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6.22 05:50최종 업데이트 22.06.22 05:50
  • 본문듣기

검게 타버린 나무들로 인해 마치 반달곰이 산을 오르는 모습이 되었다. ⓒ 최병성

 
까만 반달곰들이 능선을 타고 산을 오른다. 이곳은 국내 최초 6월 여름 산불로 기록된 경남 밀양 옥교산 산불 잔해 현장이다. 지난 5월 31일 초록 잎이 무성한 상태에서 발생한 산불이 소방헬기를 53대나 동원한 뒤 6월 2일이 되어서야 진화되었다.

'수관화'로 소나무 가지 끝까지 새까맣게 타죽었다. 죽은 소나무 사이의 흰색 선이 마치 목에 흰 털을 지닌 반달곰을 연상케 한다. 흰색 선은 산림을 관리한다며 만든 임도다(산불은 나무의 큰 줄기가 타는 수간화, 그리고 나무 꼭대기까지 타는 수관화, 바닥의 낙엽과 초본류가 타는 지표화, 그리고 땅 속 낙엽 분해물과 뿌리까지 타들어가는 지중화 등으로 구분한다).
  

반달곰의 목을 연상케하는 둥근 흰선은 산림에 낸 임도다. ⓒ 최병성

 
밀양 산불은 독특한 형태의 산불이다. 까만 반달곰 형상으로 불이 탄 곳은 산 중턱이다. 산불이 능선을 따라 위 아래로 이동한 것이 아니라 산 중턱을 따라 옆으로 이동했다.

산불은 어떻게 옆으로 이동하며 대형 산불로 번졌을까. 해발 538m로 높고 급경사진 밀양 옥교산 중턱에는 임도가 만들어져 있다. 여기에 해답이 있다.
  

산중턱을 따라 발생한 밀양 산불 당시 임도의 바람 길을 따라 불길이 이동했다. ⓒ 최병성

 
임도가 없어 산불 못 껐다는 산림청

산림청은 그동안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임도가 없어 산불을 끄지 못했다고 변명해왔다. 지난 3월 울진 산불 직후인 4월 1일, 산림청은 '2022년 경북·강원 대형 산불 시사점 분석 및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산불예방 숲 가꾸기' 2배 확대와 현재 157㎞인 임도를 2030년까지 6357㎞로 확대 등을 주요 산불 예방 대책으로 내놓았다.
  

산림청이 발표한 산불 방지 대책. 소방 헬기를 대형화하고 숲가꾸기 면적을 늘리고, 임도를 확대하면 산불을 끌 수 있을까? ⓒ 산림청

 
숲 가꾸기 면적을 늘리고, 산림 속 임도를 확대하면 지금과 같은 대형 산불이 사라질까?

밀양 산불 현장엔 임도가 있었지만 산불을 끄지 못했다. 심지어 임도를 따라 산불이 이동했다.
  

임도가 있으나 산불을 끄지 못했다. 임도가 오히려 산불이 이동하는 통로가 되었다. ⓒ 최병성

 
계명대학교 김종원 교수는 '소나무재선충과 동해안 산불을 통해서 본 우리나라의 소나무, 무엇이 문제인가'(한국생태학회지 2005)에서 산불예방을 위해 임도를 확대한다는 산림청의 개선안이 국민을 속이는 잘못이라고 오래 전 지적한 바 있다.
 
동해안 연안 산악지대의 산불은 자연환경조건으로 말미암아 2,000m 폭을 가로질러 확대되어가는 양상까지도 발생함으로써 폭 4m의 임도에 의한 산불진화 접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산림지역에서의 임도는 서식지 단절, 가장자리 효과, 토양 침식 및 병충해 확산 등의 보전생물학적, 환경경제학적 폐해가 훨씬 크며, 적어도 우리나라 동해안 연안 산악지역에서 산불에 대응하기 위한 더 이상의 임도 개설은 과학적 논리로서 부적절하다.
 
숲 가꾸기와 송이 숲, 산불 대형화 부추겨

지난 6월 18일, 밀양 산불 현장을 조사했다.


산 정상부까지 가시철조망이 쳐진 게 보인다. 송이 숲이다. 사람들이 송이를 따지 못하도록 철조망을 친 것이다.

송이는 소나무 아래에서 자란다. 그래서 소나무를 제외한 활엽수와 하층 식생들을 모두 베어냈다. 이번 불로 송이 숲은 시커멓게 타 잿더미가 되었다.   
 

하층 식생을 모조리 정리해 탈 것이 없는 송이 숲. 그럼에도 산불에 나뭇가지 끝까지 모두 타버렸다. 동그란 표시 부분이 송이 숲에 있던 물통이 산불에 다 타고 바닥만 남은 모습이다. ⓒ 최병성

 
산림청은 지난 3월 울진 산불이 대형화 된 이유 중 하나로 산림이 우거져 탈 것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산불 예방 대책으로 숲 가꾸기 면적을 늘리겠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지금도 전국에서 산불을 예방하는 숲 가꾸기를 한다며 활엽수와 하층 식생을 잘라내고 있다.

