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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촛불시민들과 소성리 사람들
 김천촛불시민들과 소성리 사람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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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이 바뀌고 두 달이 지나가면서 이제야 뉴스를 가끔 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지난 7월 5일 국방부를 통해 경북 성주군에 '사드기지 정상화' 협의를 하겠다고 주민참여 요청 공문을 보냈다. 그리고 초전면 소성리 주 2일 경찰 작전을 주 5일 경찰 작전으로 바꿨다. 기어이 사드기지를 완성해서 미군에게 바치겠다는 것이다. 김천역 앞에서는 코로나 때문에 그동안 열지 못했던 집회를 윤석열 정권의 '사드기지 정상화'에 맞서 다시 시작했다.
 
2022년 7월 3일 김천역 앞.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에서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열리는 김천평화촛불집회 준비를 하고 있다.
 2022년 7월 3일 김천역 앞.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에서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열리는 김천평화촛불집회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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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난해 〈작은책〉 대표에서 물러난 뒤 변산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다. 그런데 〈작은책〉에서 8월호에 김천과 성주군 소성리 주민들의 소식을 실어야겠다며 취재를 요청해 왔다. 김천촛불집회에서 유이분 대표에게 노래도 한 곡 해 달라는 부탁이 왔단다.

김천역에서 서울에서 내려온 유이분 대표와 김천에 사는 〈작은책〉 독자 구자숙 선생을 만났다. 구자숙 선생은 사드배치반대대책위원회 기록팀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천촛불을 끈질기게 이어지도록 만든 분들 중 한 사람이다. 7시 30분이 지나니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구자숙 선생과 같이 활동하는 남편 박병주 선생도 오셨다. 일흔이 가까워 오는데 체크무늬 남방과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청년 같다. 구자숙 선생이 오는 분들마다 소개를 했다.

"저기 저 오시는 분은 이제 우리 박태정 공동위원장님."

'NO THAAD'라고 글자가 새겨진 까만 옷을 입고 부인과 함께 온다. 박태정 공동위원장은 김천시 농소면 노곡리 이장이다. 노곡리는 사드기지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는 지역이다. 농사를 짓는 분들이라 따로 인터뷰할 시간이 없어서 광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이장님은 언제부터 사드반대 집회에 나오기 시작했어요?"

"2016년 8월 20일인가? 그때부터 시작했죠."

"이장님은 사드가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걸 처음부터 알고 계셨나요?"

"일단 처음에는 저희 집하고 가까우니까. 1킬로도 안 되고 농장하고는 500미터도 안 되니까. 집에서 산에 불이 빤히 보여요. 그러니 사람이 어찌 살겠어. 그거 알고 보니까 필요 없는 거잖아요. 건강들이 참 좋았는데 그 사드 레이다로 그런지 얼마 전에는 누가 뭐 치매 왔다 카고. 동네가 100여 명이 사는데 2년 사이에 아홉 명이 암으로 돌아가셨어요." 

 
저녁 8시가 되어가자 김천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구자숙, 이동욱, 박병주(가운데), 안건모, 박태정 부부.
 저녁 8시가 되어가자 김천촛불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사람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구자숙, 이동욱, 박병주(가운데), 안건모, 박태정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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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렇게 세상 소식을 외면하고 살았나? 사드기지 근처에서 아홉 명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처음 듣는다. 사드기지 앞쪽은 소성리가 아니라 노곡리다. 레이더로 일어나는 피해는 반대편 노곡리 주민들에게 직접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박태정 이장이 사드기지를 반대하는 이유는 자신의 동네에 피해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사드가 전쟁을 부르는 무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박태정 공동위원장은 본래부터 이렇게 싸움꾼이 아니었다. 호두 재배 등 주로 과수 농사를 짓고 있는 평범한 농사꾼이다. 보수적인 경북 김천에서 살았으니 성향도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엄청 보수였지. 젊을 때 새마을지도자 오래 했는데, 거 가면 교육받고, (정부가) 시킨 대로 다 하고…."

박태정 위원장은 올해 73세다. 사드기지 때문에 싸우면서 이 세상을 알았다. 이젠 국제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안다.

