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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평생 남편의 유급노동을 '돕고' 가사노동까지 도맡아 하는 60대 여성이 등장한다. 이 여성은 매 끼니 때마다 식구들의 밥을 차리고, 상을 치우고, 빨래하고 청소하며 한시도 쉬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족들의 식사를 준비하던 이 여성은 밥을 안치고 잠든 채로 사망한다. '57년생 곽혜숙' 캐릭터의 갑작스런 죽음은 극적인 표현이기는 했지만, '죽어서야만' 벗어나는 것이 가능한, 여성의 끝없는 독박 가사‧돌봄노동의 굴레라는 암울한 메시지는 그저 드라마 속 하나의 에피소드라기에는 너무도 현실적인 이야기였다.

드라마 속 현실과 우리의 현실

우리나라 남성의 가사분담률이 OECD 최하위 수준이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고용노동부는 2017년, OECD 통계와 2014년도 한국노동패널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는데, 이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가사분담률은 16.5%로 통계 산출 OECD 26개국 중 가장 낮았다.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45분으로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이 가장 긴 덴마크의 186분, 그리고 OECD 평균인 138분과도 큰 차이가 난다. 반면 한국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은 227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4월, 여성가족부는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2016년 조사 결과에 비해 전반적으로 남녀 모두 '남성은 생계부양, 여성은 자녀양육'이라는 전통적 고정관념이 완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가족의 생계는 주로 남성이 책임져야 한다'에 대한 동의가 12.2%p 감소(2016년 42.1%→2021년 29.9%)했고, '직장생활을 하더라도 자녀에 대한 주된 책임은 여성에게 있다'는 인식 또한 36.4%p로 크게 감소했다(2016년 53.8%→2021년 17.4%).

그러나 이러한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가사‧돌봄의 책임은 여성에게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가사‧돌봄을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부담한다'는 응답이 68.9%로 가장 많았는데, 맞벌이 부부의 경우에도 60% 이상(여성 65.5%, 남성 59.1%)이 '전적으로 또는 주로 아내가 가사와 돌봄을 한다'고 응답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1월 '2020 성인지 통계'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서 특히 눈여겨보게 되는 지표가 있었는데, 바로 '시간 부족으로 인해 가장 줄이고 싶은 일'을 물었을 때의 응답이었다. 1위였던 유급노동(여성 42.9%, 남성 61.6%)을 제외하면, 여성은 가사노동(19.2%), 이동(11.9%), 돌봄노동(8.7%) 순인데 비해 남성 응답은 이동(13.0%), 학습(11.9%), 교제 사회활동(6.0%) 순으로 서로 달랐다. 이는 유급노동 이외에 중심을 두고 있는 것이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가사‧돌봄의 젠더화와 여성 건강

드라마에서 '57년생 곽혜숙'씨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엄마가 하던 가사노동을 맡게 된 딸은 잔뜩 화가 난 채로 '엄마의 죽음은 과로사'라고 일갈한다. 이 대사는 '82년생 김지영'처럼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유급, 무급노동으로 '과로'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떠오르게 한다.

앞서 통계가 보여주듯 유급노동을 하는 여성은 직장에서 퇴근하면 다시 무급가사‧돌봄노동의 장인 가정으로 출근한다. 여기서 사실 맞벌이부부냐 아니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데, 유급노동을 하지 않는 여성은 퇴근도 없이 하루 종일 집안에서 무급가사노동을 하거나, 공식적으로는 유급노동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남편의 유급노동을 함께 하면서 무급가사‧돌봄노동까지 도맡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음의 연구는 지금의 현실에서 여성의 삶과 건강에 있어 '일'의 범위에 대해 재고하게 한다.

2020년, 국제 학술지 <비판공중보건(Critical Public Health)>에 실린 미국 인디애나대학교 Emily Q. Ahonen의 연구는 유급노동과 건강 사이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연구들에서 무급 노동의 역할에 대한 탐구가 적었다는 데 착안했다. 이에 미국 여성들에게 있어 평생에 걸쳐 수행한 유급 및 무급 노동이 노년기 심혈관 건강에 미치는 역할을 분석했다. 그 결과, 여성의 일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할 때 유급노동뿐만 아니라 무급노동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당 연구에서는 가정 내 '아내', '어머니', '딸'과 직장에서 '노동자'의 역할은 상반된 기대를 불러오고 두 영역 모두에서 역할에 대한 기대치를 충족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성들은 가정에서는 유급노동으로 인해 가족 돌봄과 관련된 역할 기대치를 훼손한다고 비난받고, 일터에서는 직장에 완전히 헌신하는 이상적인 노동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다고 비난받는다.