산불의 원인이 탈것이 많은 '연료'의 문제라는 산림청의 주장대로라면 송이 숲엔 산불이 번지지 않아야 한다. 활엽수와 키 작은 하층 식생을 모조리 베어내서 불에 탈 연료가 적기 때문이다.
   

가시철조망이 처진 송이숲. 물통이 바닥만 남기고 타버렸다. 송이숲엔 활엽수와 키 작은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내 소나무만 남아 있다. ⓒ 최병성

  
그러나 하층 식생을 청소한 것처럼 깨끗하게 밀어버려 탈 것이 별로 없는 송이 숲은 땅 바닥서부터 가지 끝까지 모조리 탔다. '연료'가 아니라 '바람'이 산불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송이 숲뿐만 아니다. 숲 가꾸기 한 곳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숲 가꾸기 한곳도 여지없이 새까맣게 불탔다.
  

숲 가꾸기라는 이름으로 소나무 아래 활엽수들과 키 작은 나무들을 베어낸 현장. 키 작은 나무들이 없어 바람이 잘 통하니 소나무가 가지 끝까지 타 죽었다. ⓒ 최병성

 
수관화로 불타죽은 소나무 아래에서 오랜 시간 숲 가꾸기를 해온 증거들을 쉽게 찾아냈다. 삐죽삐죽 솟아 있는 작은 가지들이었다. 키 작은 나무들을 자르는 숲 가꾸기는 보통 5년에 한 번씩 이뤄진다. 밀양 산불 현장 조사에 함께 한 부산대학교 홍석환 교수는 잘린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본 뒤, 3번 이상 베어낸 흔적으로 보아 최소 15년 이상 숲 가꾸기가 진행되어 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숲가꾸기로 잘려나간 나무들을 가리키는 홍석환 교수 ⓒ 최병성

 
숲 가꾸기를 하지 않아 소나무 아래 키 작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곳에서는 여지없이 불길이 멈추었다. 송이 숲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수관화로 거세게 타오르던 산불이 지표화로 잠잠해진 곳은 키 작은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은 경계부였다. 탈 연료는 많았지만, 키 작은 나무 가지들이 많아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불길이 나무 꼭대기까지 타오르지 못한 것이다.
  

송이버섯을 위해 소나무 외에 모든 나무들을 베어버려 수관화로 불타 죽은 송이숲(사진 위)과 숲가꾸기를 하지 않아 키작은 하층 식생들로 인해 산불이 지표화로 스쳐 지나간 소나무 숲. 탈게 많으나 바람이 없으니 산불이 지표화로 잠잠해져 소나무들이 살아남았다. ⓒ 최병성

 
그동안 산림청은 하층의 키 작은 나무들이 산불의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다리 연료(ladder fuels)라며 숲 가꾸기의 명분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밀양 산불 현장은 숲 가꾸기가 산불을 예방한다는 산림청의 주장과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숲 가꾸기를 하지 않아 키 작은 나무들이 가득한 곳은 바람이 잘 통하지 않는다. 탈 것은 많으나 바람이 움직이지 않으니 산불이 지나가다 멈춘다. 그런데 산불을 예방한다며 키 작은 나무들을 깨끗하게 정리한 숲 가꾸기 숲은 바람이 잘 통하니 나무 가지 끝까지 타죽는 대형 산불로 확대된다.

키 작은 나무 잎사귀들이 열화현상으로 누렇게 말라버린 숲속에 들어섰다. 바람이 전혀 없었다. 조사하는 내내 온몸에 끈적끈적한 땀이 흘렀다. 지표화 현장조사를 마치고 임도에 올라서는 순간,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임도와 키 작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과의 거리가 몇 m에 불과했지만 바람의 차이가 컸다. 나무가 없는 임도를 따라 바람이 이동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도 산림청은 산불을 예방하고 경제림으로 가꾼다며 전국의 산림에서 숲 가꾸기를 진행 중이다. 산불의 대형화를 전국 산림으로 확대하는 꼴이다.
 

불 타 죽은 산림과 밀양 시내가 가까이 있다. 이제 산불은 도시를 위협하는 재난이 되고 있다. ⓒ 최병성

 
산림이 도시와 가까이 있기 때문에 산불이 발생하면 도시를 위협하는 심각한 재난으로 번질 우려가 크다. 지난 3월 동해 산불은 동해시내 전역을 위협했다. 이번 밀양 산불 역시 자욱한 연기가 온 도시를 뒤덮으며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산불로 인한 연기가 인체에 해롭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또다른 원인은 산림청 재선충 정책

소방헬기를 53대나 동원하고도 밀양 산불을 제때 진화하지 못한 또 다른 원인을 찾아냈다. 소나무 재선충을 핑계로 잘라 쌓아 둔 장작더미 때문이었다.
  

