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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감된 후 가진 기자회견과 1975년 2월 동아일보에 게재한 옥중기 <고행...1974> 필화사건으로 출옥 한 달만에 재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공판을 받고 있다.
▲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감된 후 가진 기자회견과 1975년 2월 동아일보에 게재한 옥중기 <고행...1974> 필화사건으로 출옥 한 달만에 재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공판을 받고 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되었다가 출감된 후 가진 기자회견과 1975년 2월 동아일보에 게재한 옥중기 <고행...1974> 필화사건으로 출옥 한 달만에 재투옥된 김지하 시인이 서울형사지법 법정에서 공판을 받고 있다.
ⓒ 아트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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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의 '조사'는 학생들에게 화제가 되고 일반에도 널리 알려졌다. 그때까지 박정희에게 쏘아 댄 각계의 비판 중에 가장 강도 높은 비판이었을 것이다. 그는 뒷날 회고록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지금 생각해도 〈5.20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조사〉는 그리 잘 쓴 명문은 못 되었다. 그러나 처음 쓰는 문장이라서 도리어 '투'가 없고 산뜻한 '풍자미'가 곁들어져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박정권을 아예 초장부터 시체요, 썩어가는 송장으로 단정하여 일단 죽이고부터 들어갔으니, 이 노골성이 그들의 기분을 몹시 상하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들으니 박정권의 고위층까지도 "이런 죽일 놈!"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책임을 진 송철원 형이 피신해 체포가 안 되어서 내게는 그리 심각한 피해가 없었다. (주석 6) 

굴욕외교 반대투쟁은 더욱 확산되어 6월 3일에는 서울의 18개 대학 학생 1만여 명이 광화문까지 진출하자 정부는 비상계엄령을 서울 지역에 선포하여 한일회담 반대운동을 진압하고 학생들을 체포 투옥했다. 김지하도 체포되어 4개월 동안 서대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한다. 첫 감옥살이였다. 9월에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 시기 그는 시작 활동에도 열심이었다. 문리대 기관지 <신세대>에 '추(醜)의 미학', '회화에 있어서의 리얼리즘', '황불', '4월' 등을 발표했다. 시 '황불'이다.

황불이 일어 / 갔네 / 육신에 내리친 계엄의 미친 / 저 산장 위에 저 총창 위에 저 말발굽 위에 / 저 바리게이트 위에도 / 되게 쳐라 / 활활활 황불에 일어 / 갔네 / 개처럼 끌려갔네 / 하늬도 소소리도 회오리도 없이 고인 불 / 황불이 일어.

다음은 '4월'이다.

가장 완강한 벗들마저도 / 속물들의 저 비웃음을 이겨내지 못한다 / 투항하고 투항하고 / 또 다시 투항한다. (주석 7)

그는 병약한 신체였다. 가난으로 제대로 먹지 못한 까닭이다. 고등학생 때는 늑막염으로 고생하고, 대학시절에는 폐렴과 폐결핵을 앓았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월 베트남 파병을 결정하고 2월에는 한일굴욕회담으로 성안된 한일기본조약을 강행했다. 4월에 학생들은 다시 대일굴욕외교 반대 시위에 나서고 동국대생 김중배가 경찰과 충돌 도중에 사망했다. 6월에는 한일협정이 일본 도쿄에서 가조인되고 8월에 공화당 단독국회에서 비준안이 통과되었다. 비준안 반대시위가 전개되고 위수령이 발동되어 고려대와 연세대에 무장군인이 진주했다. 

김지하는 전국에 지명수배되었다. 학생시위 선동의 혐의다. 그는 이즈음 민요 '파랑새 요(謠)'를 차용하여 선전가요 〈최루탄가〉를 지어, 학생시위 때에 단골로 불렸다.

최루탄가

 탄아 탄아 최루탄아 
 팔군으로 돌아가라 
 우리 눈에 눈물지면 
 박가분(朴家粉)이 지워질라.

 꾸라 꾸라 사꾸라야
 일본으로 돌아가라 
 네가 피어 붉어지면
 샤미센(三味線)이 들려올라. (주석 8)


주석
6> <회고록(2)>, 35~36쪽.
7> 앞의 책, <작가세계>, 25쪽.
8> <회고록(2)>, 40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지하, #시인김지하평전, #김지하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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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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