그리고 이는 종종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 강도를 높이거나 더 길게 일함으로써 훼손된 기대를 회복하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이에 시간의 부족을 고착화하기도 한다. 이는 곧 시간의 부족은 운동, 건강한 음식 섭취, 충분한 수면, 휴식 등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활동들을 하지 못하게 하며, 유급노동과 무급노동의 혼합된 책임감에 대한 부담으로 늘 시간에 쫓기거나 건강을 해치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한편, 젠더화된 가사‧돌봄노동은 여성들의 정신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조선미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기혼 여성 노동자의 일·가정 양립 부담과 우울증상: 직장 내 성차별 인식의 조절효과'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성별 분리 관행 속에 일터에 전념하는 남성과 달리, 여성은 일터에서의 의무와 가족 돌봄의 역할을 조율하도록 요청받는 일·가정 양립의 주된 책임자로 간주되며, 일터와 가정에서의 이중 부담 구조는 여성의 우울을 증가시키는 등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봤다. 분석 결과, 과도한 직장 업무로 가정생활에 지장이 커질수록, 과도한 가사 업무로 직장생활에 지장이 커질수록, 배우자와의 가사 분담 수준이 불만족스러울수록 기혼 여성 노동자의 우울증상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분담 앱(app)'까지 등장했지만… 핵심은 '구조적 성차별'

최근 MIT Technology Review의 Tanya Basu는 몇 년사이 해외를 중심으로 등장한 '가사분담 앱'을 소개했다. 그 중 하나인 코지(Cozi)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코지 앱 이용자의 90%가 기혼이거나 파트너가 있으며 이용자 중 86%는 여성이고 자녀와 함께 사는 이용자도 86%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앱들은 여성들이 결국 기술을 사용해서 가족구성원에게 가사노동을 분배하는 일까지 떠맡게 해, 표면적으로는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설계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성들의 일을 더 늘리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더 최근에 나온 앱들은 다른 방식을 채택하기도 했다. '닙토(Nipto)' 앱은 각각의 가사노동이 얼마나 지루하고 불쾌한지에 따라 그 일을 처리한 사람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점수가 가장 높은 사람에게 비싼 간식 구매나 재미있는 영화 보러 가기 같은 보상을 지급한다. '메이플(Maple)' 앱은 집안일을 분배할 담당자 없이 가족 구성원들이 채팅을 통해 각자 어떤 가사노동을 맡을지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렇게 '힙해 보이는' 중재자로서 기술이 개입하더라도 가사‧돌봄노동을 둘러싼 뿌리깊은 성별고정관념과 구조적 성차별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Tanya Basu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반해 "여전히 쟁점은 남성이 가사노동 측면에서 여성과 동등한 역할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할 수 있는가'"임을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가사분담 앱은 소극적인 파트너를 참여시키는 부분에서는 어느 정도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수 세기 동안 이어진 성차별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러한 앱이 각종 가사노동을 누가 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데는 도움을 줄 수 있지만 파트너 두 사람이 변화의 필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 거라는 얘기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한 정치인이 '가사 미분담 죄' 신설을 주장했다고 한다. 사실 그 주장보다는 그가 근거로 덧붙인 말이 나에게 소소한(?) 충격을 줬다. "1970년 이후 (가사 분담에서) 거의 아무런 진보가 없었다. 남성의 가사 분담은 고작 14분 늘어나는 데 그쳤다"며 "이 속도라면 프랑스에서 남녀의 동등한 가사 분담까지는 6300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이다. 6300년…. 대충 계산해보니 고조선 세워진 기원전 2333년부터 2022년 현재까지의 시간을 합쳐봐도 6300년이 안 된다.

한국의 가사분담률이 프랑스보다 낮은 것까지 고려하면, 한국의 경우는 그보다 더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정말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독박 가사‧돌봄노동은 집안에서 평등하게 일을 나누는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여성들이 유급노동을 그만두고 경력단절의 길로 접어들게 만드는 구조적 성차별의 한 원인이자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사노동과 돌봄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필수적인 노동으로, 특정한 성별에게만 전가할 문제가 아니며 그렇게 해서는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그리고 6천년쯤 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조상님' 정도 되어서야 가능한 '해방', 그런 건 필요 없다. 완전하진 않더라도, 모든 여성들이 살아서 '평등한 해방'을 누리기를 원한다. 그 시작은 일상에서 드러나는 구조적 성차별,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불평등을 인식하고 변화의 실천에 나서는 것이다.

*참고자료
불평등연구회 홈페이지, "부부 가사노동 분담, 무엇이 문제인가?", 2020.2.7.
여성가족부, "2021년 양성평등 실태조사 주요 결과 요약", 2022.4.19.
경향신문 플랫, "'성평등' 인식은 늘었지만 돌봄 부담은 여전히 '불평등'", 2022.4.22.
경향신문 플랫, "서울 맞벌이 부부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 남성의 3배 넘어", 2021.1.20.
이코리아, "양성평등 '찔금' 개선, 가사·돌봄 '여성 부담' 여전", 2022.4.20.
MIT Technology Review(Kor), "Chore apps were meant to make mothers' lives easier. They often don't(가사 분담 앱이 정말 '엄마'의 집안일 부담을 덜어줄까?)", 2022.5.18.
경향신문, "일·가정에 허덕이는 기혼 여성, 직장 성차별 심할수록 '더 우울'", 2022.5.27.
프레시안, "건강에 독이 되는 여성의 무급노동(작성 : 류한소 시민건강연구소 회원)", 2022.6.2.
세계일보, "프랑스인 절반 "집안일 안하는 남편 '형사처벌' 동의…가사분담 70년대 수준"", 2022.4.9.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작성자는 김현수(도구)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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