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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올린 수업계획서.
 나윤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올린 수업계획서.
ⓒ 나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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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목표 및 개요 : "20대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2030 세대 일부 남성들의 '공정 감각'은 '노력과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라는 기득권의 정치적 레토릭인 능력주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중략)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이 속한 노조에 대해 수업권 방해를 이유로 연세대 몇몇 학생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것 또한 같은 사안으로 보인다. (중략)"

하나의 수업계획서가 '청소노동자 고소'로 시끄러운 연세대학교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수업계획서(syllabus)는 보통 대학교 수강신청 전 학생들이 수업에 대한 정보를 미리 파악할 수 있도록 교수가 작성하는 것으로, '수업목표 및 개요'란에는 과목에 대한 짧은 설명 정도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수업계획서는 '수업목표 및 개요'란에 적힌 글만 무려 1200자를 넘긴다. A4 한 장 분량이다. 내용은 더 흥미롭다. 수업 목표가 아예 각종 차별과 혐오 발언으로 지적 받고 있는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다뤄보는 것이다. "본 수업을 통해 '에브리타임'을 민주적 담론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 모색하겠다"고 적혀있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 상에선 '지금 에타(에브리타임)에 떠서 난리 난 수업계획서', '한 주차 주제로 삽입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강의 진행 방식이 에타(에브리타임) 분석이라니 이런 정면배틀 좋아요' 등 학생들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이 수업계획서는 특히 최근 연세대학교 학생 3명이 임금 인상·인원 감축 반대를 요구하며 학내에서 시위를 한 비정규직 청소·경비노동자들에게 형사고소,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데 대해서도 일침을 놨다. 일부 학생들의 "공정 감각"이 유독 "사회나 정부 등 기득권이 아닌 불공정을 감내해온 약자"를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과목의 명칭은 '사회 문제와 공정'. 수업계획서를 작성한 나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에게 6월 30일 전화로 물었다. 그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 임기를 마치고 올 2학기부터 학부 수업에 복귀한다. 

"학생들의 청소노동자 고소, 기성세대로서 당혹감 느낀다" 
  
나윤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나윤경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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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업계획서가 인터넷상에서 화제다. 어떤 취지로 썼나.

"화제가 됐는지 몰랐다. 사회과학 수업이고, 이 사회에 맞게 수업을 디자인해야 하기 때문에 늘 이런 식으로 쓴다."

- 이번뿐만 아니라 원래 이렇게 장문으로 수업계획서를 쓰나.

"그렇다(웃음). 이번이라고 특별히 다르진 않다."

- 수업계획서 내용을 보면 최근 연세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를 형사고소하고 손해배상을 청구한 데 대한 지적도 담겼다.

"이번 일에 대해 기성세대로서 당혹감을 느낀다. 특히나 이런 일이 우리 학교에서 벌어졌다는 것에 대해서,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부끄럽다. 한 명의 선생으로서 더더욱 부끄럽다.

지금 자신이 누구의 그림자 노동 위에서 일상을 꾸려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거다. 우리 사회는 가장 큰 불공정함을 딛고 서 있는 사람들이 공정을 얘기하고 있다. 내가 선생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수업을 개설해서 이를 담론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일단 공정이라는 감각에 대해서 학생들과 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었다."

- 이번 사안을 어떻게 보고 있나.

"나는 이런 문제가 비대면 상황이 길어져서 생기는 측면도 있다고 본다. 대학에 다니다 보면, 사회운동이나 사회변혁에 뜻이 있든 없든, 하루에도 몇 개의 대자보를 보게 되지 않나. 대면 상황에서는 학생·교수 등 구성원들과 알게 모르게 상호작용하면서 그 공동체가 대충이라도 합의하는 내용의 방향을 접한다. '아 이 사안을 이렇게 생각해야 되는구나'라는 감을 잡아가고 서로 성장을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대면 기간이 2년이 넘다 보니 대학생이라고 해도 자신의 생각이 공동체의 지향 방향 중 어디쯤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자기 객관화하고 상대화하는 훈련이 안 된다. 고등학교 정도의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한 명의 선생으로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소송을 제기한 학생 A씨에게 정말 자신이 믿을 만한 교수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A씨에게 정말 괜찮은 어른이 없었던 건 아닐까? 더구나 A씨가 정치외교학과, 그러니까 우리 사회과학대 소속이라고 하더라. 어쩌면 우리 학교, 우리 학과의 커리큘럼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해봐야 하는 대목이다."

- 수업 목표가 '에브리타임'에 대한 고찰이다.