소나무 재선충에 감염되었다며 잘라 비닐로 덮은 소나무 장작더미들이 밀양 산불 현장 사방에 널려 있었다. 산불에 비닐이 불탔으나 바람이 없어 소나무까지 옮겨 붙지 않았다. ⓒ 최병성

 
지표화가 지나간 산불 현장 곳곳에서 타다 남은 숯덩이를 볼 수 있었다. 재선충을 방지한다며 소나무들을 베어 비닐로 덮어 놓은 것들이 산불에 탄 것이다. 소나무를 잘라 켜켜이 쌓아 둔 장작더미에 불이 붙으면 물을 아무리 부어도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지표화로 스쳐지나가던 작은 산불이 재선충 장작더미에 옮겨 붙으며 대형 산불이 된 것이다.
 

재선충 소나무 장작이 다 타고 숯덩이 몇 개만 남았다. ⓒ 최병성

  
소나무 장작더미가 다 타고 재만 남은 현장에서 또 다른 사실을 발견했다. 소나무 장작더미 곁에 있는 키 작은 나무들의 잎사귀는 누렇게 변화하는 열화현상만 입었을 뿐이었다. 밀양 산불 당시 강한 바람이 없었음에도 산불을 끄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나무 재선충 장작더미가 다 탔지만 주변 나무들 잎사귀는 열화현상만 입었다. 바람이 없었던 것이다. ⓒ 최병성

 
그동안 산림청은 재선충에 감염되면 모든 소나무가 죽는다며 모두 베어내고 비닐로 덮었다. 심지어 재선충 감염목이 몇 그루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재선충을 핑계로 나무들을 싹쓸이하여 산림을 초토화한 경우가 많았다. 산림을 보호한다며 산림을 파괴하는 명분을 제공한 산림청의 잘못된 재선충 정책이었다.

재선충에 감염되어도 소나무를 살릴 수 있는 길이 있다. 소나무 재선충을 치료하는 천적백신이 국내에 이미 오래전에 개발되어 있기 때문이다. 외국의 수많은 유명 학회지에 국내에서 개발한 천적 백신 논문이 실려 있다. 지난 2021년 8월 <전염병 핑계로 벌어진 끔찍한 일... 산림청은 왜?>(http://omn.kr/1urs0) 기사에 밝힌 것처럼 재선충 감염목도 천적백신을 맞고 살아남았음을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공단이 거제 화도에서 입증한 바 있다.

만약 재선충에 걸린 소나무를 자르지 않고 천적백신으로 치료하며 재선충 소나무 무덤을 만들지 않았다면 헬기로 물을 쏟아 부어도 꺼지지 않는 대형 산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나무 재선충 감염목 장작더미. 소방헬기로 물을 쏟아부었지만, 숯덩이 몇 개 남을 때까지 다 탔다. 차라리 자르지 않고 그냥 두었다면 이처럼 대형 산불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 최병성

 
문제는 재선충에 걸린 소나무를 잘라 훈증포를 씌워 놓은 게 밀양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국 산림 곳곳에 재선충 이름으로 잘린 소나무 무덤이 널려있다. 도심 인근의 등산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대형 산불이 언제든 전국 도시를 위협하는 재난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렴한 비용으로 소나무를 살릴 수 있는 길을 두고, 많은 비용을 들여 소나무를 죽여 온 산림청의 잘못된 정책이 국가 재난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산불 지휘체계 바꿔야

정부는 산불이 발생하면 최초 발화지점을 찾아 산불 원인을 조사한다. 산림청 산림과학원은 밀양 산불 1차 합동조사감식 결과로 옥교산(해발538m) 중턱에서 발견된 엔진톱을 지목했다.

그러나 지난 18일 함께 현장을 돌아본 산불정책연구소 황정석 소장은 산림청의 밀양산불 조사감식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이 지목한 최초 발화지점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산불정책연구소 황정석 소장이 밀양 산불 현장을 돌아보며 산불의 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최병성

 
산림청이 지목한 최초 발화지점 주변 피해상황을 살펴보면 발화지가 급경사지에 위치해 있다. 이럴 경우 발화지점보다 낮은 곳과 바람을 거슬러 가야할 북서쪽으로 수관화가 뚜렷하게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이다.

산림청은 지난 3월 울진 산불도 담뱃불 실화에서 느닷없이 페트병을 원인으로 지목해 산림청 산불조사감식의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시킨 바 있다.

울진, 강릉, 밀양 산불은 산림청의 산불 진화 능력을 의심케 한다. 심지어 임도와 숲 가꾸기, 재선충 감염목 훈증 등 산림청의 산림정책들이 대형 산불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산불은 도시까지 위협하는 국가 재난이 되어가고 있다. 산불 진화 체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산불 감식 역시 이해관계자나 다름없는 산림청을 제외하고 실제 수사권이 있는 경찰청 주도 하에 제3의 기관과 전문가들로 합동조사팀을 꾸려야 한다.
 

산불이 국가 재난으로 대형화 된 것은 산림청의 잘못된 산림 정책 때문이다. 개선안 마련이 시급하다. ⓒ 최병성

 
우리나라 산불은 기후위기보다 산림 구조를 병들게 한 산림청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 산불이 더 큰 재난이 되기 전에 산림청의 산림과 산불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이 시급하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6,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