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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1일, 사망한 홍정운군의 친구들과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회원 등 100여 명의 시민이 홍군이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선착장 앞에서 추모집회를 진행 중이다.
 2021년 10월 11일, 사망한 홍정운군의 친구들과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회원 등 100여 명의 시민이 홍군이 현장실습을 하다 숨진 전남 여수시 웅천동 이순신마리나 요트선착장 앞에서 추모집회를 진행 중이다.
ⓒ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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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삼성반도체 백혈병 노동자 황유미 사망 사건, 2013년 성수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5년 강남역 스크린도어 사망 사건, 2016년 구의역 사망 사건, 이한빛 피디 사망 사건, 2017년 현장실습생 이민호군 사망 사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사망 사건, 2019년 이천 한익스프레스냉동창고 화재 참사, 잇따른 택배기사들의 과로사, 2021년 현장실습생 홍정운군 사망 사건, 2022년 동국제강 이동우 사망 사건.'

하나씩 열거하기에도 숨차고 가슴 아픈 사건들이다. 매년 2400명, 하루 7명의 노동자가 출근해서 집으로 퇴근하지 못한다. 내전 중인 국가도, 저개발 국가도 아닌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 간접고용,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안전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안전 장비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안전 수칙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고용주와 기업은 약간의 벌금과 집행유예로 빠져나간다. 심지어 내사 종결이나 무죄도 있다.

산재 인정과 배상을 위해 넘어야 할 산은 높다. 사고의 구조적 원인에 철저한 규명과 재발방지대책은 말뿐이다. 여론의 관심은 잠깐 뜨겁지만 금세 잊힌다. 이러니 반복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기록하고 싸우고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 위로하며 연대하는 사람들이다. 고 김용균의 어머니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 고 이한빛 피디의 어머니 김혜영 그리고 피해자의 유족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양심적 전문가와 보통 사람들.

이들의 끈질긴 호소와 투쟁으로 28년만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면 개정되고 중대재해처벌법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부족하다. 국가인권위의 권고대로 도급을 금지하는 유해·위험 작업의 범위 확대, 생명․안전업무 기준의 구체화,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강화가 필요하지만, 노동존중 사회를 국정과제로 한 문재인 정부의 고용노동부는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냈다.

정부가 오직 기업만 생각하는 동안 일터에서의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단적으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올해 제조업 산업현장에서 사망사고가 급증해 정부가 '위험 경보'를 발령했을 정도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윤석열 정부는 기업의 부담을 줄인다며 중대재해처벌 시행령을 개정하려 하고, 심지어 고용노동부장관도 아닌 법무부장관이 중대재해예방 기준과 인증기관을 고시하고, 사업주 등이 인증을 받으면 형을 감면하는 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출근 나흘 만에 메탄올 중독으로 실명한 파견 노동자
2016년 한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후진적 산재


중대재해처벌법에 담긴 피해자와 유족들의 피땀과 염원을 생각한다면 그럴 수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의미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만화 <문밖의 사람들-파견 노동 확대에서 메탄올 실명까지>를 소개하는 이유다.

<문밖의 사람들-파견 노동 확대에서 메탄올 실명까지>는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딸을 잃은 황상기씨가 삼성을 상대로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 <사람 냄새-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를 쓴 김수박과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남편을 잃은 정애정씨의 투쟁을 그린 만화 <먼지 없는 방-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을 쓴 김성희가 함께 쓴 작품이다.
문밖의 사람들.
 문밖의 사람들.
ⓒ 도서출판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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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노무사 시험에 합격한 후 기업살인법을 제정하라는 노동건강연대(노건연)의 외침에 이끌려 노건연의 활동가된 박행. 창원대에서 힘겹게 알바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며 휴학을 반복하다 결국 졸업을 앞두고 학교를 그만둔 채 스마트폰의 알루미늄 버튼을 만드는 공장에 취업한 이진희.

만화는 두 청년 여성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하청업체의 열악한 노동조건, 저소득 청년(여성) 노동문제를 환기시키며,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 문제는 노동 문제를 넘어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임을 깨닫게 한다.