"우리는 육이오 때 태어났지만 그 뒤로 전쟁이 별로 없었지. 잘 지냈잖아요? 앞으로 우리 손주들 문제라. 지금 그래 그 생각이 자꾸 나요. 큰일 났다 싶더라고. 그래 이제 미국 놈들이 무기 갖다 놓고 이렇게 하면 그 사람들(중국) 또 마음 변한다니까. 어쩌겠어. 자기도(중국도) 살기 위해서 그냥…. 우리가 안 받아들여야 되는데. 윤석열 이거는 뭐 대통령 된께 알랑방귀 뀌고. 그라니께 미국, 일본이 완전히 갖고 노는 기라."

시골 농부가 툭툭 내뱉는 말 속에 정치와 국제 정세가 보인다.

"그러면 이장님. 이미 사드가 들어갔고,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 사드기지를 정상화시킨다고 하는데 막을 수 있을까요? 그래도 집회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뭘까요?"

"갈 데까지 가야죠. 하다 보면 또 때가 오잖아요, 그죠? 우리가 여기서 사그라지고 싹 잠적해 버리면 이게 진짜 이것도 없다 아이가."

 
김천역 광장에서 사드배치반대대책위원회 박태정 공동위원장(가운데) 부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천역 광장에서 사드배치반대대책위원회 박태정 공동위원장(가운데) 부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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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 거침없다. 그렇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정말 소성리 같은 마을에서 미군들이 마음껏 활개 치고 다닐 것이다. 미선이, 효순이 사건 때처럼 탱크에 치여 죽어도 하소연할 데가 없을 것이다.

"저기 소성리 할머니들 오시네."

구자숙 선생이 말했다. 키가 작고 잘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들 세 분이 나란히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온다. 농사를 짓다가 오셨으리라. 집회 시간이 다 돼 의자에 가서 앉는다. 마무리 인사도 못 했는데 박태정 이장도 맨 앞줄 의자에 가서 앉는다. 둘러보니 참가자들이 얼추 40명가량 되는 듯하다. 한때는 천 명까지 모였던 이 자리에 이제 질기고 질긴 사람들만 남았다. 아니, 이제 다시 시작이다.

장재호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사회를 본다. 맨 먼저 서울에서 취재를 왔다고 우리를 소개한다. 민망하고 쑥스럽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신 소성리 할머니 세 분. 둘째줄 의자 가운데 나란히 앉으셨다.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신 소성리 할머니 세 분. 둘째줄 의자 가운데 나란히 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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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헌신하다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한 묵념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묵념 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나온다. 할머니들도 '팔뚝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 노래를 얼마나 들었을까. 오늘 이 집회가 867회째다. 외우고 싶지 않아도 자연히 외워졌으리라. 노래가 끝나고 구호를 외친다. 
 
김천 곳곳에 걸린 사드배치반대 현수막.
 김천 곳곳에 걸린 사드배치반대 현수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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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는 굴종이다!"
"사드는 침략이다!"
"사드배치 철회하라!"


모두들 따라 외친다. 한 시간 만에 촛불집회가 끝났다. 유이분 대표도 노래를 두 곡이나 불렀다.

거기에 참석한 모든 이들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했지만 인터뷰할 시간이 없었다. 뒤쪽에서 '사드반대'라는 글자와 촛불이 담겨 있는 핸드폰을 들고 말없이 앉아 있던 분, '수다쟁이 김천맘'이라는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면서 꾸준히 평화 행동 소식을 올리는 최현정님 등 이들 모두가 촛불집회 원동력일 것이다.

다음 날 아침 6시에 김천에서 소성리로 출발했다. 한 30분쯤 가다 보니 '소성리', '원불교 성주성지'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사드기지 배치 반대 플래카드가 늘어서 있다. 마을회관 근처를 보니 6년 전 모습과 다름이 없었다. 
 
