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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텃밭에서 농사지은 감자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 이교숙씨 직접 텃밭에서 농사지은 감자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 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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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숙(65)씨는 1급 지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들을 위해 고향을 버리고 귀촌을 결심했다.

경기도 오산에서 번암면 방화동으로 귀촌한 지는 올해로 6년째이며, 방화동에서 힐링산장이라는 펜션을 운영 중이다.

이교숙씨의 큰아들(故 조주현)은 1급 지체장애가 있어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이 바쁘거나 시간이 없으면 아들을 자주 볼 수 없었다는 것. 큰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공기 좋고 살기 좋은 곳으로 아들과 함께 귀촌을 결심했다고.

이교숙씨는 "아들과 이곳으로 귀촌을 하고 3일 동안 밥도 같이 먹고 산책도 다니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아들이 3일 후에 아무 말도 없이 하늘나라로 떠나 버렸어요"라며 "이곳으로 귀촌한 이유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 왔는데, 아들이 기다려주지 않고 하늘로 떠나 버렸네요"라며 울먹이며 말했다.

이교숙 씨 큰아들은 40살에 하늘나라로 떠났으며 살아있으면 올해 45살이다. 이씨는 "큰아들이 떠난 후에 2년 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큰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 삶을 포기 하고 큰아들을 따라가고 싶었는데 작은아들이 있어 그러지도 못했어요"라며 "작은아들은 형을 보고 자란 것 때문인지, 지금 복지사 일을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작은아들 조대현(43)씨는 현재 복지사 일을 하며 같은 일을 하고 있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아 예쁘게 잘살고 있다.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힘들어하던 나를 보며, 작은아들과 며느리가 '엄마 내가 손주 하나 더 안겨 드릴게요. 너무 힘들어하지 마세요' 그러더니 딸 쌍둥이를 낳았어요. 그래서 손주만 네 명 있어요."
 
신마니 경력18년, 직접 캔 10년 된 산삼을 들고 있는 이교숙 씨
▲ 10년된 산삼을 들고 있는 이교숙씨 신마니 경력18년, 직접 캔 10년 된 산삼을 들고 있는 이교숙 씨
ⓒ 고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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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에 큰아들을 하늘로 보내고 하루하루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 죽을 생각도 했었다.

이교숙씨는 "큰아들을 보내고 2년 동안은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도 안 나더라고요. 죽을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작은아들이 생각이 났어요"라며 "핏줄이라고는 나밖에 없는데 내가 죽으면 작은아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했다.

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때 아는 동생이 농악 선생님을 소개해줘 번암면 농악 모임에 나갔는데 장구가 치고 싶어졌다. 그래서 농악 모임에 가서 장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장수 복지관에도 농악 모임이 있다"는 선생님의 말에 장수 복지관을 찾아갔다.

"장수 복지관에 신청하기 위해 갔는데 주간 보호센터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보호센터를 보고 큰아들이 생각이 나 한쪽에서 울고 있었는데 농악 선생님이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이교숙 씨 나도 그런 아픔이 있어요. 나도 이렇게 살아가고 있어요'라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씨는 노래 교실도 나가 노래도 배우고, 장구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더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이교숙씨. 하늘에 있는 큰아들에게 이 말만은 꼭 전하고 싶다고 한다.

"하늘에 있는 큰아들에게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우리 아들 손 안 놓는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 못 지켜서 너무 미안해 아들. 나중에 엄마가 꼭 찾아갈게. 사랑해! 나의 아들 주현아."

하늘에 있는 아들도 엄마 마음을 알기에 엄마에게 고맙고 또 열심히 살아가고 있어 줘서 최고의 엄마라고 응원하고는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신마니'로서의 삶

"4월 셋째 주부터 6월 둘째 주까지 강원도에 산삼을 캐러 다녀요."

이교숙씨는 신마니 18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이씨는 "주로 강원도로 산삼을 캐러 다니는데, 번암면에 내가 가르치는 제자가 있어요. 산삼은 캐러 다니면 사람이 욕심을 버려야지 산삼이 보이지 그냥 무턱대고 다닌다고 해서 삼을 캘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몇 년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눈에 삼이 들어올 때가 있어요"라며 "거짓, 욕심, 살생을 버리고 감사한 마음이 있어야 산삼이 눈에 보인다"라고 말했다.

10년 전쯤 산삼을 캐려다 바위에서 떨어져 고관절 꼬리뼈가 터져서 헬기로 이송된 적도 있으며, 산에서 뛰어 내려오다 무릎 고관절이 찢어지는 사고도 겪었다는 이교숙씨.

이씨는 "큰 사고가 나도 다 나으면 또 산삼을 캐러 다녀요. 15년 전쯤 50년 된 산삼을 캔 적도 있었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산삼을 팔아준다고 가지고 가서는 연락이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 4700만 원을 받고 그 돈으로 노름을 해서 돈을 전부 잃어서 연락이 없었던 거더라고요"라며 "어쩔 수 없이 용서해주었어요"라고 말했다.

이어 "오래된 삼을 보면 소름이 끼치고, 무섭고, 머리가 삐죽삐죽 서고 그래요"라며 "산삼을 보면 '심봤다'를 외치는데 지금은 나무를 탁탁 두들기는 신호를 해요"라고 말했다. 산삼을 캐면 가족들과 나를 위해 쓰고 나머지는 아픈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고.

이씨는 "몸이 좋지 않은 한 사람에게 3년 동안 산삼을 계속 주고 있으며, 그 사람이 효능을 보고 몸이 좋아지면 다른 아픈 사람에게 산삼 나눔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출처 : 장수신문(http://www.jangsunews.co.kr)


태그:#사람사는이야기, #전북장수군, #신마니 이교숙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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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지역에서 직접 찾아다니며 발로 뛰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고재영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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