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지난해 6월 2일, 주오사카총영사 임기를 마치고 귀국했으니 국내 생활을 한 지도 꼭 1년이 지났다. 하지만 마음으로 느끼는 시간 감각으로는 귀국한 지 몇 년이나 지난 듯하다. 그만큼 국내외의 정세 변화가 격심한 탓일 것이다.

국내에서는 올해 3월 9일 치러진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진보성향의 정부가 보수성향의 정부로 바뀌는 큰 변화가 있었다.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역사문제를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바람에 한일관계가 엉망이 됐다'는 기본 인식을 갖고 있으니 한일 역사갈등 해결을 위한 접근방법도 이전 정부와 상당히 다를 게 분명하다.

아직 구체적인 해법이 나오지 않아 예상하기 힘들지만 대법원 판결 및 국내 이해 관계자들의 요구, 일본 정부의 기대 수준을 동시에 만족하는 해법을 찾기가 녹록하지 않을 것이다. '집단 기억'의 문제가 된 역사갈등을 정부 사이의 정치적 합의로, 그것도 어느 한 정부의 임기 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은 그동안의 경험이 잘 보여준다. 6월 중에 예정됐던 박진 외교부장관의 일본 방문 및 나토 정상회의(6월 29~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조율하던 윤석열 대통령-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 무산은 역사 갈등 풀기의 난항을 예고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색된 한일관계라지만... 민간 교류는 활발했다
 
김포-하네다 항공노선 운항이 재개된 6월 29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에서 탑승객들이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
 김포-하네다 항공노선 운항이 재개된 6월 29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출국장에서 탑승객들이 출국 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전 세계를 공포와 위험으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감염 사태는 최근 급속하게 잦아들고 있다. 내가 귀국하던 1년 전, 한때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북적대는 바람에 김포공항인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했던 오사카의 간사이국제공항은 코로나 여파로 개점휴업 상태였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해서는 일사불란한 코로나 방역체제를 몸소 경험하면서 정보통신 기술을 바탕으로 한 우리나라의 코로나 방역시스템이 왜 세계적으로 칭찬받는지 새삼 깨달았다.

드디어 코로나 감염 사태가 정점을 찍고 6월부터는 각국의 국제공항도 점차 전성기 때의 활기를 찾기 시작한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우리나라가 6월부터 해외 관광객에게 활짝 문을 열기 시작했고 일본도 6월 10일부터 '단체관광'에 한정한다는 조건으로 해외 관광객을 받아들이기로 하면서 한일간 민간교류도 드디어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일 민간교류 1000만명 시대'를 연 2018년의 재래가 자못 기대된다.

내가 오사카총영사로 일했던 2018년 4월부터 2021년 6월까지 3년 동안 정부 사이의 한일관계는 바람 잘 날이 없을 정도로 나빴다. 2018년 10월 말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법원 전원합의부 판결이 나온 것을 계기로 관계가 험악해지기 시작하더니 2019년 7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반도체 재료 수출금지 보복 조치와 이에 맞서 일어난 우리나라 시민들의 '노 재팬' 운동 전개로 한일 갈등 전선은 경제와 민간 분야까지 확대됐다. 또 우리나라 정부가 일본의 통상 보복에 맞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파기 카드를 커내면서 안보 분야의 협력도 흔들렸다.

이런 속에서도 위안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견줘 넓어지고 깊어진 민간교류가 그것이다. 정부 사이에는 갈등과 대립이 격화했지만 민간 사이의 교류와 협력은 큰 지장을 받지 않고 확대·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총영사로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고 관찰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과거 가난한 재일동포 밀집 거주지였던 오사카시 이쿠노구의 코리아타운은 한일교류의 심화와 함께 민간교류의 상징적인 마당으로 일변했다. 평소에도 많은 일본 청소년이 찾는 명소였지만 코로나 와중에서도 손님이 줄기는커녕 늘었다. 쿠로몬시장 같은 오사카 시내의 큰 상점가는 파리를 날렸지만 이쿠노의 코리아타운은 코로나 사태로 한국을 갈 수 없게 된 일본 사람들이 한국의 맛과 멋을 즐기려고 몰려들었다. 찾아오는 손님이 사용할 공중화장실이 없어 상점 주인과 손님들이 비명을 지를 정도였다. 또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려는 일본 사람들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시험장을 확보하기 어려운 사태도 벌어졌다.

