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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어 넘치지 않고 바닥이 타지도 않는 알맞은 높이의 눈길과 그 눈길을 따라가는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드러내 주는 것, 그만큼 자신이 놓인 삶의 자리를 작품을 읽는 사람에게 내어준다."

손정란 평론가가 신애리 수필가의 산문집 <달빛을 보내주세요>(선우미디어 간)에 대해 한 말이다. 손 평론가는 "더러는 마음의 무늬를 펼쳐 보이기도 하고 세상을 향한 따끔한 일침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과 시조 짓기를 해온 신애리 수필가가 이번에는 그동안 써 놓았던 산문 57편을 한데 묶어 책으로 펴낸 것이다.

2년 전 초등학교 교사를 그만두고 지금은 지리산에 귀촌해 살고 있는 그는 "바쁘게 살아온 시간의 습관을 내려놓고 느릿느릿 섬진강처럼 지내며 오랫동안 숨어 살았던 이야기들을 끄집어내서 햇살을 보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잘 살았다고 말하기 보다는 잘 견뎠다, 그렇게 위로하는 시간을 2년 쯤 보내고 나니 힘이 조금씩 새로워 진다"며 "남겨진 시간 동안에는 '긍정문'을 만들기 위해 새출발한다"고 했다.

산문집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다. 교사 생활 등 일상에서 가졌던 치열한 삶의 흔적과 고민들이 담겨 있다. 생각이 깊은 만큼 그의 문장마다 표현은 운동장에서 즐겁게 노는 아이들처럼 생기발랄하다.

"누구랑 나눌지, 많지도 않은 매실액을 놓고 머릿 속은 행복한 꿈으로 화르르 하얀 매화꽃이 피어난다"(매실의 발효를 바라보며).

"신발에 묻은 흙을 툭툭 털면서 인연의 몫을 정리하던 간단명료한 지혜가 요즘은 구절구절 법으로 얽히고, 주민등록번호처럼 긴 숫자에 칭칭 감긴 관계에 묶여 ..."(후회하는 중).

"인간이니까 미련하다. 인간이니까 도망가고 싶어 한다. 인간이니까 꿈을 꾼다. 인간이니까 그렇다. 기다리고 싶어지는 거다"(소주 한 잔).

산문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신 수필가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는 안녕하실까. 남편을 일찍 여의고 어린 여섯 남매를 키우기 위해 낮에는 큰 들에서 농사일을 하시고 밤에는 한복을 짓던 어머니. 어머니는 잠도 없었을까. 돌돌돌. 두 발로 돌리는 재봉틀 소리가 자장가처럼 정겨웠다"며 어릴 쩍 기억을 되살렸다.

"먼 그리움의 끝자락에는 늘 어머니가 계신다. 하얗게 눈 내리듯 삭아가는 어머니가 아직도 뜨겁게 계신다. 이제야 겨우 철이 들어가고 있다."

"철이 들었다가"가 아니라 "들어가고 있다"고 하니, 그 딸의 '겸손'이 묻어 있다.

"모든 것을 잊어야 한다. 미움도 원망도 사랑도 동정하는 마음도 심지어는 따스한 온기까지. ... 밤새워 촉석루를 산책하면서 새날의 여명을 맞는 건 또 어떨까. 그러면 아쉬움 없고 그리움 없는 현실을 만나게 될까. 결코 사라질 것 같지 않은 아픔에서 자유로울 망각이란 치유의 순간을 맞이할까?(망각).

"그만 놓아라. 이제 그만 놓아라. 길섶의 풀들이 초록으로 다투어 솟아오르는 동안 떠밀려서 덩달아 솟아오른 누런 치기의 기억들은 왜 빨리 사라지지 않는지. 그것들도 언제쯤이면 초록만으로 보일까"(유월의 눈물 맛).

수필에는 코로나19도 등장한다. 그는 코로나19가 발생했을 때 학교에서 명퇴를 하고 손자를 '지키기' 위해 한 달 간 서울살이를 했던 모양이다.

"코로나19는 왜 이래야 하는지 이유를 제대로 말해 주지도 않았다. 이웃과의 소통조차도 무자비하게 잘라 놓았다. 덕분에 지리산으로 덜컥 귀촌하게 되었다. 지리산 자락에 숨어 코로나19가 소리 없이 지나가길 가만히 기다리기로 했다. 도심 속에서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숨 쉬는 뜨거움을 피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귀촌을 합리화시켰다"(코로나19 새길을 내다).

글쓴이는 경전선을 타고 진주에서 목포로 가려고 했던 날 역사에서 열차를 기다렸던 상황도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기다리는 내가 보인다. 기다림 속에 갇힌 내가 보인다. 네가 돌아오지 않고 내가 돌아가지 않아도 기다림은 낡은 역사의 후줄근한 의자에 앉아 움직일 줄 모른다. 집을 잃고 휘청거리는 취객꾼 하나가 역사의 의자 위에 앉아 지루한 기다림 하나를 더 보탠다.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은 경전선도 오랜 기다림도 취객꾼의 흐느낌도 똑 같았다. 기다림의 역사에 서 있을 뿐이다."

신애리 수필가는 2006년 <시조월드>와 2007년 <아시아문예>에 시조와 수필을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여행> 14권을 펴냈으며, '제4회 새싹시조문학상'을 받았다.
 
신애리 산문집 <달빛을 보내주세요> 표지.
 신애리 산문집 <달빛을 보내주세요> 표지.
ⓒ 선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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