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우리 동네에는 이상한 도서관이 있다. 부엌에서 술을 마시며 책을 읽는 낮술 낭독회가 있고, 지하에는 아이들이 뛰놀며 탈 수 있는 코끼리 미끄럼틀이 있다. 다채로운 작물과 식물을 심을 수 있는 텃밭이 있고, 누워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골방도 있다. 경기 용인 수지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이다. 느티나무도서관에 한 번도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

1층에 들어서면 나무로 짜인 책꽂이와 탁 트인 천장과 통유리로 내다보이는 풍경이 이용자를 맞이한다. 2층으로 올라가면 숨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원두막과 다락방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3층에는 탐색과 탐험의 공간인 메이커 스페이스, 동네부엌, 동네공방, 텃밭 연습장이 있다.

느티나무도서관 이용자 중에서 책만 보러 오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활동을 알지 못한다. 이웃과의 정이 그립고 소통과 만남이 고픈 사람들에게만 느티나무도서관의 특별함이 보인다.
 
느티나무도서관 옥상에 있는 텃밭 연습장에서 교육활동이 진행된다
 느티나무도서관 옥상에 있는 텃밭 연습장에서 교육활동이 진행된다
ⓒ 용인시민신문

관련사진보기


느티나무도서관은 관계 맺기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한다. 동네부엌에서 누구든 음식을 만들고 모임을 할 수 있다. 공유냉장고가 있어 유통기한이 넘지 않은 음식을 넣어 이웃과 나눌 수 있다. 공구를 사용해 공방에서 고장 난 전자제품을 고칠 수 있고, 레이저 커터를 이용해 지인들의 얼굴을 새긴 맞춤형 선물을 만들 수 있다.

단지 시설과 장소를 제공하는 것으로 마을공동체가 살아날 수 없다. 이웃끼리 자연스럽게 만나 즐겁게 소통하는 모임들이 활발해야 한다. 느티나무도서관은 강의를 제공하지 않는다. 누구든지 모임이나 활동을 제안할 수 있고 도서관은 다만 홍보와 모집을 돕는다. 함께 취미 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캘리그라피 모임, 수제맥주 만들기 모임, 음식 만들기 모임 등이 도서관에서 활동하고 있다.

공유공방에서 동네에서 함께 먹고살기 프로젝트도 진행되고 있다. 창업을 했지만 혼자 하기에 막막한 사람들(입주 메이커)이 함께 모여 홍보나 마케팅, 장터 등을 준비한다. 작년에는 입주 메이커들의 제안으로 도서관에 제로웨이스트 숍을 운영했고, 올해 4월에는 지구의 날 기념 플라스틱 없는 장터, 5월에는 가정의 달 기념 핸드메이드 장터를 열었다.

살기 좋은 마을은 무엇일까. 이웃이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함께 놀고, 일하고,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 아닐까. 마을공동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학연·혈연·지연에 묶이지 않은 사람들이 지역에서 공통의 관심사로 모이고 소통하고 만나는 모임이 많아져야 마을공동체가 살아난다. 거창하진 않지만 커뮤니티가 공유하는 사회적 가치는 있어야 한다.

도서관은 자원순환과 돌봄 문화에 관심이 많다. '쓰레기 생활자를 위한 마을설명서'와 '지금 누구를 돌보고 있나요?' 컬렉션을 만들어 이 같은 고민을 풀어내고 있다. 팬데믹 시대에 도서관은 자원순환과 돌봄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거점 공간이 되었다.

도서관 지하에는 동천마을네트워크와 함께 '걸어서 15분 에코마을'의 주요 거점 공간으로 플라스틱 병뚜껑과 종이팩 자원순환 정거장을 만들었고, 사회적기업 다시채움과 세제 리필 스테이션 체험장도 마련했다. 작년에는 함께 짓는 돌봄 마을 활동가 워크숍을 진행해 돌보는 이와 돌봄 받는 이가 따로 없는 서로 돌보며 살아가는 마을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평생직장이나 평생 살 집처럼 한곳에 정착해 사는 삶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는 우리 세대를 한 지역공동체에 묶어 둘 수 없다. 하지만 한 지역에서 공동체 구성원으로 축적한 소중한 경험을 자원 삼아 또 다른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고 그곳에서 구성원으로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동네 주민들이 느슨하게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이나 공원과 같은 생활 SOC(사회간접자본)가 늘어나면 삶의 여유와 창의력이 생겨난다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잘 지은 생활 SOC는 동네 사람들의 삶의 질과 동네의 품격을 높이는 기회가 된다. 도서관에서 느슨한 만남을 통해 삶의 여유를 즐기고 활력을 되찾기를 바란다.
 
김미경 코디네이터
 김미경 코디네이터
ⓒ 용인시민신문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느티나무도서관 코디네이터입니다.


태그:#느티나무도서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