"에브리타임도 코로나 비대면 국면이 이어진 최근 2년간 상황이 더 악화됐다고 들었다. 이번에 A씨도 '에브리타임'에서 같이 소송할 학생들을 모집하지 않았나. 이 세대가 '댓글 세대'로서의 특수성도 있는 것 같다. 소통이 상호작용하는 게 아니라 일방적이다. 한 번 발화하면 끝이다. 그냥 말을 내뱉고 '아싸, 내가 저것들 작살냈어' 하고 마는 것이다.

언어가 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값어치를 지니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사실 그거야 말로 반지성이다. 그런 언어를 쓰는 학생들이 학력자본을 갖고 사회에 나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되겠나. 지성의 전당인 대학에서 이런 멸시의 언어가 범람하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을과 을이 싸우면 누가 득 볼까?"

- 이번에 학생들에게 고소당한 연세대 청소·경비 노조의 경우, 2007년 결성 당시엔 학생들이 큰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수업계획서 글에서도 "2030 세대의 공정 감각"을 지적했는데, 교육 현장에서 최근 학생들이 과거와 다른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 체감되나.

"굉장히 다르다고 느낀다. 저는 이번 일이 저번 '인국공 사태(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인천국제공항이 세계 어느 다른 공항보다도 빨리빨리, 깨끗하게 운영되는 이유가 뭐였나. 싸게 많이 고용된 비정규직 직원들 때문이었다. 청소·경비·보안 등 비정규직 노동의 토대 위에 정부 평가도 잘 받고 해외에서도 인정받아서 정규직들의 인센티브나 급여가 높아진 것 아닌가.

학교도 마찬가지다. 청소노동자들이 일주일만 파업하면 어떻게 될까? 학교 못 다닌다. 교수는 없어도 된다. 인터넷에 돌고 도는 게 사회과학 서적이고 지식이다. 단언컨대 교수 없어도 된다. 근데 청소하는 노동자는 분명히 있어야 한다. 우리가 코로나 시대를 살면서 얻은 교훈이 뭔가. 무엇이 '필수 노동'이고 무엇이 '필수 노동'이 아닌지가 완전히 드러났지 않나. 연세대학교라는 학교가 지금 누구의 희생과 불공정에 토대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한다."

- 수업계획서 글에서 2030 세대들의 '공정 감각'이 강자가 아니라 약자를 향한다고 지적했다. 그 원인은 뭔가.

"사회의 가치가 다양하지 않아서다. 우리 세대의 책임이다. 사회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모두가 대기업을 가야 하고 정규직이 돼야 한다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쓰러뜨리고 밀치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나. <오징어게임> 같은 거다. 그 드라마에서 누굴 밀치나. 노인과 여자들, 약자들이다. 지금 세대 학생들이 자기 이익에, 눈앞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것을 못 견디는 이유다."

- 연세대 청소노동자 고발 건을 두고서도 '을과 을의 싸움'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런 면이 있다. 드라마 <38사기동대>에 나오는 악역이 하는 대사 중에 이런 게 있다. '한국이 좋은 게 뭔지 아냐? 을들이 자기네끼리 싸운다는 것.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어도 돼.' 나는 이 대사가 그 드라마의 백미라고 봤다.

지금 학생들이 청소노동자와 싸우면서 가장 득을 보는 주체는 누굴까? 학교다. 학생들에게 수업권을 보장해야 하는 주체는 학생들에게 비싼 등록금을 받는 학교 아닌가? 군가산점제도 마찬가지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여자도 군대 가라'며 싸울 때 가장 좋은 건 누굴까? 정부다. 남자들은 군대 내 시설과 인권을 강화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뭔가 심각하게 놓치고 있다."

- 근래에 '20대 남성(이대남)'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그건 어떻게 봤나.

"사실 이들을 '유권자'로만 생각하지 않았다면 많은 개입이 있었을 거라고 본다. 이 역시 기성 세대의 잘못이다. 이들은 단순히 '유권자'일 뿐만 아니라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많은 젊은 집단이고, 사회와 기성세대로부터 많은 걸 배워가는 과정에 있는 세대다. '청년'이라면서 어디로 모셔가고 자리를 주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이런 얘기하면 '꼰대' 소리 듣는다지만, 이 시대는 진짜 어른 역할을 할 수 있는 어른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역할 하라고 어른들이 월급 더 받는 것 아닌가. 받는 만큼 할 노릇은 해야 되는 것 아닌가."

