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영화 <헤어질 결심> 포스터 ⓒ CJ ENM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에 호감을 갖게 되고 서서히 물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이 사랑이라고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가고 그 상대방을 관찰하게 된다. 가능하면 눈에 띄지 않게 멀리서 상대방을 보다가 이내 가까운 위치로 가서 대화를 나눈다.

물론 그렇게 마음을 나눈다고 해서 모두 연인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이 보내는 신호를 상대방이 잘 알아채고 그 신호를 다시 상대에게 돌려보내는 과정을 거쳐 사랑을 확인하고, 그 이후에 비로소 연인이 된다.  

동시에 사랑이 시작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는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사랑의 감정을 상대가 알아채기까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그 알아채는 시점이 잘 맞지 않으면 서로의 감정은 어긋나고 그 사랑은 슬픈 결말로 귀결되기도 한다.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은 꽤 아름답지만 가슴 아프기도 한 이유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를 담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타나는 감정의 시차를 담은 영화다. 베테랑 형사인 해준(박해일)이 산에서 추락사한 남자를 수사하게 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죽은 남자의 아내인 중국인 서래(탕웨이)가 용의자로 지목되고, 해준과 서래는 형사와 용의자의 관계로 처음 만나게 된다. 묘한 감정을 느끼는 두 사람. 영화는 특히 해준이 서래에게 느끼는 사소한 감정을 행동으로 전달하기 시작한다. 해준이 서래에게 느낀 감정은 우선 용의자로서의 의심이다. 상대방에 대한 의심으로 시작했지만 묘한 분위기에 끌리고 서래에게 최대한의 예우를 한다. 그때부터 해준은 자신의 감정과 행동이 의심 때문인지 상대방에 대한 호감 때문인지를 혼란스러워한다.

중국인인 서래는 한국으로 건너와 정착하기 위해 남편과 결혼을 택했다. 외국인이기 때문에 짧은 시간 동안 배운 한국어가 서툴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쓰는 단어나 문장이 아닌 조금은 특별해 보이는 단어를 선택해 이야기하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어쩌면 그런 묘한 분위기 때문에 해준이 더욱 서래를 의심하게 됐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호감으로 변해갔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도 늘어난다. 해준은 호감의 감정을 조금씩 전달하지만 그게 사랑의 감정이었다는 사실을 서래는 한참 지나서 깨닫는다. 
 
 영화 <헤어질 결심> 장면

영화 <헤어질 결심> 장면 ⓒ CJ ENM

 

그 이후 영화는 몇 개월 후로 시점을 건너뛴다. 그리고 지방으로 발령받은 해준과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하여 생활하고 있는 서래가 우연히 만난다. 그때 해준은 서래의 시선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서래는 피하지 않는다. 이때 서래의 남편이 다시 죽음을 맞이하면서 해준의 의심은 커지고 그에 따른 분노도 커진다.

그러니까 해준의 의심이 커질수록 영화의 극적 긴장감은 높아지게 된다. 서래의 진심은 거의 말미에나 드러난다. 그래서 서래가 진짜 범인인지, 그가 해준을 대하는 감정은 무엇인지 끝에 가서 알 수 있다. 영화 안에서는 '사랑' 이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는다. 적어도 두 등장인물이 서로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가진 감정은 무엇인지 모호하게 보이는 이유다.  

두 사람의 시차

두 사람에게는 언어와 감정의 시차가 존재한다. 일단 둘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 한국어를 쓰지만 중국어를 모르는 해준은 서래가 쓰는 한국어도 어색하다. 서래의 중국어는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영화 중반 서래는 보다 명확한 의미 전달을 위해 통역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한다. 먼저 말을 하고, 그것이 번역된 해준에게 들려진다. 적어도 서래가 중국어로 해준에게 말할 때 둘 사이에 즉각적인 의사소통은 없다. 그렇게 언어적인 시차가 둘 사이에는 늘 있다.

다른 한 가지는 감정의 시차다. 해준 자신도 알지 못했지만, 그가 시작한 사랑의 감정은 서래에게 단번에 전달되지는 못한다. 첫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은연중에 전달되지만 서래는 그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그 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서래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두 번째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해준에게 전달되지만, 그것 역시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서야 해준이 알아챈다.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시점 전환
 
 영화 <헤어질 결심> 장면

영화 <헤어질 결심> 장면 ⓒ CJ ENM

 

영화 <헤어질 결심>을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과거작들에서도 아름다운 미장센과 카메라 전환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번 영화에서도 깨끗하고 아름다운 미장센을 잘 보여줬다. 무엇보다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이 이번 영화에서도 빛을 발한다. 

이 영화에서는 다른 어떤 인물보다 서래라는 인물이 눈에 띈다. 영화에서 가장 늦게 진심을 드러내는 캐릭터이고, 가장 많이 의심받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을 텐데, 서래 역을 맡은 배우 탕웨이는 꼼꼼하게 그의 감정을 표현해냈다.

그가 해준의 사랑을 확인하고 좋아하는 모습과 그 사랑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감정도 그의 연기를 통해 볼 수 있다. 해준 역을 맡은 배우 박해일은 의심스러운 용의자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 

영화 <헤어질 결심>은 아름다운 사랑 영화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장면은 줄었다. 대신 두 인물이 서서히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을 담아냈다. 스릴러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이 영화는 두 남녀의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무엇보다 이들이 겪는 사랑이라는 감정의 시차가 무척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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