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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 그룹 '사춘기와 갱년기'는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불과 1년 전,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상황이었을 때다. 사춘기에 진입한 아들은 밖에 나가는 일을 극도로 꺼렸다. 학교와 학원 외에는 내내 방에 틀어박혀 본인만의 세상에 빠져들었다. 가끔 밖에 나가서 바람이라도 쐬면 좋으련만.

주말에 동네 산책하러 가자고 물으면, "귀찮아. 그냥 나는 집에 있을게", "코로난데 어딜 가. 됐어. 왜 자꾸 나가자고 해. 짜증나게" 하고 튕겨내기 일쑤였다. 종일 성냥갑처럼 좁은 공간에 갇혀 답답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아들은 꿈쩍도 안 했다. 눈에 띄게 화가 늘었고, 스트레스가 가득 차 살짝만 건드려도 '펑' 하고 터질 듯 보였다. 억지로 끌고 갈 수도 없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외가에 가자고 했을 때 안 간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웬일로 알겠다고 했다. 아마도 외가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했다. 2년 전 문경으로 이사한 처가는 주변에 인가가 없는 조용한 숲속 마을에 자리하고 있었다. 

180도 달라진 아들의 모습
 
맑은 날씨에 바라본 문경의 풍경
▲ 문경의 그림 같은 풍경 맑은 날씨에 바라본 문경의 풍경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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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차로 운전해서 세 시간 남짓 걸렸다. 가는 내내 주변에 초록의 숲과 나무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슬쩍 쳐다본 아들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구불구불 산길을 한참 더 가서야 드디어 처가에 도착했다.

"와. 정말 좋다."

아들의 말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절로 눈이 갔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서 저 멀리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들이 유튜브나 게임 외에 저렇게 집중한 적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어깨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한결 편안한 모습으로 오래도록 그곳에 머물렀다.
 
직접 나무를 베어 황토를 발라 만든 집
▲ 문경 처가댁 직접 나무를 베어 황토를 발라 만든 집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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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는 또순이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이어서 개량 한복을 입은 장인, 장모님이 환한 웃음으로 아이들을 꼭 안아주셨다. 집은 황토를 발라 지었다고 했다. 안도 무척 넓고 쾌적했다. 내가 오래전부터 꿈꿔온 집이었다.

저녁 무렵이 다 되어 장모님은 식사 준비로 여념이 없었다. 문경에서 유명하다는 약돌돼지와 직접 앞마당에서 가꾼 채소로 상을 차리셨다. 마을 사람들이 주셨다는 나물과 더덕 등 밖도 안도 모두 초록의 물결이 흘렀다. 나도 옆에서 음식도 나르면서 상차림을 도왔다. 그런데 좀 전까지 배고프다며 징징대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혹여나 방에 틀어박혀 게임이나 하는 것은 아닌지 가보았더니 없었다. 그리곤 밖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강아지와 함께 뛰어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아들이 새하얗고 커다란 이를 드러내며 열심히 강아지 꽁무니를 쫓고 있었다. 잘 못 본 것은 아닌지 내 눈을 비볐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이후로 오래도록 보지 못했던 아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밥을 먹으라고 몇 번이고 이야기를 해서야 땀에 흠뻑 젖은 채 돌아왔다. 헉헉 거리는 숨을 참으면서 밥은 또 어찌나 잘 먹던지. 그저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렀다. 순식간에 한 그릇 비우고, 외할머니에게 더 달라며 손을 내밀었다. 기분도 좋은지 묻는 말에 답도 잘하고, 좋은 분위기에 열 숟가락을 더했다.
 
문경에 가면 아이들은 강아지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강아지와 산책을 나선 아이들 문경에 가면 아이들은 강아지와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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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산책하러 가자는 말에 빛보다 살짝 느린 속도로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산보할겸 상을 치우고 나가보니 아이들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로로 갔나 보다. 서울에 있을 땐 그렇게 나가자고 해도 싫다더니 180도 다른 아들의 모습이 낯설었다.

그후 아들은 문경에만 다녀오면 며칠간 좋은 기분을 유지했다. 문제는 그 약발이 불과 며칠 정도라는 것. 아들의 예민한 상태가 극에 달할 땐 아내에게 문경으로 다시 가자며 농담 반 진담 반을 건넸다.

얼마 전에도 간단히 바람 쐬러 속초로 가려다가 아이들이 원해서 문경으로 바꾸었다. 아들은 도착하자마자 '기분 나쁨' 가면을 벗고, '유쾌 가면'을 썼다. 이곳에 있으면 말다툼할 일도 짜증낼 일도 없이 우리 모두 휴전 상태에 돌입한다.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며 전에 읽었던 논문이 떠올랐다.

