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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옥 지사를 면회하던 병원 뜰앞, 활짝핀 비비추꽃의 꽃말은  “하늘이 내린 인연”.
 오희옥 지사를 면회하던 병원 뜰앞, 활짝핀 비비추꽃의 꽃말은 “하늘이 내린 인연”.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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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인연"이란 꽃말을 지닌 연보랏빛 비비추꽃이 병원 뜰에 활짝 피었던 지난 20일 오후 3시,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인 오희옥 지사를 뵈러 서울중앙보훈병원에 다녀왔다. 지난 4월 18일의 면회일로부터 두 달 만에 만난 오희옥 지사는 그때보다 건강이 다소 안 좋아 보였다. 가슴이 철렁했다.

함께한 아들의 이야기로는, 그간 오희옥 지사가 무릎 통증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맞은 근육통증 완화 주사 이후 상황이 안 좋아져 한 달여간 고생했다고 한다. 그러는 바람에 날마다 받던 물리치료를 지난 6주 동안 받지 못했다고. 그 영향인지 오희옥 지사는 평소 면회 때와는 달리 휠체어가 아닌 침대에 누운 채 면회 장소인 병원 로비로 나왔다.

간병인의 말에 따르면, 기자를 만나기로 한 날엔 아침부터 기분이 들떠 기다리다가 휠체어를 탔다고 한다. 병원 로비에서 기자와 마주치면 손을 흔들며 기뻐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이날은 침대에 누운 채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아직 병실 면회가 재개되지 않아 병원 로비에서 면회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오희옥 지사는 병원 로비에 나오셔도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휠체어가 아닌 이동용 침대로 병원 뜰에 나와 손을 흔드는 오희옥 지사.
  휠체어가 아닌 이동용 침대로 병원 뜰에 나와 손을 흔드는 오희옥 지사.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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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희옥 지사(가운데)와 아들 부부. 맨 오른쪽은 기자.
 오희옥 지사(가운데)와 아들 부부. 맨 오른쪽은 기자.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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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바깥 공기를 느낄 수 있게 아들 부부와 기자는 침대를 병원 뜰로 밀고 나왔다. 신선한 바람이 느껴져서인지 오희옥 지사는 그제야 눈을 뜨고 알아봤다. "아! 오희옥 지사님! 어서 회복하시어 집으로 가셔야지요"라며 손을 잡아드리니 가슴이 쏴하다. 올해로 5년째,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답답함이 얼마나 클까. 눈물이 핑 돈다.

구순이 넘어서도 독립운동가 추모현장 또는 삼일절, 광복절 등 굵직한 국가행사에 빠지지 않고 서울과 지방을 불문하고 달려가시던 지사님의 연세도 어느덧 96세! 강한 정신력으로 지금껏 잘 견뎌내고 있어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어서 병세가 호전돼 편안한 집에서 아들딸과 함께 여생을 보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안고 병원 문을 나섰다.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는 누구인가?

오희옥 지사는 할아버지대(代)부터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일가'에서 태어나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 활동했다.

오희옥 지사 집안은 명포수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1867~1935),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1896~1967), 만주에서 독립군을 도우며 비밀 연락 임무 맡았던 어머니 정현숙(1900~1992), 광복군 출신 언니 오희영(1924~1969)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령(參領)을 지낸 형부 신송식(1914~1973)등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현재는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우리문화신문에도 보냈습니다.


태그:#오희옥, #여성독립운동가,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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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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