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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쓴 지 4개월이 넘었다.
▲ 친구가 평화를 원하는 바람을 담아 그린 그림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쓴 지 4개월이 넘었다.
ⓒ 김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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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 아기를 재우다가 설거지를 하다가 어질러진 집을 청소하다가, 휴대폰 알람이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눈을 감는다. 두 손을 모으고 "생.명.에.게. 평.화.는. 전.부.입.니.다."라고 읊조리면서.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일상을 간절히 빈다. 벌써 4개월째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폭격을 시작했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그 소식을 전해준 남편이 농담하는 줄 알았다. 평소 "오늘 또 애들 셋 하고 전쟁이었잖아"라고 말하는 정도가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연일 보도되는 뉴스를 보다 폭탄이 떨어져 무너진 병원 건물 잔해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걷는 만삭의 임산부가 찍힌 사진 한 장에 눈길이 멈추었다. 실재하는 일인데 너무나 참혹해서 차라리 영화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이 싫었다. 내일이면 끝나겠지, 며칠이면 끝나겠지 하며 전쟁의 끝을 낙관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우리는 무얼 할 수 있나

며칠이 지나 시장에 갔더니 "전쟁이 나서 연어가 이제 비싸져요! 마지막 가격!"이라며 판매하고 있었다. 3월 초에 받기로 한 아빠의 새 차가 전쟁 때문에 부품 수급이 늦어져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엄마의 말을 들었다. 전쟁이 내게 미치는 영향은 연어회를 먹기 힘들어지고, 내 가족이 불편을 겪는 정도였다.

아이들은 오늘도 학교에 갔고, 남편은 회사로 갔다. 두 돌이 안 된 막내 아이와 놀다 보면 저녁이 되고, 가족들이 집으로 돌아와 함께 밥을 먹었다. 멀리 사는 엄마의 안부를 전화로 확인할 수 있고, 언제든 만나러 갈 수도 있다. 여전히 나와 가족들의 일상은 안전했다.

하루는 아기가 밖에서 잠이 들어 집으로 오는 마을버스를 기다렸다. 같은 정류장에서 지팡이에 의지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할아버지와 함께 탔다. 달걀 한 판, 휴지 한 팩을 들고 버스에 오른 할아버지는 목적지에 버스가 멈춘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천천히 짐을 챙겨, 높은 버스의 계단을 한 칸, 한 칸 조심히 내려가셨다.

먼저 내린 승객이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다른 승객은 짐을 내렸다. 그리고도 버스 옆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가시는 동안, 버스 기사님과 승객 모두가 가만히 기다렸다. 그날 그 장면을 오래도록 생각하면서, 한 사람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여전히 내 주변에 많이 있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동시에 나와 내 주변의 안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전쟁이 곧 끝날 거라 생각 한 건,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안전이 일시적일 수도 있음을 확인하게 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을까. 순진한 믿음은 더 큰 두려움을 외면할 수 있게 하니까. 만삭의 임산부가 견뎌야 하는 고통에 비해 순조로운 나의 일상은 죄책감이 되었다. 이웃에 사는 한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이라고 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얘기를 나누면 어떠냐고 먼저 물어봐 주었고, 그러자고 했다. 동네 친구들 다섯 명이 모였다.

지난 1월에 아이들과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를 봤던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13살 큰아이가 학교에서 본 적이 있다며, 가족들과 영화를 보는 시간에 함께 보자고 했다.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을 볼 때부터 가슴을 졸이면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던 10살 둘째 아이는, 순박했던 진태(장동건 역)가 사람을 죽이면서 살기로 가득 찬 눈으로 변한 모습을 보자, 그만 보고 싶다고 울었다.

고작 2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는 멈추었지만, 아이의 머릿속에서 그 장면은 계속 재생되고 있는지 여러 날 진태의 눈이 생각난다며 밤잠을 설쳤다. 우크라이나에서 '현실 속 전쟁'에 놓인 10살 아이들은 지금 어떤 밤을 보내고 있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진다고 말했다. 이어서 다른 친구들이 얘기했다.

서로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니, 먼 나라의 전쟁에 각자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 친구가 먼저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었고, 다른 친구가 그들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하면 어떻겠냐고 했다. 아이들이 아늑하게 잘 수 있으면 좋겠는 마음으로 밤 시간이 좋겠다고 했다.

지구를 위해 전기를 아끼자는 취지로 오후 8시에 10분간 불을 끄는 캠페인에 참여했던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아이들이 잠들기 전인 9시에 모두 기도를 하기로 했다. 다 같이 휴대폰에 알람을 맞추었다. 또 다른 친구는 평화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그림을 그려 공유해주었고, 모두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처음에는 기도가 많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옆에 있는 아기와 같이 한다. "우크라이나에 있는 아기도 엄마와 책 보면서 편안하게 잠들게 해 주세요" 하고. 집안일을 하고 있을 때 알람이 울리면,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합시다"라고 짧게 말한다. 며칠 전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던 13살 큰아이가 내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듣고 시계를 보더니 "기도하는 시간이네. 우크라이나에 있는 아이들도 나처럼 편한 저녁을 보낼 수 있게 해주세요!" 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책 '전쟁일기' 속 이미지
 책 "전쟁일기" 속 이미지
ⓒ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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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길어질수록 전쟁의 참혹함에 무뎌지듯, 평화를 바라던 절실한 마음이 느슨해지고 있었다. 그때 우크라이나에서 그림책 작가로 살던 올가 그레벤니크가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전쟁에 맞서 살아남기 위해"(9쪽) 써내려간 글과 그림을 엮은 책 <전쟁일기>를 보았다.

전쟁이 나기 전날 밤, 그녀는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미래에 대해 오붓하게 얘기를 나눴다. 5시간 만에 폭격 소리에 몸을 피해 지하실 생활을 시작하고, 9일째 되는 날 아이들을 위해 엄마와 남편과 자신의 35년의 삶을 떠난다. 어린아이 둘과 강아지를 데리고 피란에 나서게 된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의 기도가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한 기도지만, 나와 우리를 위한 기도이기도 하다는 걸 알았다.

전쟁으로 모든 일상이 마비되었을 때에도 작가인 올가 그레벤니크의 곁에 사람들이 있었다. 지하실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이 있었고, 택시 구하는 걸 돕는 대학 동기들이 있었으며, 비행기표 끊을 때 도움을 준 러시아 여자가 있었다. 이 기도가 무슨 도움이 될까, 의심이 들면, 같이 기도하고 있을 친구들을 떠올린다. 내 곁에 같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하다.

평화에 대한 희망을, 강자의 승리에 거는 대신, 지금 여기에서 나와 같이 기도하는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서 본다.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일상의 안전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들의 안전을 빌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꼭 전쟁만이 아니더라도 일상이 무너질 위험은 얼마든지 있다. 모든 위험을 사전에 막는 일은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고통을 함께 통과할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더 효율적이라는 걸 더 확신하게 됐다.

우리가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구 한쪽에서 그들의 삶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함께 이 시간을 통과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오후 9시. 오늘도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두 손을 모으고 작게 말한다.

"생명에게 평화는 전부입니다, 평화롭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빕니다."

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올가 그레벤니크 (지은이), 정소은 (옮긴이), 이야기장수(2022)


태그:#전쟁을 멈춰요, #우크라이나, #멈춰요 전쟁, #평화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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