흰 천막 왼쪽이 진밭교이다. 진밭으로 가는 다리가 이젠 사드기지로 가는 다리가 되어 주민들의 발길을 가로막는다.
 흰 천막 왼쪽이 진밭교이다. 진밭으로 가는 다리가 이젠 사드기지로 가는 다리가 되어 주민들의 발길을 가로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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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밭교로 올라갔다. 진밭교는 사드기지로 올라가는 작은 다리 이름이다. 사드가 들어오기 전에는 주민들이 자유롭게 통행하던 곳이다. 아직 저 안에는 주민들 밭도 있고 조상 무덤도 있다. 그런데 왼쪽 차선에 경찰 두 명이 지키고 서서 통행을 막고 있다. 몽골 텐트처럼 위가 뾰족한 천막이 하나 서 있다. 천막에는 '평화는 얼지 않는다'라는 글자가 붙어 있다. 강현욱 원불교 교무가 법회를 진행하고 있는 그 앞에 10명 정도가 파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서 듣고 있다.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젊은이들이 몇 명 보인다. 어디서 온 젊은이들일까.

원불교 교무가 평화 법회를 하다가 사드기지로 들어가는 차가 올라오면 일어나서 그 차를 향해 구호를 선창한다. 그러면 앉아 있던 사람들이 그 차 쪽으로 몸을 돌려 구호를 반복한다.

"기지 공사 매국이다!"
"매국 행위 중단하라!"
"부역자는 돌아가라!"
"매국노는 돌아가라!"


부역자, 매국노. 그 말을 들으니 해방이 되고 나서 아직까지 떵떵거리면서 살고 있는 친일파들이 생각난다. 일제시대에, 해방이 됐지만, 우리나라가 영원히 일본의 속국에서 벗어나지 못할 줄 알고 일제에 빌붙어 부역했던 친일파들을 처단하지 못한 역사. 미군이 점령군으로 진주하고 친일파들이 다시 정권을 잡아 미국의 속국이 돼 버린 이 슬픈 역사.
 
2022년 7월 4일 오전 6시 30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진밭교 앞에서 원불교 평화 법회가 열리고 있다.
 2022년 7월 4일 오전 6시 30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진밭교 앞에서 원불교 평화 법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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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공사 매국이다!"
"매국 행위 중단하라!"
"부역자는 돌아가라!"
"매국노는 돌아가라!"


화물차, 승용차들이 5분 간격으로 끊임없이 사드기지로 들어가고 있다. 차창은 굳게 닫혀 있고 안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타고 있을까. 그들은 여기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법회가 끝나고 서로 인사를 나눴다. 젊은이들 네 명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이었다.

"세 명은 광주에서 왔고요, 이분은 대구경북대학생진보연합 대표님."

이들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여름방학을 이용해 스스로 결정해서 왔단다.

"이제 윤석열 정부 들어서서 (경찰 침탈이) 5일로 바뀌었잖아요. 그래서 얼마나 힘드실까 싶어서 오고 싶었는데 대학생들이다 보니까 학기가 계속 있어서 조금 밀리고 하다가 지금 방학이에요. 그래서 같이 올 수 있게 된 거죠."
 
소성리 평화 법회에서 만난 대학생들.
 소성리 평화 법회에서 만난 대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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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런 대학생들이네요."

유이분 대표가 웃으면서 칭찬했다. 사드기지 촛불은 다시 살아날 것 같았다. 그런 젊은이들이 희망이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참석한 이동욱 공동위원장과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이동욱 위원장은 김천이 고향이다. 전교조 교사였는데 5년 전 퇴직했다. 이동욱 선생은 교직에 있을 때 전교조 통일위원장과 김천의 전교조 지회장을 여러 번 거쳤다. 이동욱 선생이 활동했던 단체에서 사드반대 집회를 주도하면서 대규모 집회로 이어졌다.
 
2022년 7월 4일, 소성리 아침 집회에 참석하러 온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이동욱 공동위원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2년 7월 4일, 소성리 아침 집회에 참석하러 온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이동욱 공동위원장(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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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하기 직전에 사드 문제가 발생했어요. 여기 롯데 씨씨(소성리 사드기지가 들어서기 전에 있던 골프장) 얘기가 나올 때, 그때부터 이제 이거 심상치 않다. 그래서 이제 김천 쪽이 사드 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죠. 그래서 2016년 8월 20일에 저희들이 이제 김천에서 첫 번째 촛불집회를 했어요."

"이게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요?"

"뭐 '질긴 놈이 이긴다'고, 끝까지 가는 거죠. 그래도 제가 이걸 하면서 느낀 게, 아 우리나라에 그래도 평화를 갈망하는 평화 시민들이 의외로 많구나. 평통사 회원들도 많고, 또 이런 대학생들, 이런 사람들이 있음으로 해서 우리나라의 평화가 지켜지는 거 아닌가. 여기에 제가 작은 밀알이라도 된다면 참말 다행인 거죠."


