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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7월 20일 지학순 주교와 시인 김지하씨가 환영 인파에 앞장서 성당으로 향하고 있다.
 1975년 7월 20일 지학순 주교와 시인 김지하씨가 환영 인파에 앞장서 성당으로 향하고 있다.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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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권이 민청학련사건에 학생이 아닌 김지하를 함께 엮은 것은, 그동안 일련의 담시를 통한 비판에 보복성과 〈민중ㆍ민족ㆍ민주선언〉의 집필 그리고 지학순 주교에게 받은 120만 원을 조영래에게 전달한 돈이 반국가 단체인 인혁당재건위와 학생시위에 쓰인 자금이라는 혐의였다. 지 주교는 학생운동하는 청년들을 돕고자 순수하게 지원한 것인데, 중앙정보부가 이것을 불순자금으로 몰아 용공 시나리오를 쓴 것이다. 

이 사건이 얼마나 엉터리 조작극이었는지, 김지하는 사형을 선도받고 무기로 감형되었다가 10개월이 지난 1975년 2월 15일 영등포교도소에서 석방되었다. 옥문을 나오면서 소회를 밝혔다.

"종신형을 받았는데 벌써 나오다니 세월이 미쳤든지 내가 미쳤든지, 아니면 둘 다 미쳤든지 뭔가 이상하다.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가혹한 탄압을 한 뒤 이제 석방한다는 것은 돼먹지 않는 호도책이다. 참으로 끔찍스런 사건들이 낱낱이 공개될 것이다." 

그가 풀려나기까지는 긴박한 내외정세의 변화가 있었다. 8.15 경축기념식장에서 박대통령 부인이 저격당해 사망하고, 8월 23일 신민당에서 선명성을 내세운 김영삼이 총재로 당선되어 강경노선을 천명했다. 

지 주교의 구속을 계기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결성되어 반유신 활동에 나서고, 박형규 목사 등 개신교도 합류했다. 연일 구속자 석방을 위한 기도회가 열리고 학생들도 구속 동료 학우들을 석방하라고 시위에 나섰다. 

10월 24일 동아일보사 일부 기자들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 이 운동이 언론계에 파급되었다. 11월 18일 문인들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구성, 〈101인 선언〉을 채택하고, 같은 달 27일에는 종교계ㆍ학계ㆍ법조계 등 각계 지도급 인사 71명이 민주회복국민회의를 결성했다. 반유신 연합전선이 이루어진 것이다.

박정희는 노도처럼 일어나는 반유신운동을 유신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라는 편법으로 맞섰다. 일체의 반대운동을 봉쇄한 채 1975년 2월 12일 실시된 국민투표는 독재자의 의도대로 발표되었다. 그리고 박정희는 마치 시혜를 베풀듯이 김지하 등 민청학련사건의 일부 관계자들을 석방했다. 

희극 아니면 비극적 소극이었다. 사형→무기→석방이 열 달도 안 되는 사이에 벌어졌다. 해서 김지하는 "세월이 미쳤든지…."라고 토로했다. 미친 세월이었다. '미친 시대'에 비치지 않았던 그는 작심하고 중앙정보부와 감옥에서 겪고 들었던 것을 풀어놓았다. 억울함에 대한 독기이고 시인의 오기였다. <동아일보> 1975년 2월 23일~27일 사이 5회에 걸쳐 실린 옥중수기 <고행-1974>은 그의 재구속의 사유가 되고 7년여의 옥살이를 한 '제2의 필화'가 되었다. 

고향 근처에서 체포되어 심경의 일단을 밝힌 연재 1회의 한 대목이다. 

가까스로 울음을 참으며 브리지를 내려설 때, 나는 그러나 파지장(波止場)에 몰켜선 수많은 생선장수 아주머니들의 그 삶에 지치고 볕에 그을린 얼굴들 속에서, 수갑 찬 나를 강도나 절도로 파악하는 얼굴들, 그리하여 자기들과 똑같이 헐벗고 굶주리고 팔자 사나운 놈으로 생각하는 그 얼굴들 속에서 비로소 나의 귀향을 맞이해주는 고향의 뜨거운 인사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렇다. 나는 이제야 내 고향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야 내 핏줄에 다시금 떳떳이 복귀한 것이다.

저주받은 땅 전라도의 아들답게 수갑을 차고, 천대받는 사람들 '하와이'의 시인답게 한과 미칠 듯한 분노와 솟구치는 통곡을 가슴에 안고, 10여 년 전에 옛날과 똑같은 낡고 먼지 이는 그 가난한 거리에 못난 아들이 이제야 돌아왔노라 인사를 드리면서 나는 서서히 내 가슴 속에 미소가 돌아오고 있음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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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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