 영세농, 여성농가 등에 큰 도움이 되어 신청 농가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장기적으로 대행 사업단을 분리시키고자 하나 주체 역량이 미약하다.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 군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인식이 부족하여 현실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산이 확보되면 농가에는 더 저렴하게 지원할 수 있고 일자리 창출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현서농협 신축 APC 공사 현장
 현서농협 신축 APC 공사 현장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영농 대행 사업만으로는 농촌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젊은 사람들이 농사일을 즐겁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만 우선 과도한 노동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 4일 노동이 필요하다.

2017년 8월 정명회 연수에 참여하여 일본 오이타현의 오오야마(大山) 농협 연수를 가서 큰 감명을 받고 배운 바가 컸다. 오오야먀 마치(町)는 현서면과 비슷한 인구 2900명의 작은 산촌마을로 575호의 농가가 경지면적 평균 0.4헥타르에 지나지 않는 영세한 산촌 농업을 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오오야마 농협을 중심으로 생산, 가공 유통, 판매 등 농업의 6차 산업화를 통해 풍요로운 산촌 생활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감명 깊었던 것은 '주휴삼일(週休三日) 농업', '중노동으로부터 경노동, 쾌적노동'으로 농업시스템을 바꾸어 젊은이에게 매력 있는 농업으로 전환하려고 하는 노력이었다. 현서농협에서도 이것을 실천하고 싶으나 아직은 구호에 머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농민들의 '농협 개혁' 요구 

농협은 지역농협과 농협중앙회로 되어 있다. 지역농협과 농협중앙회는 별도의 법인이고, 농협중앙회는 지역농협을 회원으로 한 연합회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농협중앙회는 회원조합의 연합회 기능보다는 중앙회의 자체 사업(특히 금융업) 중심의 사업체라는 비판을 회원조합으로부터 받는다. 농민조합원에게 농협중앙회는 직접적인 거래 관계가 없고, 일상적으로 이해관계를 갖는 것은 지역농협이다. 농협개혁을 위해서는 중앙회와 지역농협 모두 바뀌어야 한다.

정명회는 창립 취지문에서 "농협의 외형적 성장과 달리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고 조합원의 주인의식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농협이 협동조합의 정의, 가치, 원칙을 운영 과정에 구현함으로써 농업・농촌・농민이 처한 위기를 헤쳐 나가는데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 "조합원이 진정한 주인으로 나서는 협동조합운동을 실천하겠다"라고 밝혔다.

정명회는 정기적인 포럼과 세미나를 개최해 농협 혁신을 위한 학습을 하며, 농협 혁신 정책 개발을 위한 조사 연구 사업을 하고 있다. 개별 조합의 경험을 공유하고 벤치마킹하기 위한 모범사례를 견학하고, 협동조합 선진 사례 연구를 위한 국내외 연수를 한다. 그리고 협동조합 발전을 위해 조합원과 임직원을 위한 교육사업을 하고 있다.

현재 정명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데, 같이 공부하고 연구하는 조합장 조직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생각의 폭을 넓히고 모범 사례들을 배울 수 있는 것 또한 좋은 점이다. 특정 지역에 회원들이 편중되어 있는 아쉬움이 있고 전 지역으로 회원 확대가 되었으면 한다.
 
현서농협 하나로 마트(면 유일 제과점)
 현서농협 하나로 마트(면 유일 제과점)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정명회 조합장들은 조합원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 하고 있지만 특히 농협 본래의 역할인 농산물 판매사업 조직으로 농협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중앙회 혁신을 위해서도 힘을 합쳐 노력하고 있다.

농협법 113조는 농협중앙회는 "회원의 공동 이익의 증진과 그 건전한 발전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중앙회 자체의 이익보다는 회원 조합의 이익을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농협중앙회의 중심 사업은 금융업인데, 이는 제1금융으로 회원조합이나 농협조합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경제사업조차도 지주회사 체제로 중앙회의 이익 실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농협중앙회의 계통 판매와 계통 구매에 개선할 점이 많다. 또 농협중앙회 이사나 대의원은 큰 농협이 맡기 때문에 농촌 농협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하기 어려운 구조다.

도시농협은 농사짓는 농민은 없지만, 1~2조 원의 자산으로 연말에 돈 잔치를 하는데 도시농협들이 농산물판매사업에 적극 나서도록 해야 한다. 정명회는 자신의 조합뿐 아니라 농협중앙회의 개혁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하나 아직은 힘이 미약한 상태다.

김해환 조합장의 꿈

1970년에 1만 3861세대 8만 2033명이었던 청송군 인구는 2020년에 1만 3900세대 2만 5439명으로 3분 1 이하로 줄었다. 세대 수는 많이 줄지 않았지만 세대 당 인구수가 6.0명에서 1.9명으로 크게 줄어든 것이다. 현서면 인구는 1970년 2050세대 1만 1354명에서 1435세대 2494명으로 거의 5분 1로 줄었다.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비율)은 청송군이 35.7%, 현서면이 40%이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로 인해 속칭 '지역소멸'이 진행되고 있다.

현서면과 현서농협은 과연 지속가능할 것인가. 다행히 최근 인구감소가 둔화하고 있다. 그리고 최근 조합원 수도 늘었다. 귀농 귀촌의 영향도 있지만, 그동안 조합을 백안시 하던 주민들이 조합에 가입한 것이다. 현서면의 1435 세대 가운데 절반이 넘는 735가구 사과 농사에 매달리고 있다. 현서 사과는 전국에서 최고 값을 받아 농민들은 높은 농업소득을 올리고 있다. 대략 호당 농업소득이 5천만 원에 달한다. 매우 높은 수준이다.

소득 면에서는 사과 재배 시스템을 좀 더 혁신하면 큰 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렇지만 사과 주산지로서 단일 품종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은 것은 위험하다. 사과와 함께 농가소득을 안정화할 작목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서면의 생활 여건은 매우 좋지 않다. 의료와 교육, 교통 등 생활 여건이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하다. 현서면의 화목초등학교는 현재 전교생이 30명(1학년 4명, 2학년 0명, 3학년 7명, 4학년 3명, 5학년 7명, 6학년 9명)인데, 새로운 입학생이 줄어 존폐 위기에 놓여 있다. 현서중학교는 전교생 29명(1학년 10명, 2학년 11명, 3학년 8명)이고, 2016년에 인근 안덕고등학교와 통폐합한 현서고등학교의 전교생은 43명(1학년 10명, 2학년 18명, 3학년 15명)이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난다. 의료서비스도 보건지소 1, 보건진료소 1, 의원 1, 한의원 2, 약국 1로 매우 열악하다. 교통은 마을버스가 많지 않고,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은 천원 택시를 이용한다.
 
현서농협 묘목 시험장
 현서농협 묘목 시험장
ⓒ 지역재단

관련사진보기

 
김해환 조합장은 "농민은 주 4일 일하자"라며 "농민 2세들은 고생만 하고, 소득은 낮은 부모를 오랫동안 봤기 때문에 농사를 물려받으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농사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트럭 대신 고급 승용차를 탈 수 있는 여유 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을 농업의 미래로 보여주어야 한다"라고 한다.

물질적 풍요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송의 문화와 역사, 농산물을 연계한 6차 산업화를 구상해야 하고, 도시 소비자들과 농민이 공동 투자하는 농산물 가공시설을 건립하고, 농사 체험 등과 연계해 도농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태그:#현서농업협동조합, #김해환 조합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