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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용문학공원과 이어진 교동저수지에 정지용의 시 ‘호수 1’에 나온 조형물이 있다.
▲ 얼굴과 손바닥  지용문학공원과 이어진 교동저수지에 정지용의 시 ‘호수 1’에 나온 조형물이 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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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골 하나야
손바닥 둘로
폭 가리지만,

보고픈 마음
호수만 하니
눈 감을밖에.

정지용의 시 <호수 1>이다. 그는 옥천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됐다. 그가 지은 시는 금지됐다가 1988년에 풀렸다. 해마다 시인이 태어난 5월에 옥천에서 지용제가 열렸으나, 올해는 9월로 미뤄졌다.

폭염 경보가 내린 7월 첫 주말(2일), 파란 하늘에 이끌려 대청호를 찾았다. 시인 정지용을 만나고, 향수호수길을 걸었다.

정지용 생가
 
  마당에 어미 소와 송아지가 있다. 어린이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고 있다.
▲ 정지용 생가  마당에 어미 소와 송아지가 있다. 어린이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고 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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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 생가에 들렀다. 시인이 태어나서 보통학교를 마칠 때까지 살았던 집이다. 초가집 두 채가 정갈하게 꾸며져 있다.

집 앞에 실개천이 흐르고, 마당에 얼룩소가 있다. 어린이가 소를 타고 피리를 불며 즐거워한다. 곁에 송아지 한 마리도 어미 소를 바라보고 있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그의 시 몇 편이 벽에 걸려 있고, 질화로가 방바닥에 놓여있다. 시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정지용 생가 옆에 있다. 그의 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정지용문학관  정지용 생가 옆에 있다. 그의 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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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용문학관에 들어서면 나무 의자에 앉아있다.
▲ 정지용 시인  정지용문학관에 들어서면 나무 의자에 앉아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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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옆에 정지용문학관이 있다. 그가 지은 시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문학관에 들어서면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검은 구두를 신고, 둥근 안경을 낀 시인이 나무 의자에 앉아 있다.

문학자판기도 있다. 버튼을 누르면 시가 인쇄돼 나온다. 두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도록 모으면 손바닥 위로 시가 스크린처럼 지나가기도 한다. 가곡 <향수>가 은은하게 흐른다.
 
  지용문학공원과 이어졌다. 가장자리에 정지용 시에 나온 얼룩소, 얼굴, 홍시와 같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교동저수지  지용문학공원과 이어졌다. 가장자리에 정지용 시에 나온 얼룩소, 얼굴, 홍시와 같은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
ⓒ 정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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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지용문학공원에 갔다. 옥천 구읍의 중심지가 보이는 언덕에 자리 잡았다. '시비문학공원'이었다가 2020년 이름을 바꿨다. 그래서인지 동갑내기인 김소월의 시비도 있다. 박용철과 박목월 같은 시인들의 시비도 있다. 시비광장 위쪽에 있는 시인가벽에는 그의 일대기가 10편으로 나뉘어 새겨져 있다.

시인가벽 왼쪽 너머로 걸어가면 교동저수지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저수지 가장자리에 정지용 시인이 지은 시 <향수> <호수> <홍시>에 나온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길을 따라 벚나무가 우거져있다. 한 바퀴 돌았다. 30분 정도 걸렸다.

향수호수길

정지용 생가에서 향수길과 지용로를 따라 차로 5분쯤 가면 향수호수길이 있다. 날망마당에서 주막마을까지 이어지는 5.6km에 달하는 생태문화탐방로다. 옥천 9경 가운데 제8경이다.

옥천선사공원에 차를 세우고 길을 건너면 들머리다. 길이 넓다. 갈림길이 없어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된다. 호수를 끼고 돈다. 흙길과 나무데크길과 야자매트길로 돼 있어 걷기 좋다. 데크는 비탈 중간에 아슬아슬하게 만들어졌다. 호수 난간 쪽에 기대면 아찔한 곳도 있다.

햇살이 따가웠다. 그늘 길이고 바람이 살랑거리는데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땅에서 후끈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을 잠재울 정도로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금강은 유유히 흘렀다. 아이들이 배를 타고 물길을 가로지르며 환호성을 질렀다.
 
  대청호가 생긴 뒤로 육지 속 섬이 되었다.
▲ 오대리 마을  대청호가 생긴 뒤로 육지 속 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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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호가 만들어질 때 소나무를 베지 않고 쉼터로 만들었다.
▲ 솔향 쉼터  대청호가 만들어질 때 소나무를 베지 않고 쉼터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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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비늘전망대에 섰다. 본래 취수탑이었으나 지금은 전망대 역할을 한다. 앞을 보면 오대리 마을이다. 육지 속 섬마을이다. 마을 앞과 양옆으로 금강이 흐르고, 뒤는 산으로 둘러싸였다. 예전에는 재를 넘고 여울을 건너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하나, 대청댐이 생긴 뒤로는 배로만 드나들 수 있다.

우듬지 데크를 지나면, 며느리재 오르는 곳이다. 고개를 넘던 며느리가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졌다고 전해진다. 봄이면 그의 넋이 새하얀 진달래꽃으로 피어난다고도 한다.
 
  넓은 들판과 맑은 물이 있어 황새들이 날아들던 곳이다.
▲ 황새터  넓은 들판과 맑은 물이 있어 황새들이 날아들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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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새터에 다다랐다. 넓은 들판과 맑은 물이 있어 황새들이 날아들었다던 곳이다. 큰 나무에 둥지를 틀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보호받아야 할 정도로 귀한 새가 됐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향수호수길은 끝났다. 황새터에서 주막마을까지 2.3km는 폐쇄되었다. 위험 구간이어서 보강공사를 할 것이라고 한다. 공사가 끝나면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 주막마을에 주막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
 
  대청호로 향하는 물줄기가 주막마을 쪽으로 흐른다.
▲ 금강  대청호로 향하는 물줄기가 주막마을 쪽으로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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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로 흘러 들어가는 금강은 옥천 한가운데를 지난다. 정지용은 그의 시 <호수 2>에서 금강이 오리 목처럼 구불거리며 흐른다고 했다. 간지러워 목을 자꾸 비틀다 보니 더 구불구불하게 물길이 생겼다고 했다.
 
오리 모가지는
호수를 감는다.

오리 모가지는
자꼬 간지러워.

금강은 대청호가 생긴 뒤 더 아름답다. 정지용 시인은 대청댐이 생기기 전에 금강을 바라보며 시를 썼다. 지금 대청호로 흘러 들어가는 금강 물줄기를 본다면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하다. '사람과 산과 물이 만나는' 대청호 오백리길을 걸으면 누구나 시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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