이동욱 공동위원장도 오늘 온 젊은이들을 보고 힘을 받는구나 싶었다. 오늘 이들이 아니었으면 대여섯 명밖에 없었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이동욱 공동위원장과 헤어지고 강현욱 교무와 이야기를 나눴다. 원불교는 왜 사드 철회를 외칠까. 어떻게 사드기지가 들어가는 길목에 평화교당 천막이 세워지게 됐을까.

"이 소성리는 원불교의 성지입니다. 여기가 창조자의 뒤를 이으신 2대 종법사가 태어나셨고 그 종법사가 대종사를 만나러 가던 길입니다. 그 길을 도를 구하러 가는 길, '구도 길'이라고 하는데 그게 하루아침에 막힌 거죠. 그래서 '구도 길'을 열어라, 통행의 자유를 보장하라 하면서 항의를 했는데 (박근혜가) 3월 10일 날 탄핵이 됐죠."

하지만 길은 열리지 않았다. 경찰이 길을 터 주지 않자 원불교 교무들이 길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때부터 그 길에 몇 시간씩 앉아서 항의를 했다. 밤샘 기도가 시작됐다. 아직 서리가 내리던 때, 서리 맞으면서 계속 버티고 있으니 주민들이 밤에 곁을 지켜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3월 15일 대규모 집회가 있었다. 그때 참가자들이 경찰을 밀어내고 천막을 세워 버렸다.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짐작만 할 뿐이다.
 
2022년 7월 4일 아침, 평화 법회를 마친 원불교 강현욱 교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22년 7월 4일 아침, 평화 법회를 마친 원불교 강현욱 교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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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게 됐는지 강현욱 교무에게 물었다. 교무는 차분히 설명했다.

"미국이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고 싶었던 거는 미사일 때문이 아니고 중국을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를 배치하고 싶었던 거고, 이 레이더에서 나오는 정보, 일본에서 나오는 정보, 알래스카의 정보, 괌에서 나오는 정보, 이것을 미국 본토에서 복합적으로 보고 싶어 하는 게 미국 MD 체제의 핵심입니다. 대체 박근혜가 왜 그랬는지는 (정치) 위기 상황을 미국의 힘을 빌려서 넘어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냐 하고 추측합니다. 그러니 이 윤석열이 또 이제 뭘 저지를지도 모르겠네요."

대통령의 잘못된 결정으로 한국이 점점 수렁에 빠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사드기지를 반대한다고 해도 어쨌든 이미 들어갔는데 철수시킬 수 있을까요?"

"일단은 감시와 견제는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지막까지 철거투쟁을 할 거고요. 완전 배치가 된다고 하더라도 감시와 견제를 할 겁니다. 우리가 여기를 수수방관한 만큼 미군은 여기서 활개를 치고 다닐 겁니다."


강현욱 교무와 인사를 나누고 마을로 내려갔다. 마을회관 근처에 '사드저지 기독교 현장 기도소'가 있었다. 이 기도소를 지키는 강형구 장로가 이곳에 머물게 된 사연도 구구절절하다. 아쉽지만 그 사연은 줄인다. 다만 한 가지, 이곳에 사드가 들어오던 2017년 4월 26일 증언만 들어 보자.
 
소성리 마을회관 근처에 있는 ‘사드저지 기독교 현장 기도소’에서 강형구 장로를 만났다.
 소성리 마을회관 근처에 있는 ‘사드저지 기독교 현장 기도소’에서 강형구 장로를 만났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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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려온 지 8일 만에 4월 26일 날 사드가 들어왔죠. 사드가 들어가는 날 새벽에 여기 들어오는 모든 길목을 저 바깥에서부터 차단하고, 한 만 명 이상 경찰이 동원됐을 거예요. 그날 대성통곡을 했어요. 미군 운전병이 핸드폰으로 찍고 웃으면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날 '이 나라가 미국의 식민지다'라는 거를 절감을 했어요. 그러고는 이제 아, 독하게 싸워야 된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얼마나 분통이 터졌을지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억울한 일은 또 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경찰이 형사 고발해서 수십 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마이크 잡은 사람, 길바닥에 누웠던 학생들, 군용트럭을 향해서 나사못 던진 사람 등 무차별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강형구 장로도 현재 일반교통방해 약식 명령을 받아서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고 정식 재판 청구 중에 있다.

