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라이 스토세 공원> 포스터

영화 <플라이 스토세 공원> 포스터 ⓒ Java FIlms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작품인 <쥬라기 월드: 도미니언>이 2022년 6월 개봉해 관객들을 만났다. 고립된 섬에서 유전자 변형으로 복원된 키메라 공룡들이 결국 세계 곳곳으로 탈출해 번식에 성공하면서 인류는 공룡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영화 설정 속에서) 경험하는 중이다. 과연 실제로 저렇게 멸종한 생물들의 복원이 가능한 일일지 많은 이들이 한번쯤 상상해 봤음직하다.
 
한편으로는 기술적 문제점 외에도 이미 자연법칙 혹은 인간의 범죄적 행위로 멸종한 생물을 다시 복원하는 게 올바른 행위인가에 대한 논쟁이 뒤따른다. 생존경쟁에서 뒤처져 자연스럽게 도태된 생물을 굳이 후속하는 존재들이 자리를 잡은 현재에 재탄생할 이유가 무엇이며, 인간이 멸종시켜놓고 선택적으로 인간 본위의 판단과 이유로 복원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오만이라는 주장이다. 생명창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간이 접근해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이라는 근본주의적 입장 또한 만만치 않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이런 시도는 여전히 어디선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맘모스'라고도 불리는 매머드의 경우 실제로 역사 시대까지 오지에서 생존했던 사례가 확인되고, 시베리아 영구동토 층에서 보존상태가 좋은 사체가 계속 발굴되면서 '쥬라기 공원'에서처럼 실제로 DNA 추출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가 가장 높은 멸종생물이다. 몇 해 전 황우석 박사의 연구소에서 시베리아 매머드 복제에 참여한다 해서 논란이 된 바도 있었지만, 그 외에도 이를 추진하는 단위는 여럿 존재한다.
 
매머드 복제를 추진하는 단체들의 기본적인 논리는 이렇다. 근육과 혈액, 피부 등이 온전한 매머드 유해를 발굴해 유전자를 추출한 뒤 유전적으로 큰 차이가 없는 아시아 코끼리에 인공수정을 통해 99.5% 매머드와 동일한 개체를 탄생시킨 뒤, 대를 이어 교배해 거의 온전하게 부활시킨다는 것이다. 그 압도적 크기와 빙하기를 대표하는 상징성 때문에 인기가 높다. 하지만 10여 년 넘게 이런 실험이 진행 중이란 소문만 무성할 뿐 가시적인 성과는 들려오지 않고 있다.
 
그런데 몇 해 전부터 과학 잡지나 연구논문 등에서 종종 현실판 '쥬라기 공원'의 이야기가 해외뉴스 단신으로 들려오기 시작했다. 정확하게는 '플라이스토세 공원'이란 명칭으로 시베리아 어딘가에서 과거 빙하기에 매머드가 활보하던 대초원 지대를 재건하겠다는 시도다. 대체 이건 무슨 소리일까?
 
괴짜 과학자와 아들, 2대에 걸친 생태계 복원의 연대기
 
 영화 <플라이스토세 공원> 스틸

영화 <플라이스토세 공원> 스틸 ⓒ Java FIlms

 
현실판 '쥬라기 공원'이 펼쳐진 곳은 시베리아 최북단에 위치한 야쿠츠카 자치공화국 구석이다. 이곳에서 러시아 지구물리학자 세르게이 지모프와 아들 니키타 지모프 부자가 1996년부터 약 16-20평방킬로미터 면적의 토지에서 '플라이스토세 공원'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 세르게이 지모프는 소련 붕괴 후 자유연구자로 활동하며 북극해 인근의 이곳으로 이주했다. 자신이 수립한 야심찬 가설과 이를 뒷받침할 실험의 무대를 얻기 위해서다. 그렇게 지구적 프로젝트라기엔 너무나 소박하지만 개인의 실험으로는 방대한 규모인 이 빙하기 공원이 문을 열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카메라는 그에게 다가간다. 세르게이는 더 많은 동물들을 구하고픈 욕망을 카메라 앞에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야생마, 무스, 엘크, 순록, 야크, 들소...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한다. 첫 인상은 그저 좀 이상한 노인이다. 과연 그는 자신만의 왕국 또는 사파리를 만들고픈 괴짜인걸까? 19세기 제국주의 시절 전 세계의 오지 곳곳에서 등장했던 모험가 백인들, '왕이 되고 싶었던 사나이'들을 떠올려본다.
 
괴짜는 분명하지만 세르게이 지모프는 확고한 소신을 갖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정열적으로 피력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위기는 이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문제다. 지구온난화는 탄소배출과 직결된다. 배출량을 줄이자고 논의가 무성하지만 새로운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 이미 과학자들이 오래 전부터 경고해 왔지만 간과되고 있는 현안이다. 바로 시베리아의 빙하기 때 얼어붙은 영구동토 층이 녹고 있다는 문제다. 두께 수 미터의 빙하 아래 거대한 이탄층이 존재한다. 이 지층에는 추산 5천억 톤(!)에 달하는 메탄가스가 갇혀 있는 상태다.
 