-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대학에 있는 사람이니까 대학 얘기를 하겠다. 학교가 할 일이 많다고 본다. 계속 학생들 얘기를 듣고, 또 가르쳐야 한다. 기성세대가 계속 학생들 기 죽이는 말로, '나 때는 말이야' 하면서 입을 막아선 안 된다. 그래서 무슨 대화와 사유가 진전되나. 특히나 나는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민주시민으로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람이다.

희망이 없다고 보진 않는다. 얼마 전 여름 계절학기 수업을 시작했다. '가족과 문화'라는 수업인데 하루하루 학생들 표정이 달라지는 걸 느낀다. 학생들에게 이런 식의 상호작용할 기회가 필요했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를 하는데, 학생들에게 그랬다. '페미니즘이 답이다, 이것만 옳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다. 페미니즘의 사유 방식과 당신의 기존 생각을 경합시켜보라는 거다. 그래서 사유의 폭을 넓히고 확장해라. 그게 민주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나는 당신들을 민주시민으로 만들 의무가 있어서 그렇다. 페미니즘을 꼴페미라고 단정짓고 귀 닫고 분노하지 말고, 당신의 기존 생각과 경합시키는 과정만 내게 보여달라. 그거면 된다.'

내가 남학생들 표정을 계속 보고 있는데, 점점 표정이 진지해지는 걸 확실히 본다. 어제까지 엎어져서 자던 두 명의 남학생들이 오늘은 질문도 하더라. 그게 대학의 역할이다. 근데 사실 쓰고 보니 '에브리타임' 수업은 폐강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웃음). 신청자가 20명 미만이면 폐강인데. 학생들이 수업계획서 보고 지원하지 않는 거 아닐지..."

이 수업은 폐강되지 않고 개설될 수 있을까? 다음은 나 교수의 수업계획서 중 '수업목표 및 개요' 전문이다.

"에브리타임이라는 학생들의 일상적 공간을... "
 
나윤경 교수의 수업계획서에 대한 트위터 반응.
 나윤경 교수의 수업계획서에 대한 트위터 반응.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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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선 과정에서 드러난 2030 세대 일부 남성들의 '공정 감각'은 "노력과 성과에 따른 차등 분배"라는 기득권의 정치적 레토릭인 능력주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한국의 현 대통령은 늘 공정과 상식에 기반해 능력 위주로 인재를 발탁한다고 하면서 검사들만을 요직에 배치한다.) 기회와 자원에 있어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상대적 박탈'을 경험하는 한국의 2030이 왜 역사적으로 가장 많은 특권을 향유하는 현재의 기득권을 옹호하는지는 가장 절실한 사회적 연구 주제다.

이들의 지지를 업고 부상한 30대 정치인은 '청년 정치'가 줄 법한 창조적 신선함 대신 '모든 할당제 폐지' '여가부 폐지'를 주장하는가 하면 20년간 이동권을 주장해온 장애인 단체의 최근 출근길 지하철 투쟁에 대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며, 그렇지 않아도 기득권 보호를 위해 한창 채비 중인 서울의 경찰 공권력 개입을 강하게 요청했다.

누군가의 생존을 위한 기본권이나 절박함이 '나'의 불편함과 불쾌함을 초래할 때,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축적된 부당함에 대해 제도가 개입해 '내' 눈 앞의 이익에 영향을 주려 할 때, 이들의 공정 감각은, 사회나 정부 혹은 기득권이 아니라, 그간의 불공정을 감내해 온 사람들을 향해 불공정이라고 외친다.

연세대 청소 노동자들이 속한 민노총에 대해 수업권 방해를 이유로 연세대 몇몇 학생들이 소송을 준비하는 것 또한 같은 사안으로 보인다. 연세대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 의무는 학교에 있지 청소 노동자들에게 있지 않음에도, 학교가 아니라 지금까지 불공정한 처우를 감내해온 노동자들을 향해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그들의 '공정감각'이 무엇을 위한 어떤 감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 눈앞의 이익을 '빼앗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향해서 어떠한 거름도 없이 '에브리타임'에 쏟아내는 혐오와 폄하, 멸시의 언어들은 과연 이곳이 지성을 논할 수 있는 대학이 맞는가 하는 회의감을 갖게 한다. 현재 대학의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은 대학 내 혐오 발화의 온상이자 일부의, 그렇지만 매우 강력하게 나쁜 영향력을 행사하며 대표를 자처하는 청년들의 공간이다.

대학이 이 공간을 방치하고서는 지성의 전당이라 자부할 수 없다. 연세대가 섬김의 리더십을 실천하는 고등교육기관이라 할 수 없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 수업을 통해 '에브리타임'이라는 학생들의 일상적 공간을 민주적 담론의 장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을지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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