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7.05 05:31최종 업데이트 22.07.05 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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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욱(왼쪽) SK머티리얼즈 사장과 야마마스 쇼와덴코 정보전자화학품 사업부 사업총괄이 '반도체 소재 북미 동반 진출 검토'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 SK머티리얼즈

 
반도체 소재기술 기업인 SK머티리얼즈가 전범 기업인 쇼와덴코(昭和電工)와 협력을 확대한다. 두 회사는 지난달 29일 쇼와덴코 도쿄 본사에서 '반도체 소재 북미 동반 진출 검토'를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기술력과 자금력이 특히 많이 소요되는 반도체 관련 분야에서 기업과 사회, 기업과 국가의 협력이 더욱 절실하다는 점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SK머티리얼즈 역시 그런 시스템에 힘입어 발전해왔다. 일례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정부출연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의 작년 3월 16일 자 연구원뉴스 기사인 '온실가스 감축 CO₂ 포집기술 키어솔(KIERSOL), SK머티리얼즈㈜에 기술이전'에서도 그런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위 연구원뉴스는 연구원과 SK머티리얼즈가 CO₂ 포집기술인 키어솔과 관련된 지식재산권 및 노하우를 이전하는 계약을 체결한 사실을 전하면서 "키어솔 기술은 화력발전소나 제철소·석유화학 등 대규모 탄소배출 사업장에서 배출되는 CO₂를 선택적으로 흡수·포집하는 기술로 CCS(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 분야의 핵심 요소 기술"이라고 한 뒤에 이 기술이 SK머티리얼즈의 북미 시장 진출을 도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에너지연과 SK머티리얼즈㈜는 이번 기술이전을 시작으로 키어솔 기술의 규모를 격상하고 국내 CO₂ 포집 사업에 적극 활용해 국가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기여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SK머티리얼즈㈜는 북미 지역의 CCUS 사업 진출을 위한 핵심기술로써 해당 기술을 활용할 계획이다.
 
이처럼 사회 및 국가와의 유기적 협력 속에서 운영되는 기업이므로, SK머티리얼즈가 어떤 파트너와 함께 북미 진출을 추진하는지는 당연히 우리 사회의 관심사다. 협력 상대방이 전범 기업인 경우는 특히 그렇다.
  
한국 착취에 가담했던 기업

일왕(천황) 나루히토의 할아버지인 히로히토는 독립투사 나석주가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와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하고 스스로 순국하기 사흘 전인 1926년 12월 25일 즉위했다. 이날 일본은 연호를 다이쇼(大正)에서 쇼와(昭和)로 개정했다. 쇼와덴코의 회사명은 이 연호에서 딴 것이다.


쇼와덴코의 기원은 19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이 회사명이 사용된 것은 1939년이지만, 이 기업은 니혼요도를 설립한 연도이자 쇼와 일왕이 즉위한 해인 1926년을 자사의 출발점으로 간주한다. 홈페이지(www.sdk.co.jp)에도 니혼요도 설립과 관련해 "이를 창업으로 본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히로히토가 재위한 쇼와시대는 일본의 세계침략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쇼와덴코는 회사명뿐 아니라 경영 방식에서도 '쇼와'다움을 보여줬다. 쇼와시대에 자행된 강제징용에도 가담해 식민지 사람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인권을 탄압했다.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2019년도 일제강제동원 피해 진상조사 학술연구용역 보고서'로 발간한 <일본 지역 탄광·광산 조선인 강제동원 실태>는 쇼와덴코가 운영한 공장이나 광산에서도 한국인 강제동원이 이루어졌다고 알려준다.

이 보고서는 한국인 강제징용이 강요된 탄광과 광산을 소개하는 대목에서 "기업이 운영했던 탄광·광산의 대부분은 폐광되었으나 소속 기업은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라며 <표 9>에서 쇼와덴코라는 회사명을 제시한다. 
 

본문에 인용된 <표 9>.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쇼와덴코는 사도광산이 있었던 니가타현에서도 군수공장을 운영했다. '니가타현의 조선인 노무동원 작업장 목록'이라는 제목이 붙은 <표 15>은 쇼와덴코가 운영한 가노세 공장에서도 한국인 동원이 있었다고 알려준다.
 

본문에 인용된 <표 15>. ⓒ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일본 서해안 중간쯤인 니가타현에서 강제징용이 많았던 이유가 있다. 이곳이 갖는 지정학적 혹은 지리경제학적 의의가 남다른 데에 기인한다.