강형구 장로와 헤어지고 우리는 이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임순분(69세) 부녀회장을 만나러 갔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젊었을 때 이곳으로 이사와 지금까지 45년째 살고 있는 농사꾼이다. 근처 밭에서 마늘을 고르고 있었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청산유수였다.

"부녀회장님은 그 사드의 위험성에 대해서 혹시 처음부터 알고 계셨나요?"

"사드가 성주에 배치된다고 하고 나서 이제 매일 집회가 열리잖아. 처음에 참석할 때는 우리는 전자파만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참석을 했어. 그리고 진밭교 지나자마자 우리 농사짓는 밭이 있거든. 그러면 이제 농사 지을래도 못 가겠구나, 이런 걱정을 했었지. 우리가 전자파 때문에 막 걱정을 하고 집회 참석하고 하니까 행정기관에서 소성리에는 전자파하고 관계가 없다, 이게 사드기지가 김천을 향하고 있어서…. 그렇게 설득을 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서 '그러면 김천 시민들은 이 나라 국민이 아니냐?' 내가 그렇게 물어봤어요."


무식한 시골 사람이라고 깔보며 생각 없이 발언했던 공무원이 정곡을 찌르는 반박에 얼마나 난감했을까.

임순분 부녀회장은 사드집회에 참석하면서 사드가 중국하고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22년 7월 4일 아침, 임순분 소성리 마을 부녀회장을 만나려고 근처 마늘밭으로 찾아갔다.
 2022년 7월 4일 아침, 임순분 소성리 마을 부녀회장을 만나려고 근처 마늘밭으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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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에서 이거는 북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든 거다, 이랬을 때 롯데가 중국에서 막 그거 당할 때 그때 확실히 알게 됐거든요. (중국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을 내보내고 물건 안 사고 불매운동 벌이고, 중국 내에 있는 롯데가 전부 다 수난을 겪을 때 더 확실하게 알게 됐어요."

실생활에서 얻는 이런 통찰은 대학을 다녀도 배울 수 없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이렇게 세상을 삶에서 배운다.

촛불집회가 다시 시작되면서 가장 어려운 건 농사지을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요즘에 새벽에 밭일 나가야 되는데 집회 참석하고 나면 일을 못 해요. 새벽에 일하고 낮에 쉬고 해야 되는데 새벽에 시원할 때는 싸우고, 그러면 일이 또…."
 

그래도 요즘은 '태극기부대'가 오지 않아 그나마 낫다. 코로나 이전에는 태극기부대가 끊임없이 와서 주민들을 괴롭혔다고 했다. 얼마나 시달렸는지 임순분 부녀회장은 김천 구미의 차병원에서 여섯 달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았단다.

화, 수, 목요일은 마을회관 앞에서 길을 막고 기도회를 연다. 그러면 얼마 안 있어 경찰들이 할머니들이 앉아 있는 의자를 들어 옮긴다. 그걸 가마 탄다고 하는데 그러다가 다친 사람도 많다.

"전에는 할머님들이 그렇게 하셨어. 그런데 이제 제가 말려. 왜냐하면 (경찰이) 잡아 버리잖아. 여기(팔) 멍 들면 2주, 3주가 나와요. 할머니들은 지금 이렇게 세웠다가 안 잡아 주면, 턱 주저앉으면 허리 바로 나가. 그래서 내가 할머니들은 딱 시간 되면 무조건 모시고 나가시라고 해. 사드 투쟁하면서 제가 얼마나 다쳤냐 하면, 성주 군수한테 왜 사드를 소성리 갖다 놨는지 설명을 해라라고 만나러 가서 그 군청 직원들이 팔을 꺾었어. 이게 인대가 나가 버린 거라. 여기 기브스를 6개월 하고 있었어. 그다음에 (사드) 장비 들어간다고 할 때 그 앞을 막았지. 막았는데 팔십다섯 살 먹은 할매를 들길래 '할매 들면 안 된다' 하고 의자를 잡고 있는데 경찰이 번쩍 들어 뿌니까 이 손이 의자 사이에 낑기가 손이 꺾여 뿟다. 이번에는 오른손을 6개월 기브스했어. 그다음에 또 갑자기 수천 명 경찰이 오길래 무슨 뭐가 들어가는가 해서 놀래 가지고 주민들 뛰어가서 도로를 막았다. 막았는데 경찰이 내 양쪽 팔을 잡고 질질질질 끌데. 그러니까 여름이잖아. 이 옷이 이제 올라가 가지고 세멘에 등어리를 다 깔아 버렸어. 그래가 그날은 그때는 너무 많이 다쳐가 원광대병원에 일주일 입원해가 있었어."

