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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편집자말]
여행을 떠날 땐 어떤 책을 가져가면 좋을지 고민이 된다. 너무 쉽게 읽히는 책은 한 번에 다 읽어버려 남은 일정 동안 짐이 되기 일쑤고 깊은 생각을 해야 하는 책은 아예 펼치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너무 쉽게 읽히지도 너무 안 읽히지도 않는 그 중간 지점의 책. 뭐가 있을까. 이번 휴가를 가기 전에도 어김없이 같은 고민에 빠졌다.

친구의 추천으로 이번 여행에 가져 온 김달님의 에세이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는 그 조건에 잘 부합하는 책이었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최근에 본 연극 이야기를 하는데 마치 내가 그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재미있지만 그 장면에 머무르고 싶어 책장을 빨리 넘길 수 없다.

사탕 같은 이야기 모음집
 
책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표지
 책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표지
ⓒ 수오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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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연극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인 소희가 나이 들어가는 장면이라고 했다. 소희는 무대에 있는 나무를 한 바퀴, 두 바퀴… 계속 돌았고 그러는 동안 검은색 천으로 자신의 몸을 가린 배우가 소희의 머리 위로 준비해 둔 낙엽을 뿌렸다.

나는 무대 위에 혼자 서 있는 소희가 된다. 깜깜한 무대, 주변엔 아무도 없다. 조명은 나에게만 비친다. 나는 쓸쓸한가. 외로운가. 내가 혼자 됐을 때 그 시간을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러려면 그런 순간 조심스럽게 까먹을 수 있는 달콤한 사탕 같은 추억이 필요하다. 그때 딸이랑 이런 대화를 했었지, 엄마랑은 이런 걸 같이 했었어. 하며 회상할 수 있는. 놀랍게도 몇 페이지 뒤에 비슷한 내용이 나왔다.
 
"앞으로도 힘을 내서 살아가기 위해선, 혼자서도 남은 길을 마저 걸어가기 위해선 따뜻하고 단 기억들로 호주머니를 채워놓아야 한다고. 언제든 쓸쓸해지는 날에 손을 집어넣어 내게 남아 있는 것들을 만져 보고 꺼내 볼 수 있도록." (20쪽)
 
나에게 여행은 이런 사탕 같은 추억을 만드는 일이다. 김달님의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는 작가 김달님의 곁에 있었던, 또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와 아빠, 엄마, 동생들과 친구들. 작가가 힘들 때 까먹을 수 있는 사탕 같은 이야기 모음집이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자연스럽게 내 곁에 있었던 사람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한다. 특히나 여행지에 오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이런저런 추억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생각하며 지금, 이 순간을 좋은 추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여행도 나중에 까먹을 수 있는 사탕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물놀이가 싫다는 사춘기 아이에게 바다에 들어가자고 설득하다 포기하고 함께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는 친구와 카톡을 하고 나는 이 책을 읽었다. 작가가 열 살 때, 친해진 희진이란 친구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을 차례다. 작가가 엄마 없이 할머니와 사는 아이라고 남자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고 있는데 희진이가 다가와 다짜고짜 엄마가 없냐고 묻는다.
 
"악의 없는 목소리였지만 질문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어 우물쭈물하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인 희진은 말했다. "나는 아빠 없는데. 우리 친구 할래?"

열 살 인생에 들어본 가장 떨리는 말이었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반하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 말을 시작으로 희진과 나는 친구가 되었다." (141쪽)
 
희진과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 같은 반 아이에게 놀림 받았던 기억, 그 와중에 내 곁에 함께 있어 준 친구들, 그들과 즐거웠던 여러 에피소드가 좌르륵 머릿속에 펼쳐진다.

그러다 내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카톡을 하는 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여행은 지루하고 빨리 집에 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아이의 말이 여행 내내 서운했는데 어쩌면 나도 어렸을 때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 향한 서운함도 가라앉다
 
"열 살의 여름. 희진과 나는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던 것처럼 이후에도 많은 친구를 만나며 살아왔다. 친구와 함께 있을 때는 슬픔과 외로움, 심심함과 두려움이 제 모습을 까먹는 것을 희진이 알려준 덕분이다. 나는 지금도 친구들과 있을 때 가장 큰 소리로 자주 웃는다." (144쪽)
 
책에서 잠깐 눈을 떼고 아이를 보며 기도한다. 아이와 아이 곁의 친구들이 희진과 작가처럼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길. 함께 있을 때 즐겁고 크게 웃을 수 있는 그런 추억을 알알이 만드는 친구 사이가 되길. 아이는 점점 내 품을 떠나고 있다.

결국 남은 휴가 기간 동안 바다는 남편과 나만 들어갔고 아이는 바닷가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고 친구들과 카톡을 하고 유튜브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함께 보드게임을 하며 깔깔 웃는 시간이 있었고 같은 음식을 먹으며 즐거워하는 시간이 있었다. 완벽한 사탕은 아니지만, 아쉽게도 살면서 100% 달콤한 순간은 흔치 않다. 거친 삶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을 잘 캐내 간직해야 한다. 

이번 여행에서 이 책은 딸에게 서운한 마음을 가라앉게 해주고 함께 여행 온 가족들을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게 해주었다.
 
"내게 글쓰기는 이러한 일이다. 기억에 남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내 쪽으로 돌아보게 하는 것. 오랜만에 마주하는 돌아본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고 맞아. 너 거기 있었지. 반가워하는 것. (중략) 너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나에게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해보는 것. 그리고 혹시라도 들려올지 모를 너의 대답을 지금 여기에서 기다려보는 것. 그렇게 너를 다시 사랑해보는 일이다." (261쪽)
 
작가가 말하는 '글쓰기'가 내가 생각하는 '여행'과 비슷하다. 여행할 땐 여러 장소에 가고 여러 경험을 하며 여러 사람을 떠올린다. 또한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의 몰랐던 모습, 새삼 깨닫게 된 모습을 보며 다시 사랑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를 추천한다. 여행을 가는 사람은 이 책과 함께 더 풍성한 여행을 즐길 수 있고, 여행을 가지 못하는 사람은 여행에 가서야 하는 여러 생각들을 방구석에서도 떠올리며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우리는 비슷한 얼굴을 하고서 - 한 시절 곁에 있어준 나의 사람들에게

김달님 (지은이), 수오서재(2022)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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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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