자연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

얼마 전 런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임페리얼 칼리지 과학자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이 자연을 접할수록 인지발달과 정서적 행동 문제 위험이 낮아진다'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논문은 네이처 서스페티너빌리티 저널에도 실렸다.

연구진은 2014년부터 5년간 영국 런던의 31개 학교에서 9세~15세 사이 어린이와 청소년 3568명을 대상으로 녹지 공간과 인지발달, 정신건강 등과의 연관성을 조사했다. 연구에 따르면 녹지 공간 접촉이 높을수록 인지 발달이 향상했다. 그렇지 못한 경우와 6.83%의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다. 또한, 2년 후 정서 및 행동 문제를 겪을 위험도 대략 16% 낮게 나타났다. 재밌는 점은 주거지와 학교와 멀어진 자연환경일수록 정신건강에 더욱 효과적이었다.

2018년 스페인 폼페우 파브라 대학교 연구진은 7~10세 아이들 253명을 대상으로 자연에 노출된 정도에 따른 두뇌 발달 구조를 살펴보니 녹지 노출이 두뇌의 회백질과 소뇌의 부피와 양에 영향을 미쳤다. 회백질은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이고, 소뇌는 운동기능과 언어, 주의력 등의 기능을 가졌다.

또, 2017년 국제 학술지 '사이언틱 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는 숲과 같은 자연과 밀접한 생활이 편도체 활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도체는 스트레스 처리와 위험 반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숲과 같은 녹지 공간이 스트레스에 더 잘 대처하는 힘을 준다는 의미였다.

이 밖에도 자연이 주는 효과를 나타내는 연구 결과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 결과를 몸소 체험했다. 나는 과학자가 아니기에 측정해서 수치화할 순 없지만 자연이 주는 힘이 분명 있음을 경험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 비단 자연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는 아이나 청소년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장인어른은 3년 전 재생불량성 빈혈로 진단받아 급격히 건강이 안 좋아지셨다. 한 달에 한 번은 수혈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안색도 좋지 못하고 체력도 많이 떨어져 잘 걷지도 못했다. 그런데 문경으로 이사를 간 후 수치도 훨씬 좋아지고, 산책도 함께 나갈 정도로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 맑은 공기에서 몸에 좋은 건강식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이 분명했다.
 
창고에 있는 창틀 너머로 초록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책도 읽고 글을 쓰며 휴식을 취한다.
▲ 처가댁에서 발견한 나만의 공간  창고에 있는 창틀 너머로 초록이 가득하다. 이곳에서 책도 읽고 글을 쓰며 휴식을 취한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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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또한 문경에 가면 긴장이 풀리고, 그간 쌓인 스트레스가 산 너머로 사라졌다. 나만의 특별한 공간도 마련했다. 창고에 있는 커다란 창 사이로 녹색 물결이 넘실댔다. 한 점 명화처럼 아름다웠다. 바로 아래에 상을 펴고 풍경을 바라보며 책도 읽고 틈틈이 글도 썼다. 그 자체만으로 힐링이었다. 가끔 눈을 감고 바람에 흔들려 팔랑거리는 나뭇잎 소리를 들으면 설레서 심장이 콩닥거릴 지경이었다.

올 여름 휴가도 자연 속으로
 
인적이 드문 곳이라 곳곳에 산딸기가 열려있다.
▲ 산책로에서 발견한 산딸기 인적이 드문 곳이라 곳곳에 산딸기가 열려있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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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내와 아이들과 여름휴가 계획을 세웠다. 아이들이 강력히 원해서 며칠간은 문경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아들이 자연 속에서 해맑게 웃는 모습이 상상되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자주 오지는 못하더라도 이렇게 아들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감사했다. 장인, 장모님도 적적한 전원생활에 아이들이 큰 활력소가 되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도 분명 자연과 가까이 하고픈 마음이 가득한데 우리가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까.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 돌 듯 오가며 제대로 쉼을 갖지 못했다. 그러니 유튜브나 게임 속에서 허우적댔던 것은 아니었는지. 아이가 스트레스를 해소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못하면서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 보고 나무랐던 건 아니었나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이라도 그런 장을 만들어주어야겠다. 시간 날 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문경을 찾아가고, 평소에는 가끔이라도 사람이 붐비지 않는 한적한 캠핑장이나 계곡에 가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겠다. 그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이면 분명 지금 힘든 이 시기를 잘 넘기고, 밝게 웃으며 마주할 그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문경 산책로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
▲ 눈앞에 펼쳐진 숲의 아름다움 문경 산책로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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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와 블로그에도 발행됩니다.


요즘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갱년기 부모들의 사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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