메탄은 탄소의 25배 정도 온난화 유발효과가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시베리아의 지표면 아래 동토가 전부 녹는다면 여기에서 해방된 메탄으로만 2100년이 되면 0.3도 지구 평균온도 상승이 이뤄질 전망이다. 근래 인류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정도의 파괴적 효과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해법으로 세르게이는 광활한 시베리아에 빙하기 시절과 동일하게 야생동물이 넘쳐나는 대초원 지대를 재현하자고 주장한다. 대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걸까.
 
의외로 그의 주장은 그럴듯하게 들린다. 영구동토 층이 녹으면 땅속 빙하가 담고 있던 메탄가스가 해방되기 때문에 막아내야 한다. 그런데 지구온난화 덕분에 상대적으로 예전에 비해 시베리아에서 대형 초식동물이 거주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기도 한 상황이다. 여기에다 대량의 야생동물을 풀어놓고 증식시킨다면 야생화 된 대형 초식동물들은 겨울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단열재 역할을 하는 눈을 파헤치게 된다. 따라서 쌓이게 되는 눈의 보온효과가 감소하게 된다. 즉 해당 지역의 겨울철 지표 온도가 더 낮아지는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럼 여름엔 다른 효과가 뭐가 있을까. 많은 수의 초식동물이 시베리아를 활보하게 된다면 잡목 대신 풀 위주의 초원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기후 상승으로 숲이 우거질 경우 상대적으로 더 많은 태양열을 흡수해 온도를 보전하게 되는데 동물들의 자정작용 덕분에 숲의 태양열 흡수효과가 감소하는 셈이 된다. 실제로 노르웨이도 순록을 이용해 비슷한 실험을 시도하는 중이라고 하니 처음엔 무모하게 보이던 세르게이의 주장은 제법 매력적인 가설이 맞는 듯싶다.
 
물론 세르게이의 이론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 또한 만만치 않다. 생태계 교란을 인위적으로 일으키는 것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다. 특히 미국 등에서 유행하는 매머드 부활 프로젝트를 비판하는 이들은 인위적인 생명 창조를 위해 기존에 자생하는 동식물 생태계를 개조하는 행위에 대해 문제 삼는다. 하지만 세르게이 부자는 매머드 부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그저 매머드가 살았던 플라이스토세의 환경을 복원하고 싶을 뿐이다.
 
복잡한 해설보단, 좌충우돌 두 부자의 실현과정이 영감을 주다 
 
 영화 <플라이스토세 공원> 스틸

영화 <플라이스토세 공원> 스틸 ⓒ Java FIlms

 
하지만 본 작품은 과학이론의 해설영상이라기 보단 '우공이산'을 실행하며 체념과 낙관을 반복하는 두 부자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는 재미로 가득 채워져 있다. 세르게이는 자신의 이론이 상당부분 직관에서 유래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자신이 옳다고 굳게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소련 붕괴 후 제대로 된 정부 지원을 받아본 적이 없는지라 그의 학설을 증명할 만한 프로젝트를 실현하지 못한 채 그의 무뚝뚝함은 심해져 간다. 그는 좌절한 예언자의 느낌을 물씬 풍기기 시작한다. 그는 굳건한 신념의 소유자이지만 현실의 막막함은 그를 점점 투덜거리는 노인으로 만들어간다. 영화 중반이 되면 세르게이는 우울증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카메라에 화를 내고 촬영을 거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부친에 대한 애정과 어릴 적부터 토론하며 연구해온 이론을 어떻게든 계속 실험하고픈 아들 니키타가 있다. 그는 타개책을 애써 궁리하며 이것저것 시도해본다. 영화 중반부 이후 작품의 추진력을 이어나가는 건 다음 세대에 공원을 책임질 니키타의 도전과 시련의 순간들이다.
 
니키타는 아버지는 싫어할 것 같다고 염려하면서도 정체된 상태인 플라이스토세 공원을 활성화하기 위해 페이스북도 만들고 인터넷에 킥 스타터 후원도 개설하면서 후원자와 자금을 모은다. 특히 서구 쪽에서 관심이 높다고 한다. 제법 기부자가 모여서 10만 달러 정도 후원금이 일차로 모아졌다. 이제 새로 동물들을 구입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들소나 야크 같은 큰 동물들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던 것에 비하면 너무 쉽게 후원금이 모여서 싱거울 지경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그들의 플라이스토세 공원은 지구의 북쪽 끝에 있고 십여 마리 남짓한 건장한 짐승들을 구입해 그곳까지 가는 여정은 오지탐험 차원에 필적한다. 감독은 영화 후반부 두 차례의 동물 수송 대작전에 함께 동행을 하면서 어느새 관찰자에서 공원 일꾼으로 참여하게 된다. 1차는 사향소, 티베트 고원의 상징 동물 중 하나인 야크다. 10여 마리의 야크를 옮기는 건 엄청난 고행길이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그동안 말이나 낙타, 엘크, 무스 같은 동물들을 공원에 풀어놨지만 그들이 기대하는 연구결과를 얻으려면 매머드에 준하는 대형 동물들이 절실했던 것이다.
 
