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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죄가 많은 사람

나는 업죄가 많은 사람이다. 또한 이생에서도 죄를 많이 지었다. 그래서 그 숱한 죄를 조금이라도 씻고자 산사를 자주 찾아간다. 어느 날은 아예 삭발을 하고 산문에 적을 두려고 산사를 찾아갔다. 하지만 주지 스님은 만류했다.

그 까닭은 내 나이가 너무 많단다. 60을 넘긴 이는 속세의 때가 진하게 묻었기에 받아주지 않는단다. 마치 오랜 세월동안 때에 찌든 천이 아무리 세탁을 해도 깨끗한 천으로 돌아오지 않는 이치란다. 듣고보니 일리가 있는 말씀이라 수긍했다. 스님은 비탄에 빠진 내게 말했다.

"출가에는 신출가와 심출가가 있습니다."

신출가(身出家)는 몸을 산문에 두는 것이요, 심출가(心出家)로 몸은 속세에 있으나 마음을 산문에 두는 것이란다. 그 스님의 말씀에 나는 신출가 대신 심출가를 하기로 작심했다. 하지만 의지가 약한 나는 세속의 유혹에 흔들려 업죄를 씻지 못한 채 줄곧 살아가고 있다.
 
화엄사의 이른 아침
 화엄사의 이른 아침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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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마음이 괴롭거나 슬플 때, 또는 장편소설 같은 긴 글을 집필할 때는 월정사 원주실에 부탁하여 산사 선방에 한 달여씩 묵곤 한다. 그러면서 내 영혼의 흐름에 따라 긴 겨울밤을 꼬박 지새우며 자판을 도 닦듯이 두들긴다.

10여 년 전, 조상님 네 분(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을 오대산 지장암 옆 전나무 숲에 수목장으로 모신 뒤부터 기일이나 한식, 추석, 설이면 그곳을 찾는다. 먼저 수목장에 들러 묵념을 드린 뒤, 월정사 수광전으로 가서 신위를 꺼내 향불을 피운다. 그다음 정화수를 바친 뒤 삼배를 드리면서 고인과 교감을 나누곤 한다.

절절한 기도와 염원이 있는 화엄사의 밤
 
<산사 가는 길> 표지
 <산사 가는 길> 표지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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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출판사에서 <산사 가는 길>이란 책을 냈다. 내 눈에 이 책이 번쩍 띄기에 선뜻 구매했다. 책장을 넘기자 글도, 사진도 야무지고 단아한 게 나도 모르게 산사로 이끌었다. 저자 조낭희의 글은 조근조근 들려주는 안방의 할머니 이야기 같다. 게다가 무서리가 내린 늦가을 처마 밑에 맨단 말랑말랑한 곶감을 씹는 듯, 감칠맛이 배어 있다.

<산사로 가는 길> 1, 2 권에는 저자가 전국의 산사 100여 곳을 발품으로 쓴 순례기다. 이 책속에는 산사의 이런저런, 오밀조밀한 얘기들이 담겨 있다. 이 글들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 1박 2일로 수학여행을 갔던 김천 직지사와 교직에서 은퇴 후 호남의병 전적지 답사로 여러 번 들렀던 구례 화엄사 글 가운데 일부만 뽑아 음미해 본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현란한 지식이나 부, 명예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기와 이웃, 세계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출발한다. 겨울 환상에 끌려 여기까지 왔듯, 가시적인 것들에 탐닉하며 삶의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반문해 본다.
- 김천 직지사 편에서
모두가 잠든 밤, 무엇이 저토록 간절히 빌고 있을까? 병상에 누운 가족이나 쓰리고 혹독한 상실의 아픔, 상상력의 범주는 자꾸만 확대되어 간다. 막다른 길 앞에서 그의 쳐진 어깨가 유난히 외로워 보인다. 절망이 없으면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절절한 기도와 염원이 있어 화엄사의 밤은 더욱 평화롭고  안온한지 모른다.

고즈넉한 밤 풍경에 취해 있다가. 각황전 석등 앞에서 미동도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뒤늦게 발견했다. 끝날 줄 모르는 낯선 이의 기도가 나와 화엄사를 긴장시킨다. 내 호기심은 어느새 그를 위한 기도로 이어진다. 그는 각황전과 석등을 향해, 나는 일면식도 없는 그를 위해 기도한다.
- 구례 화엄사 편에서

<산사 가는 길>, 책 읽는 내내 나를 깨우침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었다. 모처럼 귀한 만남이요, 속세에 때묻은 내 영혼을 맑게 해준 보람된 깨끔한 시간이었다.
 
<산사 가는 길. 2> 표지
 <산사 가는 길. 2> 표지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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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 가는 길

조낭희 (지은이), 눈빛(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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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어린이 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 <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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