코로나 사태는 한류 문화가 일본 가정 속으로 깊숙이 스며드는 계기도 됐다. 코로나 사태로 많은 일본 사람들이 외출하지 못하고 집 안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된 <사랑의 불시착> <이태원 클라쓰> 등 한국 드라마는 최고의 가정 오락물로 떠올랐다. 그전까지 한류 문화의 소비층이 10대·20대 여성이 주류였다면, <사랑의 불시착> 등 한국 드라마 붐은 한류 소비층을 남녀노소 전 계층으로 넓히는 촉매제가 됐다. 나는 이런 현상을 2000년대 초 <겨울연가>의 제1차 한류 붐, 2011년 동방신기 등이 각광을 받은 제2차 한류 붐, 2017년 방탄소년단과 트와이스로 대표되는 제3차 한류 붐에 이은 제4차 한류 붐이라고 부를 만하다고 생각하고, 이를 처음 공론화한 바 있다.

정랭민온의 지속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22.6.29
▲ 대화하는 한미일 정상 윤석열 대통령이 6월 29일 스페인 마드리드 이페마(IFEMA)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2022.6.29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나는 윤석열 정부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한일 간에는 정부는 차갑지만, 민간은 따뜻하거나 뜨거운 '정랭민온(政冷民溫)' '정랭민열(政冷民熱)' 현상이 상당 기간 지속할 것으로 본다. 정부 사이의 한일관계 악화는 지도자 사이의 궁합이 맞지 않거나 성향이 틀린 데서 오는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면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일관계를 규율했던 구조가 변한 데서 온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환경은 1990년 초 냉전의 해체와 한국의 급속한 민주화 및 경제성장, 중국의 급부상 등으로 구조적으로 크게 변했다. 이런 구조 변화는 국력 격차의 축소와 함께 양국 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꿔놨다. 이에 따라 예전 구조(앙시앙 레짐) 속에 잠복돼 있던 갈등이 드러나면서 더욱 첨예하게 불거지게 됐다.

결코 없던 갈등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쉽게 말해 1965년 당시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바둑에 비유하면 9점을 깔고 두는 바둑이었다면, 지금은 2~3점을 깔고 두는 바둑으로 상황이 변했다. 1965년 한일 사이의 역학관계를 반영해 애매모호하게 처리 또는 배제된 식민지 지배 청산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나는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해결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 수밖에 없는 역사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를 연계하지 말고 분리해 해결을 모색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경제·민간교류·환경·복지·재난 등 한일 사이에 서로 손을 잡으면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는 더욱 협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본다.

'투 트랙' 접근 방법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내가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상호 작동하는 투 트랙'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아무리 좋은 방안이라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박근혜 정부 초기의 위안부 해결 방식과 아베 정부 이후의 일본의 과거사 해법은 둘 다 상대의 굴복을 강요하는 '원 트랙' 외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상대에 굴복을 요구하는 외교는, 앞에서 말한 한일관계의 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없고 작동할 수도 없다.

한국행 비자 때문에 밤샘... 이 사진에 눈길이 갔다
 
6월 1일 오후 일본 도쿄 소재 주일본한국대사관 영사부 앞에서 한국 여행을 위한 비자(사증)를 신청하려는 일본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6월 1일 오후 일본 도쿄 소재 주일본한국대사관 영사부 앞에서 한국 여행을 위한 비자(사증)를 신청하려는 일본인들이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귀임 이후 1년 뒤의 일본 모습이 궁금하던 차에 도쿄발로 나온 한 장의 사진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6월부터 우리나라에 대한 해외 여행객 입국이 허용되면서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 영사부에 관광 비자를 받기 위해 밤샘 대기를 하는 일본인들의 행렬을 찍은 사진이다.

일본 사람들이 새로 출시되는 전자제품이나 게임기 등을 먼저 사기 위해 줄 서는 것은 유명하지만, 그것이 한국행 비자를 받기 위한 줄이라는 게 놀랍기만 하다. 아마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일본 사람들이 한국 관광 비자를 받기 위해 밤샘 대기를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런 현상은 도쿄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오사카, 후쿠오카 등의 일본 전역에 있는 9개의 영사관에도 갑자기 몰려드는 관광 비자 행렬에 인원을 재배치하고 접수 번호표를 발행하는 등 정신이 없다고 한다.

