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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1살이던 해 여름, 조카 선미가 태어났다. 손과 발을 꼬물거리는, 작고 귀여운 생명체는 아직은 어렸던 내가 보기에도 너무나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다.

누워서 먹고 자기만 하던 선미는 어느 순간 기어 다니기 시작했고, 어느 날부터는 한발 한발 내디뎌 제 힘으로 걷기 시작했다. 위에 2개, 아래 2개 좁쌀 같은 이로 오물거리며 먹기 시작했고, 부모 귀에만 찰떡 같이 들리는 옹알이를 거쳐 드디어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였지만 첫 조카여서 그런지 선미는 나에게도 의미가 남달랐다. '첫 정'이 무섭다더니 어린 선미에 대한 나의 사랑은 아직도 뇌리에 강렬히 박혀 있어 유달리 정이 가는 조카이다.

20살이 훌쩍 넘었지만, 초콜릿 3개를 먹을 거라며 자랑스럽게 손가락을 2개 펴던 아기 선미와 게임할 때 쓰는 머니 3천 원만 충전해달라며 사랑한다는 문자를 남발하던 초딩 선미는 지금 24살의 선미 옆에 그림자처럼 남아 있다.

씻어 말린 호루라기
 
아빠는 손녀딸을 주려고 호루라기를 깨끗이 씻어서 말리고 계셨다.
 아빠는 손녀딸을 주려고 호루라기를 깨끗이 씻어서 말리고 계셨다.
ⓒ 변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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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는 올해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첫 직장을 구했다. 부모와 살던 둥지를 떠나 처음으로 서울살이를 시작하게 된 선미는 혼자 살 집을 구했다. 언니와 형부가 함께 발품을 판 덕분으로 혼자 살기에도 안전한 원룸을 구한 선미는 방이 코딱지만 하다며 툴툴거렸지만, 새로운 인생에 첫 발을 내디딘 청춘의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우리 아빠는, 그러니까 선미의 외할아버지는 안 그래도 없는 걱정을 만들어서 하는 스타일이신데, 선미가 서울에서 혼자 살며 직장을 다닌다고 하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신가 보다. 워낙 험한 일 많이 일어나는 세상이니 아빠의 걱정은 사실 우리 모두의 걱정이기도 했다. 

선미가 서울로 이사를 간 날, 청주 본가에 내려가니 웬 호루라기가 줄에 걸린 채 바람에 하늘하늘 날리고 있다.

"이건 웬 호루라기야?"
"선미 주려고 아빠가 씻어서 말려놓은 거야."


손녀딸을 위해 아빠는 호루라기를 깨끗이 씻어 바람에 잘 말리고 있었다. 아빠는 오래전 어딘가에 간직해 두었던 호루라기를 찾아내, 오래 된 물건이라 먼지라도 많을까, 선미에게 깨끗한 호루라기를 주고 싶은 마음에 물로 닦아 놓은 모양이었다.

혹여 위급한 상황이라도 생기면 호루라기를 불어서 안전하게 스스로를 지키고 무탈하라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호루라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안전과 무사를 바라는 할아버지의 바람이 호루라기의 거친 소리에 묻어나 있다. 왠지 호루라기가 더 애틋해 보인다.

왠지 모를 든든함

나도 혼자 독립해 살기 시작하면서 아빠한테 호루라기를 받았다. 다행히 호루라기를 불 만한 상황은 생기지 않았지만, 아빠의 마음이 담긴 호루라기는 나의 가방 속에서 벌써 십수 년째 나와 함께 하고 있다.

호루라기일 뿐이지만 나의 안전을 지켜주려고 늘 '삐익~ 삐익' 소리낼 준비를 하고 있어서인지, 아빠의 바람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마음이 항상 든든하다.

아빠는 선미에게도 이런 '든든함'을 선물해주고 싶으셨나 보다. 아빠의 마음이 담긴 호루라기에 선미의 행복과 평안을 기도하는 나의 바람도 살포시 얹어 본다.

가족들의 진심을 담은 호루라기와 함께 하는 '이제는 어른' 선미의 서울살이가 항상 안전하고, 웃음만 가득하길 바란다.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우리 조카 선미가 조금은 덜 고되고, 조금은 많이 행복할 수 있도록 서울에서의 인생 2막을 응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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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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