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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어둠의 속도>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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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시청률 상승은 물론 최근 글로벌 플랫폼 넷플릭스에서도 비영어권 1위를 차지한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연일 화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변호사 우영우가 남다른 기억력과 연상력, 상황 판단력으로 사건을 해결해가는 드라마이다. 현실성 여부의 논란을 떠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사회적 관심이 높였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시청하는 분들에게 엘리자베스 문의 소설 <어둠의 속도>를 권하고 싶다. 그해 가장 뛰어난 SF소설에 주는 네뷸러상 수상 작가인 엘리자베스 문은 자폐아를 입양해 성인으로 키운 어머니이기도 하다. 아들과 함께 보낸 긴 시간과 자폐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었기에, 이 작품은 '과학소설이지만 한 인간의 여정에 관한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작가는 우리에게 '비정상은 정체성이 될 수 없을까?'라거나 '정상이란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자폐아가 태어나지 않는 미래

소설의 배경은 임신 중에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고치는 치료법이 개발돼 더는 자폐아가 태어나지 않게 된 가까운 미래다. 주인공 루 애런데일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마지막 세대이다. 타인의 생각이나 표현을 읽는데 미숙하지만, 알고리즘과 패턴을 분석하는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 있다.

그가 다니는 제약 회사는 그처럼 뛰어난 능력을 갖춘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을 특수 부서에 모아 놓고 관리한다. 어느 날, 그는 회사로부터 뇌를 '정상'으로 만드는 의학 실험에 참여하라는 압력을 받는다. 아직 실험 단계인 치료법이기에, 그와 특수 부서 동료들은 망설인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우영우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큰 특성을 "사람들은 나와 너로 이루어진 세상에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루어진 세상에 산다"라고 말한다. 소설 속 루 역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메인 프로세서 칩이 다른 컴퓨터에 비유한다. 같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해도 자폐인이 비장애인과 같은 방식으로 작동되지 않는 까닭이다. 만약 수술로 '정상화된다면' 뇌에 입력되는 정보의 비율과 유형이 변할 것이고, 지각과 처리 과정이 달라진다면 과연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서른다섯 해 동안 자폐인으로 살아온 삶은 기억할 가치가 없는 것일까?
 
"저는 지금 저 자신을 좋아합니다. 제가 수술 후의 저를 좋아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363쪽)
 
비장애인 여성에게 실연당한 경험이 있는 동료 캐머런은 제일 먼저 수술치료에 지원한다. 그는 '다른 것'이 너무 힘들다고, 같지 않은데도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척하는 일에 지쳤다고 하소연한다. 평범하게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살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겹쳐졌다. '어른이라면 스스로 밥상을 차리고 부모에게서 독립해야 한다'는 동료변호사의 말을 들은 날, 우영우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저는 결혼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폐니까요." 우영우 역시 평범하게 결혼하고, 평범하게 회사 회전문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드라마에서는 동료 신입변호사 권민우(주종혁 분)가 선임변호사를 찾아가 따지는 장면이 나온다. 우영우의 사직서를 바로 처리하지 않고, 본인이 하고 싶은 사건만 맡는 것이 장애인이라 받는 특별한 배려가 아니냐고. 같은 신입변호사로서 불편하다며 '역차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한다.

'우영우'에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중에서
ⓒ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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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어둠의 속도>에서도 주인공 루의 목에 총을 대고 위협하는 범인은 장애인을 위한 복지비용 때문에 세금이 낭비되고 있으며, 자기같이 '정상인 사람'이 좋은 직업을 갖지 못한 것도 장애인 때문이라며 윽박지른다. 수술을 종용하는 루의 회사 임원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특수 부서 자폐인들이 수술을 통해 정상화가 되면 그들이 누리는 좋은 조건(사무실, 체육관, 주차 자리 등)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 부록으로 실려있는 인터뷰에서는 작가의 생각을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인류 문화는 주류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을 전혀 다른 존재로 정의하면서, 집단의 결속이 강화해왔다고 지적한다. 다른 인종, 종교, 국적 그리고 심지어 경제적인 계층까지도 '정말로 사람은 아닌' 존재로 규정짓는다. 장애 역시 때로는 어린애로, 때로는 갇히거나 심지어는 죽임을 당해야 하는 괴물로 취급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주류로 들어오려면 우리처럼 되라고 장애인에게 우기고 있다는 것이다.

소설 속 의사들 역시 사회의 주류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자폐를 고치는 수술을 하라고 강권한다. 하지만 루는 장애가 자신의 전부가 아니고 한 부분일 뿐이라고 일갈한다. 그는 어둠에도 속도가 있으며 그 속도는 빛의 속도와는 다르고 어쩌면 더 빠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지킬 힘이 자신에게 있다고 스스로 이해한 후에야 그는 수술을 받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반드시 삶이 더 좋아지리라는 희망은 아니라고 동료 자폐인 에릭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나는 정상인이 어떤 느낌일지 알지 못해. 정상인들이라고 모두 행복해 보이지는 않아. 어쩌면 정상인으로 살기란 자폐인으로 사는 것과 마찬가지도 불쾌할지도 몰라." (387쪽)

작가는 '정상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폐인 스스로 '비정상인'이라고 여기는 것 역시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그들이 이상하고 부족한 사람들이라고 끊임없이 주입했음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을수록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주인공 루를 동정하기보다 공감하게 된다. 그는 약속한 규칙을 철저히 지키고, 타인을 의심하기보다 좋은 면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인기도 비슷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장애인에 대한 동정이나 캐릭터의 천재성보다는 순수한 마음과 진정성을 가지고 성장하는 우영우의 모습에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에 익숙한 사람은 없다. "삶은 변화구를 던진단다. 그래도 그 공을 잡는 게 네 역할이지"라는 주인공 루의 어머니 말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떠나 우리는 모두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방식으로 삶이 던진 공을 잡으러 뛰어다니며 살아간다. 소설 <어둠의 속도>는 정상이라고 불리는 '생각의 속도'보다 조금 느리거나 혹은 더 빠른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역시 애쓰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은이), 정소연 (옮긴이), 푸른숲(2021)


태그:#우영우, #변호사, #어둠의속도, #자폐스펙트럼,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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