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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 중앙혈액검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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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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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적십자사(아래 적십자사)가 자사의 각종 혈액사업 비위 의혹을 공론화한 시민단체 활동가에 억대 배상을 청구했다가 더 큰 손해를 보게 됐다. 의혹 제기의 상당 부분이 합리적이라 인정받은 데다 소송비용의 90%를 부담해야 하는 결과도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서보민 부장판사)는 지난 7월 20일 적십자사 비판 글을 여러 차례 게재했던 강주성 전 건강세상네트워크 대표에게 총 240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적십자사에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2018년 강 전 대표가 허위사실을 적시해 적십자사 명예를 훼손했다며 1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지 4년 만이다.

적십자사는 모두 11개 내용에 대해 배상을 청구했는데 재판부는 이중 3개 내용에 대해 명예훼손을 인정했다. 나머지 8개 내용 중 3개는 '사업 공정성에 대한 비판적 의견 표명'으로 판단돼 소송 대상에서 제외됐다. 오히려 사실로 간주된 내용도 있었다. '혈액 면역 검사 시스템 입찰에서 적십자사가 특정 업체에 유리하게 평가 방식을 바꿨다'는 의혹이다. 강 전 대표를 비롯해 관련 보도를 한 <프레시안>과 KBS 등에게 선고된 총 배상금은 650만 원이다. 적십자사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총 금액은 3억 원이었다.

여기다 소송비용의 90%를 적십자사가 부담하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나머지 10%만 피고 넷이 부담하라고 밝혔다. 소송비용은 인지액, 송달료, 증인비용 그리고 변호사 보수 등이 포함된다. 이번 소송의 경우 피고측(강주성·프레시안·KBS)은 3개 법무법인이 각각 소송을 대리했다. 

소송비 산입 규칙 등에 따르면, 소가가 3억 원에 달한 이 사건 경우 피고가 청구할 수 있는 총 소송비용은 2000만 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여기에 원고측 변호사 비용까지 감안하면 적십자사 입장에서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송이었던 셈이다. 강 전 대표를 대리한 정필승 변호사(법무법인 우성)는 "소송비용 측면에서 사실상 적십자사가 패소한 것으로, 재판부가 '전략적 봉쇄 소송'을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활동가에 1억 원 청구한 까닭
 
2019년 7월 17일 대한적십자사의 입찰 담합 방조 의혹을 보도한 kbs 뉴스 보도 갈무리.
 2019년 7월 17일 대한적십자사의 입찰 담합 방조 의혹을 보도한 kbs 뉴스 보도 갈무리.
ⓒ 손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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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강 전 대표와 적십자사는 두 개 쟁점을 두고 크게 맞붙었다. 하나는 '혈액 면역 검사 시스템' 구매 입찰, 또 하나는 혈액백(혈액 저장 용기) 구매 입찰에서 특정 업체를 밀어줬다는 의혹이다.

혈액 면역 검사란 헌혈 혈액의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확인하는 절차다. B형간염, C형간염, 후천성면역결핍증(HIV), 인체T림프영양성바이러스(HTLV) 감염 여부를 검사한다. 2007년부터 미국 애보트의 프리즘(PRISM)과 독일 지멘스의 비프리(BEFREE) 두 가지 장비 총 29대가 운용되고 있었다. 이 장비가 노후화돼 새 장비를 도입하는 사업이 2016년부터 추진됐다.

논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입찰 공고가 나기 4개월 전에 특정 외국계 업체 장비가 적십자사에 미리 설치됐다. 경쟁 입찰이었음에도, 적십자사가 사업을 추진하기도 전에 업체와 별도 협의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더구나 이 업체는 전용 시약 허가를 받지 않은 장비로 입찰에 참여했는데도 이후 1차 서류 및 성능평가도 모두 통과했다.

보건복지부는 2017년 특별감사로 비위를 확인했다. 복지부는 특정 업체 장비를 미리 입고한 게 부적절했다며 기관경고 조치를 내렸다. 입찰 공고 전, 특정 업체 두 곳에 사전 설명을 할 기회를 준 사실도 확인됐다. 복지부는 이 사업을 적십자사 홀로 처리하지 말고 복지부 유관 부서와 협의하고 외부전문가를 입찰 관련 위원회에 포함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던 중 2018년 유사한 정황이 발견됐다. 강 전 대표는 세 가지 정황을 공론화했다. 먼저 한 외국계 A업체가 식약처로부터 전용 시약의 인허가를 받은 즈음 재입찰 공고를 낸 것. 장비 노후화로 추진이 시급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도 수개월 동안 있다가 나중에 입찰이 추진된 것에 의혹을 제기했다.

또 1차 입찰 공고 땐 포함되지 않은 입찰 조건이 2차 공고에 새로 생겼다. A업체에만 도움되는 내용이었다. 나아가 참여 업체들은 안전성·유효성 등을 입증할 임상 연구를 해야 했는데, 당시 연구에 쓰일 혈액 검체를 국내 다른 경쟁 업체엔 제공하지 않고 A업체에만 제공했다는 제보도 있었다.