역시 궁금하던 차에 오사카 이쿠노의 코리아타운 모습도 탐문해 보니, 그쪽도 한류 열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단지 열기를 수동적으로 흡수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코리아타운을 한일 상생, 협력의 기지로 적극적으로 만들려는 작업이 체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귀임한 뒤 동, 서, 중앙 세 개로 나뉘어 있던 코리아타운상가회는 하나의 연합 상가회로 통합됐다. 이곳에서 떡집으로 시작해 코리아타운과 재일동포 사회를 대표하는 식품회사로 성장한 도쿠야마물산의 전 회장이었던 화가 홍성익씨가 연합 상가회를 이끌며 코리아타운의 활성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총영사 시절 마지막 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코리아타운의 공중화장실도 잘 기능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매우 기뻤다. 오사카시가 부지를 제공하고 한국 정부(재외동포재단)가 사업비를 대어 한국 기와집 형태의 공중화장실을 짓는 사업을 귀임 직전에 완성했고, 관리는 상가회가 맡아서 하고 있다.

한일관계가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일 정부와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서 이룩한, 한일 정부와 지역사회 삼자의 협력 사업이다. 올해부터 폐교된 코리아타운의 미유키모리소학교를 한일 민간교류의 거점으로 만드는 작업도 착실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재일동포 100년'을 조망하자
 
일본 이쿠노 코리아타운의 백제문.
 일본 이쿠노 코리아타운의 백제문.
ⓒ wiki commons

관련사진보기

 
오사카에 사는 재일동포들은 오사카를 '재일동포의 수도'라고 부른다. 전체 재일동포들이 가장 밀집해 사는 도시라는 점에서 보면, 충분히 그리 부를 만하다. 2020년 6월 일본 법무성 발표에 따르면, 전체 43만5459명의 한국적 재일동포의 29.5%인 12만8533명이 오사카총영사관 관할 지역에 살고 있다. 오사카부에만 10만 명 가까운 동포가 산다.

하지만 질적으로 수도라고 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숫자에 비해 이 지역이 재일동포 전반에 관한 발신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관해 고개가 갸웃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오사카 소재 대학에는 한일관계나 재일동포 문제를 연구하는 변변한 연구소 하나가 없었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나의 재임 중에 오사카시립대학 안에 비록 작은 규모지만 '오사카 코리안연구 플랫폼'을 만들었다.

정랭민열의 분위기 속에서 오사카 현지의 재일동포 사회에서 최근 의미 있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쿠노 코리아타운에 '재일동포 역사자료관'을 만들자는 시민운동이다. 나는 이런 움직임을 더욱 확대해 재일동포의 정착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역사와 삶을 잘 간직하고 있는 오사카에, 재일동포 100년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는 '재일동포 기념관'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현재 도쿄의 민단 본부 건물 안에 '재일한인 역사자료관'이 있지만, 그것과 차원이 다른 살아 있는 기념관이 됐으면 한다. 재일동포의 역사는 한일병탄 전후부터 시작됐지만 본격적인 재일동포의 역사는 192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마침 내년은 1923년 오사카와 제주도를 잇는 연락선이 생긴 지 꼭 100년이 되는 해다. 오사카의 재일동포 역사, 더 나아가 일본의 재일동포 역사는 오사카-제주를 잇는 연락선의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이 배를 타고 가장 많을 때는 전체 제주 도민의 4분 1 정도가 오사카로 건너왔고, 이들이 일본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재일동포 역사의 한 중요한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제주-오사카 연락선 출항 100주년이 되는 2023년을 목표로 재일동포 사회와 한일의 시민사회가 힘을 합쳐 재일동포 기념관을 세운다면 그동안 '버려진 존재'로 취급됐던 재일동포와 관계뿐 아니라 한일관계에도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게 될 것이다. 방식은 교토 우지시에 있는 우토로평화기념관 설립 방식을 따르면 될 것이다. 한일 양쪽의 시민사회가 먼저 움직임이고, 한일 정부 또는 한국 정부가 힘을 보태는 식이다.

재일동포 기념관은 일시적인 한일관계 부침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적으로 한일관계를 굳게 다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재일동포야말로 한일관계의 어둡고 밝은 면을 함께 간직하면서, 한일관계의 족쇄로 작용하는 민족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일 양국의 시민이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되는 살아 있는 양국 사이의 역사를 생생하게 배우는 장소로 재일동포 기념관만한 것이 없고, 그 장소로 온전한 재일동포의 삶이 녹아 있는 오사카 코리아타운만한 곳이 없다고 본다. 한일관계가 어려운 때이기에 더욱 민간 차원에서 한일 양국을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접착제로서 재일동포 기념관을 꿈꿔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서울대 일본연구소에서 발행하는 관정일본리뷰 제55호(6월 29일자)에도 게재됐습니다.


댓글6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문제 평론가로 일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서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