박행의 하루는 구글링으로 시작한다. 사망, 추락, 질식 등 잘 알려지지 않는 산재를 찾아내고 정보공개를 청구한다. 원청을 고발하고, 기록하고, 반복되는 산재에도 벌금 몇 푼만 내고 끝나는 현실을 마주한다. 동시대의 또래가 무너지고 있는데 혼자만 살아남고 있는 것 아니냐는 자책감에 힘들어한다.

박행이 그렇게 날마다 일터에서의 죽음에 맞서 바쁘게 움직이던 2016년 1월, 20대 여성 이현순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왔다. 그녀는 호흡 곤란, 의식 혼미, 대사성 산증, 눈이 안 보인다는 호소 속에 사투를 벌였다.

이를 시작으로 삼성과 엘지 휴대폰에 들어가는 부품을 제조하는 하청업체에 파견된 청년 노동자들의 메탄올 중독 실명 사건이 잇달아 발생했다.

그 피해자 중 한 명인 주인공 이진희는 출근한 지 불과 나흘 반 만에 쓰러졌다. 성실히 일한 잘못밖에 없는 그녀는 한 달 뒤 의식이 돌아왔지만 시력을 잃었고 몸도 정신도 정상이 아니었다.

메탄올 중독 실명 사례는 모두 1960년대 이전에만 보고되었다. 2016년 대한민국에서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후진적 산재였다.

제조업 파견은 원칙적으로 불법이지만 법은 무력했고, 사용 사업주는 파견 노동자의 안전에 관심이 없었다. 파견 사업주 역시 수수료를 챙길 뿐 안전 문제는 사용 사업주에 떠넘겼다. 그 사각지대에서 메탄올 중독 실명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대기업 하청업체의 불법 파견 노동자에게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한국 노동자의 생명 및 건강 문제뿐만 아니라 고용 문제의 일단을 보여주는 징후적 사건 혹은 적신호'였다.
 
중대재해처벌법 완화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였지만, 원청이 삼성과 엘지인 하청업체의 불법 파견 노동자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당시 박근혜 정부가 기업이 절박하게 호소하는 파견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며 밀어붙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들은 산재 승인을 받더라도 제출해야 하는 많은 서류와 복잡한 절차에 힘들어한다. 가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수사·재판 진행 과정도 제공받지 못한다. 국가와 기업은 노동자를 사지로 내몰고도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과 다른 삶을 사는 기자들은 일하다 시력을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이현순씨가 2017년 12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2015~2016년 삼성전자·LG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시력을 잃은 청년과 피해자 가족,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에 열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던 도중 억울함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이현순씨 "가족 얼굴 제대로 보고 싶어요"  메탄올 중독 실명 피해자 이현순씨가 2017년 12월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2015~2016년 삼성전자·LG전자 하청업체에서 일하다 시력을 잃은 청년과 피해자 가족,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에 열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던 도중 억울함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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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과 노건연은 '위험의 외주화'를 이해시키고, 피해자와 사회를, 피해자와 피해자를 연결했고, 피해자들은 서로를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우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 나섰다.

피해자들이 가해업체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지 4년 만인 2020년 8월, 법원은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그 돈이 불과 20대와 30대 초반의 나이에 잃어버린 시력과 건강, 그로 인한 절망에 대한 보상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10일 국제노동기구(ILO)는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차별 금지, 아동노동 금지 등 4개 분야에 추가해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환경'을 노동기본권에 포함하기로 결의했다.

고용노동부는 보도자료에서 "새 정부도 산재예방 강화를 고용노동분야의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정하고 있는 만큼, 이를 기반으로 일하는 모든 사람이 보호받을 수 있는 노동환경 조성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법무부와 여당은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겠다니 이런 기만이 어디 있는가? 수많은 이진희들, 김용균들이 지켜보고 있는 한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 냄새 :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김수박 지음, 보리(2012)


먼지 없는 방 - 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

김성희 글.그림, 보리(2012)


문밖의 사람들 - 파견 노동 확대에서 메탄올 실명까지, 청년노동의 현실

김성희, 김수박 (만화), 보리(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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