적십자사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입찰 공고 시점은 식약처 허가와 무관하게 내부 의결을 통해 정했고 '입찰 조건 특혜'도 관련 조건의 내용을 일일이 명시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국내 업체에 혈액 검체를 제공하지 않은 까닭은 관련 심의 기구가 연구 계획을 보완하라고 반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 전 대표는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히라는 글을 반복해서 썼다. "입찰 관련 평가 기구를 적십자사 외부에 두어 독립시키고, 평가 기준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위해서였다.

적십자사는 의혹 제기 중 9개 내용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 결과 1심에서 3개 내용에 대해 배상 판결이 난 것이다. 

"붙을 업체 탈락, 탈락할 업체 선정"
 
2021년 8월24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에 관한 공청회에 강주성 간병시민연대 활동가(오른쪽)가 참석한 모습.
 2021년 8월24일 오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열린 간호법 제정에 관한 공청회에 강주성 간병시민연대 활동가(오른쪽)가 참석한 모습.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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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혈액백 비리'는 강 전 대표가 글을 쓸 당시엔 의혹이었지만, 이후 2019년 7월 공정위 조사로 비리가 확인됐다.

적십자사는 2018년 녹십자엠에스(녹십자)를 혈액백 공급업체로 선정했다. 그런데 강 전 대표 눈엔 "입찰에 붙을 업체가 떨어지고, 떨어질 업체가 붙은 결과"였다. 적십자사가 스스로 입찰 공고에 적은 기준이자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미국약전위원회 기준'과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혈액백 내 포도당 함량'을 산정하는 기준이었다. 포도당은 수치가 높으면 세균 증식이 용이할 수 있어 수혈자 건강 관련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적십자사가 미국약전위원회와 다른 기준을 적용해서 탈락한 경쟁 업체는 130여개 나라에 혈액백을 납품하는 외국계 회사였다. 같은 혈액백이 한국에서만 '불량품'이라고 평가받았다. 미국 기준에 따르면 이 업체는 자격에 부합했고, 녹십자는 미달했다. 더구나 적십자사의 계산 방식은 식약처 기준에도 반했다.

강 전 대표는 글을 쓰면서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도 했다. 공정위는 2019년 녹십자와 태광산업이 2011~2015년 적십자사에 혈액백을 함께 공급하며 가격 담합을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에 총 76억 9800만 원 과징금을 부과했고 녹십자 직원 1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녹십자는 2009년부터 논란 직전까지 적십자사에 혈액백을 공급한 업체였다. 두 업체 입찰가는 논란 직전까지 200만개 기준 150여억 원으로 동일했다. 논란 후 경쟁 업체가 들어오자, 입찰가는 100억여 원으로 낮아졌다.

그런데 공정위 조사에서 적십자사는 빠졌다. 강 전 대표는 "담합의 조건과 토양을 제공한 핵심이 적십자사"라며 유착 의혹을 쭉 제기해온 터였다. 그는 당시 "누가 봐도 적십자사가 주도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데, 어떤 관계망에서 오랜 세월 독점 시장을 구축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하나도 없다"며 공정위를 비판했다.

적십자사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내용이 허위사실이라고 주장했다. '혈액백 입찰 공고와 다른 자의적 기준을 적용했다'는 표현과 '적십자사는 녹십자와 유착관계가 있다'는 내용이다. 재판부는 "배경 사실에 기초한 비판이자 의혹 제기"라고 모두 기각했다.

적십자사 "허위사실 인정받은 승소"... 사건은 2심으로

이 소송은 처음부터 '전략적 봉쇄 소송'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공공기관, 공직자, 기업 등이 자신에게 불리한 비판이나 반대 여론을 위축시키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으로 '입막음 소송'이라고도 불린다. 지난해 1월 포스코가 자사 산재 문제를 보도한 포항MBC 기자에게 5000만 원을 청구한 손배소, 기업이 노동조합 파업에 제기하는 수천억 원대 손배소가 대표적인 예다. 

강 전 대표는 20년 넘게 적십자사와 싸워 온 활동가다. 적십자사가 에이즈, 간염 등에 오염된 혈액을 유통시킨 비리가 드러난 2003년부터다. 강 전 대표는 그때부터 정부조직도 아니고,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으로도 분류하기 힘든 민간 법인인 적십자사가 혈액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혈액사업은 오롯이 국민들의 피로 이뤄지는 것이기에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적십자사는 '봉쇄 소송' 주장에 대해 지난 7월 28일 "허위 보도로 국민들에게 적십자 인도주의사업과 혈액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심각한 피해를 초래했다"며 "이에 따라 국민의 헌혈 참여 의지를 저하시켜 국민 건강권 보호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므로 이를 바로잡고자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이번 판결 결과에 대해서도 "허위사실이라고 지적한 보도내용 대부분을 허위사실 적시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생각하나, 적십자사가 입은 손해에 비해 손해배상액이 미치지 못한 부분을 고려해 항소 여부를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반면 강 전 대표는 "의혹의 본질이 아니라 지엽적인 내용에 배상 판결이 났을 뿐"이라며 "국내 혈액의 94%를 유통하는 독점 기구가 비판을 받는다고 어떤 손해를 입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판결을 비판했다. 나아가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 제대로 된 해명도, 반성도, 근본 개선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진실규명을 위해 추가 고발도 생각하고 있다"며 "이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강 전 대표는 지난 7월 26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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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영 기자입니다. 제보 young@ohmynews.com / 카카오톡 rockyrkd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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