그것뿐만이 아니다. 갈비뼈에 금이 가기도 했다. 사드 들어올 때는 경찰이 팔꿈치로 쳐서 윗니가 다 나가 버렸단다.

"깨니까 병원이데. 멀쩡하게 살아 있었던 이빨이 다 나가 버리더라고…."

유이분 씨가 옆에서 듣다가 "어떻게 해…." 하며 안타까워했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손가락, 발가락이 뒤틀린 것도 보여 주면서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한다. 세상에, 군홧발로 짓밟기도 했단다. 온몸이 이렇게 다쳐도 하소연할 데가 없고, 국방부와 경찰들의 죄를 물을 길이 없다. 오히려 걸핏하면 그들이 마을 사람들을 고발한다.

"국방부에서 고발을 해서 벌금 500만 원 받아 갖고 벌금 500만 원 내고. 그리고 또 지금 걸려가 있어요. 또 지금 검찰 조사 얼마 전에 받았어요. 집시법이 아니라 그걸 뭐라 그래, 일반교통방해로 들어갔고. 최근에 받고 있는 거는 할머니들하고 도로 막았다고, 들어가는 차량 막았다고. 실제로 내가 앞에 가서 안 막았어. 할머니들이 막았어. 근데 '니가 사주했다.' 원래 직함이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평택 미군기지 세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식민지의 백성으로 살고 있다는 걸 이럴 때 절감한다.
 
임순분 할머니. 팔목에 사드반대 팔찌를 끼고 일을 하신다.
 임순분 할머니. 팔목에 사드반대 팔찌를 끼고 일을 하신다.
ⓒ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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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 인대가 나가 기브스했을 때는 괜찮았어. 조금 불편해도 이 손으로 했는데, 이 손(오른손) 딱 다치고 나니까 그때가 감자 수확할 때라 비는 오는데 감자는 수확해야 되는데 이 기브스는 했다. 밭에 가서 앉았는데 이제 감자를 캐면 땡기고 손으로 줍고 하잖아. 그래야 되는데 이 손을 다쳤어. 이거를 이렇게 잡아야 되는 거 이렇게 이렇게 하고 나서 하면 능률이 절반도 안 올라가. 해 보니까 능률은 안 올라가고 비는 올라카고 주변에 살펴보니까 아무도 없데. 그 밭에 앉아 가꼬 산모통이 이렇게 도는데,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고 두 다리 뻗쳐 놓고 어엉어엉! 울었어. 이게 세상에. 농사 때문에도 화가 나고, 사드 때문에도 화가 나고, 이래저래 화가 나 갖고 대성통곡을 했어요. 내 혼자 아무도 없다고 울고 있는데 뒤에 사람 소리가 나. 돌아보니까 '지금 부녀회장 감자 캐러 갔는데 백방 혼자서 힘들어 하겠네. 우리 가서 도와주자' 하고는 모아서 확 올라오는데 그중에 교무님도 계시고…. 엉엉 울고 있는데 돌아보니까…." (임순분 부녀회장은 이 말을 반복하면서 유쾌하게 웃고 있었다.)

임순분 부녀회장은 그 밖에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 때문에 마늘 정리도 못 하는 것 같아 마무리를 해야 했다.

"한마디로 삶이 파란만장한데, 여기 와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이 사드가 들어오면서 또 인생이 바뀐 거네요. 언제까지 싸울 수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평생 싸워야 안 되겠습니꺼, 저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작은책 8월호에 실릴 글입니다.


태그:#사드기지, #김천촛불, #소성리, #작은책, #안건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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