대형트럭, 바지선을 왕복하며 그들은 밤낮을 달려 한 달이 넘는 대장정을 치른다. 국경을 지날 때마다 검역이나 통관 절차도 만만치 않다. 이런 종류의 수송은 유래가 드물기 때문이다. 니키타와 일행은 길 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렵게 구입한 동물들에게 탈이 나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1차는 야크였지만 2차는 훨씬 덩치가 큰 바이슨 들소다. 그 거대한 동물들이 먹을 건초나 물을 조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괜히 극지방 탐험에 작고 육식 위주인 개를 썰매 수단으로 선택한 게 아니란 교훈을 확인하게 된다.
 
하루하루 장거리 수송에 지치고 예민해진 짐승들을 돌보느라 좌불안석을 거듭하지만 인간 일행의 먹고 자는 문제 해결도 난제다. 길은 갈수록 무늬만 남고 점점 도로사정이 나빠지면서 툭 하면 차량 수리 문제가 발생한다. 이들의 여정은 거의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수준에 이른다. 영화의 장르가 갑자기 어드벤처 모험 물로 전환된 기분이 들 정도다.
 
불평과 푸념이 늘어가던 세르게이는 이 새로운 도전에 못내 기분이 좋아 보인다. 아들 일행을 맞이하러 멀리 나온 그는 자상한 표정으로 동물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수송에 힘을 보탠다. 천신만고 끝에 한동안 정체되었던 공원에 새 식구들이 이주한다. 이제 이 곳에는 백여 마리의 야생동물들이 있다. 하지만 영화 시작 때 천만 마리의 동물이 필요하다고 했던 것에 비하면 여전히 실험을 본격적으로 펼치기에도 턱 없이 모자란 숫자다.
 
세르게이의 계산으로는 1평방킬로미터 당 매머드 1, 들소 5, 말 7, 순록 15마리가 적정선이라 한다. 즉 평방킬로미터 단위당 중형 이상의 초식동물이 20여 마리는 있어야 한다. 세르게이가 시베리아 전체에 플라이스토세 대초원 지대를 복원하려면 들소 천만 마리가 필요하다고 서두에서 인터뷰에 답한 건 그냥 엄살이 아닌 최소량이었던 셈이다. 그래도 뛰어노는 들소와 야크를 보면서 기분이 좋아 보인다.
 
불완전한 미완의 실험이지만 흥미로운 시도를 지켜보자
 
 영화 <플라이스토세 공원> 스틸

영화 <플라이스토세 공원> 스틸 ⓒ Java FIlms

 
영화에 다 담기진 않았지만 이 생태복원 실험장은 서서히 서구 학계에서도 주목을 끄는 중이다. 매머드라면 열광하는 미국에서 후원재단이 만들어졌고 적지 않은 이들이 이 북극에 인접한 플라이스토세 공원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모프 가족은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숙식을 제공하느라 바빠졌다. 번거롭다며 세르게이는 여전히 툴툴대지만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다. 별다른 지원도 받지 못한 채 연구에 몰두하느라 넉넉할 리 없던 가족의 생계에도 다소나마 도움이 될 테니. 괄괄한 성격 때문에 소련 붕괴 후 혼란기 시절 정부 관계자와 충돌하면서 외부 원조를 포기했던 그에겐 뜻밖이지만 반가운 상황일 테다.
 
미국 유명대학에서 매머드 복제연구를 하는 관계자들도 이곳에 방문한다. 세르게이는 우호적으로 그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분명히 그들과 세르게이의 고민지점은 퍽 거리감이 있다. 선사시대의 거대 야수들 중 유일하게 인류의 역사시대까지 존재했던 매머드 부활 프로젝트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로망처럼 인기를 끄는데 비해 보다 실용적인 문제 해결에 착목한 그의 연구는 거의 도움 없이 20여 년을 소외되어 왔었다. 여전히 공허한 매머드 연구 붐에 비해 플라이스토세 공원에 들어가는 자원과 관심은 턱 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상세하게 설명되지는 않지만 플라이스토세 공원의 제한된 규모와 조건에도 불구하고 실제 지구온난화 관련 연구에서 차곡차곡 데이터를 내고 있는 쪽이 어디인지는 명백하다. 실제 (들소와 야크가 번식중인) 플라이스토세 공원 토양에서 다른 지역에 비해 높은 탄소 함유량이 증명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정말 지구온난화에 맞설 몇 개 안 되는 실용적 대안이 될지도 모르는 실험인 셈이다. 세르게이와 니키타, 괴짜 부자에 의해 시베리아 어딘가에서 남들이 무성한 갑론을박으로 시간을 흘려보낼 때 그 결과가 궁금한 실험이 25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하는 건, 이 우울한 세상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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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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