보고서는 "니가타는 당시 항로가 만주로 연결되어 있어서 군수물자 수송에 중요한 지역이었다"라고 한 뒤 "전시체제기에는 중국 전선으로 보내는 군수물자가 니가타항을 통해 나가고, 만주의 곡식이 니가타항을 통해 일본으로 들어왔다"라고 설명한다. 그런 곳에서 쇼와덴코가 한국인들에게 강제노역을 시켰던 것이다.

쇼와덴코의 한국인 강제징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2020년 5월 26일 자 <프라임 경제> 기사인 '신동빈 롯데회장, 하필 전범 기업에 투자 왜?'에 인용된 이명수 의원의 2011년 9월 16일 자 발표 '일본 전범 기업 1차 명단'에 따르면, 쇼와덴코의 강제징용 작업장은 16곳이었으며 한국 작업장 6곳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기업 경영에서 인건비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본 전범 기업들이 1945년 이전 몇 년 동안 비약적 성장을 이룩한 결정적 원동력은 식민지 대중의 노동력을 공짜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들을 노예처럼 다룬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쇼와덴코 역시 그 같은 부조리한 착취를 발판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성장한 기업 중 하나다.

그런데 쇼와덴코는 또 다른 측면에서도 식민지 한국에 악영향을 끼쳤다. 일본 국가권력과의 합작 하에 한국인들에게 노예노동을 강요했을 뿐 아니라, 직접 한국에 공장을 차려놓고 경제적 이익을 수탈하는 데도 가담했다.

1950년 4월 20일 자 <동아일보> 2면 좌상단은 소련군이 쇼와덴코의 진남포 알루미늄공장 시설을 철거한 사실을 보도했다. 쇼와덴코가 평양 서남쪽인 대동강 입구에서도 공장 시설을 운영했던 것이다.

쇼와덴코는 나석주 의사가 폭파하고자 했던 식민지배기구와도 협력했다. 한국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주도했던 동척과도 제휴했던 것이다.

일본제국주의가 1930년대 후반부터 중점적으로 한 일이 있다. 중국 침략을 가속화할 목적으로 한반도 북부를 대륙침략 병참기지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2020년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발행한 <한국문화> 제89호에 수록된 고태우 서울대 교수의 논문 '식민지기 북선개발 인식과 정책의 추이'는 "우가키 가즈시게의 후임자 미나미 지로 총독은 '북선을 보지 않고 조선을 말하지 말라'는 표현을 여러 차례 사용했다고 한다"라며 "우가키 총독의 주요한 정책이었던 조선 공업화와 북선개척사업은 1930년대 이후 북선 개발에서 핵심적인 사안 가운데 하나가 되었는데, 미나미 총독 부임 이후 북선 개발은 조선 개발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로 떠올랐다"라고 설명한다.

논문에 따르면, 한반도 북부에 대한 경제적 수탈은 식민지 한국의 공업생산에서 함경남북도의 비중을 크게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1930년에 각각 6.0% 및 2.6%였던 함남과 함북의 비율이 1940년에는 각각 23.2% 및 9.4%로 성장했다. 종전에 1위였던 경기도는 1940년에 18.9%를 기록해 2위를 차지했다.

함경도의 공업생산이 증가했다는 것은 이 지역이 발달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공업생산 증대로 인한 이익이 일본인들에게 돌아갔으므로, 이 기간에 함남·함북이 더 많은 착취를 당한 셈이 된다.

일제 당국의 이 같은 한반도 북부 착취에 쇼와덴코도 참여했다. 그것도, 제국주의 수탈 기구인 동척과 손잡고 그렇게 했다. 1939년 12월 27일 자 <동아일보> 4면 좌중단은 "북선의 화학공업" 개발을 위한 쇼와덴코와의 공동사업을 구체화시키겠다는 동척 이사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그달 16일 자 <조선일보> 4면 중앙은 쇼와덴코가 동척과 합작해 함남 공장을 세우게 됐으며 그 부지는 동척 땅이라고 보도했다. 동척이 식민지 한국에서 빼앗은 토지를 쇼와덴코가 넘겨받게 됐던 것이다.

이처럼 쇼와덴코는 일제의 한국 침략과 착취에 가담한 전범 기업이다. 이 기업은 2017년에도 SK머티리얼즈와 합작해 SK쇼와덴코를 설립했다. 그리고 지금은 SK머티리얼즈와 함께 북미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착취에 가담했던 전범 기업이 별다른 입장 표명도 없이 한국 기업과 손잡고 북미로 진출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 의문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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