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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편집자말]
봄인가 싶더니 여름의 중앙을 향하고 있다. 3개월 새 계절이 바뀌었고 삶의 풍경도 변했다. 집을 옮겼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두 집 사이 이사 날짜가 어그러진 데다 인테리어 공사까지 이어지면서 집이라는 근간 없이 떠도는 불안정한 시기를 보냈다. 그 와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7년 여 만에 다시 일을 시작했으니 이 또한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지금은 이사를 마친 집에서 쾌적한 생활을 누리고 있고 서툴던 일은 조금씩 질서를 찾아가고 있다. 3개월 전과 비교해보면 외견상 차이는 별로 없지만 심리적으로는 전혀 다른 상태다. 그런데 만약 3개월 전으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다시 마주해야 한다면 어떨까.
 
3개월 전의 나를 대면한다면
 
책 '아노말리' 표지이미지
 책 "아노말리" 표지이미지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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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베 르 텔리에의 소설 <아노말리>(이세진 옮김, 민음사)에 정확히 그런 상황이 그려진다. 3개월 전 자신의 분신과 맞닥뜨리게 되는 사람들. 저마다의 상황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과 그 문제를 처리하는 사회적 움직임을 흥미롭게 그려 낸 SF 소설이다(소설은 2019년에 완성되었다).

2021년 3월 10일 파리에서 뉴욕을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난기류를 만나 최악의 비행을 경험한다. 그리고 정확히 106일 후 6월 24일, 3월의 그 비행기와 동일한 비행기가 그들의 분신을 싣고 나타난다.

106일 후 재등장한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은 3월의 시점에 머물러 있다. 반면 3개월 전 난기류를 뚫고 무사히 착륙했던 이들은 그 사이 조금씩 달라져 있다. 누군가는 임신을 했고 어떤 이는 비극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같이 비행기를 타고 뉴욕으로 여행을 다녀왔던 연인은 이별을 겪고 있고 아는 사람에게만 알려졌던 한 가수는 세계적 스타가 되었다.
 
소설은 3개월이라는 시간 차를 두고 전과 후의 두 자아(한 사람의 동일한 자아)를 만나게 함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보여준다.
 
자신의 분신을 망설임 없이 죽이는 살인청부업자, 자살을 선택한 3월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새로운 삶을 지속하는 작가, 6월의 분신에게 분주한 삶의 자리를 넘겨주고 시골의 고요한 삶으로 떠나는 노년의 건축가 등 소설 속 인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조애나라는 여성 변호사의 선택이다.
 
"네 인생을 훔치고 싶지 않아." 한쪽 조애나가 콧물을 훌쩍인다.
"나도 그래."
"내 인생도 잃고 싶지 않아."
한쪽 조애나가 만화가에게 말을 건다.
"에이비, 무슨 말이든 해 봐."
에이비가 흠칫한다. 그의 눈이 이 조애나와 저 조애나 사이에서 쉴 새 없이 방황한다. 부풀어 오른 배를 봐야만 겨우 두 여자를 구분할 수 있다. (364~365쪽)

에이비라는 만화가를 만나 사랑에 빠진 조애나는 그 사이 유명 법인에 취직했고 임신까지 한 상태다. 그녀에게 6월 조애나의 등장은 당혹스럽다. 에이비라는 단 한 사람을 사랑하는 두 명의 조애나. 두 존재는 서로가 겉모습에서부터 유전자, 생각하는 방식까지 동일함을 확신하면서도 삶을 나눠야 한다는 데에 부조리를 느낀다. "다른 이들과 나눠도 괜찮은 사랑이 있는가 하면, 결코 나눌 수 없는 사랑이 있다."(368쪽)
 
이 경우와 정확히 반대되는 케이스 또한 등장한다. 동성애자임을 숨긴 채 가수로 활동해야 했던 '슬림 보이', 그는 세계적 스타가 되기 전의 자신을 마주하면서 크게 놀라지 않는다. 이들은 서로를 탐색하듯 바라본 후 어떤 질문도 없이, 기이함에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상대를 받아들인다. 금세 노래 이야기로 친근해지고 잃었던 짝을 만난 듯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는 두 사람. 그들은 쌍둥이가 되어 앞으로의 삶을 공유하기로 흔쾌히 합의한다.
 
두 남자는 서로 서글프게 미소 짓는다. 애정 어린 공모의 미소, 형제의 미소를. 이제 거짓말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숨길 필요가 없고,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세상은 바뀌지 않았지만 둘은 훨씬 강해진 기분이다. 3월 슬림 보이가 일어나 기타 두 대를 가져와서는 12현 기타를 6월에게 내민다. (347쪽)

누군가는 어떤 계산도 잣대도 없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이라면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것을 짐작할 수 있고. 부족해 보이는 '나'라도 무조건적으로 환대받을 수 있다는 확인, 이보다 깊고 너른 위안은 없다.   
 
나의 분신을 마주하게 된다고 가정했을 때 내게 떠오른 반응은 조애나와 비슷했다. 세상에 단 한 명뿐인 사람들, 딸아이와 남편의 사랑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을까. 치명적인 단점까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 자신과 과연 사이좋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상상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슬림 보이'가 '슬림 보이즈'가 되는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선택을 보며 질문은 이렇게 바뀌었다. 나는 자신을 투명하게 환대할 수 있을까. 나에게 그처럼 관대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곁에 있는 이들도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줄 수 있을까.
 
인간의 운명, 우리라는 삶
 
"이 소설을 쓰면서 인간의 운명에 대해 생각했죠. 시간은 돌릴 수 없는데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갖는다면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가 본질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일까 말이죠."
- 에르베 르 텔리에

삶은 뚜렷한 인과관계를 따라 진행되지 않으며 많은 일들이 이해를 넘어 발생하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다는 걸 살아갈수록 강하게 느낀다. 자아나 정체성이란 개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무수한 타인과의 만남과 우연적인 선택의 합에 가까운 게 아닐까 싶고.
 
삶이 운명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인과 관계의 충실한 결과도 아니라면 그 의미나 목적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쉽게 허무주의로 빠질 것 같지만 의외로 나를 단단하게 붙잡아 주는 건 눈앞에 있는 현실 세계 자체다.
 
가깝고 친밀한 타인들과의 연결 속에서 흘러가는 실시간의 세계. 실재의 세계에서 나는 홀로 존재할 수 없고 내 삶은 타인과의 연결로 만들어지고 지속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연결로 우리는 서로에게 깊이 연루되어 있다.
 
이 삶이 시뮬레이션이든 아니든 변하지 않는 사실은 시간을 돌린다 해도 되돌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타협이 불가능한 영역은 나 자신이라기보단 나와 밀접하게 연결된 세계의 일부인 것 같다.
 
소설 <아노말리>는 내가 나를 마주하고 삶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는 상상을 하게 해 준다. 거기서 발견하는 건 나라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타인과 연결되어 온전해지는 작은 세계다. 개인의 삶을 완성하는 건 그 자신의 완결성이 아니라 타인과의 진실되고 긴밀한 연결이라는 아이러니.
 
3개월 전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면, 이라는 가정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가깝고 소중한 타인의 존재로 귀결된다.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일부가 되면서 만들어지는 세계. 내겐 나의 삶보다 우리의 삶이 더 중요하다. '슬림 보이즈'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롭게 확장되는 우리라는 세계를 상상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아노말리

에르베 르 텔리에 (지은이), 이세진 (옮긴이), 민음사(2022)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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