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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돌봄 관계로 가까이 살게된 장모와 사위가 티격태격하면서 가족이 돼가는 가족 문화 현상을 담아보려 함.
▲ 사위 아들 육아 돌봄 관계로 가까이 살게된 장모와 사위가 티격태격하면서 가족이 돼가는 가족 문화 현상을 담아보려 함.
ⓒ 정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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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딸을 결혼시킨 친구들의 대화에 나는 못 끼어든다. 독립은 했으나 결혼하지 않은 딸과 아들을 둔 때문이다. 덕분에 그녀들의 심리를 관찰하는 거리감을 확보했다고나 할까. 근데 요즘 몇몇 친구들, 사위를 아들 삼는 재미에 흠뻑 빠진 것 같다.

"며느리를 딸 삼는다는 건 그냥 립서비스야. 내 딴엔 아들 결혼하기 전에, 못된 시엄마 안 되려고 굳게 결심했거든. 근데 딱 5년 만에 포기했어. 며느리랑은 그냥 적당히 사이좋으면 됐다고 봐."

"에구구, 넌, 김치 담가서 며느리네 아파트 경비실에 맡겨놓고, 반찬도 알뜰하게 만들어 바쳤잖아. 그래도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 요즘 외식이나 배달 음식 먹느라 집밥을 거의 안 먹는 워킹맘들이 많다며? 또, 간헐적 단식이니 다이어트니 하면서 오후 6시 이후에 아무 것도 안 먹는 여자들이 늘어난다더라. 그러다 보니 시엄마 반찬, 몽땅 버리게 된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말이야."

"그러게, 요청하지도 않는데 굳이 김치 담가주고 반찬 만들어 배달할 필요가 있니? 나는 잘해주고 싶은데 상대방에겐 '투 머치 관심'이 돼버리거든. 귀찮게 여길 수 있어. 하여튼 아들이건 며느리건 사회적 거리두기 원칙을 365일 적용해야 돼."

"이 나라엔 며느리 구박의 유구한 역사가 있잖아. 며느리들이 시댁이라면 별 이유 없이도 멀리하고 싶은 거, 이해해줘야 돼. 우리도 시댁한테 일종의 피해의식 같은 게 있었던 거니까."

"내 아들도 사돈네로 입양된 것 같아"

다들 조금 씁쓸한 표정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홀짝거린다.

"며느리한테 집적대지 않기로 아예 마음을 정해버리니까 홀가분하더라. 그래서인지 오히려 애교 부리는 사위가 예뻐 보여.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데, 고등어 목살찜을 해 달라, 김치콩나물국을 먹고 싶다. 나한테 카톡 주문까지 한다니까. 허물없게 대하는 게 밉지 않더라고."

딸의 전문직 커리어를 뒷받침하기 위해 황혼 육아를 자청한 친구다. 딸이 결혼 상대를 처음 데려왔을 땐 딸보다 사윗감의 직업이 시원찮다고, 못마땅했던 그녀. 손자를 보살피며 사위랑 어느새 가까워졌단다. 다른 친구가 맞장구를 친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랬는데, 그게 다 옛말이야. 요즘 맞벌이들은 아이들 키워주는 처가 쪽으로 들러붙잖아. 장모에게 예쁨 받으려는 애교, 이게 다 생존 스킬 아니겠니?"

"맞아. 내 아들도 결혼한 후에 안 사돈네 아들로 입양당한 거 같아. 아예 호적을 파 가버린 것 같다니까. 명절이나 내 생일 같은 기념일 아니면 전화도 문자도 잘 안 해. 섭섭해도 어쩔 수 없지 뭐. 안사돈이 손주를 키워주니까."

사돈네랑 일정을 조정해가며 손주 둘을 키우는 친구가 나선다.

"내가 그래서 사돈네랑 공동 육아를 하잖니. 아들이랑 며느리가 바깥일을 하니까. 월·수·금은 사돈네가 맡고, 우린 화·목 담당이야. 여행이나 코로나 확진 같은 비상사태 때는 스케줄 변경도 서로 양해하니까 좋아. 어른 여섯이 아이 둘을 키우는 건데, 내 남편이 먼저 제안했어. 사돈댁에 육아를 몽땅 맡기면 내 아들이랑 손주를 아예 뺏길지도 모른다는 거야. '전략적 육아 콜라보'라나 머시기라나. 이제 보니까 남편 생각이 옳았어."

하지만 나이 60 넘은 몸은 너나없이 덜컹대기 시작한 지 오래다.

"관건은 건강이야. 우리 또래는 다들 허리 통증이나 관절 통증을 달고 살잖니. 갈수록 아이 돌보는 게 힘들어. 아프다고 하면 딸이나 사위가 긴장하니까 아프단 소리도 잘 못하겠더라고. 손자를 초등학교 4학년까지는 키워줘야 할 텐데, 앞으로 5년을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하루 한 시간 스포츠센터 운동을 꼭 하잖니. 아무리 힘들어도 이걸 거르면 당장 몸이 신호를 보내더라고. 너희들도 육아랑 운동을 꼭 병행해야 돼. 나중에 내 몸이 절단나면 딸이랑 사위를 원망할지도 모르잖아. 그러기 싫으니까 지금 내 몸을 잘 지키면서 육아 봉사를 하자는 거지."

