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윤석열 정부의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설치'에 반대하는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지난 23일 열렸습니다. 다시 경찰의 중립성·독립성 확보가 이슈로 급부상했습니다. 이상식 전 부산경찰청장이 글을 보내와 게재합니다.[편집자말]
지난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고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2.7.23
 지난 23일 오후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 회의가 끝나고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총경)이 회의장 밖으로 나오고 있다. 2022.7.23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사상 초유의 전국 경찰서장(총경) 회의가 지난 23일 열렸다. 현장에 모인 사람은 50여 명이었지만 화상으로 참석까지 포함하면 200명에 달했다. 회의에 참석 못한 총경들은 무궁화 화분을 보내 지지 의사를 표했다. 전국 총경급 간부 6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동참했다.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후폭풍도 이례적이다. 경찰 지휘부는 이번 서장회의를 주도한 류삼영 울산 중부경찰서장에 '대기발령' 조치했고, 대통령실과 여당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공개 표명했다. 그러자 이젠 7월 30일 경찰 팀장(경감·경위) 회의가 예고됐다. 경찰 움직임의 확산이다. 

검사들이 자신들과 관련한 이슈가 생길 때마다 평검사 회의나 부장검사 회의 같은 것을 열어온 것에 비하면 경찰의 단체행동은 그간 거의 전무했다. 경찰 수뇌부에선 이번 서장회의 참석을 만류하고 강력 경고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뜻을 접는 것이 지금까지의 경찰 조직문화였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전국 총경이 모였다. 고위 간부가, 그것도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한꺼번에 집단적으로 움직인 일은 경찰 역사에 없었다.

정치 개입 자제했던 역대 정부...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모습.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의 모습.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사실 경찰을 향한 정권 차원의 외압·개입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이명박 정부 당시 댓글조작으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구속됐고, 박근혜 정부 때는 총선 개입 문건 작성으로 강신명 전 경찰청장이 구속됐다. 아직도 재판을 받는 경찰 고위 간부만 하더라도 10여 명이 넘는다.

이러한 사례에도 역대 정권에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경찰을 정치에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 조심하고 자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필자가 행정안전부 치안정책관으로 근무할 때만 하더라도, 당시 정치인 출신 행정안전부장관은 경찰의 사기와 복지 같은 문제에 더 관심을 가졌다. 인사나 수사에 대한 개입은 자제하고 조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숙해진 시민의식과 함께 경찰위원회 등 외부의 견제·통제도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역사적·시대적 과정을 거치면서 경찰 내·외부의 여건도 많이 달라졌다. 경찰에 투신하려는 젊은이들이 많아지고 구성원들의 수준이 많이 향상됐다. 독립성·중립성을 향한 경찰 내부의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면서 경찰의 자부심은 한껏 고무됐고 경찰에 대한 사회적 평가 또한 많이 개선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윤 대통령은 경찰이 겪어온 이런 시대적·역사적 연원을 도외시했다. 정치적 개입을 자제했고 조심했던 역대 정부와는 완전히 태도를 달리해 공공연하고 분명하게 경찰 장악의 의도를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먼저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이라는 구시대적 유물을 부활시켜 행안부장관의 경찰 장악의 제도적 수단을 마련했다. 전임 정부 치안정감 전원을 퇴직시키고 나선 이상민 행안부장관이 직접 나서서 개별 면담을 통해 치안정감들을 승진시켰다. 그중에서 경찰청장을 뽑아 길들이기와 줄 세우기를 하는 고도의 정치적 편향을 보였다. 지난 18일 이상민 장관은 중대 사안에 대한 수사 지휘를 "당연히 해야 한다"는 입장까지 표했다.

윤석열 정부가 경찰의 반발을 초래해가면서까지 '행안부 내 경찰국'이라는 강수를 두는 건 무엇 때문인가. 한동훈 법무부장관을 통해 검찰을 확실히 정리한 윤 정부는 이제 경찰마저 장악해 '좌 검찰 우 경찰'의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그들이 제일 잘하는 '수사'라는 칼을 휘두르려는 것이라고 본다. 수사 대상은 전임 정부와 야당 인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

전국 경찰서장 회의는 정치적 중립을 위한 열망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행안부 경찰국(3과 총 16명 규모) 신설, 소속청(경찰청과 소방청)에 대한 소속청장 지휘규칙 제정, 경찰 인사개선 및 인프라 확충, 경찰제도발전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이 담긴 '경찰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발표를 마친 이상민 장관이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15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행안부 경찰국(3과 총 16명 규모) 신설, 소속청(경찰청과 소방청)에 대한 소속청장 지휘규칙 제정, 경찰 인사개선 및 인프라 확충, 경찰제도발전위원회 구성 등의 내용이 담긴 "경찰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발표를 마친 이상민 장관이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보수적이고 현상 유지의 성격이 강한 경찰 집단은 윤석열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반대하며 집단적 움직임에 나섰다. 경찰의 꽃이라는 총경들이 권력에 밉보이는 불이익을 감수한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정치적 중립에 대한 열망과 충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991년 경찰이 내무부 치안본부에서 경찰청으로 독립한 것은 부천서 성고문 사건, 박종철·이한열 열사 사망사건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출발해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이뤄진 소중한 결실이었다. 이후 역대 정권들은 경찰을 도구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도 있었을 것이고, 실제 도구로 활용한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윤석열 정부처럼 대놓고 공공연하게 경찰을 향한 종속과 굴복을 강요하진 않았다. 게다가 지난 6월 윤 대통령은 치안감 인사 번복 사태로 논란이 커지자 '국기문란'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경찰을 직접 겁박까지 했다. 

민주화 이후 경찰의 중립성·독립성이 외형적으로나마 존중되면서 경찰은 그나마 정치적 시비에서 벗어나 법 집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본다. 필자는 그 결과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도 높은 치안 수준을 자랑하는 나라가 됐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정치를 가까이 하지 않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존립기반임을 깨달았다. 경찰의 이런 의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정치에 종속시키려는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당연히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경찰 지휘부는 류삼영 총경 대기발령에 이어 회의 참석자들에 대한 감찰조사에 나서는 등 강경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껏 검사회의에 참석한 검사를 '감찰'하고 '대기발령'하고 '징계하려 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주말에 소속 조직의 중대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왜 대기발령되고 감찰조사 받는 이유가 된다는 말인가. 검사는 되고 경찰은 안된다는 식의 발상은 윤석열 정부의 존립기반이 오로지 검찰임을 말해주는 것이고 오만과 독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본다. 검찰이 하면 로맨스고 경찰이 하면 불륜, '검로경불'인가. 

경찰의 반발에도 윤석열 정부는 경찰국 설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행안부는 경찰국 신설안 등의 입법예고 기간을 통상 40일에서 4일로 대폭 줄였다(7월 16~19일). 지난 21일엔 차관회의에서 관련 시행령안을 통과시켰고, 26일 국무회의만을 남겨두고 있다. 경찰국 신설 시행령안 등이 국무회의서 통과되면 오는 8월 2일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은 중립성을 표명하는 법 집행기관을 힘으로 찍어 눌러 무릎 꿇리는 것과 같다. 권력은 견제와 균형으로 빛을 발하는 도구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정반대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대체 이 과신과 오만과 독선의 결말은 어디로 향할까.

[관련 기사]
누구의 '국기문란'인가... 경찰인가, 윤석열 정부인가 http://omn.kr/1zivo

태그:#전국 경찰서장 회의, #류삼영, #경찰국, #행정안전부
댓글2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이상식 전 부산지방경찰청장 전 국무총리 민정실장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