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28 16:33최종 업데이트 23.02.27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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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휴게소는 세계의 자랑입니다.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를 극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휴게소장과 우리나라에서 휴게소를 가장 많이 운영하는 회사의 본사팀장, 휴게소 납품업체 등 다양한 업무를 거치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18년간 근무하고 있는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 운영자의 글을 통해 알려지지 않은 고속도로 휴게소의 이모저모를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저녁이면 불 꺼지는 고속도로 휴게소 ⓒ K-휴게소

 

지난 17일 일요일 저녁, 지방에 있는 친정에 일이 생겨 고속도로를 운전하던 김은희씨(가명)는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습니다. 용변을 해결하러 휴게소를 들렀는데 청소를 안 한 듯 너무 더러웠기 때문입니다.


급하게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서 둘러보니 모든 매장은 불이 꺼져 있었고 편의점에는 여직원 혼자 근무 중이었습니다. 주차장에는 화물차만 듬성듬성 서 있고 인적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순간 김은희씨는 갑자기 소름이 끼치면서 "여기가 혹시 말로만 듣던 미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인가? 무슨 일이 생겨도 도와줄 사람도 없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실제 한국도로공사는 지난 7월 5일 '심야 시간대 휴게소 방범 관리 철저 협조' 공문을 보내 최근 발생한 휴게소 도난 사고 발생 사례를 공유하며 심야 시간대 보안 관리를 철저히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공문에 따르면 6월 말 경부고속도로 여러 휴게소에서 현금과 자동차 용품이 도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야간 시간대 식사류 미취급 관련 민원에 관한 대책을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도로공사는 지난 7월 5일 '심야 시간대 휴게소 방범관리 철저 협조' 공문을 보내 최근 발생한 휴게소 도난 사고 발생 사례를 공유하며 심야 시간대 보안 관리를 철저히 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 도로공사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6월 23일에는 고속도로 휴게소 6곳을 턴 3인조 절도범이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20대 초반인 이들은 심야 시간 고속도로 휴게소에는 직원이 혼자 있다는 것을 알고 강원도부터 경상도, 충청도 등 전국 휴게소를 돌며 현금 교환기를 부수는 등의 수법으로 수백만 원을 절도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야간 시간 고속도로 휴게소는 방범 취약 지역이었던 셈이죠.

구인난에 사라진 휴게소 24시간 영업

그동안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깨끗한 화장실과 더불어 1년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덕분에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는 언제 어디서나 휴게소가 제공하는 주차장, 화장실, 음용수 등 다양한 무료 서비스와 식사를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이용자인 국민을 위한 봉사라는 측면에서 대단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해졌습니다. 대부분의 휴게소가 야간 영업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수도권 일부 휴게소를 제외하고 전국 대부분의 휴게소가 저녁 8시만 되면 편의점만 남기고 문을 닫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밤에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합니다. 특히 통행료 할인 혜택을 받으려고 야간에 운전하는 화물차 운전자는 식사할 곳도 없습니다.

이유는 휴게소 구인난 때문입니다. 출발은 코로나19 때문이었습니다. 실내 매장 취식을 금지하고 여행객이 줄면서 매출이 급감한 휴게소는 어쩔 수 없이 직원을 줄였습니다. 도로공사가 코로나 기간 발생한 휴게소 적자를 외면하는 상황에서 인건비라도 줄여야 도로공사에 임대료도 내고 휴게소 시설 유지비를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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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대부분의 휴게소가 저녁 8시만 되면 편의점만 남기고 문을 닫고 있습니다. ⓒ K-휴게소

 

그 결과 전국 203개 휴게소의 인력 2만여 명 중 최소 30~50%가 휴게소를 떠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지금 와서 영업을 재개하려고 해도 그 직원들은 이미 다른 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휴게소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을 예측했다고 합니다. 원래 고속도로 휴게소는 인기없는 직장이라고 합니다. 급여는 최저임금 수준으로 짜고, 근무는 2교대로 힘들며, 민원과 점검이 많은 데다가 도로공사의 간섭과 통제도 심합니다. 게다가 출퇴근 불편함과 주말·공휴일 근무까지. 그래서 항상 인력이 부족해 여름 성수기에는 아르바이트생이 없으면 영업도 불가능하다고 합니다(관련기사: "고속도로 휴게소가 병원 응급실인가요?" http://omn.kr/1w9ib).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휴게소가 부담하는 공공서비스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는 다양한 무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24시간 영업부터 무료 주차장, 무료 화장실, 무료 쓰레기 처리, 무료 흡연실, 무료 쉼터, 무료 와이파이, 무료 차량 셀프 서비스, 무료 음용수, 무료 충전, 무료 팩스 등 거의 수십 가지에 이릅니다.

이 무료 서비스 비용은 휴게소 운영사가 부담해왔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휴게소에서 상품을 판매하고 발생한 매출, 바로 고객 호주머니에서 부담한 것입니다.

이제까지 도로공사는 무료 서비스를 도로공사에서 제공한 것으로 홍보했고, 국민들도 고속도로 이용할 때 납부한 통행료로 휴게소를 운영한다고 생각했으나 실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는 매년 천억 원 이상의 임대료를 도로공사에 납부하고 있습니다.
 

2015-2019 휴게소 임대료 수익 현황 ⓒ 한국도로공사

 

즉, 도로공사는 운영권을 임대해 준 대가로 임대료도 챙기고 공공서비스 비용과 민원 처리까지 모두 휴게소에 떠넘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고속도로 휴게소가 코로나19로 인해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영업 중단부터 시작해 더는 적자를 감당하지 못해 운영권을 반납하는 휴게소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간 영업이나 비용 부담이 큰 공공 서비스를 지속할 여력이 없어진 셈이죠(관련기사 : 최초의 상공형 휴게소, 내린천 휴게소의 비극 http://omn.kr/1y8cj).
  
도로공사는 휴게소에 전가한 공공서비스 비용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른 체 하고 있습니다. 고작 야간 방범을 철저히 하고 24시간 영업을 재개하라는 공문뿐입니다.

휴게소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수년 내에 고속도로 휴게소 중에 문을 닫는 곳이 속출할 거라고 합니다. 이용객이 적은 야간 시간부터 영업을 멈추다가 무인 편의점, 무인 매장으로 변경된 후 결국 버티지 못하는 휴게소부터 문을 닫을 거라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여태 휴게소가 무료로 제공했던 공공 서비스는 끝나는 것입니다. 밤에 무서운 미국의 휴게소가 더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닌 거죠.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 카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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