다들 고개를 끄덕거린다.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문제이지만. 언제나 화사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나타나는 패셔니스타 친구가 말한다.

"나는 몸이 아무리 시원찮아도 손녀딸 유치원 끝날 시간에 맞춰 벌떡 일어나 머리 빗고 꽃단장해.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마중 가야 손녀딸이 좋아하거든. 나더러 살 좀 빼고, 검은색 옷은 아예 입지도 말래. 내 옷차림에 손녀딸 눈치까지 봐야 된다니까."

한바탕 폭소! 엄마나 할머니가 예쁘게 꾸미고 나오길 바라는 손자 손녀들의 눈높이를 맞추느라 고심하는 게 요즘 황혼육아 할머니들의 현실이라서다.

이제는 아들도 딸도 백년손님!

다시 사위 이야기로 돌아간다.

"우리 사위는 고기를 되게 좋아해. 내가 LA 갈비나 삼겹살구이를 해놓으면 손주 녀석이랑 막춤을 추고 난리야. 고기 영접 세리모니라나. 장모님 최고라고 엄지 척을 해가면서, 아부를 하는데. 이게 밉지가 않아요. 돈이 많이 들어서 걱정이지만."

"그러게. 나도 주말에 오는 사위 입맛에 맞춰 밥상을 차려주면 아주 좋아 죽더라. 동북아에서 최고로 맛있는 된장찌개라느니 온갖 듣기 좋은 말을 해대서 귀가 간지러울 지경이야. 어쨌거나 내가 잘해주면 사위가 내 딸한테 잘해 주겠지 싶어서 메뉴에 신경을 쓰게 되더라고."

사위를 부르는 호칭을 '김서방,' '이서방'에서 그냥 이름으로 바꾼 친구도 둘이나 된다.

"본인이 아무개 서방으로 불리는 걸 조선시대 같다고 안 좋아해.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더라고. 그게 더 정답고, 진짜 가족 냄새가 난다나."

다들 공감하는 분위기다.

"어떨 땐 멀리 살아서 데면데면해진 아들보다 함께 사는 애교쟁이 사위가 더 편해. 잠옷 바지를 뱀허물처럼 벗어놓고 출근해 버릴 땐 진짜 얄밉지. 거기다 잠옷 잘 개켜라, 물건 좀 어질러 놓지 마라. 나이 40 넘은 사위인데, 장모의 폭풍 잔소리를 들으려니 얼마나 싫겠어. 그래도 내가 좀 심란해 보이면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려주고, 과일을 깎아 주고, 아주 눈치가 백단이야."

때론 딸의 부부 싸움에 3자 개입할 일도 생긴단다.

"사위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날이 잦으면 딸이 구시렁대다가 싸우기도 하더라고. 또, 주말에 사위가 컴퓨터 게임을 새벽까지 하고 늦잠을 자는 것도 문제야. 밀린 집안일을 한꺼번에 해야 하는데 사위가 종일 소파에 축 늘어져 있는 모양이더라고."

"맞아. 주말에 내 딸은 동동거리면서 아이들 챙기고 집안일을 하는데 사위는 태평이니, 그걸 보면 좀 화가 나더라. 맞벌이들의 가사 분담 비율은 아무래도 여자 쪽이 더 높잖아. 서로 부딪칠 수밖에 없어. 눈에 보이는 갈등 말고 내가 모르는 그들만의 사안들도 있을 거고. 어쨌든 그럴 때 딸 편을 일방적으로 들지 않고, 되도록 중립을 지키려고 해. 그게 힘들 땐 부부싸움 실컷 하라고 그 자리를 피해주기도 하지."

그녀들은 딸네 집 경제 구조에도 관심이 지대하다.

"내 사위랑 딸은 전세 아파트를 공동명의로 해놨어. 월급 타면 공동 생활비를 각출한 다음엔 각자 관리하는 거 있지. 딸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게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 서로에게 좋다나. 우리 젊은 시절 하고는 생각이 많이 다르지만, 뭐 이건 그들이 결정할 문제니까."

"정말 그래. 결혼을 하건 안 하건 나이 30 넘은 아들·딸하고는 부모·자식 사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인간관계로 봐야 되더라고. 자식을 독립된 인간으로 보는 훈련도 해야 되고 말이야. 결국 모든 인간관계의 룰이나 예의를 부모가 먼저 지켜야 되는 거 같아."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 키우고 딸 키우고 이제 사위까지 키우다 보니 알게 된 게 있어. 사위뿐 아니라 아들도 딸도 백년손님이라는 거야. 전생의 빚쟁이들이 이번 생에 빚 받으러 온 거, 이것도 맞는 이야기지. 하하. 입장을 바꿔서 나도 그들에게 귀한 손님 대접 받고 싶은데, 이건 아직 좀 먼 거 같아."

덧붙이는 글 | 정경아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chungkyunga)에도 업로드됐습니다.


태그:#사위아들, #황혼육아, #백년손님, #가족변화, #사위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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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울 것 하나 없는 직장생활 30여년 후 베이비부머 여성 노년기 탐사에 나선 1인. 별로 친하지 않은 남편이 사는 대구 산골 집과 서울 집을 오가며 반반살이 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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