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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행복경제학의 답으로 일컬어지는 '이스털린의 역설'은,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링크). 한국어로 얻을 수 있는 상당수의 자료(링크)가 이스털린의 역설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이스털린의 역설'의 의미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해 가장 정확한 정의를 구하려면, 이스털린 본인이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해서 뭐라고 얘기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터. 마침, 이스털린이 2020년에 공저자와 함께 쓴 논문(
링크) '이스털린 역설' 도입부 첫 문단에서 이스털린은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The Easterlin Paradox states that at a point in time happiness varies directly with income, both among and within nations, but over time happiness does not trend upward in correspondence with income growth".

풀이하면 '주어진 한 시점에는 소득과 행복 사이에 상관관계가 나타나지만(횡단면 비교), 시간의 경과에 따라 소득이 증가한다고 해서 행복도 함께 증가하지는 않는다(시계열 비교)'는 의미다

이 '역설'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이스털린의 1974년 논문(
링크)의 결과도 소득과 행복 사이의 관계가 국가내·국가간 횡단면, 국가내 시계열 비교 등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 발견을 그는 후속 연구들(Easterlin, 1995, 2001)을 거쳐, 일정 시점의 횡단면적 관계와 시간 경과에 따른 시계열적 관계의 모순, 즉 '역설'로 정립했던 것. 다시 말해, '역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아무리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오해는 지난 4월 번역되어 출간된 이스털린의 신간 <지적 행복론>을 통해서도 유포되고 있었다. 이 책의 표지 앞날개에는 이스털린이 "소득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행복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파격적인 증명"으로 "학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학자라고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소득이 증가해도 행복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건, 실은 '역설'의 정의가 아니라, 그에 대해 제기되었던, 유력했지만 정작 이스털린은 동의하지 않는, 해석(링크)에 가깝다. 
 
이스털린은 오히려 이 그래프를 근거로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지적 행복론> 227-232p. 자료를 참고해 직접 그래프를 그려봤다.
 이스털린은 오히려 이 그래프를 근거로 소득과 행복의 관계에 대해 주장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지적 행복론> 227-232p. 자료를 참고해 직접 그래프를 그려봤다.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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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경, 이스털린을 인터뷰한 한 언론사의 기사에서도 이스털린에 대한 오해가 유포되고 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기사의 인터뷰 문답에서 이스털린은 '이스털린의 역설'을 한국어 포털에 잘못 알려진 내용 그대로 소개하고 있으며, 소득이 행복을 늘려주지 않는 임계치를 구체적으로 연 소득 7만 5천 달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2020년 논문(
링크) 17쪽에서 이스털린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there is no time-series evidence of a happiness threshold at an individual income level of $75,000 or any other value." 즉, 7만 5천 달러든 아니면 다른 어떤 값이든, 소득이 행복을 더 이상 늘려주지 못하는 임계치가 있다는 시계열 증거는 없다는 것. <지적 행복론>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확인해볼 수 있다(227~232p). 이스털린이 유독 한국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만 2021년까지 쓴 책과 논문들에서 그가 비판했던 주장을 설파하고 있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오역이 발생했다고 판단한 나는 직접 리처드 이스털린 교수 본인에게 확인하기로 했다. 이스털린 교수의 학교 홈페이지에 있는 이메일 주소로 지난 1일 직접 이메일을 보내, 이상의 오류들을 제보하고 문제의 인터뷰 대답이 정말 당신의 발언인지 질문해 보았다. 그리고 내가 예상했던 대답을 이스털린에게 들을 수 있었다. 아래는 내가 받은 이메일 내용.
 
이스털린의 답장
 이스털린의 답장
ⓒ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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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오류들에 대한 내 지적이 "절대적으로 옳(absolutely correct)"다는 것. 덕분에, 기사의 오류를 이스털린의 대답과 함께 기자님께 제보할 수 있었고 매우 감사하게도 빠른 시정이 이뤄졌다. 이스털린은 번역서의 출판사와 관련된 오류들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할 의사를 보이셨다. 이런 노력 끝에, 이미 책의 표지에 인쇄된 내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오류가 시정될 수 있었다.

사회적 비교가 역설을 만든다

그러나 여전히 이 인터뷰 기사의 
댓글란에는, 수정되기 전 기사를 보고, 이스털린이 행복을 늘려주지 못하는 소득의 임계치를 주장하고 있다고 오해한 독자들의 댓글들이 남아 있다. 이미 인터뷰 기사를 읽고나서 기억의 구석 한 켠에 치워둔 사람들은 여기에 이런 오류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기회가 없었을 수 있다. 출판사의 마케팅에 의해 재생산된 오류는 이미 판매된 책의 인쇄본에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이스털린의 역설'에 대한 오해가 너무 널리 퍼진 나머지 이스털린 본인의 말마저 왜곡하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누군가가 이렇게라도 기록해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게 이 기사가 작성된 이유다.
  
마지막 의문. 이러한 '역설'은 왜 나타났을까? 이스털린의 신간 <지적 행복론>에서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비교가 역설을 만든다(p. 49)." 요컨대,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소득의 절대적인 값어치가 아니라, 그 상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 성장을 통해 모두가 소득이 다 함께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 행복의 증가와 별로 상관이 없지만, 사회적 비교가 이뤄지는 횡단면 차원에서는 높은 소득과 높은 행복 사이의 분명한 상관 관계가 나타난 것.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이제 질문하는 당신의 본심에 달렸다. 당신은 혼자 행복해지는 법을 묻는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행복해지는 법을 묻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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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합니다. 논문 탐독이 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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